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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변신의 무죄! : 라디오, 만화에 빠지다. - 팟캐스트 라디오 <웹툰라디오> 이종범 인터뷰

만화가들이 만화를 그리는 대신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보고 읽는 매체가 들리는 형태로 전이되었다. 웹툰 작가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시리즈 ‘웹툰 라디오’는 웹툰 작가들의 커뮤니티 ‘카툰부머’에서 시작되었다.

2013-11-27 임지희
만화가들이 만화를 그리는 대신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보고 읽는 매체가 들리는 형태로 전이되었다. 웹툰 작가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시리즈 ‘웹툰 라디오’는 웹툰 작가들의 커뮤니티 ‘카툰부머’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첫 번째 시즌을 마치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재단장해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연재 중인 작가들은 숨 쉴 틈도 없는 것 아니었던가? 그 중에서도 전시, 해외 도서전 초청, 각종 강연 그리고 웹툰 라디오 프로그램 중 두 개를 진행하며 더욱 바빠 보이는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를 만났다.
 
 
 
 
 
 
 
 
 
 
 
 
 
 
 
 
 
 
 
 
설마 세 명이 공동으로 쓰는(이종범 작가의 작업실은 부천 만화영상진흥원에 있으며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석우 작가, <지상 최악의 소년>의 정필원 작가와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다) 작업실에서 생활하시는 건 아니겠죠.
- 거의 여기서 먹고 자고 하는 것 같아요. 집은 여기서 고작 15분 거리인데 거기까지 가는 게 참 힘드네요. 작업 스케줄을 따졌을 때 지금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기간이라 오늘도 30분 정도 자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작품 연재 중인 만화가들은 다른 일을 할 짬이 도저히 나지 않을 만큼 바쁘다고 들었어요. 늘 시간에 쫓기는 이미지로 대중에 각인되어 있기도 하고. 그런데 작업 스케줄이라.
- 예전에는 시간에 쫓기며 주간마감을 했죠. 실제로 그렇게 연재를 해나가는 작가들도 많고요. 그러다 모 작가에게서 저에게 딱 맞는 연재 시스템을 듣고 이거다, 싶어 따라해 봤죠. 4회를 한꺼번에 준비하는 겁니다. 현재 연재중인 <닥터 프로스트>의 경우 무엇보다도 팩트와 용례 등이 중요해서 다각적인 취재와 자문, 논문 검토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취재를 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팩트와 결합하고, 이것이 옳은 진행인지 검토한 뒤 그림 파트로 넘어갑니다. 계속 혼자 작업을 했는데 최근에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채색과정 정도는 어시스턴트에게 부탁하고 있고요. 스토리를 구상하고 이야기를 단단하게 엮을 때에는 최대한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고 해요. 그래야 머리가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취재와 스토리가 끝난 뒤부터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야 하므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구간이 됩니다. 오늘은 막 그림 마감을 마친 상태에요.
 
나름대로 생존과 생활을 위한 시스템을 잘 구축했군요. 그 사이에 다른 일도 병행하시는 건가요? 연재 중인 작가라는 게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걸로 압니다.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각종 만화 행사도 빠짐없이 등장하시고요. 강연도 잦은 듯합니다.
-작업 시스템을 구축한 후부터는 여유, 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나 약간의 ‘쿠션’이 생겼어요. 이전에는 빠질 수 없는 경조사 때문에 하루 나갔다 오면 마감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리고 시간을 잘게 쪼개서 필요한 일이라 판단되면 빠르게 진행하고 작품에 집중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많은 분들께서 만화 연재 이외의 제 행보를 보시고 걱정과 우려를 표하시는데요, 저는 오히려 그런 활동들에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입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듣고 새로운 일을 만들고 참여하는 것. 사실 들어오는 일은 하고 있는 일의 몇 배는 많답니다.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군요. 그렇다 해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의뢰 받는 일보다 훨씬 적은 활동을 하신다고 했는데, 기준이 있나요?
- 물론 있습니다. 우선 만화와 관계된 일은 가능한 열심히 하려고 하고요, 할 거면 해보지 못한 일, 그리고 재미있는지를 우선시합니다. 만화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또 성실함이 재능을 넘어설 만큼 오랫동안 프로작가로 만화를 그려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 만화에 집중을 하고, 시간을 잘게 쪼개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웹툰 라디오도 그런 케이스 인가요.
- 카툰부머에서 권혁주 작가님 등을 중심으로 만화가들이 직접 디제이로 나서는 팟캐스트 기획 움직임이 있었고, 이야기를 접한 뒤 거기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작과 진행을 맡게 됐어요. 고교시절 인터넷 채팅사이트 ‘세이클럽’에서 방송을 했던 경험이 꽤 있는데 본래도 말하는 걸 좋아하고 해서 하게 됐죠.
 

