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탐정만화, 미약함 속에서 조금씩 피어나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를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대본소 시절이나 잡지만화의 전성기 시절에도 한국 만화에서 ‘추리물’이나 ‘탐정물’은 철저하게 비활성 된 장르였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비주류의 영역에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작품이 제작되고 발표되며 하나의 조류를 형성했던 SF 만화나 스포츠 만화와 달리 추리물이나 탐정물은 사실상 한국 만화에선 특정 작가 몇몇이 각개격파를 하는 수준으로 명맥을 겨우 유지했다.
왜 한국 만화에서 추리만화나 탐정만화를 보기 어려울까. 필자는 이러한 장르의 만화들이 활발하게 나올 수 있는 장르적 저변이 한국에서 형성되지 못했던 것이 해당 장르가 성장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SF 만화의 경우, 한국에서 스스로 장르적 성취를 거둔 작품은 많지 않았어도 <스타워즈> 시리즈나 , <우주소년 아톰>과 같이 전 세계를 강타한 작품이 계속 한국에 소개되면서 비록 세력 자체는 미약할지라도 꾸준히 SF 팬덤을 유지하고 SF에 뜻을 품은 창작자들을 계속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소위 ‘학원출판공사 시리즈’ 같이 학부모들로 하여금 지능개발이나 과학 따위의 문구로 혹하게 만든 SF 선집 출판물들도 분명 영향을 끼쳤으리라.
스포츠 만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스포츠는 예나 제나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나 여흥거리다. 여기에 국민들이 쉽게 열광할 수 있는 경기들도 잊을 만하면 계속 개최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교 야구,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비록 지금은 너무나도 쇠락했지만 한때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였던 권투(복싱). 여기에 여전히 인기 종목, 비인기 종목을 가리지 않고 열렸다 하면 세간의 이목이 집중하는 한일전도 있지 않은가. 마치 전두환 정권이 독재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한 우민화 책략인 ‘3S 정책’으로 Screen(영화 산업의 규제 완화), Sex(유흥업소 규제 완화 및 야간통행금지 폐지)에 Sports(스포츠 문화 및 산업 활성화, 프로리그 출범)를 포함시켰듯 스포츠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친근한 존재였다.
하지만 추리만화나 탐정만화는 다르다. SF처럼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작품이 지속적으로 나왔던 것도 아니며, 스포츠처럼 일상적인 기준으로 접할 수 있는 요소도 없다. 게다가 실제로 ‘탐정’이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영미권이나 일본과 달리 애시당초 한국에는 ‘탐정’이 직업적으로 허가된 적이 없기에 더욱 일상적인 접점을 만들기 애매하다. ‘흥신소’나 ‘심부름센터’가 그나마 탐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애초에 이 둘이 지니는 이미지는 탐정과 너무나도 다르다.
대중소설의 지체, 탐정/추리만화에도 영향을 끼치다
물론 만화를 비롯한 각종 창작물들에 등장하는 탐정들처럼 살인사건이나 밀실사건 같이 어려운 난제들을 척척 풀어 범인을 잡는 탐정은 현실에선 드물다. 정말로 유능하지 않은 이상 대다수의 탐정은 아오야마 고쇼의 만화 <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탐정 모리 코고로 같이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찾아다니는 등 경찰에 맡기기 곤란한 각종 자질구레한 일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던 <명탐정 코난>과 같이 ‘픽션 속 유능한 모습들과 달리 너무나도 무능하고 현실적인 탐정’이라는 이미지를 다시 역으로 활용한 추리만화나 탐정만화가 해외에서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한국에서 추리/탐정만화를 철저한 변방의 장르로 만들고 만 것일까. 답은 결국 하나다. 이미지를 형성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장르’가 한국에선 너무나도 미약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다시 풀어 말하자면, 대중문학의 형성이 부진했던 역사가 추리/탐정만화와 같이 장르소설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만화 장르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일찌감치 인쇄 기술이 발달하고,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초기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하면서 서구권에서는 19세기부터 흥미로운 추리/탐정소설들이 대거 출간되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처럼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게 해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 나온 것이다.
