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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덕, 아내 덕에 웹툰 연재할 수 있었죠” : ‘장한 후배상’ 엄재경 최경아 부부 만화가

“아마도 우리가 만화가 부부로 잘 살고 있어서 예쁘게 봐 주지 않았을까요. 특히 공식적인 만화계 자리에 함께 다녀요. 이두호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우리는 손 꼭 잡고 붙어 다닌다고. 든든하고 보기 좋다고요.”

2014-09-03 이재식
pen.jpg부천국제만화축제에는 시상식이 여러 번 있다. 부천만화대상은 작품상에 해당하고, 세계 각국의 어린이 만화가들의 작품 공모전에 대한 시상도 있다. 그런데 축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상은 따로 있다. 부천국제만화축제에만 있는 상, 그것은 장한 후배상이다. 이 상은 만화계 원로들이 후배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우리 만화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후배를 격려하는 상인 것이다.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올해 장한 후배상은 엄재경, 최경아 부부 작가가 수상했다. 부부 만화가가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2003년 허영만 씨를 시작으로 이현세, 김동화, 이희재, 김수정, 김형배, 김진, 원수연, 신명환에 이어 지난해 윤태호 씨가 수상했다. 수상자의 흐름을 보면, 만화계 한복판에 있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거쳐 젊은 40대 작가로 내려오는 양상이다. 
 
부부는 왜 자신들이 이 상을 받는지, 상의 정체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도 선배들이 주는 상이라 기쁘고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수상 소감에서 아내 덕이라고 꼬집어 강조해 박수를 받았다. 
 
 
“아마도 우리가 만화가 부부로 잘 살고 있어서 예쁘게 봐 주지 않았을까요. 특히 공식적인 만화계 자리에 함께 다녀요. 이두호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우리는 손 꼭 잡고 붙어 다닌다고. 든든하고 보기 좋다고요.”
 
 
 
 
“우리는 만화 행사에 늘 붙어 다녀요, 그게 예뻐 보였나 봐요”
 
 
two_합성.jpg
 
 
부부는 이번 수상이 두 사람이 함께 받는 것에 서로 대견해하며 자랑스러워한다. 부부 작가의 수상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부부는 2년 전 웹툰에 대한 당국의 심의사태가 있을 때 시위 현장을 함께 다녔다. 그 바로 전에 만화진흥법 제정을 위해 만화인들이 힘을 모은 적이 있는데, 이때도 부부는 한몸처럼 다녔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두 사람이 만난 것이 만화사태로 불리는 1997년이다. 당시 청소년보호법 입법을 앞두고 검찰과 경찰이 만화 유통시장을 무분별하게 단속한 일이 있고, 작가들은 더는 화실에만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 한두 차례 모임이나 시위에 그친 일이 아니고, 그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내내 이어진 일로 만화계로선 전례 없는 일이었다. 작가들은 매일 같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삭발로 뜻을 모아 항의하고, 1일 감옥 체험에도 나섰다. 활동 분야가 다른 남녀 작가들이 이렇게 자주 한 데 모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자연 젊은 작가들은 서로 상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때 이른바 만화사태 3대 커플이 탄생한다. 이들 부부가 그랬고, 원수연-강도하, 이빈-전호진 커플이 이때 만나 결혼까지 이른 부부 만화가이다.
 
 
엄재경-solo.jpg남편은 얘기 중에도 부인 덕을 여러 번 강조한다.
“제가 장가 하나는 잘 갔어요. 하하하.”
 
이렇게 노골적으로 목소리 높여 부인 자랑이라니. 그렇다면 부인한테도 대놓고 물어보자.
“저도 그래요. 덕이라면 제가 많이 보고 있죠.
늘 고맙고요. 우리가 만화를 같이 그리기는 하는데, 남편은 스토리고 저는 그림이잖아요. 사실 서로 힘든 관계예요. 작가들끼리도 싸울 수밖에 없는 역할인데, 부부가 같은 작품을 하면 어떻겠어요.” 
 
부부는 스토리와 그림으로 저마다 역할이 다른 가운데, 한 작품에서 같이 작업을 한 것은 꼭 한 번 있다. 그때는 둘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될 때였다. 만화 환경이 바뀌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였다. 웹툰이 지금처럼 본격화되기 전인데, 잡지에 주로 연재하던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해 보일 때였다. 최경아 작가는 이대로 버틸 수 있을지 참 고민했다고 한다. 이때 남편이 나섰다.
 