 
 
 
 
 
 
 
 
 
 
 
 
 
 
 
 
   
 
 
듣기 좋은 목소리에 간결한 진행은 고교시절부터 쌓은 내공의 결실이었군요.
- 제가 대학시절에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다보니…
 
어쨌든, 웹툰 라디오는 시작할 때는 ‘부머 라디오’라는 이름이었죠? 지금보다 방송 수도 적었고. 어땠나요. 왜 바쁜 만화가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까요.
- 전국민의 절반이 웹툰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나마 독자를 접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곳은 만화 밑에 달리는 독자들의 댓글과 별점 정도 밖에 없잖아요. 몇몇 만화 게시판과 독자들의 만남 같은 경우는 더 긴밀하긴 하나 우리의 목소리도 확실하게 내기엔 공간이 한정적이고요. 작가들과 독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고, 웹툰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판을 펼쳐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예전 화려했던 만화 전성기의 추억을 곱씹는 자리가 아닌, 바로 지금 어떤 만화들이 나오고 있으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기도 했고요. 시끌시끌하고 즐거운 라디오 방송처럼 만들어보려 했어요.
 
현재 ‘부머 라디오’에서 이름을 바꾸고 시즌 1에서 아쉬웠던 사운드 등을 개선해 시즌 2 ‘웹툰 라디오’로 명칭을 바꿨죠. 그리고 프로그램 수도 늘어났고요. 참여하는 작가도 늘어났습니다. 잘 되고 있는 건가요?
- 글쎄요. 우선 사운드는, 원래 작업실에서 그냥 녹음을 하다가 팟캐스트를 주로 녹음하는 스튜디오로 바꾸면서 확연히 깔끔해졌고 프로그램이 갈리면서 총 다섯 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아직 일반 청취자들에게까지 소구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만화를 아주 좋아하시는 독자들은 찾아서 듣기도 한다지만 프로그램 담당 만화가에게 그리 많은 피드백이 오진 않거든요. 팟캐스트를 올리는 서버를 업체에서 지원받고 있고, 만영진에서 약간의 지원금을 받아요. 그걸로 지방에서 올라와 방송에 출연하는 작가들의 교통비 정도를 해결할 수 있지요. 실은 시즌 1이 끝났을 때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는 작가들도 있었어요. 생각만큼의 반향도 없었고 무엇보다 작가들이 연재와 팟캐스트를 동시에 진행하기 버거워 하는 경향이 컸거든요. 물론 바쁘니 그렇지만. 그만 두자는 이야기가 일각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미련이 뭔지, 시즌 2로 넘어오게 됐고요, 아마 시즌 2 마무리 후에도 이제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만두지 말아야 하는 여러 가지 변명들을 떠올리며 시즌 3도 갈 것 같네요. 게다가 저는 다른 작가들이 모두 방송을 그만둔다 해도 계속 진행을 할 것 같습니다. 좋아하거든요.
 
현재 이종범 작가님은 <이종범의 조곤조곤 만화 박물지>와 초반에 고아라 작가와 진행하다, 최근 김인정 작가가 합류한 <어떤 교집합> 두 가지를 같이 진행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짧더라도 방송은 다양한 과정을 거쳐야 해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할 텐데요.
- 원래라면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게 맞죠. 우선 매 회마다 ‘기획’ 이란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만듦새가 제대로’ 갖춰진 방송을 하기 힘든 상황이네요. <조곤조곤 만화 박물지>의 경우는 혼자 진행하는 것이고, 제가 좋아하는 만화를 소개하는 콘셉트인데 특별히 자세한 원고를 준비하는 건 아니고 다루려고 하는 만화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읽고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선에서 끝납니다. 혼자 진행하다보니 리액션이 없어 조금은 심심한 면도 있고요. <어떤 교집합>의 경우는 원래 고아라 작가를 섭외해서 - 프로그램 제목 자체가 고아라 작가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지요 - 회의를 겸한 짧은 대화를 하며 이번 회에는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자, 거기에 맞는 작품과 대략의 원고는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자 여기까지 맞춘 후에 만나서 바로 녹음을 합니다. 편집은 처음에는 혼자 다 했는데, 힘에 부쳐 지금은 돌아가며 하고 있고요.
 
 
 
 
 
 
 
 
 
 
 
 
 
 
 
 
 
 
 
