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관왕이니 2관왕이니 하는 것은 결코 노려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으면 그 결과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일 뿐이다.”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東映) 플라이어스의 미즈기 타격코치는 데뷔 시즌 높은 타율에 집착하다 슬럼프에 빠진 좌타자 장훈에게 냉정하게 충고한다. 전설의 재일교포 타자 장훈을 그린 허영만의 야구만화 <질수없다>(1986)에서 스스로의 덫에 걸린 장훈이 깨달음을 얻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미즈기 코치의 설명은 이어진다.
“1번 타자는 발이 빠르고 끈질긴 타자, 2번 타자는 벤치의 작전에 잘 적응할 수 있으며 타구의 코스를 노려 칠 수 있는 교타자, 3번은 기복 없이 3할을 칠 수 있는 타자, 4번은 득점력이 좋은 타워 있는 타자… 5번 타자로서 타율도, 출루율도 높지만 타점이 적다면 그건 5번 타자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
<질수없다>에서 ‘조센징’이란 차별과 싸우던 장훈이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대목은 가슴이 찡하다. 1980년대는 이처럼 전문성, 감동, 재미의 삼박자를 갖춘 스포츠만화의 전성시대였다.
오랫동안 한국 출판만화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해온 스포츠만화가 수많은 웹툰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스포츠시장의 규모와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예전보다 훨씬 커졌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현상에는 다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독자는 웹툰으로 스포츠만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여러 근거들과 함께 해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스포츠만화는 ‘핫(Hot)한’ 장르였다
우선 스포츠만화는 1960년대부터 대본소(만화방)에서 가장 인기 장르 중 하나였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30년 간 이어진 군부독재 치하에서 스포츠는 만화가들에게 가장 ‘안정적’(검열에서 유리)이고 경쟁력 있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한국 스포츠만화 역사에서 가장 먼저 사랑받은 박기정의 복싱만화 <도전자>(1964)는 1960년대 중반 복싱을 소재로 한 만화의 파괴력을 입증했다. 현실에서도 복싱은 일본에 맺힌 국민의 한을 풀어주는 청량제였다. 공공연하게 일본을 ‘패줄 수 있는’ 분야가 복싱이었기 때문이다. 웰터급 복서 김기수가 1965년 1월 10일 가이즈 후미오를 6회 KO로 눕히고 동양 챔피언에 올랐다. 복싱은 인생역전의 답도 던져주었다. 개인이 전 세계에서 가장 확실하게 1등을 해서 돈 벌 수 있는 분야 역시 복싱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후원을 받은 김기수는 1966년 6월 25일 15라운드까지 가는 혈투 끝에 이탈리아 챔피언 벤베누티를 꺾고 세계챔피언 벨트를 가져왔다. 전 국민이 열광했다.
스포츠에 있어 현실과 만화의 인기는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추었다. 박기정은 당시 최고 인기종목인 야구, 복싱, 프로레슬링을 겨냥해 야구만화 <황금의 팔>, 복싱만화 <도전자>(이상 1964년), 프로레슬링만화 <레슬러>(1965) 등을 연이어 내놓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월간 아동잡지의 황금기인 1970년대 들어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중앙’이 경쟁체제에 돌입하면서 별책부록으로 만화를 강화했다. 여기엔 일본 인기 스포츠만화 번안작들이 한국 작가의 이름을 달고 실렸다. <태양을 쳐라>(1968)를 번안한 김소중의 <태양을 쳐라>가 1972년 10월 ‘소년중앙’에 게재됐다. 주인공 장웅의 무시무시한 마구가 어린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국내 야구만화는 주로 1970년대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고교야구를 소재로 했다. 일본 국민들의 꿈이 된 고시엔대회를 좇아, 우리나라에서도 4대 고교야구 전국대회(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봉황대기)가 열리는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관객이 들어차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펼쳤다. 일본에서 고시엔대회가 야구 지망생들에게 얼마나 대단한 로망이었는가는 허영만의 만화 <질수없다>에 구구절절하게 그려진다. 1976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경남고의 최동원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뽑아냈다. 최동원, 선동열, 한대화, 류중일, 김재박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아마야구에만 머무르기엔 판이 이미 너무 작았다. 이상무는 <우정의 마운드>를 ‘소년중앙’(1976)에, 허영만은 <태양을 향해 달려라>를 ‘어깨동무’(1979)에 연재하며 야구만화로 두각을 나타냈다.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정권은 스포츠의 판을 확실히 키웠다. 1982년 3월 27일 개막한 프로야구, 그해 9월 4일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그 명분이었다. 동대문에 자리한 서울운동장은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치르기엔 격이 맞지 않았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약 두 달 앞둔 그해 7월 15일 잠실야구장이 완공됐다.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는 우리 국민에겐 너무나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이었다. 선동열과 최동원이 번갈아 마운드를 지켰고,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김재박의 개구리번트, 한대화의 3점 홈런으로 일본을 격침시켰다. 믿기지 않는 ‘우승’!