“만화는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적이 없다. 만화는 그 어느 때보다 대중에 가깝게 다가가 있다. 지금 어려운 것은 만화가 아니고 종이가 아닐까. 만화의 미래는 종이가 아닌 웹에 있는 것 아닐까. 웹 만화를 해보는 건 어때? 자기는 색감도 좋고 컬러를 좋아하잖아?”
(<크레이지 커피 캣> 연재 중 엄재경 작가의 ‘발로 그린 후기’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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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여서 웹툰에 도전할 수 있었다
 
최경아는 컬러로 작업하는 걸 참 좋아한다. 웹툰을 시작한 것도 사실 컬러 만화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웹툰은 주간 연재인데 여기에 컬러까지 감당하긴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최 작가는 컬러 작업을 수작업과 병행하고 있어 손이 많이 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혹시 스토리라도 남편이 써주면 모를까. 그래서 남편한테 스토리 어떠냐고 물었다. 엄재경은 단번에 그러마고 응답했다. 부부는 처음으로 같은 작품에 호흡을 맞추게 된다. 이렇게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한 <크레이지 커피 캣>은 부부가 함께 작업한 유일한 작품이고, 첫 웹툰이다. 

이때가 2008년으로 당시만 해도 포털에 웹툰이 하루에 예닐곱 편 정도 실릴 때다. 특히 출판만화에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의 웹툰 진출은 퍽 드물었다. 변화와 도전이 필요할 때 ‘부부는 용감하고 씩씩하게 헤쳐 나갔다’라고 하면 진부할 테지만, 더 들어보자.  
“남자와 여자 독자는 감성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순정, 사랑 이야기는 판타지 액션에 익숙한 저한테는 완전히 새로운 거였어요. 제가 감성적으로 메말라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품하면서도 부인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남편의 ‘당신 덕’에 부인이 이어받았다.
“웹툰을 처음하는 저로선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래도 남편이 스토리를 맡아주니까 시작할 수 있었죠. 큰 힘이 됐어요. 장편을 주간 연재로 시작하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얘기가 어떻게 시작하든 ‘당신 덕’, ‘여보 덕’이다. 그래서 작정하고 물었다. 부부가 함께 작업하는 게 시너지가 나는 것이었나? 이번엔 부인이 답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없었던 이야기가 나온 거죠. 성인, 회사원, 그리고 전문 소재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많아 보이지만 순정에서는 없는 이야기예요. 순정만화잡지에는 여고생, 사랑 이야기가 전부거든요.”
 
부부는 주간 단위 장기 연재물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서로한테 기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작품을 하는 중에는 참 힘들었다. 남편은 감성이 다른 스토리를 풀어나가는데 끙끙 앓았고, 부인은 컬러에 대한 욕심으로 그 많은 연재 분량을 감당하느라 매일 마감 속에 있었다.

그럼 부부의 공동 작업은 앞으로 계속될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사래를 친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서로 관심 분야가 다른 만큼 같이 할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경아 작가로선 당분간 작품 계획은 아예 없다고. 몸이 많이 지쳤는데, 팔과 어깨가 결리는 증상이 심해 당장은 펜을 들 기운도 없다. 엄재경 작가가 “아무 생각 말고 푹 쉬라”고 거들며, 아내가 요즘 아이돌 가수의 댄스를 배우고 있다고 알려준다. 최 작가는 심신을 달래는 방법으로 케이팝 커버댄스를 시작했는데, 디스코 음악이 좋고, 씨스타를 따라 하고 있다고 한다.   
 
엄재경은 지난해부터 연재하던 <판타지스케치 ? 더 게임>을 올 초에 마치고, 새 작품을 한창 준비 중이다. 이번엔 송래현 작가와 함께 작업하는데, 주말에 합숙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합숙이라니? 그림작가와 펜션에서 며칠 머무르며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는 걸로 기획한 것이란다. 합숙기간에 10회 정도 콘티는 끝내야겠다고 다짐하고, 판타지 히어로물이라 전공 분야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한참 후배 작가와 합숙을 기획한 것이 흥미롭고, 재밌는 기획이란 생각이 든다.    
 
 
출판만화를 거친 웹툰 작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출판만화를 거쳐 웹툰에 든 작가들은 많지 않다. 둘 사이에는 단절이 있고, 서로 더 벌어지는 양상이다. 그만큼 변화가 있고, 지금의 만화 환경은 사실상 웹툰만 남은 상황이다. 출판만화를 오롯이 경험한 작가로 웹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웹툰이 자리를 잡아 장르가 다양해지고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지면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작가들도 많아졌는데, 올해 만화가협회에 새로 가입한 작가만 200여 명인 걸로 안다. 나는 컬러를 좋아하는데 요즘 작가들 보면 컬러가 굉장히 좋다. 앞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속도는 전보다 더 빠를 것이다.”(최경아)
 
“종이 만화가 한계를 보인 것은 오래됐다. 한편으로 만화의 확장, 예를 들면 원소스멀티유스라고 하는 게 아직은 다른 매체와 비교해 보면 열악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웹툰에서 힘을 보고 있다. 웹툰이 미래이다.”(엄재경)
 
웹툰에 이르게 진출해 이 변화의 시기 한복판에 있는 40대 작가들의 역할에 대해서 물었다. 최경아가 먼저 답했다.
 
