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대상을 축하하며 근황은?
사실은 스토리부문에 출품하였기 때문에 대상을 받을 줄 몰랐다. 그래서 큰 기대를 안 했다. 이번 공모전 소식을 접하고 그동안 준비했던 스토리에 시놉시스와 콘티만 그려 제출했다.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에는 이미 2006년에 수상 경험이 있다. 대학 2학년 때였는데 그때 출판사에서 연락도 오고 이제 뭔가 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 뒤로 4년간 별 연락도 없었고 지금까지 준비만 하는 작가 생활을 했다.
공모전 응모작 중에 완성된 작품 원고로 응모한 분들도 많을 텐데 스토리와 콘티로 대상을 수상한 것은 그만큼 작품의 독창성이나 이야기 완성도가 높았던 것은 아닌가. 심사평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개인적으로 스포츠 중에서 야구를 아주 좋아한다. 예전에 일본에서 발표한 <파울볼>과 이번 작품이 야구를 배경으로 한 두 번째 작품이다. 매일 야구영상 보는 것을 즐긴다. 전문적인 야구팬은 아니지만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 가장 즐겁다.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어떤 이야기인가?
<실버 히어로즈>는 70대 한의사 할아버지가 야구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시즌 성적이 하위권인 팀에 할아버지가 신분을 감추고 마무리 전담 포수로 활약하는 내용이다.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상황에서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9회 말, 마무리 전담 포수라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한의사의 경력과 연륜을 바탕으로 타자의 신체 상태를 파악하여 그에 적절한 볼 배합으로 투수를 리드하는 히어로즈이다.
이번 작품을 구상한 의도는 무엇인가?
이번 작품도 그렇지만 ‘노인’이라는, 우리가 관심을 그리 두지 않고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사실은 예전부터 주위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만화를 통해서 전하면 공감이 되지 않겠냐는 조언이었다. 딱히 노인만이 아니라 소수자들, 즉 장애를 지닌 분들도 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된다. 내 모든 작품은 그러한 생각으로 이어져 왔다.
동기가 있을 것 같은데.
크게 의도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개인적 경험이 동기를 부여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왼손잡이이다. 우리는 자기가 다수자이면 소수자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것을 ‘나는 왼손잡이다’라며 특별히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런 사람도 있다’라고 보는 세상이길 원한다. 이러한 생각이 강박관념까지는 아니지만 늘 지녔던 생각이다. 게다가 나는 대머리이다. 이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나도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지 대머리에 대한 고민을 몰랐다. 언제부터인가 버스를 타도 맨 뒤에 앉게 되고 에스컬레이트를 타도 신경 쓰이고 식당에 가도 구석이나 벽 쪽에 앉게 됐다. 내가 이렇게 되기 전에는 몰랐던 변화이다. 예전에도 이런 사람을 보고 불쌍하다거나 안됐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배경에서 나는 만화가로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저런 사람들은 저렇게도 사는구나’라는 정도의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이후에 꼭 대머리가 주인공인 만화를 그릴 것이다. 그런 것들을 나는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
작가의 성장과정이 궁금하다.
나는 만화를 늦게 시작했다. 고교 때 만화학과가 처음 생길 때였는데 세종대 만화학과가 야간에 있었다. 당시에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었고 그림을 배운 적도 없었다. 단지 혼자서 그림을 그렸던 것이 전부인 셈이다. 그 후 어린 마음에 혹시 훗날에 만화로 이야기를 할 때 도움이 되는 전공, 즉 철학과나 사학과를 관심있게 봤고 실제로는 역사학과로 입학하여 1년 정도 대학 생활을 했다. 그 시기에 학생운동하는 선배들을 흔히 접하게 되고 수업조차도 역사나 정치 수업으로 근현대사 등을 들었다.
그 이전까지 워낙 몰랐기 때문에 1년의 경험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계기이다. 그러다가 군 입대를 했는데 제대 후에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서 집안의 이해가 필요했다. 부모님의 지원보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었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열심히 무엇을 하려는 착한 아들, 성실한 아들의 모습을 보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술도 즐기던 나였지만 휴가 때 착실하게 보내며 듬직한 아들의 모습을 ‘코스프레’한 시기였다. 그런 신뢰 이후에 다시 3년 정도 입시를 준비하여 결국 26살에 만화학과를 들어가서 서른에 졸업했다.
