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그리스 신화라 불리는 대서사시 <마라바하타>. 수많은 힌두의 신이 모여 있는 거대한 이야기에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신들의 신이라 불리는 비슈누의 여덟 번째 화신 크리슈나다. 절대 악 칸사에 대적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 끝내 악을 물리친 크리슈나의 영웅적 면모 때문인지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화신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신이다. 도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임석남 작가는 우연히 접하게 된 <마하바라타>를 꼭 만화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크리슈나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구상하던 찰나에 글로벌 오픈 마켓 콘텐츠에 선정되어 드디어 세상 밖으로 <크리슈나>란 작품을 내놓게 되었다. 일본 및 미국, 프랑스 등에서 활동하며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려왔던 작가 도해에게는 오랜만에 글과 그림을 함께 맡아 자신이 마음껏 그려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마존에 도해나 크리슈나라고 검색어를 입력하면 자신의 작품이 뜨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 조금은 생소한 영웅 크리슈나에 대해 물었다.

[이미지01] <크리슈나> - 도해
우리나라의 만화를 아마존, 아이북스 같은 오픈 마켓에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글로벌 오픈마켓 콘텐츠’에 <크리슈나>가 선정됐다. 어떤 연유로 참가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번에 전자책으로 출간한 <크리슈나>는 애초에 외국 쪽과 작업을 하려고 했었던 작품이다. 시나리오도 이미 3년 전에 썼다. 처음 미팅을 했던 곳은 일본이었다. 그쪽에서 마음에 들어 했는데 <크리슈나> 이야기를 원안으로 삼아서 각색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일본 사람인데 비슈누의 화신 크리슈나가 몸에 들어와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거나 하는 쪽으로 가길 바랐던 것 같다. 각색도 좋지만 나는 크리슈나 이야기의 원형을 더욱 살리고 싶었다. 신화나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와 각색하는 작품들이 이미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원안을 제대로 보여주면 희소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 미국 쪽과도 컨택을 했는데 역시나 일본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이미 외국에서 여러 번 활동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온전한 나의 작품으로 <크리슈나>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에 글로벌 오픈마켓 콘텐츠 사업이라는 좋은 기회를 얻어 머릿속에 있던 작품을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대제의 검> <코드리가> 등의 작품의 그림을 담당했고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작업 경험이 많기 때문에 국외를 겨냥한 작품을 내는 것에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을 것 같다.
미국 쪽은 인도나 인도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크리슈나> 이야기가 분명 관심을 끌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는 국내에서 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고. 의욕 있게 시작했지만 해외 마켓에 전자책을 발행하는 일은 처음이어서 여러모로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시행착오를 겪은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전자책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해외겨냥에 대한 것인가.
전자책이다. 현재 <크리슈나>는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고 킨들을 통해 볼 수 있다. 국내에는 킨들이 아이패드처럼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킨들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다.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높았다면 지금의 연출과는 분명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면서 많이 공부가 된 부분이다.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여덟 번째 화신인 크리슈나의 이야기다. 다소 생소한 신화인데 어떻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클램프의 작품 중 <성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 불교를 다룬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라서 끌렸는데 아무리 불교서적을 뒤져도 그런 이야기를 못 찾겠더라. 알고 보니 일본 불교가 힌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더라. 그래서 힌두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곳에 내가 목말라했던 자료들이 거의 있더라. 재미삼아 처음에는 신들을 공부했다. 일전에 본 <성전>이라는 작품과도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으니 더욱 재미있었다. 이야기들에 계속 <마하바라타>라는 것이 언급되기에 국내에 출간된 네 권짜리 <마하바라타>를 사서 읽었다. 그 책에서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받았다. 번역이 재밌지는 않았지만 내가 신들에 관심이 많다보니까 흥미로웠다. <마하바라타>에 정말 많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 중 크리슈나 이야기는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면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언젠가 <아바타>를 내놓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마하바라타>를 꼭 영화로 만들어 보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한 인터뷰를 봤는데 나 역시 그처럼 <마하바라타>를 만화로 그려내 보고 싶었던 와중에 <크리슈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마하바라타>라는 것이 생소한 만큼 <크리슈나>에 대한 자료 조사부터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나.