야구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프로야구라는 새 판에서 폭발했다. 야구만화도 소재가 고교야구에서 프로야구로 옮겨갔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1982)은 프로야구 개막이라는 시대배경에 ‘강한 자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비정한 현실을 덧입혀 성인 독자들을 대본소로 끌어들였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선사한 ‘간지 나는’ 그림(야구 장면)과 비장미 철철 넘치는 스토리는 독자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됐다. 이현세는 <고교외인부대>(1985)와 <제왕>(1986>, <까치의 유리턱>과 <지옥의 링>(1983) 등 프로야구와 프로복싱으로 라인업을 바투잡고 스포츠만화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허영만은 전문성과 코믹 성격을 가미한 스포츠만화로 이현세에 맞불을 놓았다. 그는 <10번 타자>, <태풍의 다이아몬드>(이상 1982), <도룡뇽 구단의 골칫덩이들>, <검은 글러브>(이상 1984), <제7구단>(1985), <흑기사>, <질수없다>(이상 1986), 킹 강토>(1988), <대머리 감독님>(1989) 등 이현세보다 더 많은 야구만화 라인업을 구축했다. 프로복싱은 또 어떤가? <무당거미>(1981), <변칙복서>(1983), <카멜레온의 시>(1986) 등 복싱만화 라인업은 이현세의 것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기업만화를 주로 하던 박봉성까지 복싱만화 <신의 아들>(1984)를 발표해 작가로서의 무게감을 더했다. 김철호의 복싱만화, 이상무의 축구만화들은 해외 스포츠스타들을 등장시키며 위성생중계로 해외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된 1980년대의 분위기를 물씬 반영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스포츠만화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1980년대 흥행가도를 달리던 복싱은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와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가 챔피언 벨트를 잃으면서 인기 스포츠의 자리를 내놓았다. 유명우가 일본 오사카에서 18차 방어전에 실패한 시점은 1991년 12월 17일. 더 이상 이렇다 할 만한 복싱만화가 나오지 않았다. ‘3대 야구만화 작가’라 할 수 있는 이현세, 허영만, 이상무가 야구만화를 접었다. 허영만은 <대머리 감독님>(1989)을 끝으로 야구만화에서 손을 뗐다. 이현세는 1999년 <다크드래곤>을 발표하긴 했지만 실제로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야구만화에서 물러났다. 복싱만화는 그렇다 치고, 이현세와 허영만이 야구만화와 결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두 사람은 너무 많은 야구만화를 그렸다. 야구만화라면 양적으로도 충분히 그린 셈이다. 허영만은 동시에 3개의 야구만화를 그린 적도 있다.
