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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어제를 기록하다 : <짐승의 시간>으로 2014 부천만화대상 대상 수상한 박건웅

웹툰이 대세인 지금 컴퓨터와 태블릿이 만화원고지를 대신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손이 까매지도록 붓으로 그리는 작가라니 이채롭다. 그리고 그렇게 그린 결과물로 ‘제11회 부천만화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2014-08-29 이대연
박건웅 작가의 손톱 사이엔 까만 먹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박 작가의 그림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종이에 먹으로 그리는 작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손톱에 남아 있는 것은 오랜 작업으로 물들다시피 해서 잘 닦이지 않아서다. 웹툰이 대세인 지금 컴퓨터와 태블릿이 만화원고지를 대신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손이 까매지도록 붓으로 그리는 작가라니 이채롭다. 그리고 그렇게 그린 결과물로 ‘제11회 부천만화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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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작가의 손. 미처 닦이지 않은 먹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상을 받은 <짐승의 시간>은 1985년 고 김근태 의원이 22일간 겪었던 고문의 기록을 그린 작품이다. 만화로 한국현대사를 조명해 온 작가는 2003년 빨치산 이야기를 그린 <꽃>으로 대한민국만화대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2005년 제주 4·3을 다룬 <홍이 이야기>(동아엘지만화페스티발 우수상), 2008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담은 <노근리 이야기 1부>(부천만화대상 우수상), 2010년 <노근리 이야기 2부>(오늘의 우리만화상)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우리 시대에 끊임없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박건웅 작가를 만났다.


강경대, 그림에 갇혀 있던 나를 끌어내다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어느 술자리에서 인사했던 기억이 있어요. 둥글둥글했던 얼굴이 선명해요. 한 2주쯤 뒤에 경찰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미대에 들어갔고, 미술이 전부라고만 생각했던 박건웅 작가가 사회를 ‘마주 보기’ 시작한 계기는 강경대였다. 1991년 명지대 학생 강경대 씨는 시위 도중 백골단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얼마 전에 봤던 그 얼굴을 전단지에서 발견하고 소름이 돋았어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의 문제가 된 거죠.”

이 사건은 박 작가의 마음에 큰 물음표를 던진다. 강경대는 그를 거리에 뛰쳐나가게 하고,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사회에 대해 묻기 시작하고, ‘민중미술’을 하는 선배들을 도와 그림 작업을 시작한다. 만화를 만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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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근처의 한 북카페에서 박건웅 작가를 만났다.


“늘 그림을 그렸지만 한 장의 그림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어요. 하나의 화폭에는 (압축된) 한 장면밖에 담을 수 없는데, 내가 그리고 싶은 거대한 서사를 담기엔 부족했던 거죠.”

사회에 대한 물음을 작품에 담고 싶지만 미술로는 말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그의 선배들처럼 하나의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는 연작 형태를 택할 수 있지만 더 말하고 싶은 갈증은 남았다. 군대에 다녀와서 졸업을 앞둔 때까지 새로운 대안 매체를 계속 찾았다. 그러다가 <쥐>를 만났다.


<쥐>와 ‘쥐’를 만나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보고 만화가 보이기 시작했죠. 만화, 이거 만만치 않구나. 정말 대단한 매체구나, 생각했어요.”

<쥐>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주제도 놀라웠지만 만화 매체 자체에 대해 흥미가 일었다. 만화를 많이 보던 ‘만화키드’는 아니었지만 뒤늦게 만화에 푹 빠졌다. 누구도 못 말린다는 늦바람. 다 커서 제대로 마주한 만화였기에 만화가 소통하는 방식이 먼저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 이름도 ‘칸과 칸 사이’다. (경향신문 블로그이기 때문도 있겠지만. 박건웅 작가 블로그는 ppuu21.khan.kr 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만화만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양한 시도 가운데 하나였는데 막상 <꽃>을 마치고 나니 만화를 더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죠.”

빨치산의 이야기를 다룬 <꽃>으로 그는 2003년 대한민국만화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목판화로 찍은 듯한 화풍에 대사 없이 그림으로만 진행된다거나 하는 새로운 시도, 그런 실험성들이 높이 평가 받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낯선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작품은 독자에게 외면 받는다. 그런 와중에 수상은 큰 격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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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작가의 <꽃>의 한 장면. 출처 박건웅 작가 블로그


“상을 받는다는 건, 상금이 얼마라거나 사람들한테 주목을 받는다거나 해서 기쁜 것만은 아니에요. 지금 가는 이 길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이 맞구나하고 확신하고 힘을 얻는 거죠.”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주제의 작품들은 대중적으로 흥행과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었지만, 작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다. 