힌두에 관한 자료가 많이 없다. 특히 책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마하바라타>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옛날 영화여서 그랬는지 복장이나 이런 것들이 세련되지 못하더라. 어차피 신화란 것이 하나의 판타지이니 전부다 재창조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신화는 과장된 표현이 많아서 새롭게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필요에 의해 만들기 시작했지만 글을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브라만에 대한 설명만 해도 어쩔 때는 얼굴이 수천 개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나. 비슈누를 말할 때는 우주보다 넓다는 표현도 쓰더라. 그러니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아예 비슈누를 작게 그렸다. 시바가 어마어마한 거인이면 신들의 신인 비슈누는 오히려 작고 연약한 모습을 갖춘 것이다. 남자 같기도 여자 같기도 한 중성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오히려 절대신의 모습이란 거창하기보다 이런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크리슈나>는 어두운 분위기 아래 스타일리쉬 하면서도 과격한 작화와 하드한 스토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광폭난무>등의 전작에서 보였던 묵직한 힘이 더욱 화려해진 느낌이다. 채색 또한 신화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한 부분들이 엿보인다.
가장 염두에 뒀던 점은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너무 어둡기만 하면 처음엔 눈에 들어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읽는 것 자체가 버겁기도 하다. 예전의 나는 먹도 많이 넣고 선도 많이 넣었다. 그러다보면 오히려 캐릭터 연출에 한계가 생긴다. 그걸 깨닫게 해준 것이 일본에서 그림을 그렸던 <코드리가>라는 작품이다. 이 만화는 내가 그렸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렸다. 이런 작품을 해보니 예전 같으면 내가 만들어 놓은 틀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이 작품에서 배운 것 그리고 여태껏 내가 해왔던 방식 등을 접목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떤 분위기나 느낌 때문에 만화적인 디테일을 죽이지 않았다. 너무 무엇 하나만 두드러지지 않게 작업하자고 채색을 담당하는 친구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먹과 선보다 만화적 색감이 두드러지니 예전보다 화려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많이 뺐다. 조금씩, 아주 작지만 독자의 시각을 더 생각하게 된다. 독자가 편하게 볼 수 있기를 더불어 재밌게도 봐주면 좋고. 한 페이지만 보고 “너무 잘 그렸다 이거 뭐지!” 보다는 그냥 넘기더라도 흥미롭게 바라봐주길 원한다.
<크리슈나>의 이야기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도 이어질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남아있지 않나.
지금 이야기가 원래 썼던 시나리오의 3분의 1 정도다. 3분의 1 치고는 너무 분량이 많아서 압축 시키고 싶다. 1부가 절대 악 칸사가 탄생하는 과정과 크리슈나의 탄생을 다룬다면 2부는 청년 크리슈나가 자신의 영적 힘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고 3부는 크리슈나가 칸사에 대항하며 왕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총 600페이지라고 쳐도 앞으로는 4~5년은 더 걸릴 것이다. 그래서 <크리슈나>를 새롭게 다시 그리고 싶다. 일단은 아이북스에 올리기 전까지 조금 더 작품을 보완할 생각이다. 연출의 밀도도 높이고.
해외에서 그림 작업만 오랫동안 진행했었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작품인 <크리슈나>를 작업하면서 이런저런 감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
일단 오랜만에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계속해서 해외 작품들의 그림 작업을 해오고 있었지만 그렇게 분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완벽한 내 작품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최소한 내 눈에는 엄청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적도 있었다. 해외에서의 작업은 아주 사소한 분야까지도 분업이 철저히 이뤄지고 어쩔 때는 주어진 콘티에 따라서만 그려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내 마음껏 그려서 평가받고 싶은데, 즐기면서 그리고 쓰고 싶은데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정작 내가 그리고 싶은 작품을 그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림만 그리는 반쪽의 작가인 것인가 고민했던 날들도 있었다.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먹고 살기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내가 그리고 싶은 작품이 있기 때문에 만화를 그리는 것 아닌가. 그래서 개인 전자책 출판사 ‘라온’을 차렸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서 올려놓자.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좋다란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한명 두명씩 독자가 늘어나도 좋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만화를 그리는 게 정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전자책 자가출판을 준비하게 된 연유에 불러주는 곳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겠다는 의지가 언뜻 보이는 것 같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해외 작업을 하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얻었다면 진짜 하고 싶은 만화를 그리는 시간은 포기해야 했다. 이제 ‘시간’을 택했으니 다시 경제적인 부분을 일정량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아마 나 말고도 자가출판에 대해 관심 있는 작가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테지만 어쨌든 나는 한발을 내딛었다. (웃음) 나는 필요에 의해 그리는 것보다 하고 싶어서 그리는 작품들이 더 많아지면 좋은 작품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훨씬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라온에는 어떤 작품들이 올라올지 기대된다.