“후배 작가들한테 보여줄 건, 연재하는 거예요. 연재를 해야 살아있는 거니까요. 여자 작가들은 (연재 중에) 중도하차가 많아요. 버틸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선배로서 연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책임감이고, 의무이고, 이게 또 나한테 돌아와 동기가 돼요. 나이가 어린 후배를 만났는데, 날 보고 롤모델이라는 거예요. 나한테 역할이 있구나 싶어 굉장히 기뻤어요. 롤모델이란 건 너무 과분하지만….”
 
“우리 세대가 출판만화와 웹툰을 한 세대예요. (이때 최경아 작가가 불과 몇몇 작가가 출판과 웹툰을 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렇지, 몇 작가죠. 이충호, 윤태호 작가 등. 자, 부정할 수 없는 건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만화의 중심 옮겨왔는데, 출판에서 웹툰으로 건너온 작가는 거의 없다는 거죠. 그럼 어떡해야겠어요? 사실 우리 선배 작가와 웹툰 작가들의 소통은 거의 없거든요. 이제 우리가 그 중간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웹툰하는 작가들의 모임이 있죠. 카툰부머라고. 거기 가면 후배들이 야단이에요. 이 사람한테(최 작가가 무슨 말인지 짐작하고 만류한다. 그 얘긴 말라고.) 대모라고 해요, 왕언니인 거죠(최 작가는 왕언니는 괜찮다고 한다). 우리는 서너 살 위여도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어렵게 대했는데, 우리 후배들은 그냥 형이라고 해요. 저도 그렇게 부르라고 해요. 그래야 대화가 되고 편하거든요. 이번에 작품 같이 하는 (송)래현인 한 스무 살은 차이가 날 걸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죠. 형, 동생하며 어울릴 수 있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후배들 모임에 나가도 즐겁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나갈 거예요. 그게 역할이죠. 대화하고 같이 작품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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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 중에 특별히 눈여겨보는 작가는? 최경아 작가는 <창백한 말>의 추혜연 작가를 먼저 꼽았다. 컬러가 좋은 작품에 우선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단다. 다들 개성이 강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게 강점이라며, 주간 연재를 버텨내는 게 대견하다고 칭찬한다. 엄재경은 후배들 중에 꾸준함, 성실함으로 치면 조석이 최강이라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어떻든 지면을 잡고 연재로, 작품으로 말하라고 주문한다. 우리 세대는 당위에 짓눌려 살아왔는데 중요한 것은 자기 행복이다. 행복하게 그림 그려라(엄재경), 열심히 그리고 건강 지킬 것(최경아)을 당부한다.
 
부부는 현실에 대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작가로서 발언하고 행동하며 선후배를 만나왔다. 그런데 엄재경 작가는 만화가협회 부회장으로 작가들의 권익과 조직의 비전을 구상해야 할 역할이 맡겨져 있다. 올해 있었던 만화가협회 임원 선거에선 ‘세대간 충돌’이라 불리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엄 작가는 그런 어설픈 편가르기가 어딨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거에서 양쪽의 공방이 있었다고 선거 후까지 끌고 갈 건 없다고. 선거 때 오해가 있었다면 선거 끝나고 뒤풀이 하면서 바로 풀었다. 선배님들이 잘하라고 격려해주셨고, 원로이신 권영섭 선생님은 최근에 “걱정했는데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셨다고 한다.

협회도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분과체계로 역할을 나누고 있고, 무엇보다 회비 내는 회원이 많아져 월회비만 250만원 정도 걷힌다. 다만 만화계 전체를 아우르는 만화연합체계가 이 임기 전에 시작됐는데, 여기에 대한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건 임기 중에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두고 있단 말로 대신한다.
 
협회 임원으로서 구체적인 사업으로 생각하는 건 어떤 게 있는지 물었다. 정부 기관과 같이 만화 저작툴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모은 바 있다. 망가 스튜디오, 어쩌면 포토샵 같은 툴일 수 있는데, 예산과 시간이 많이 드는 대형 사업이라 당장 집행이 될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또 사진작가들 모임과 제휴해 사진을 만화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구상도 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사업이 작가들의 이해와 직결되는 큰 그림이란 걸 확인하며, 홍대 근처 새로 생긴 높다란 주상복합의 거실에서 한강 야경을 내려다 본다. 그 배경으로 어깨를 기대는 부부의 모습이 비친다. ‘당신 덕’ 바이러스가 만화계를 한 바퀴 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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