두 번째 ‘쥐’를 만나다, <삽질의 시대>

<삽질의 시대>는 2010년 경향신문 온라인에서 연재한 시사풍자만화로 당시 정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인기가 높았다. 작품이 발표되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순식간에 퍼졌다. 특히 쥐로 그려진 ‘닦터M’을 보면서 사람들은 통쾌해했다. 
<삽질의 시대> 연재물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작품 가운데 하나는 ‘고마워 미안해’ 편이다. 늘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고 김근태 의원이 세상을 떠나자 그린 추모만화다. 김근태 의원은 20여 년간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본 출판사와 인연이 돼 <짐승의 시간>까지 출판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투박하고 직설적이었긴 했어요. ‘쎄다, 너무 노골적이다’는 의견도 많았고 악플도 꽤 달렸어요. 하지만 독자들과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그때까지 역사물만 계속 하다보니까 작업적으로 조금 지치고 매너리즘에 빠졌는데, 사회풍자만화를 그리고 블랙코미디도 그리면서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새로운 힘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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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의 시대> 중에서. 출처 박건웅 작가 블로그


<삽질의 시대>로 온라인에 연재하고 독자들과 소통하는 법에 대해 새롭게 발견했지만 그는 여전히 수작업을 고수한다. 컴퓨터에 저장된 이미지 파일의 보관이 종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웹이나 기술이 발달할수록 원화의 가치는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기록의 측면에서도 그래요. 컴퓨터 파일은 수 십 년 간의 작업도 순식간에 날려 버릴 수 있잖아요.”

이런 그의 생각은 선호하는 작업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기억’에 대한 가치의 문제이다. 그의 모든 작업은 ‘기억하기’와 맞닿아 있다. 


잊는 순간 ‘짐승의 시간’은 다시 온다

“고작 2년 전이지만 우리는 벌써 이명박 정권 때의 일을 잊었어요. 세월호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커다란 슬픔은 빨리 잊고 훌훌 털어내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 그래야 좋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문제는, 더구나 해결되지 않은 일이라면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와요. 잊지 않아야 하기에 어떤 일이 있었나를 기록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기억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억하지 못하면 다른 이름의 괴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사를 기억하고 그의 목소리를 담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 

“우리 역사교육을 보면, 원시시대 역사는 세세한 하나하나까지 달달달 외워요. 하지만 현대사는 대통령들의 업적만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잖아요. 그래서 한국전쟁 이후 우리 현대사는 통째로 사라졌다고 봐요.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은 그 사라진 우리 현대사를 복원하는 거예요. 이것에 가장 적합한 매체가 바로 만화라고 보는 거죠.”

우리는 이미 김근태 의원을 잊었기에, 그가 겪은 20여 년 간의 고통과, 그 고통이 시작된 22일 간의 끔찍한 고문을 기억하지 못한다. 작가는 ‘김근태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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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시간> 중에서. 출처 박건웅 작가 블로그


“흔한 비유지만 작가는 ‘잠수함의 토끼’예요. 남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술가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봐요. 무심코 흘러갔지만 중요한 사안들을 잡아내고 알려야 해요. 그건 작업 스타일이나 장르를 떠나서 예술가로서의 책무와 자세라고 봅니다.”

스스로 그런 책임을 진다면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클 거고, 그동안 어렵고 무거운 주제들만을 그려왔기에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만화를 생각했다면, 지금은 만화를 중심에 두고 그 속에  정치나 사회, 역사를 담고 있어요. 스스로의 어떤 강박에서 벗어났다랄까요. 더 자유로워졌어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을 기억하다

2014년 대한민국은 ‘세월호’를 비껴갈 수 없다. 수 백 생명이 물에 가라앉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말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빨리 잊는가. 우리는 얼마나 빨리 식는가.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갈 수 없고 그것이 옳은 삶의 태도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너무 빨리 더워지고 너무 빨리 식어버리는 우리 ‘가벼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터뷰 다음 날 박건웅 작가는 광화문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동료 만화가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촉구를 위해 동조 단식을 결심한 것이다. 그는 40일 가까운 단식으로 또 하나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옳은 행동이 무엇인지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을 기억하고자 하는 작가는 오늘의 한 가운데 서 있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짐승의 시간>을 두고 ‘한국 만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라는 찬사도 있고 ‘그래, 이런 것도 하나쯤은 있어야지.’라는 구색 맞추기라도 좋다. 이희재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작품들은 ‘강단진 박건웅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다. 박 작가는 ‘만화는 알수록 어렵지만, 할수록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의 다음 작품은 얼마나 더 놀라울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