처음엔 카툰으로 출발했다. 늦게 시작한 만화학과 학생으로 그림에 대한 부족함이 있었다. 일반 만화보다 함축적인 그림 한두 컷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카툰의 특성이 나에게는 돌파구였다. 한 컷만 정성스럽게 잘 그려서 중의적인 메시지만 잘 버무리면 충분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경쟁력이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시사만화가, 카투니스트였던 그 시절과 지금 만화가로서의 입장은 어떤가?
원래 시사만화가가 되려고 했다. 현재 카툰 작업은 하지 않고 있지만, 한때 카툰 작업을 정말 열심히 했다. 지금은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난감한 부분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서 만화가라고 하면 어떤 작품을 했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아직 사람들에게 말할 만큼 유명한 작품이 없다. 이것은 단지 프로필이나 작품 히스토리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만화가로서의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유명세보다는 다른 만화가들처럼 몇 년씩 연재를 해보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원래 꿈이 연재였다. 4년 정도 연재하는 것을 꿈꿨다. 직업인으로서 만화가라는 내 자아가 미형성된 것 같다. 시나리오를 많이 쓰기는 하지만 이것을 꼭 만화의 이야기로만 쓰지 않는다. 지금은 만화로 표현하고 있지만 영화 대본으로도 쓴다.
이야기꾼의 입장에서 본인의 이야기 출발은 무엇인가?
이야기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말하게 된다. 나는 살아가면서 ‘이것은 싫다’라고 분명히 느끼는 지점들이 있는 편이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일들인데도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가 이야기로 풀어내게 된다. 누워 있다가도 그런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다. 나는 글을 쓰는 이들이 이러한 재능을 가진 것을 대단한 축복이라고 본다. 물론 만화가도 그렇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기술적 측면이라고 본다. 내가 느낀 것을 대중에게 재미나 감동을 통해서 공감을 유도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 지점까지 가지 못했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다. 공모전은 서너 줄의 아이디어와 독창성 등을 통해서 운 좋게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거기까지인 것 같다. 아직 대중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내 자신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사실 이런 자신의 한계 때문에 이야기를 대중적이며 간결성을 확보하려 하고 화풍도 계속 바뀌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보다 좋은 그림, 대중이 좋아하는 그림을 찾아가는 노력으로 봐 주길 바란다. 나는 아직도 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 중에 할 수 있는 이야기만 연출하는 수준이다. 못 그리는 그림은 실제 연출에서 제외해 버리기도 한다.
인터뷰 준비 과정에 접한 작품의 화풍 변화가 독특했다. 단편을 포함하여 10여 작품의 그림체가 점진적 발전의 궤적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로 느껴졌다. 일부 작가의 경우 성공한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그려 하나의 브랜드화하는 경우도 있다.
허영만 화백처럼 대부분의 작품 캐릭터가 전혀 다른 인물인 경우도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유럽권에서 호평할 그림체는 물론 <대역사> 같은 작품에서는 학습만화의 보편적 화풍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같은 화풍의 변화는 무슨 의미인가?
나는 만화가를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은 하나의 수단이라고 본다. 이야기꾼은 가수일 경우 음악이 되듯이 각 장르마다 그 수단이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만화를 쉽게 풀어낸다는 것, 재미를 담보한다는 것은 작가의 책임이다. 이를 위한 기술과 실력에서 나는 아직 부족하다.
<달팽이관 실종사건>은 연재였기 때문에 마감에 몰려 그렸던 작품이고, 나에게 첫 극화작품은 일본 고단샤의 <모닝> 국제만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던 <울리지 않는 메아리>였다. 그리고 <대역사>(김영사)는 오랜 기간 작품 준비만 하던 어려움 끝에 진행했는데, 이 당시 내 그림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특이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대중적이지 않았다. <울리지 않는 메아리>는 칸 분할이나 캐릭터 묘사가 특이한 작품이라면 <대역사>는 학습만화의 일반적 화풍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대역사>를 보면 발전이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변화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농담으로 ‘사찰화풍’이라고 하지만 상업적이거나 대중 인지도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리스타일2> 스토리보드 작업이 또 다른 화풍인데 그것은 게임 캐릭터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기존의 내 그림 어떤 것과도 다를 뿐이다.