둘째, 야구만화 제작은 작가에게 매우 고된 일이었다. 야구만화의 경우 매 컷 야구 장비와 유니폼을 그려야 한다. 이현세나 허영만은 장비와 유니폼을 허투루 그리는 법이 없었다. 이현세는 “장비와 유니폼 그리기 힘들어 야구만화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이는 만화 제작 시스템과 연결된 문제였다. 이현세와 허영만은 양적 경쟁이 불가피한 1980년대 대본소 시스템에서 점차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프로덕션의 축소와 야구만화의 제작 기피는 맥락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TV로 보는 야구중계방송이 점차 확대되면서 야구만화가 위축됐다. 야구만화 자체로 프로야구 ‘Live’ 중계보다 더 재미있기가 어려워졌다. 고아나 재일교포 등을 주인공으로 한 야구만화는 박진감 넘치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리얼 액션에 비해 빛이 바랜 느낌이 들었다.
이현세, 허영만, 이상무가 거의 마지막으로 손댄 스포츠만화는 골프였다. 세 명 모두 골프를 즐기고, 잘 알고 있었다. 야구만화에 비한다면 골프만화는 개인 작업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현세의 <버디>(2007), 허영만의 <19번홀>(1994), 이상무의 <색즉시공>(2011) 등은 세 사람이 가장 마지막까지 그린 스포츠만화다.

스포츠만화의 판도는 1990년대 초부터 급변했다. 만화잡지 ‘코믹챔프’가 1992년 2월부터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선보였다. 일본 만화 <슬램덩크>는 만화시장에 떨어진 핵폭탄이었다. 최소한 남자 청소년 중 <슬럼덩크>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슬램덩크>의 인기와 농구코트의 인기가 서로 시너지를 냈다. 1993, 94년 대학과 실업팀이 경합하는 농구대잔치에서 서장훈,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등이 활약한 연세대가 우승을 차지했고, ‘오빠부대’가 농구장을 가득 메웠다. 이 시기 NBA 무대에선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가 거침없는 질주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이 <슬램덩크>의 인기로 집약됐다.
2000년대 들어서 스포츠만화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스포츠의 세계화가 이슈였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무대에 뛰어든 한국인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LA다저스의 투수 박찬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박지성, LPGA US오픈 우승자인 골퍼 박세리 …. 한국인들은 해외메이저무대에서 쓰인 ‘드라마 없는 각본’을 실시간으로 보며 감동했다. 2000년 5월 일간스포츠에서 연재한 박하(글)·김일민(그림)의 야구만화 <빅리거>는 한국 투수들이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서는 투쟁을 실감나게 다루었다. 박찬호가 메이저그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은 메이저리그의 음지인 마이너리그의 실상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었다. 이 만화의 경쟁력은 마이너리그에서 주인공들이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점이었다. 스포츠만화는 TV중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다른 틈새를 찾아내야 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축구만화, 만만치 않은 족보
축구만화를 빼면 스포츠만화는 완전체가 되지 못한다. 오래 전부터 축구만화에 빠진 만화가와 독자들이 존재해왔다. 1964년 박기정이 발표한 <치마부대>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여학생들이다. 지금은 여자축구월드컵까지 열리지만 당시만 해도 ‘여자축구’란 시대를 한참 앞서간 소재였다. 치마를 입고서 남자보다 더 축구를 잘하는 당찬 소녀들의 활약. 축구만화는 예사롭지 않은 출발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아시아축구의 강자로 떠올랐다. 한국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버마와 공동우승을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여새를 몰아 이두호의 <폭풍의 그라운드>, 계월희의 <한국 소년 축구단>(이상 1972), 이원복의 <불타는 그라운드>(1973) 등이 잇따라 출간됐다. 1979년 ‘어깨동무’에서 연재한 이상무의 <울지않는 소년>은 축구만화의 대명사가 됐다. 축구천재 독고룡의 아들 독고탁이 국가대표팀에서 친형 독고준과 화해하고 투톱을 이룬다. 마지막 장면에서 국가대표팀은 이들 형제의 활약으로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격파하고 4강에 진출한다. 이처럼 축구만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주며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한국 국가대표팀의 성장세는 두드러졌다. 온 국민이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 진출에 열광했다. ‘붉은 악마’의 신화도 이 대회로부터 시작됐다. 김철호의 축구만화 <그라운드의 표범>이 이 시기를 풍미했다. 이 시절 한국 국가대표팀은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리면서도 월드컵 무대에선 ‘하룻강아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철호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86년 멕시코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7대0으로 대파하는 것으로 처리했다. 축구만화는 철저하게 대리만족으로 방향을 잡았다.
