우리나라에서 만화보기는 곧 웹툰을 보는 것과 같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서 다양한 단말기로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 예전처럼 만화방, 도서대여점을 찾아서 직접 만화를 보기 위해 움직이는 수고를 들이는 것은 불필요해 보일 정도다. 그러나 카페처럼 세련되고 안락한 장소에서 만화를 볼 수 있는 곳들이 최근 대학가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국내 만화뿐만 아니라 평소 보기 힘들었던 일본과 미국, 유럽 등 다양한 해외 만화를 트렌드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간식과 함께 즐길 수 있단 장점이 젊은 층에게 어필하고 있다.
과거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만화방과 대여와 반납으로 이용이 번거로웠던 대여점의 단점을 극복한 만화카페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계속되는 불황에 적은 돈으로 휴식과 재미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그 인기비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50년대의 만화방과 1990년대의 대여점의 흥망성쇠 국내에서 처음으로 종이만화책을 즐길 수 있었던 때는 1950년 대 전후였다. 손상익의 『한국만화통사』와 주재국의 『만화방 주인의 이바구별곡』에 따르면 국내에서 만화 대본소가 자리 잡은 것은 1950년대 말에 시장 좌판거리에서 만화책을 펼쳐놓고 현장에서 빌려보는 형태와 문구점, 완구점과 같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점포들이 매상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만화를 유통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형태의 만화방이 1950년대 초부터 60년대에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이렇게 생겨난 만화방은 만화 도서를 구입하고 유통, 소비를 제한했다. 이 당시 만화를 볼 수 있는 곳이 만화방으로 한정된 탓에 나중에는 작가와 출판사, 총판이 담합하여 독점하다시피 하던 때도 있었다. 또 청소년 흡연, 음란영상물을 불법으로 상영해서 풍기문란업소로 지정되는 시절도 있었다.
이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만화방은 일판만화의 날림 제작, 불법 일본만화의 유입 도서여점의 등장 등으로 쇠퇴했다. 당시의 분위기도 청소년 탈선의 온상으로 만화방이 항상 사회문제로 지적됐다. 그런 영향으로 1990년에 ‘학교보건법’이 제정되어 정화구역 내의 만화방을 폐업시키고 ‘풍속영업에 관한 법률’로 ‘단속 대상업소’로 분류되기도 했다.
일판만화라고 불리는 대본소용 만화에서 서점용 단행본으로의 형태가 자리 잡고 만화잡지 산업이 확대되면서 만화방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도서 대여점에서 만화를 빌려보는 시스템이 고착화된 것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에 등장한 대여점은 급속히 줄어드는 만화방과 대본소의 자리를 차지했다.
1994년 6월의 한 일간지 통계에 따르면 도서대여 체인업체만 10여개가 등장했고 서울에는 약 230개, 전국에는 약 630개로 추정될 정도로 확장됐다. 1997년 문화체육부의 『통계로 보는 문화산업』에 따르면 도서대여점은 1996년 말에 이르러서는 8,700개에서 12,000여 개로 폭발했다. 이후 1998년 IMF에 이르기까지 도서대여점의 호황기는 만화에 의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출판만화 산업이 위축되고 만화가들의 저항이 극심해졌다. 무엇보다 1000원 이하의 가격으로 만화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출판만화 시장의 악재로 작용했다. 그리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한 무료 콘텐츠들이 쏟아지면서 대여점 시장은 위축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서울 1,430개를 포함, 전국에 6,200여개로 대여점의 바람은 사그라졌다.