△ 1937년에 출간된 『Detective Comics』 1호.
대중을 주된 독자층으로 삼은 장르소설의 등장은 비슷하게 대중들을 함께하며 성장했던 만화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다. 현재 미국의 ‘마블 코믹스’와 쌍벽을 이루며 북미권 만화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DC 코믹스’는 원래 탐정만화를 주로 만들었던 만화 출판사였다. DC라는 이름도 초기 회사를 대표하던 만화 시리즈인 ‘Detective Comics’(탐정 만화)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다. 슈퍼맨과 함께 DC 코믹스를 상징하고, 더 나아가서는 할리우드를 비롯한 미국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이 된 배트맨 역시 이 ‘Detectvie Comics’의 탐정 주인공으로 시작한 사례였다.
서양 열강들보다는 매우 늦었지만,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빠르게 서양 따라잡기에 나선 일본에서도 19세기 말엽부터 조금씩 탐정을 소재로 삼은 대중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존속되었던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우키요조시’(浮世草子)라 불리는 대중문학의 기틀이 있었기에 추리/탐정소설의 근간을 다지기에도 무척이나 용이한 상황이었다. 이미 다져놓은 확고한 대중문학의 기반은 마치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그랬던 것처럼, 서양으로부터 통해 들어온 추리/탐정소설이 일본 특유의 문화와 혼합되며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코고로’ 시리즈처럼 흥미로운 작품들을 여럿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일본에서 추리/탐정소설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곧 추리/탐정을 소재로 한 만화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에도가와 란포가 어린이 독자층을 상정하고 집필한 <괴인 이십면상>이나 <소년 탐정단> 시리즈는 무척이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959년, 한국에서는 <꾸러기 닌자 토리>(닌자 핫토리 군)으로 유명한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 A’가 <소년탐정단>의 만화판을 그렸다. 이후 1990년대 초중반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 등의 작품이 다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일본 추리/탐정만화는 자신만의 영역을 다질 수 있었다.

△ 1947년(쇼와 22년)에 발행된 에도가와 란포의 추리소설 <괴인 이십면상>.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여러 시대적 한계로 인해 대중문학의 형성이 무척이나 지연되었다. 대중문학을 제작하거나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도 없었고, 다시 이러한 작품들이 발표될 수 있는 대중신문이나 잡지도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로 합병되기 직전에야 겨우 나왔었다. 한국 고유의 대중문화 자체가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는 장르문학은커녕 대중을 상대로 만드는 소설 자체를 발표하기 너무나도 쉽지 않은 상황을 낳았다.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추리/만화소설이 없는 상황에서 탐정이 등장하고 추리를 파헤치는 만화는 더더욱 나오기 힘들었다.
짧지만 굵게 추리/탐정만화를 선보였던 만화가 방영진
추리/탐정만화를 지속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이렇다 할 기반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꾸준히 추리/탐정만화가 제작되었다. 비록 추리/탐정물이라는 장르에 대한 인기는 절대적으로 높지 않았어도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직후에도 서구, 일본에서 제작된 추리/탐정물은 꾸준히 한국에 소개된 덕분이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1997년에 작고한 만화가 방영진이 있다.
만화가 박기준 씨가 <한국만화야사>에서 ‘한국 만화사에서 추리만화로 대성공을 거둔 작가는 오직 방영진 씨 한 사람’이라 단언할 정도로 방영진 작가는 한국 만화에서 추리/탐정물을 통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김내성의 소설을 비롯해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 <괴인 이십면상> 시리즈 같이 초기 추리/탐정소설을 좋아했던 열성적인 독자였다. 추리/탐정소설에 푹 빠진 기억은 그의 만화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명탐정 약동이>를 그리며 한국 만화계의 주목받는 인사가 된 것이다.
△ 크로바문고를 통해 출간된 방영진 작가의 <명탐정 약동이 - 얼굴없는 사나이편> 7권 단행본의 모습.