1980년대 중·후반기가 축구만화의 전성기라 할까? 허영만의 <봄·여름·가을·겨울>, 이향원의 <그라운드는 부른다>, 백산의 <공포의 쿵푸킥>(이상 1985), 배금택의 <황제의 슛>, 김철호의 <빵야빵야>, 이현세의 <억세게 재수없는 녀석들>(이상 1987), 오일룡의 <춤추는 센터포드>, 김철호의 <0번 골잡이>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1980년대 축구만화에선 김철호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19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한국은 아시아 축구의 맹주가 됐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부터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축구만화는 내리막길에서 반등하지 못했다. 전세훈의 <슈팅>, 조재호의 <폭주기관차>(이상 1998), 박산하의 <레드붐붐>(2000) 등은 분투하며 축구만화의 열기를 다시 지피려고 했다. 2008년 발표한 조재호의 <바모스!>는 작가의 브라질 현지 취재를 통해 브라질 작은 마을에서 축구 선수의 꿈을 이뤄가는 소년들을 그렸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글로벌 축구만화를 시도한 셈이었다. 그러나 다른 스포츠만화들처럼 현실의 축구와 싸워 이기진 못했다.
이현세의 경우 축구만화를 딱 한 편 그렸다. 코믹 스타일의 <억세게 재수없는 녀석들>(1987)이었다. 까치와 두산이가 고교 최고의 스트라이커와 골키퍼인데, 이상하게 경기를 하면 진다는 이야기였다. 이현세는 축구만화를 한 편만 그린 이유에 대해 “축구만화는 사람을 많이 그려야 한다. 공 따라 사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에 인생 이야기를 집어넣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반면 야구는 공 하나 던질 때, 칠 때, 틈새의 시간이 존재하니 갈등 요소를 집어넣을 수 있다. 한마디로 축구는 원초적인 스포츠, 야구는 작전이 좀더 많이 필요한 스포츠랄까”라고 설명했다.
방송중계, 야구공의 회전수까지 포착
현실 스포츠가 바늘이라면 스포츠만화는 실인 양상을 보인다. 스포츠에 대한 대중적 트렌드가 스포츠만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90년대 복싱만화를 주로 그리던 김철호는 UFC같은 이종격투기가 인기를 얻자 격투기만화 아티스트>(2006)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스포츠만화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비활성 장르가 됐다. 이현세, 허영만 급의 정교하고 박진감 넘치는 그림에 쌈빡한 스토리가 아니면 현실의 스포츠와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200여 개에 가까운 케이블 채널에서 매일 저녁(월요일 휴무) 프로야구 다섯 개 경기가 생중계된다. 리모콘을 돌리면 24시간 중 최소한 어느 한 곳에선 해외 축구, MBL(미국 프로야구), NBA(미국 프로농구), UFC(미국 이종격투기), 해외 테니스, 해외 골프, 세계복싱타이틀매치 등을 볼 수 있다. 세계 최고급 경기 혹은 흥미진진한 라이브가 시청자의 눈앞에 잔뜩 진을 치고 있다.