화풍보다 캐릭터의 반복적 사용은 내게 있어서는 다른 문제이다. 허영만 선생님 같은 분은 많은 인지도를 가진 작가이지만, 나는 중단편 만화 몇 작품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도 그림을 배우고 찾아가는 노력의 과정이다. 몇 작품을 하면서 이것이 좋은가 저것이 좋은가를 늘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으니 지금도 찾아가려는 과정이다. 또한 캐릭터가 굳어지는 경우는 인기 연재작들이 몇 년에서 십년 이상 이어지는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그에 비해 나는 단편 위주의 몇 작품이어서 캐릭터는 이어질 여건도 아니었고 그림 전체에서 보이는 느낌이 다른 것은 내 그림을 찾아 가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작업은 혼자 하는가?
그렇다. 나는 이야기 구상부터 완성까지 혼자 진행한다. 다만 기획취재만화만 공동작업이 될 것 같다. <대역사>나 예전 단편 중 <비밀>, <침묵> 등은 스토리만 제공했다.
여담이지만 <울리지 않는 메아리>를 봤다. 한글이 한 조각씩 보이지 않게 되는 정신병자의 시선을 통해 모국어라는 주제를 풀어갔다. 그런데 이를 일본 공모전에 출품하여 대상을 받은 것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모든 대화와 지문이 일본어로 표기된 작품에서 칠판에 판서된 한글 내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의도된 것이었나?
아니다. 그 작품은 일본이나 <모닝> 공모전을 의식하고 만든 작품이 아니다. 나는 공모전 모집에 맞춰 작품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작품을 제출한다. 이 작품은 출품하면서도 수상 가능성은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칠판 장면을 봤다면 알겠지만 수상 가능성도 없어서 일부러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선택했다. 중의적으로 한글을 폐기 당하면서 마지막 수업으로 진행했던 그 역사적 사실을 <모닝> 관계자들이 알까 궁금했다. 지금은 영어에 몰리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일본어에 한글이 폐기되었던 시절이 있었으며 그것은 똑 같은 교실에서 이루어졌다. 이 장면을 넣으면서 나는 당연히 수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장면을 특별한 의미로 넣은 것은 아니며 작품 또한 현재 영어 몰입을 다룬 것이지 일본의 한글 폐지를 다룬 것이 아니다. 나를 그렇게 깊이 있게 보지 말아 달라(웃음).
자료를 보니 출간된 단행본이 2종이더라. 작품을 직접 접하진 못했지만 2006년 옴니버스 만화 <나의 아버지>가 첫 출간작인가?
아, 맞다. 데뷔하고 나서 인세라는 것을 처음 받아 본 작품이다. <나의 아버지>는 다른 분의 작품인데 그 옴니버스 중에 대표작이어서 제목이 그렇게 나왔다. 내 작품은 뒷부분에 <시사에 관한 짧은 필름>이었다. 카툰을 섞은 시사만화였다. 그 다음이 다음 연재 후 2009년에 출간한 <달팽이관 실종사건>이다. 이것도 웹투니스타 공모전 당선을 계기로 시작된 작품이었다.
현재 계획은?
한국영상만화진흥원과 함께 하는 기획취재만화가 있다. 현재 취재 중이고 이번 공모전 수상으로 네이트 연재도 준비해야 한다. 네이트 연재 기회를 얻어 협의해 보니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해도 되고 혹은 다른 작품을 연재해도 된다고 해 생각 중이다. 원래 꿈이 연재하는 것이라 지금 4년 정도 연재를 하면 좋겠다. 이번 공모전도 응모했었지만 나는 ‘만화작가란 원래 연재하고 원고료를 받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 마감을 정하고 장기 연재하면 실력도 늘 것으로 기대한다. 공모전 응모는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 사무실도 독립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오늘은 작업실 청소하러 왔는데, 앞으로 1년 정도 은둔에 가까운 생활이 될 것 같다.
연재를 하면 이야기를 완결된 상태에서 하는가? 그렇다면 이번 장기 연재는 물리적으로 연재와 작업이 병행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고민이다. 나는 원래 이야기를 완결된 상태에서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모전으로 연재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상황이 다르다. 현재 기획취재만화도 있는데 이 부분을 혼자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만 제공하고 작화를 다른 분과 같이 작업하는 공동작품으로 구상 중이다. 게다가 이 스토리는 나보다 대중적인 화풍을 지닌 분이 그리는 것이 더 잘 맞을 것 같다. 두 작품을 동시에 다 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병행 여부는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지원기관이나 연재 매체와 협의를 해 봐야 한다. 현재 완결된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다. 산만하지 않게 이야기를 엮으려 한다.