고아라 작가님의 경우는 ‘이야기 꾼’의 느낌 보다 신중한 ‘리스너’의 느낌이 큰 것 같아요. 리액션도 정적인 편이고요. 상반되는 성격의 조합을 의도하신 건가요?
- 그건 아니에요(웃음). 따로 만나는 자리에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인데, 방송이라 의식하다보니 자기검열이 다소 생기는 것 같아요. 최근에 <더 퀸 : 침묵의 교실>의 김인정 작가를 새롭게 영입했는데 셋이 되니 전보다 훨씬 재미있어 진 느낌은 있네요. 침묵의 길이도 짧아지고. 생각지 못한 전개가 이뤄지기도 하고요.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외에 <추궁 60분>이나 <코끼리뼈> 등은 왁자지껄 축제 같고 정신없는 분위기를 담당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여러 가지 스타일의 프로그램이 있고 청취자들이 취사선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웹툰 라디오의 청취자입니다. 그 중에서 <조곤조곤 만화 박물지>를 즐겨 듣는데 들으면서 이 방송은 단순히 한 번 듣고 흘려버리기에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한가지 작품에 대해 굉장히 소상한 이야기들이 나오거든요.
- 어찌 보면 <조곤조곤 만화 박물지>는 아카이빙의 의미 또한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얘기지만 제가 ‘아이즈’라는 매체에서 연재 중인 칼럼이 내년에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인데 거기 지면을 할애해서 <조만박>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를 짧게 정리할 거거든요. 하지만 한 꼭지로 정리하는 건 역시 좀 아깝죠. 당장은 만화에 집중해야 할 시기니까 일을 벌이진 않겠지만, 작품을 고르면서도 방송을 만들면서도 제대로 형태를 갖춰 모아놓고 싶다는 생각은 하죠.
 
<조만박> 얘기를 더 하자면, 기존 출판만화와 웹툰 경계를 두지 않고 작가의 기준에 부합하는 좋은 작품을 골라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그 기준이란 건 뭘까요? 단순히 ‘클래식’은 아닐 텐데.
- 꽤 알려진 작품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언급하는 작품을 다 읽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골라요. 물론 거기에는 저의 취향이 반영됩니다. 정식으로 데뷔를 하고 자기작품을 꾸준히 하는 만화가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다른 만화를 잘 보지 않는 타입과, 독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계속 견지하며 많은 작품을 탐독해 나가는 타입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후자에 속해요. 거기서 일정부분 영향을 받기도 하고요. 기준은 ‘클래식’이란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뀐 후에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게 읽히며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작품들, 이런 걸 사람들은 클래식, 고전이라고 하잖아요. 그저 출간된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죠.
 
최근에는 어떤 작품을 다시 읽으셨나요. 방송에 출연하길 기대해도 좋을만한 것.
- 신일숙 작가님의 전집을 최근에 구입했어요. 어린 시절 저는 순정만화도 즐겨봤는데 어릴 때 만화를 독학으로 연습하고, 독자 입장에서 읽어 나가면서 좋아했던 작품들이 있어서 기뻤죠. 예컨대 <리니지>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나.
 
여성만화, 순정만화도 편식 없이 읽으시니 여성 작가 두 분과 함께하는 <어떤 교집합>도 원활한 진행이 가능할 것 같아요.
- 모든 작품을 다 읽고 가는 건 아니고 때로 작가에 대해 조사해 온 가장 기본적인 정보도 틀릴 때가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 화에 언급됐던 야자와 아이의 <파라다이스 키스>나 고아라 작가가 추천한 미나미 큐타의 <꿈의 온도> 같은 작품들은 전부 보진 못했지만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고, 마저 다 읽고 싶다는 느낌으로 방송을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요.
 
 
주제를 조금 바꿔서, 방송 편집 직후에는 워낙 여러 번 들어 이 방송이 재미있는지 아닌지 잘 알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송출 후에 자기 방송을 들으시나요?
- 주로 마감할 때 이런저런 팟캐스트를 잔뜩 걸어놓고 듣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들도 꼭 자기 방송이 아니더라도 마감할 때 잘 듣는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어요. 그러니까, 웹툰 라디오는 일단 만화가와 만화가, 작가 지망생들만큼의 청취자는 확보해 놓은 셈이네요(웃음). 방송이야 재미있는 것도 있고, 좀 별로다 싶은 것도 있고.
 
더 재미있고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면?
- 우선은 ‘기획’단계부터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 것 같아요. 시즌 2가 끝나고 나면 스태프들끼리 피드백을 주고받을 텐데 결국 무언가를 제대로 한다는 얘기는 제대로 시작하고 구현할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몇 군데에서 도움을 받고 있긴 하나 그것으로 해결될 만큼 큰 걸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일요일에 EBS <경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라이브로 고민상담(?)을 받고 있는데 처음 갔을 때 조금 놀랐어요. PD와 작가분이 계시고 수많은 고심 끝에 나온 스크립트를 들고 방송을 진행하는 거였으니까요. 온당한 절차가 중요하다는 것도, 더 나은 방송을 위해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죠.
 
연재와 일로 내내 ‘쌓아온 것을 비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벤트인 연재가 끝난 뒤의 모습은 어떤가요?
- 이번 연재가 끝나면 무조건 여행을 갈 생각이에요. <어떤 교집합>에서도 말했지만 여행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휴양, 관광, 모험이 그것들이죠. 전 단연코 모험적인 여행을 즐깁니다. 지도를 허리춤에 차고, 전혀 모르는 길을 걷습니다. 예상 밖의 장소에서 길을 잃고 돌아다니다 예정에 없던 가게에 들어가기도 하고. 한국어와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라면 순식간에 원하는 바를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기도 하고. 이 경험들은 다시 말이 되어 방송에 언제고 등장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