양적인 것만 문제는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TV중계의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있다. 위기를 맞은 투수가 흘리는 땀방울, 폭포처럼 떨어지는 커브를 구사한 손의 그립, 볼이 휘어지거나 회전하는 각도·회전수·구종, 타자의 스윙 임팩트 순간 등이 시청자가 원하는 이상으로 생생하게 클로즈업된다. 구장 하나에 10대도 넘는 카메라가 배치돼 전후·상하·좌우 각도에서 화면을 편집해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심지어 비디오 판독 기술은 심판판정까지도 번복시킨다. 스트라이크·볼 판정, 발과 공 중 무엇이 빨랐는지, 야수의 글러브가 주자의 몸을 터치했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원하는 만큼 재확인한다. 또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해설자로, 캐스터로 입담을 대결을 펼친다. 사실 어떤 스포츠만화의 연출도 4차산업시대에 접어든 TV중계기술을 능가하긴 어렵다. 스포츠는 이제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됐다. 같은 소재를 종이 위에 재현해서 그와 같은 재미를 재현해낼 순 없다. 스포츠만화 독자의 눈높이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상향조정돼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만화는 크게 보면 모험만화의 일종이다. 스포츠만화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르가 무협만화다. 모험만화에 속하는 스포츠만화와 무협만화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스포츠만화는 리얼리즘에, 무협만화는 판타지에 의존한다. 스포츠만화가 트렌드에 따라 오락가락했다면, 무협만화는 트렌드와 아무 상관없이(일종의 판타지이므로) 고정 독자를 확보했기 때문에 현재도 꾸준하게 신작을 낼 수 있게 됐다.
자, 이제는 웹툰 시대다. 웹툰의 세로 스크롤 공간에 맞춰 스포츠만화를 그려내는 것은 또 다른 패러다임의 문제다. 웹툰 시대에 스포츠만화는 어떤 식으로 생존하고 있을까?
스포츠만화, 그라운드 뒷면을 응시하다
지금의 스포츠만화들은 멋진 그림으로 현장 스포츠와의 정면대결에서 이겨보려는 의도를 갖지는 않는 듯 보인다. 과거 야구만화는 공이 미트를 때리는 투구장면, 축구만화는 골망을 뚫을 것 같은 강렬한 슈팅장면의 연출이 필수적이었다. 기존 스포츠만화들은 우정과 배신, 승리와 패배, 성장도 될 수 있으면 경기를 통해서 풀어내려고 했다.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포츠만화를 풀어낸 시도가 1990년 말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본격 지역사회 성인야구 만화’라는 부제가 붙은 <발칙한 인생>(1997)과 ‘신감각개그컬트 지향주의’라는 부제가 붙은 수구 만화 <수상(水上)한 아이들>(1999). 두 작품은 <이끼>와 <미생>의 성공으로 대작가가 된 윤태호의 만화 이력에서 ‘이건 뭐지? 무슨 생각으로?’라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종목은 우리 사회에서 1990년대 말 확고한 ‘마이너 스포츠’였던 사회인 야구와 수구다. 두 작품이 바라보는 ‘재미’의 지점은 스포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향유해보려는 ‘찌질한 인생들’이다. <발칙한 인생>의 주인공 박태화는 허름한 동네 ‘오장리’의 유명한 백수. 어떤 상황에서나 당당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동네 후배가 소장하고 있는 파울볼 하나를 빼앗아 동네 야구단 결성에 나선다. 스승인 허영만 스포츠만화가 주로 메이저 무대를 다룬다면, 윤태호 스포츠만화는 마이너 무대에 만족한다. 윤태호는 “이 작품은 스포츠만화라기 보다는 찌질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화실 문화생 생활을 할 때 야구를 전혀 할 줄 모르고 얼떨결에 따라 나갔다가, 바운드된 볼에 맞아 이빨 깨친 친구가 있었다. 공이 이빨에 잠시 박혔다가 떨어진 후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1세기의 스포츠만화들은 그라운드에 집착하기 보다는 본격적으로 현장 스포츠의 틈새 혹은 그라운드의 주변, 이면을 헤집기 시작했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든 선두주자는 최훈이다. 