<명탐정 약동이>는 한국 최초의 추리/탐정만화이자,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추리/탐정만화였다. 방영진은 이외에도 <약동이와 영팔이>와 같은 명랑만화로도 인기를 얻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가 그렸던 주된 장르는 <명탐정 약동이>와 같은 추리/탐정만화였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 탐정단>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아 나이 어린 주인공이 탐정으로 활약한 방영진의 추리 만화는 독특한 만화를 갈구하던 한국의 독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방영진의 작품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보다 만화가의 처지가 더욱 열악할 무렵, 그는 20대 초부터 앓던 지병인 퇴행성 류머티스 관절염이 더욱 악화되며 1964년 만 25살의 무척이나 절은 나이로 만화가 생활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1960년대 후반, 당시로썬 갓 데뷔한 상태였던 故 고우영 화백을 그림 작가로 삼아 다시 한 번 <명탐정 약동이> 시리즈를 재가동시키려고 했으나 그 꿈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가와 추리/탐정만화 시리즈는 독자들과 짧지만 굵은 만남을 끝내고 시대 속으로 영영 사라졌다. 슬프게도 방영진의 또 다른 대표작인 <약동이와 영팔이>가 1부 20권, 20부 20권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2013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복간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명탐정 약동이>는 일부 단행본만 남아있는 상태여서 후대의 독자들이 제대로 작품의 진수를 만나기도 무척이나 어려운 상태이다.
한국 추리/탐정만화,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방영진이 20대의 나이로 안타깝게 만화계를 떠난 이후, 오랜 세월동안 한국에서 <명탐정 약동이> 시리즈만큼 화제가 된 추리/탐정만화는 나오지 않았다. 작품의 명맥 자체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해외에서 수입된 추리/탐정소설은 이러한 장르를 사랑하는 꾸준한 독자층을 만들어냈고, 마치 방영진이 그랬던 것처럼 그럴듯한 추리/탐정물을 만들고 싶은 의지로 가득한 창작자들도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레이먼드 챈들러를 비롯한 미국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영향을 받는 한편, 독립운동이나 ‘빨치산’처럼 한국 근현대사에서 빌어온 소재를 적절히 조합했던 추리소설가 김성종이 김내성 이후 한국 추리/탐정소설로써는 간만에 세간의 주목을 받는 등 장르의 저변 자체는 미약해도 대중적인 관심이 마냥 없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성종은 철저하게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추리소설을 집필하는 작가였고, 불행하게도 그가 활약하던 1970-80년대의 한국 만화는 ‘아이들’의 것으로 취급받았던 시기였다. 고우영이나 박봉성, 이현세와 같이 스포츠신문의 지면이나 대본소를 통해서 조금씩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이 선을 보였지만 거센 심의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는 김성종이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당선되며 일약 이름을 알린 소설 <최후의 증인>마저도 1980년 이두용 감독의 손으로 영화화될 때 ‘빨치산’이라는 소재가 문제가 되어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하기 전까지 50분의 분량이 가위질을 당해야만 했다. 만화보다는 사회적인 평판이 좋았던 영화도 이렇게 심의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만화로 본격적인 추리/탐정만화를 시도하기에는 더욱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탐정만화는 조금씩 계속 발표되며 명맥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명탐정 약동이> 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같은 60년대 조항리의 <혜성같은 소년>와 <소년탐정 살별이>, 강철수의 <명탐정> 등의 작품이 발표되며 당시 유행하던 ‘소년탐정물’의 저변을 조금씩 넓히는 것에 기여했다. 이후 한동안 이렇다 할 추리/탐정만화가 발표되지 않다가 1977년 갑작스럽게 4편의 추리만화가 발표되면서 한국 추리/탐정만화는 간만에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 1977년 『어깨동무』의 별책부록으로 발표된
방학기의 소년탐정물 만화 <태양을 삼킨 소년>.