일단 내가 한국에서 펴냈던 작품들을 다시 올리고 난 뒤 새롭게 그린 단편만화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60페이지 분량의 만화들인데 장르부터 다양하게 시도해 볼 생각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단편을 선택한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선보일 작품은 웨스턴이 될 것 같다. 그 후로는 현대, 공포 등 다양한 장르 작품들을 구상 해 놨다. 장편보다는 단편 쪽이 독자들도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을테고 나 역시 짧게 치고 나가는 것이 지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열심히 작업 중이다.
<크리슈나>부터 라온까지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바가 있을 것 같다.
계속 거래하고 있는 미국 출판사가 있다. 그곳에서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이미 내 작품이 번역이 다 되어있으니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반응을 알고 싶다. 내 그림을 보고서 같이 그림 작업을 하자는 곳은 많았다. 그러니 내 작품을 보고 ‘그거 우리한테 팔아주세요’도 가능한지 시험해보고 싶다. 해외 행사에도 참여해서 내 작품을 직접 건네주고 봐달라고 이야기도 하면서 작품을 큰 시장에 알리고 싶다. <크리슈나>나 라온은 그런 가능성에 대한 첫 발자국이다. 그래서 국내든 해외든 독자들의 큰 관심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앞으로 내가 작품의 어떤 점을 보완하고 가공하면 좀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지 알게 되는 노하우를 지금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 결과적으로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제임스 카메론처럼 <마하바라타>인가.
처음부터 <마하바라타>를 하고 싶었으나 일단 <크리슈나>로 시작을 한 셈이다. <마하바라타>의 이야기가 워낙 장대한 대서사시니까 <크리슈나>를 만들어보면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크리슈나>를 통해 <마하바라타>를 그리게 될 때에는 뭔가 조금 더 발전해있지 않을까. (웃음)
우리나라의 만화를 아마존, 아이북스 같은 오픈 마켓에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글로벌 오픈마켓 콘텐츠’에 <크리슈나>가 선정됐다. 어떤 연유로 참가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번에 전자책으로 출간한 <크리슈나>는 애초에 외국 쪽과 작업을 하려고 했었던 작품이다. 시나리오도 이미 3년 전에 썼다. 처음 미팅을 했던 곳은 일본이었다. 그쪽에서 마음에 들어 했는데 <크리슈나> 이야기를 원안으로 삼아서 각색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일본 사람인데 비슈누의 화신 크리슈나가 몸에 들어와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거나 하는 쪽으로 가길 바랐던 것 같다. 각색도 좋지만 나는 크리슈나 이야기의 원형을 더욱 살리고 싶었다. 신화나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와 각색하는 작품들이 이미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원안을 제대로 보여주면 희소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 미국 쪽과도 컨택을 했는데 역시나 일본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이미 외국에서 여러 번 활동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온전한 나의 작품으로 <크리슈나>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에 글로벌 오픈마켓 콘텐츠 사업이라는 좋은 기회를 얻어 머릿속에 있던 작품을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대제의 검> <코드리가> 등의 작품의 그림을 담당했고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작업 경험이 많기 때문에 국외를 겨냥한 작품을 내는 것에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을 것 같다.
미국 쪽은 인도나 인도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크리슈나> 이야기가 분명 관심을 끌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는 국내에서 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고. 의욕 있게 시작했지만 해외 마켓에 전자책을 발행하는 일은 처음이어서 여러모로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시행착오를 겪은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전자책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해외겨냥에 대한 것인가.