온라인 웹툰산업의 성장이 만들어낸 오프라인 만화카페의 인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15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만화산업 전반의 디지털화와 함께 전통적인 유통 분야의 사업체 수나 인력은 감소세를 유지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웹툰산업의 호황으로 만화출판업의 성장세가 유지되면서 만화책임대업의 큰 축 중 하나인 ‘만화방, 만화카페’가 신개념 또는 고급형이라는 형식으로 재등장해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이는 다시 만화책도소매업의 활력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이 분야의 상승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2014년 만화산업 중 만화 출판업 매출액은 4,103억 원으로 전년대비 8.6% 증가했으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7.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화책 임대업의 매출액은 683억 원으로 전년대비 0.3% 감소했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2.7% 감소했다. 이 중 만화임대(만화방, 만화카페 등) 매출액은 212억 원으로 2013년 매출액 203억 원에서 약 9억 원 증가해 전년대비 4.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그림1 만화산업 업종별 연도별 매출액 현황
보고서에서는 만화책 임대업종 중에서 유독 만화방, 만화카페의 매출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만화산업은 제작시장(만화출판업), 판매시장(만화도소매업), 임대시장(만화책임대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만화출판업→만화도소매업’이 생산과 유통시장의 축이라면, 임대시장은 ‘만화도소매업→만화책임대업’으로 이루어져 제작시장이 상승하거나 감소하면 판매시장과 임대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반면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업’은 ‘만화출판업’의 또 다른 유통 창구 또는 임대시장을 대체하는 역할을 하면서 기존 시장의 긍정적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지만, 전통적 시장구조를 혼란시키는 부정적 역할도 했다. 그런데 웹툰시장의 활성과 함께 다종다양의 신작 발행되고
일부 서비스가 유료화 되면서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업’이 유통 중심의 시장 기능에서 제작 중심의 시장 기능으로 변환됐다. 이는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업’의 산업 내 비중을 넓히는 한편, 제작시장의 규모를 늘리면서 전통적인 판매시장과 임대시장을 재활성화 시키는 역할을 했다. 만화책임대업 중 책대여점을 중심으로 한 서적 임대 부문 매출이 지속 감소세를 유지한 측면이 있지만 ‘웹툰의 신작효과’가 만화산업 전반의 매출 상승을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인식의 변화와 트렌드에 발맞춘 블루오션의 등장 웹툰산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부차적으로 확대된 출판만화 판매, 임대시장이 활기를 띤 것이 만화독자의 욕구를 자극했다면 트렌디한 감각과 20, 30대 젊은 층의 구미에 맞는 상품으로 만화카페의 개념을 리모델링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종이만화를 읽기 위해 어둡고 담배연기가 자욱한 지하층의 대본소를 찾을 필요가 없다. 밝고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형 공간에서 국내외 신간 만화를 간식과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한 테이블과 의자뿐만 아니라 독특한 공간구조에서 만화를 보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약 1평(3.3㎡) 정도 되는 토굴 혹은 땅굴이라 불리는 개인 복층 공간에 누워서 만화를 보는 건 이제 만화카페의 필수요소가 됐다. 텐트와 해먹, 이층침대 등으로 차별화를 둬서 고객을 모으는 개성적인 만화카페도 속속 늘고 있다.
입지선정도 대학가와 번화가 속 극장, 백화점 등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위치를 우선한다. 이미 홍대, 신촌과 같은 대학가에서는 망원만방, 즐거운 작당과 같은 단골들이 아껴찾는 만화카페뿐만 아니라 카페 데 코믹스, 놀숲과 같은 프랜차이즈 만화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작년 멀티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 코엑스 지점이 리모델링하면서 함께 오픈한 계단 아래 만화방, 롯데백화점 창원점에는 카툰공감이라는 만화 브런치카페, 현대백화점 울산점에는 익살스런 상상이라는 만화카페를 입점 시켰다. 이처럼 만화카페는 만화책을 보는 곳만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써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박석환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만화카페의 인기에 대해 "자영업자들이 새로운 창업 모델을 모색하면서 만화와 카페를 결합했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휴식공간을 원하는 대중들의 욕구가 늘어나 만화카페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 그림2 메가박스 코엑스점 계단아래 만화방, 그림3 롯데백화점 창원점 카툰공감
이처럼 만화카페는 웹툰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출판만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국내 만화산업의 외연이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조성됐다고 해서 저절로 인기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고질적인 경제 불황에 좀 더 저렴한 돈으로 재미와 휴식을 얻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해결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찾는 창업자들의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쇼핑, 독서, 콘텐츠 감상을 한 군데에서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인기를 얻는 추세를 보면 만화카페 또한 문화적 소비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징은 과거 대본소나 대여점처럼 만화만 보는 목적에 그치지 않고 특화된 문화향유의 공간으로써 소규모 독립출판, 독립서점의 형태처럼 다양하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화를 통해서 웹소설, 영화, 음악과 같은 콘텐츠를 접하는 문화적 교류뿐만 아니라 취미와 휴식을 한 곳에서 가질 수 있는 문화공간의 인식이 국내 만화산업을 좀 더 확장시킬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