그 해 방학기는 『소년생활』과 『어깨동무』에 각각 <초인 루팡>과 <태양을 삼킨 소년>을 연재했고 백산은 『어깨동무』에 <첩보원 36호>를, 이우정은 『소년중앙』에 <모돌이 탐정>을 연재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은 가깝게는 방영진의 <소년 탐정단> 시리즈에서, 멀게는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 탐정단> 시리즈와 당시 큰 인기를 얻었던 <007> 시리즈와 같은 첩보액션물에 많은 영향을 받은 만화들이었다. <명탐정 약동이> 이후로 오랜 시간이 흘러서 다시 봇물처럼 터진 추리/탐정만화 붐은 여전히 추리/탐정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어린이 독자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장르적인 발전의 측면에서는 60년대와 큰 차이가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각 작품마다 주인공도, 형식도 모두 달랐지만 결국 ‘어른’ 범인의 음모를 나약해보이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어린이’ 탐정 주인공이 해결한다는 방식은 공통적이었기 때문이다. 추리/탐정만화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트릭은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는 이상으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이후 발표되는 추리/탐정만화들 역시 이러한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방학기가 1970년대 <선데이 서울>을 통해 <다모 남순이>를 연재한 전후로 성인을 주된 독자로 삼은 추리/탐정만화도 조금씩 선을 보였지만, 성인 독자를 위한 성적인 장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증가한 점을 제외하면 당시의 ‘소년탐정물’에서 크게 진전한 점은 없었다. 탐정도 있고, 추리도 있지만 추리는 그야말로 ‘보여주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탐정들이 벌이는 현란한 액션과 첩보가 계속 변주되며 반복되었을 따름이다.
1980년대 말 본격적으로 만화잡지가 창간된 이후로도 한국 추리/탐정만화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추리/탐정소설과 계속 상호적으로 영향을 받고 발전할 수 있었던 해외의 추리/탐정만화와 달리,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추리/탐정소설 자체가 거의 없었던 것이 만화잡지의 시대가 열리고 나서도 정체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수 있는 작가들은 간간히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만화가 김종섭과 한혜연이다.

△ 김종섭이 1998년 서울문화사 『빅점프』에 연재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단행본.
김종섭은 1992년 『주간만화』에서 추리만화 <미스테리 익스프레스>를 연재한 이후 꾸준히 추리/탐정만화를 그리고 있다. 비록 한국에서 추리/탐정물의 저변이 무척이나 미약한 탓에 대중들의 인지도는 무척이나 낮은 편이지만, 이렇게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김종섭은 추리/탐정만화를 계속 그리면서 장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김종섭의 작품 대다수는 1990년대 말 서울문화사 『빅점프』에 연재했던 <메피스토>에서 강렬하게 드러나듯, 에드거 앨런 포우의 작품 등에서 영향을 받은 고딕 호러나 스릴러적인 감성이 강하게 담겨있다. 성인 만화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지속해온 만큼 성애를 묘사하는 컷의 비중도 상당하며 때로는 마초적인 지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근래 발표되는 추리/탐정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낡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색깔로 꾸준히 추리/탐정만화를 시도하는 것은 물론 매 작품마다 사건의 트릭을 설계하는 공이 느껴지는 등 한국 추리/탐정만화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성과이다.
반면 한혜연은 성인 만화를 기반으로 추리나 스릴러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김종섭과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페미니즘적인 감성을 토대로 작품을 구성하며 김종섭과는 다른 흐름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추리만화를 만들었다. 그의 첫 장편 데뷔작 <M. 노엘>은 그간 발표되었던 한국 추리/탐정만화는 물론 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무척이나 특이한 작품이었다. 어린이의 시선에 너무 눈높이를 맞추거나 철저히 성인 남성에 초점을 맞춘 당시의 추리/탐정물과 달리, <M. 노엘>은 섬세한 감정선을 작품 전반에 계속 유지하며 성인 여성 독자들도 함께 볼 수 있는 한국 최초의 추리만화였다. 매 에피소드마다 제시되는 트릭들 역시 작가의 생물학 전공을 바탕삼아 설계된 덕분에 당시 기준으로는 꽤나 신선했었다.