<실버 히어로즈> 시놉시스와 실제 연재 구상은 같은가?
사실 이번 공모전 스토리는 전체 작품 구상 중 한 명의 캐릭터 이야기일 뿐이다. 마무리 전담 포수의 이야기인데 이처럼 특이한 캐릭터들이 한 팀으로 모두 구성되는 전체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파울볼>의 중인공도 이 이야기에 합류한다. <파울볼>의 주인공은 대타 전문인데 파울 볼만 친다. 타격의 천재임에도 자신이 친 공이 사람을 다치게 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설정으로 파울볼만 치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다른 캐릭터는 사구 출루만 전문으로 하는 캐릭터도 있다. 따라서 전체 구상을 연재할 수도 있고 한 명의 이야기로 그릴 수도 있다. 사실 내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지만 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들의 한 조각이라서 전체가 하나의 줄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똥으로 망한 세계를 다룬 만화와 똥으로 세상이 흥하는 만화가 내게는 다른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지만 내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 개인적 궁금증이다. 작가의 아이디 ‘가리13’은 인터넷 서핑 때 십년 전부터 눈에 익었다. 영문 아이디 ‘eorkfl’를 쳐 보니 대가리이던데 이건 뭔가? 오래 전 자화상을 보니 구렛나루를 기른 짧은 머리의 옆모습이던데 지금은 그리 머리가 크진 않아 보인다.
아, 예전에 인터넷에 일기를 올리던 시절에 그린 내 캐릭터인데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체중이 많이 나갔다. 지금은 체중이 정상이고 머리도 크지 않지만 아까 이야기한 대머리인 상태도 있고 해서 그냥 아이디를 그대로 쓰고 있다. 체중이 빠진 것은 나름대로 공격적으로 극화작업을 하면서 빠진 것이다. 삶이 이렇게 만들었다(웃음). 지금은 머리도 빠지고 체중도 줄어서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이 보통 놀리지 않았다. 그 때 별명이다.
바쁜 시간 감사합니다.
몇 시간 동안 인터뷰라기보다는 만화를 좋아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활자로 옮기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많았다. 이런 시간을 내어 준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작가라는 직업의 경우 이야기 창작자로서 폭넓은 경험이나 넓은 시각이 필요한데 일부에서는 작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풍토에서 사소한 불편함에 싫다고 말할 줄 아는 김대진 작가가 풀어낼 이야기에 기대감이 상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만화계의 다양한 창작을 위해서는 다른 경험과 과정을 겪은 이들이 만화가로 데뷔하는 것이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장점이 된다. 모든 작가가 철학과나 사학과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에서 이야기는 본질과 같다. 또한 만화 이야기의 주류 소재에서 벗어나 소외된 사람을 만화에 담는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한다.
[김대진]
작가의 작품 세계는 독특하다. 주제에 있어서 묵직하지만 지나쳐 버리는 이야기, 예를 들어 물 부족을 다룬 지구, 모국어 사용, 육식 환경문제 등을 다룬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극단적인 세계관을 작품에 풀어 놓고 디테일한 설정과 에피소드로 독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작품의 말미에서야 작가의 메시지가 느껴지는 전개 방식이 그것이다.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 성향은 주류에서 벗어나 언더그라운드나 혹은 진보적 작가군으로 묶이기도 한다.
2014 제12회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에 ‘실버 히어로즈’로 대상(스토리 부문) 수상
2013 <대역사-불교>(김영사)
2012 일요신문 단편극장 ‘비밀’ ‘리얼’ ‘침묵’ 등 발표
2012 <파울 볼> 일본 히어로즈 신인상 가작
2011 프리스타일2 스토리보드 작업
2010 일본 고단샤 <모닝> 국제만화공모전에 ‘울리지 않는 메아리’로 대상
2009 <달행이관 실종사건> 다음 연재
2006 동인지 <나의 아버지>(공저)
2005년 ‘패러 무비’로 데뷔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 장려상(카툰)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