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보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김송 작가의 <미슐랭 스타>는 식욕을 한껏 자극하는 요리 만화다. 매회 줄줄이 등장하는 프렌치 요리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음식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보다 만들어지는 과정과 재료에 집중하는 그림은 이 작품의 지향점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최초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은 류태환 쉐프,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레스토랑 ‘라 쁘띠 메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박은비 등 요리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로워진다. 그래서 <미슐랭 스타>는 ‘미슐랭 가이드’가 뭔지 몰라도, 프렌치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어도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듯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웹툰이다. 다음은 김송 작가와 작품에 관해 나눈 이야기다. 작품에서 느껴지던 열정과 유쾌함은 그의 말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우선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된 소감이 궁금하다.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게 돼서 너무나 영광이다. 아마추어 때부터 상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 상을 받기 위해 그렇게 공모전에서 낙방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상을 주신 심사위원님들, 그리고 내가 만화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잘 지도해주신 이두호, 이현세 선생님, 내 그림스승님이신 김정기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요리 만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미슐랭 스타>의 주인공 류태환은 쉐프로 일하고 있는 내 지인을 모델로 삼아 만든 캐릭터다. 류태환 쉐프와 나는 고등학생 시절 동네에서 형, 동생 하던 사이였다. 어릴 때 함께 이야기했던 콜라보레이션을 하기 위해서 요리사가 주인공인 만화를 기획했고, 태환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작품의 많은 부분이 픽션이긴 하지만 베이스가 된 건 태환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요리 중에서도 프렌치 요리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프렌치 요리를 하는 주방은 많은 양의 음식을 항상 일정한 퀄리티로 내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언급했던 태환이도 원래는 일식을 5년간 했지만, 여기에 주목해서 프렌치 요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하더라. 그런 부분들이 만화에 재미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최초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라는 류태환의 목표 역시 독특한 지점이다. 요리의 맛이란 건 사람에 따라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화에서는 그 맛을 객관적인 레벨로 표현하는 게 꼭 필요하더라.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게 ‘미슐랭 가이드’였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요리의 맛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미슐랭 가이드가 들어가면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의 수준을 독자들에게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 어떤 자료들을 참고했나.
일단 태환이와 카페에 가서 녹음기를 켜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미셰린 코리아’에 “미슐랭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겠냐”라고 메일을 쓰기도 했다. 아, 고든 램지가 출연하는 <헬s 키친>과 에드워드 권이 출연하는 <예스 쉐프> 등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봤다. 그들이 어떤 부분을 지적하는지, 어떤 부분들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보면서 작품에 참고했다.
후기를 보니, 류태환 쉐프가 하는 레스토랑 ‘류니끄’의 주방에서 잠시 일을 해보기도 했더라. 자료 조사만 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요리 한 접시에 정말로 손이 많이 간다는 걸 느꼈다. 작은 잎사귀 하나하나도 그냥 나오는 게 없다. 그 모든 것을 주문이 들어오고 20분 내에 낸다는 게 신기했다. 요리사는 정말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레스토랑에서도 취재를 했나.
주로 먹으러 갔다. 그리고 요리 사진을 찍거나 홀 서비스를 하는 직원들의 복장, 동선, 주방의 위치, 주방의 느낌 등 디테일한 부분도 많이 본다. 이런 식으로 취재를 하다 보니, 확실히 취재비용을 감당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가까운 지인이라도 음식 값만큼은 확실하게 지불했으니까.
그래서 본래 몸무게보다 10kg 정도 더 늘었다고 들었다. (웃음)
지금은 더 쪘다. 스테이크가 특히 맛있더라. 남자라면 역시 붉은 고기인가 싶다. (웃음)
요리 만화는 <미스터 초밥왕>이나 <요리왕 비룡>, <밤비노> 등 유명하고 팬 층이 두터운 작품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요리 만화를 그리는 데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사실 <밤비노>를 제외하고 다른 요리 만화를 본 적이 없다. <미스터 초밥왕>도 요 근래 처음 봤고. 그래서 겁을 먹거나 부담감을 가지진 않았다. 무엇보다 나한테는 요리의 디테일을 보여줄 수 있는 류태환이라는 동생이 있지 않나. 즉, 표현의 구체성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는 거다. 하나의 요리가 이루어지는 과정만으로도 한 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와 요리의 디테일을 잘 버무리고 녹여내서 자연스럽게 읽히게 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프렌치 요리를 다루다보니, 어려운 용어나 ‘분자요리’ 같은 독특한 개념들이 종종 등장한다. 독자들에게 이런 부분을 빨리 인식시키는 방법 또한 고민이었겠다.
그럴 때는 클로즈업 컷을 많이 써서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이야기 전개상 그런 부분들에 대한 궁금증이 제일 커질 때쯤 답을 던져준다.
독자들이 캐릭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하는 편인 것 같더라. 예를 들어, 맛집 파워블로거 대지연이 음식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많은 식구들 때문에 늘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혀진다. 덕분에 다양한 인물들이 모두 이야기의 중심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모든 캐릭터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니까.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다. <미슐랭 스타>의 등장인물들 역시 그렇다. ‘이게 나의 작품관이다’라고 거창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모든 만화는 희로애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작품을 통해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하는 거다.
2010년 그래픽 노블 스타일의 웹툰 <지브란>으로 데뷔했다. 첫 작품이라 연재를 하면서 많은 걸 배웠을 것 같은데.
<지브란>은 졸업 작품이었는데 처음으로 누군가가 읽는다는 걸 최우선으로 고려한 작품이었다. 그 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지. (웃음) 그래픽 노블의 완성도 높은 작화와 시적인 표현을 좋아해서 한번 시도해봤다. <지브란>을 연재하면서 웹툰이라는 형식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한 컷에 많은 정보를 넣는 편이기 때문이다. 당시 연재하던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끝맺음을 못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스토리 보강 후 재연재를 해보고 싶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독자층이 좀 더 넓어졌다는 걸 실감하나.
‘류니끄’에 취재를 가면 가끔 <미슐랭 스타>를 보고 오셨다는 분들이 계신다. 그 분들에게 싸인도 해드리고 사진도 함께 찍으면서 전보다 많은 분들이 내 작품을 보신다는 걸 실감한다.
<미슐랭 스타>를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건 뭔가.
요리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요리에 대한 디테일들을 보여주고 싶다. 독자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를 먹어보고 싶게끔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보시는 분들이 모두 같이 살쪘으면 한다. (웃음)
앞으로 독자들이 특히 더 주목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
박은비에 대해 좀 주목해줬으면 한다. 맛도 못보고, 만날 자기 위주로 생각한다고 민폐 캐릭터라고들 생각하시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은비는 어릴 적에 부모님을 다 잃고, 믿을 사람 하나 없이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 나이에 연애도 못하고 놀러 다니지도 못하고, 대학도 못 가면서까지 레스토랑 하나만 붙잡고 살고 있는 거다. 게다가 대기업이라는 엄청난 강적이 레스토랑을 뺏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늘 웃으면서 산다는 건 대단한 게 아닐까. 앞으로 은비를 예쁘게 그릴 테니 많은 사랑을 주시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원하나.
“어머, 이 작가 작품은 꼭 봐야 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