단지 작품이 연재되던 대원씨아이의 <화이트>가 폐간되는 바람에 작품 또한 제대로 된 결말을 짓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한 2000년은 한국 잡지만화가 서서히 몰락하던 시점이었다. <M. 노엘>을 비롯해 서울문화사의 <나인>에서 연재했던 여성 만화 <아.마.존.>(아름다운 마지막 존재) 역시 연재를 중단할 수밖엔 없었고, 간간히 지면을 통해서 발표하는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주 볼 수 있었던) 단편을 통해서만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 한혜연의 첫 장편 데뷔작 <M. 노엘>의 1권 단행본 표지.
그러다 2008년 지금은 폐간된 씨네21의 만화잡지 <팝툰>에 발표한 일련의 단편들과 (이 단편들은 이후 거북이북스를 통해 2010년 <기묘한 생물학>이라는 단편집으로 발매되었다.) 이후 같은 잡지에서 연재한 오래간만의 장편 연재작 <애총>은 여전히 그녀의 미스터리 감각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M. 노엘>과 <아.마.존.>에서 처음 빛을 보였던 여성주의적인 시선은 더욱 원숙하게 발전하며 작중의 기묘한 사건들과 혼합되었고, 쉽게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건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없이 깊고 어두운 작품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비록 이후 앞서 언급했던 조항리가 60년대 발표했던 동명 소년탐정물을 리메이크한 <혜성 같은 소년>, 다음 만화속세상을 통해서 연재한 고양이와 베이킹 소재의 짧은 소품 <빵 굽는 고양이>를 끝으로 다시 그의 작품을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은 안타깝다. 그러나 과거의 한국 작가는 물론 지금의 한국 작가들 중 대체 누가 여성 혐오적인 문제를 추리로, 섬뜩한 미스터리로 유려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한혜연은 바로 그런 작가였다.
웹툰의 시대, 추리/탐정물은 활력을 얻을 수 있을까
이렇게 간간히 흥미로운 지점을 주는 한국 추리/탐정만화는 계속 나왔었지만, 강고한 흐름이 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장르를 시도하는 작가들은 계속 있었지만 방영진처럼 한 시기에 이름을 떨치고 사라지거나, 김종섭처럼 꾸준히 작품을 그려도 마니악한 지점에 머무르거나, 아니면 한혜연처럼 만화계가 요동치는 시기에 갈 곳을 잃고 사라진 작가들이 수두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잡지만화의 쇠락 이후 오랜 과도기를 거쳐 현재 한국 만화가 정착한 ‘웹툰’이 전성기를 맞이하며, 이전보다 더욱 본격적으로 추리/탐정물이 수면 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서울문화사 <아이큐 점프>를 통해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과 같이 일본에서 1990년대 추리만화 붐을 이끈 작품들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을 때 형성된 독자층이 서서히 데뷔할 무렵인 동시에, 기존의 잡지만화 시스템으로는 데뷔하기 어려웠던 작가들이 빛을 볼 수 있었던 점들이 함께 작용했던 결과였다.
△ 김선권의 추리 웹툰 <수사9단>의 베스트 에피소드 단행본 표지.
그 중 제일 먼저 빛을 본 것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김선권의 <수사9단>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추리/탐정물이 아니라 형사물로, 그것도 무척이나 코믹스러운 작품이었지만 작품은 연재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분위기를 바꾸게 되었다. 개그적인 면모는 최대한 줄이는 한편 스릴러적인 요소를 최대한 강화시킨 것이다. 처음에는 평범한 인기를 얻었던 <수사9단>은 작품의 방향성에 변화를 주면서 이전보다 더 큰 인기를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작품은 6년 간 연재되며 장수할 수 있었지만, 작품이 계속 연재될수록 추리적인 면모는 계속 줄며 스릴러에 강하게 치중되는 아쉬움도 한편으로는 보였다. 이후 김선권은 <후유증>이나 <그날의 생존자들> 같이 서스펜스 장르의 작품을 계속 그리고 있다.