일본에서 만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출판만화와 웹툰 양쪽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손바닥만한 한 페이지 카툰 형식(일명 ‘스포츠카툰’이라 불리는 패러디물)의 만화체로 승부했다. 패러디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최훈은 2004년부터 메이저리거 패러디물 카툰>과 KBO 패러디물 <프로야구 카툰>으로 깨알웃음을 뿌렸다. 메이저리그 혹은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수준보다 좀 더 높은 전문성으로 재미의 관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최훈이 그 다음 찾아낸 틈새는 구단 프런트였다. 그곳은 그라운드보다 더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 드래프트와 머니게임이 벌어지는 도박장이다. 그는 (2013)에서 신인 발굴, 용병 선정 등까지 책임지는 제너럴 매니저(GM)의 세계를 파헤쳤고, <클로저 이상용>(2013)에선 강속구가 없어 10년째 1군으로 올라갈 기회를 잡지 못한 2군 투수가 구단 프런트를 능가하는 데이터 암기력으로 빛을 발하는 상황을 다루었다. 최훈은 현실에서도 강조되는 데이터 야구를 두 작품의 동력으로 끌어다 썼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지배하는 최훈의 야구만화는 독자의 머릿속에 삽입된 ‘정통야구만화’의 규범을 깼다.
웹툰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수많은 웹툰이 쏟아지고 있지만 스포츠만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1년 당시 부천FC의 골키퍼였던 차기석 선수가 모델인 차기석이 두 번째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후 오합지졸 부천FC 선수들을 모아 함께 새로운 축구 인생을 펼치는 모습을 담은 HUN(글)·박용제(그림)의 축구만화 <모든 걸 걸었어>(2011)만 해도 부천시 홍보를 위한 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그 해 미디어다음에서 연재된 이 작품은 예산 지원이 없었다면 세상에 빛을 보기 어려웠다.
웹툰 작가 조석의 축구만화인 <조석축구만화>(2015)는 세로 스크롤 방식의 스포츠카툰이었다. 최훈의 스포츠카툰을 바탕으로 조석이 자신의 색깔로 그려낸 시도였다. 스포츠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매 컷이 웃긴 것은 작가의 역량과 직결된 문제였다.

웹툰 스포츠만화로 출발해 지명도를 얻은 작품으로는 장이의 야구 만화 <퍼펙트 게임>(2007)을 꼽을 수 있다. 사회인 야구를 소재로 한 <퍼펙트 게임>은 10년에 걸쳐 시리즈3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태호가 <발칙한 인생>을 그리던 1997년엔 사회인 야구가 너무 앞서간 이야기였지만, 현재 사회인 야구는 하나의 사회 트렌드가 됐다. 사회인 야구 커뮤니티 ‘게임원’에 등록된 야구팀 수는 2만 5000여 개이며, 활동 선수는 약 47만 명이다. 이런 면에서 트렌드를 따르는 스포츠만화의 전형인 <퍼펙트 게임>은 비프로선수들의 다양한 삶(생계)과 야구 경기를 병치시켜 호평을 받고 있다. 만화가 장이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13년 간 사회인 야구를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 연재에 돌입했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사회인 야구팀인 ‘블루 엔젤스’가 사회인 야구리그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키는 스토리라인이 단단하며, 그림은 손맛과 디지털 감성을 골고루 느낄 수 있다. 실종되다시피 한 정통야구만화의 계보를 이어나가는 작품으로 훗날 평가될 수 있는 듯싶다. 하지만 장 작가 역시 야구만화를 그리는 데 있어 어려움을 토로한다.
장이는 “어릴 때 이상무, 허영만, 이현세 야구만화를 다 봤고, 일본 야구만화도 섭렵했다. 야구만화를 그리면 손이 많이 간다. 작가들이 도전하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 사회인 야구는 내 몸에 익혀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화가 생활 하는 동안 야구를 계속 그리겠다”고 밝혔다.