전자책이다. 현재 <크리슈나>는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고 킨들을 통해 볼 수 있다. 국내에는 킨들이 아이패드처럼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킨들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다.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높았다면 지금의 연출과는 분명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면서 많이 공부가 된 부분이다.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여덟 번째 화신인 크리슈나의 이야기다. 다소 생소한 신화인데 어떻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클램프의 작품 중 <성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 불교를 다룬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라서 끌렸는데 아무리 불교서적을 뒤져도 그런 이야기를 못 찾겠더라. 알고 보니 일본 불교가 힌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더라. 그래서 힌두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곳에 내가 목말라했던 자료들이 거의 있더라. 재미삼아 처음에는 신들을 공부했다. 일전에 본 <성전>이라는 작품과도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으니 더욱 재미있었다. 이야기들에 계속 <마하바라타>라는 것이 언급되기에 국내에 출간된 네 권짜리 <마하바라타>를 사서 읽었다. 그 책에서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받았다. 번역이 재밌지는 않았지만 내가 신들에 관심이 많다보니까 흥미로웠다. <마하바라타>에 정말 많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 중 크리슈나 이야기는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면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언젠가 <아바타>를 내놓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마하바라타>를 꼭 영화로 만들어 보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한 인터뷰를 봤는데 나 역시 그처럼 <마하바라타>를 만화로 그려내 보고 싶었던 와중에 <크리슈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마하바라타>라는 것이 생소한 만큼 <크리슈나>에 대한 자료 조사부터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나.
힌두에 관한 자료가 많이 없다. 특히 책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마하바라타>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옛날 영화여서 그랬는지 복장이나 이런 것들이 세련되지 못하더라. 어차피 신화란 것이 하나의 판타지이니 전부다 재창조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신화는 과장된 표현이 많아서 새롭게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필요에 의해 만들기 시작했지만 글을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브라만에 대한 설명만 해도 어쩔 때는 얼굴이 수천 개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나. 비슈누를 말할 때는 우주보다 넓다는 표현도 쓰더라. 그러니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아예 비슈누를 작게 그렸다. 시바가 어마어마한 거인이면 신들의 신인 비슈누는 오히려 작고 연약한 모습을 갖춘 것이다. 남자 같기도 여자 같기도 한 중성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오히려 절대신의 모습이란 거창하기보다 이런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크리슈나>는 어두운 분위기 아래 스타일리쉬 하면서도 과격한 작화와 하드한 스토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광폭난무>등의 전작에서 보였던 묵직한 힘이 더욱 화려해진 느낌이다. 채색 또한 신화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한 부분들이 엿보인다.
가장 염두에 뒀던 점은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너무 어둡기만 하면 처음엔 눈에 들어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읽는 것 자체가 버겁기도 하다. 예전의 나는 먹도 많이 넣고 선도 많이 넣었다. 그러다보면 오히려 캐릭터 연출에 한계가 생긴다. 그걸 깨닫게 해준 것이 일본에서 그림을 그렸던 <코드리가>라는 작품이다. 이 만화는 내가 그렸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렸다. 이런 작품을 해보니 예전 같으면 내가 만들어 놓은 틀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이 작품에서 배운 것 그리고 여태껏 내가 해왔던 방식 등을 접목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떤 분위기나 느낌 때문에 만화적인 디테일을 죽이지 않았다. 너무 무엇 하나만 두드러지지 않게 작업하자고 채색을 담당하는 친구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먹과 선보다 만화적 색감이 두드러지니 예전보다 화려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많이 뺐다. 조금씩, 아주 작지만 독자의 시각을 더 생각하게 된다. 독자가 편하게 볼 수 있기를 더불어 재밌게도 봐주면 좋고. 한 페이지만 보고 “너무 잘 그렸다 이거 뭐지!” 보다는 그냥 넘기더라도 흥미롭게 바라봐주길 원한다.
<크리슈나>의 이야기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도 이어질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남아있지 않나.