이어서 주목을 받은 작가는 마사토끼(또는 ‘MASA’)이다. 그는 본래 RPG 게임 제작 커뮤니티 ‘창조도시’에서 활동하던 인디게임 제작자였지만, 2007년부터 디씨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와 루리웹 만화 게시판, 본인의 네이버 블로그를 중심으로 만화를 올리면서 아마추어 만화가로써도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2008년 학산문화사의 청년 대상 만화잡지 <부킹>에 자신이 블로그에 게재한 중편 <누가 울새를 죽였나?>를 만화 <수요전>의 작가 NANO가 다시 작화를 그리는 형식으로 셀프 리메이크한 작품을 연재하며 정식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추리는 물론 코믹, 판타지, 심리전 등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 무수한 작품들의 스토리에 참여하는 식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 마사토끼 작가가 정식으로 만화계에 데뷔한 첫 작품
<누가 울새를 죽였나?>의 단행본 표지.
마사토끼가 그리는 추리 장르 만화의 특징은 정교하게 설계된 트릭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심리적 갈등이다. 트릭과 추리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부가적인 요소를 찾기 어렵지만, 도리어 이러한 특징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추리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팬들의 각광을 받는다. 이러한 면모는 <삼국지 가후전>이나 <짝과 홀> 같이 추리적인 면모가 덜한 작품에서도 존재감을 발하면서 마사토끼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드는 것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2010년 네이버 웹툰을 통해 충격적인 데뷔작 <살인자ㅇ난감>을 선보였던 꼬마비 작가와 프랑스를 통해서 먼저 작가로 데뷔한 이후 2010년대 초반부터 <지옥철>, <명탐정 포우> 등 독특한 추리/탐정만화를 선보이는 고동동 작가 역시 주목할 만하다. 꼬마비 작가는 <살인자ㅇ난감> 이후로 <S라인>, <연극이 끝나고 난 who>, <미결> 등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선보이며 자신만의 추리만화를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그의 추리만화는 직접적으로 탐정이나 형사가 등장하는 일이 많지 않다. 대신 의도적으로 서사를 뒤섞거나 부분을 가리면서 제시하다 작품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진상을 드러내며 작중 세계와 사건을 독자로 하여금 추리하게 한다. 강하게 데포르메되어 SD로 작중 내내 캐릭터들이 그려지다 중요한 순간에서 극화체로 인물을 그리며 포인트를 주는 기법도 꼬마비 작가의 전매특허이다.
반면 고동동 작가의 스타일은 비교적 고전적이다. 특히 <명탐정 포우>처럼 에드거 앨런 포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을 제목을 통해서도 드러내는 한편 작품적으로도 고딕 호러/스릴러의 면모를 강하게 드러낸다. 극화체는 물론, 매 컷을 일일이 수채화 기법으로 채색한 것도 고동동을 상징하는 하나의 특징이다. 무척이나 고풍스러운 작품이지만, 동시에 낡지 않은 그의 만화는 한국 추리/탐정만화에 있어서는 물론 한국 웹툰 전반에 있어 쉽게 찾기 힘든 독특한 감각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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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한국만화박물관 신진작가전으로 진행된
고동동 작가의 <명탐정 포우> 수채화 원화전의 포스터.
이렇게 한국 만화가 웹툰의 시대로 접어든 이후 한국의 추리/탐정만화는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발표되고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씬’이 형성되었다고 말하기엔 쉽지 않다. 각각의 추리/탐정만화는 작가 개개인의 도전과 각개격파를 통해서 겨우 발표되고 있으며, 작품의 수 역시 절대적으로는 많지 않다. 하지만 대중소설에 있어서도 판사, 변호사 출신의 추리소설가 도진기의 작품이 최근 호평을 얻고 팬덤을 형성하는 등 한국의 추리/탐정물이 오랜 시행착오를 겪다 겨우 정착하려는 상황인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좀 더 활발한 상호 작용과 창작을 통해,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장르의 씨앗이 틀 수 있길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