명랑의 야구웹툰 <신들린 방망이>(2013)도 표면적으로 프로야구 선수를 내세웠지만 변칙적 접근을 했다. 이 작품은 프로야구 선수를 간절히 소원하지만 재능이 부족한 주인공 유진하가 홈런방망이를 얻은 전후의 야구 이야기다. 신(神)이 섹시한 여자 매니저로 변해 곁에서 주인공을 지켜본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 시니·혀노의 <죽음에 관하여>의 판타지 요소가 섞인 프로야구 만화라고 할까? 명랑은 “성공의 기준을 홈런에 비유했을 때 무조건 홈런을 칠 수 있는 방망이가 있다면 ‘인생이란 야구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할까?’라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김연아가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거머쥔 2010년에는 동계스포츠 바람이 불었다. 그에 발맞춰 곽인근의 컬링웹툰 <반짝반짝 컬링부>(2010)과 송래현의 피겨스케이팅웹툰 <리턴>이 각각 미디어마음과 네이버웹툰에서 선보였다. 두 작품은 큰 기대는 받지 않았지만 꽤나 근사했다. <반짝반짝 컬링부>는 왠지 윤태호의 수구만화 <수상한 아이들>을 연상시켰고, <리턴>은 차성진의 피겨스케이팅만화 <은반 위의 요정>(1979)을 감동적으로 리메이크해냈다.

현재 진행형인 스포츠만화 중에서는 네이버 연재작인 조용석의 사이클웹툰 <윈드브레이커>(2013~ )가 가장 돋보인다. 인간의 몸이 사이클과 하나가 되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하는 박진감이 거칠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스포츠만화에 관심 많은 독자라면 박흥용의 사이클만화 <내 파란 세이버>(1998)와 함께 비교해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반면 정재한(글)·임진국(그림)의 복싱만화 <그린 보이>(2010), 박현수의 야구만화 <라이징패스트볼>(2011), 돌석의 테니스만화 <프레너미>(2017) 등은 여러 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 스포츠웹툰이었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 만화가는 별로 없다. 하지만 작가 혼자 혹은 소수의 프로덕션을 꾸미는 웹툰 시대에 스포츠만화(웹툰)을 제작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기성 웹툰 작가들은 그리기 편하고 큰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소재를 찾는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웹툰 작가들에게 스포츠는 너무 벅찬 분야다. 웹툰 플랫폼들도 연재에 있어 스포츠물에 우선순위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포츠만화(웹툰)은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걸까?
결론적으로 방향은 두 가지다. 첫째, 스포츠만화로 대박이 나려면 트렌디한 소재를 택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정통으로 접근할 것인지, 새로운 틈새를 찾아낼 것인지는 작가의 역량에 속하는 문제이겠지만. 둘째, 꼭 인기종목을 선택해 스포츠만화를 그리기 보다는 <윈드브레이커>처럼 비인기 스포츠를 다루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남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가는 작가들이 나온다면 한국 만화는 무척 풍성하고 건강해질 것이다.
정부가 관심을 두고 창작지원을 해야 하는 분야가 바로 스포츠만화다. 집단창작 시스템이 사라진 웹툰 시대에 만화가들에게만 맡겨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포츠만화를 전문으로 하는 웹툰 플랫폼이 하나쯤 나올 법도 하다. 만화왕국 일본을 보자. 여전히 새로운 스포츠만화가 쏟아지고, <하이큐> 같은 배구만화가 최근까지도 꽤나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의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니시코리 케이는 만화 <테니스의 왕자>의 골수팬인 것은 아주 유명하다. 이 만화 때문에 일본에선 남자 테니스 인구가 급증했다. 잘 빚어진 스포츠만화 한 편이 우리나라 스포츠계와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런 만화를 볼 날이 봄꽃처럼 또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