지금 이야기가 원래 썼던 시나리오의 3분의 1 정도다. 3분의 1 치고는 너무 분량이 많아서 압축 시키고 싶다. 1부가 절대 악 칸사가 탄생하는 과정과 크리슈나의 탄생을 다룬다면 2부는 청년 크리슈나가 자신의 영적 힘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고 3부는 크리슈나가 칸사에 대항하며 왕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총 600페이지라고 쳐도 앞으로는 4~5년은 더 걸릴 것이다. 그래서 <크리슈나>를 새롭게 다시 그리고 싶다. 일단은 아이북스에 올리기 전까지 조금 더 작품을 보완할 생각이다. 연출의 밀도도 높이고.
해외에서 그림 작업만 오랫동안 진행했었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작품인 <크리슈나>를 작업하면서 이런저런 감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
일단 오랜만에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계속해서 해외 작품들의 그림 작업을 해오고 있었지만 그렇게 분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완벽한 내 작품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최소한 내 눈에는 엄청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적도 있었다. 해외에서의 작업은 아주 사소한 분야까지도 분업이 철저히 이뤄지고 어쩔 때는 주어진 콘티에 따라서만 그려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내 마음껏 그려서 평가받고 싶은데, 즐기면서 그리고 쓰고 싶은데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정작 내가 그리고 싶은 작품을 그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림만 그리는 반쪽의 작가인 것인가 고민했던 날들도 있었다.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먹고 살기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내가 그리고 싶은 작품이 있기 때문에 만화를 그리는 것 아닌가. 그래서 개인 전자책 출판사 ‘라온’을 차렸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서 올려놓자.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좋다란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한명 두명씩 독자가 늘어나도 좋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만화를 그리는 게 정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전자책 자가출판을 준비하게 된 연유에 불러주는 곳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겠다는 의지가 언뜻 보이는 것 같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해외 작업을 하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얻었다면 진짜 하고 싶은 만화를 그리는 시간은 포기해야 했다. 이제 ‘시간’을 택했으니 다시 경제적인 부분을 일정량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아마 나 말고도 자가출판에 대해 관심 있는 작가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테지만 어쨌든 나는 한발을 내딛었다. (웃음) 나는 필요에 의해 그리는 것보다 하고 싶어서 그리는 작품들이 더 많아지면 좋은 작품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훨씬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라온에는 어떤 작품들이 올라올지 기대된다.
일단 내가 한국에서 펴냈던 작품들을 다시 올리고 난 뒤 새롭게 그린 단편만화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60페이지 분량의 만화들인데 장르부터 다양하게 시도해 볼 생각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단편을 선택한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선보일 작품은 웨스턴이 될 것 같다. 그 후로는 현대, 공포 등 다양한 장르 작품들을 구상 해 놨다. 장편보다는 단편 쪽이 독자들도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을테고 나 역시 짧게 치고 나가는 것이 지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열심히 작업 중이다.
<크리슈나>부터 라온까지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바가 있을 것 같다.
계속 거래하고 있는 미국 출판사가 있다. 그곳에서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이미 내 작품이 번역이 다 되어있으니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반응을 알고 싶다. 내 그림을 보고서 같이 그림 작업을 하자는 곳은 많았다. 그러니 내 작품을 보고 ‘그거 우리한테 팔아주세요’도 가능한지 시험해보고 싶다. 해외 행사에도 참여해서 내 작품을 직접 건네주고 봐달라고 이야기도 하면서 작품을 큰 시장에 알리고 싶다. <크리슈나>나 라온은 그런 가능성에 대한 첫 발자국이다. 그래서 국내든 해외든 독자들의 큰 관심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앞으로 내가 작품의 어떤 점을 보완하고 가공하면 좀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지 알게 되는 노하우를 지금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 결과적으로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제임스 카메론처럼 <마하바라타>인가.
처음부터 <마하바라타>를 하고 싶었으나 일단 <크리슈나>로 시작을 한 셈이다. <마하바라타>의 이야기가 워낙 장대한 대서사시니까 <크리슈나>를 만들어보면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크리슈나>를 통해 <마하바라타>를 그리게 될 때에는 뭔가 조금 더 발전해있지 않을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