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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6000편 시대, 우리가 볼 수 없는 만화들

전 세계를 범위로 두고 기준을 아마추어 작품까지 포함시킨다면, 웹툰의 몇 편인지를 세는 일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누구나 독특한 개성이 있는 만큼, 다양한 사람이 만드는 작품도 모두 개성적이고 다양한가? 미리 대답을 내리자면 그렇지 않다. 경쟁을 할수록 다양성은 상실된다

2017-06-29 손지상



1. 획일화를 정당화 할 수 있는가?


획일화는 당연한 현상이다.
전 세계를 범위로 두고 기준을 아마추어 작품까지 포함시킨다면, 웹툰의 몇 편인지를 세는 일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누구나 독특한 개성이 있는 만큼, 다양한 사람이 만드는 작품도 모두 개성적이고 다양한가? 미리 대답을 내리자면 그렇지 않다. 경쟁을 할수록 다양성은 상실된다.
콘텐츠의 다양성을 지키려면 오히려 경쟁이 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마저 있다.1) 일본의 대표적인 UCC 포털 니코니코동화(
ニコニコ動画) 대표 가와카미 노부오는 본래 ‘가만히 놔두면 천편일률적이’ 되는 게 콘텐츠이니 UCC 사이트는 더욱 더 그렇다고 말한다. 일본의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역설적으로 오타쿠는 과거 ‘크리에이터’ 였는데, 창작 및 발표 환경이 좋아진 지금은 오히려 ‘유저’가 되었다고 지적한다.2)
그는 일반 사용자가 인식할 수 있는 콘텐츠의 패턴과 수준이 원래부터 많지 않으며, 그 제약이야 말로 콘텐츠의 본질이라고까지 말한다.3)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1990년대 일본 대중음악, 소위 J-POP에서 큰 성공을 거둔 빙(Being) 그룹 창립자인 음악 프로듀서 나가토 다이코의 전략을 예로 든다.4)
이러한 전략은 현재에는 적용하기 힘들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이 창작을 하고 있고 불특정 다수가 작품을 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클러스터를 최적화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더욱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더욱 천편일률적이고 추상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획일화의 원인은 인간의 본능
획일화는 왜 일어나는가? 근본적으로는 우리 인간이 가진 본능 때문이다.5) 인간의 자아는 얼핏 보기에는 독립적이고 절대적으로 형성되는 것처럼 느껴지나, 실은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인간은 무엇을 할 지 본인 스스로 내린 결정을 평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살펴본다.6)
심리적인 수준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혼자 있을 때조차, 우리는 남의 의견을 구하는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7) 그로 인해 대중의 기호가 통일되는 경향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독특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리 내에서 튀거나 남 다른 행동을 하려 들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도 타인도 상당이 불편해 한다.8)
문화상품을 구하는 현상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마케팅 컨설턴트 마틴 린드스트롬은 베스트셀러 책이 팔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살짝 살펴보는 것만으로 무려 4층이나 되는 매장을 다 돌아다녀야 하는 형벌을 참으면서 수많은 선택 상황에 직면해야 하는 의무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동료 독자들이 강력하게 보증을 서 준 책들을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출처: 마틴 린드스트롬.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2). 171p)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성은 “획일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콘텐츠 생태계를 적자생존으로 그저 방임하거나 방치하자” 혹은 “자유경쟁시장을 만능으로 보고, 보이지 않는 손이 적자생존으로 시장을 관리하도록 방치하라(Lasissez-Faire)” 같은 태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자유경쟁시장을 제안한 애덤 스미스 조차 보이지 않는 손을 맹신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 족쇄 풀린 시장을 찬양하지 않았다. 그가 쓴 <국부론>은 그의 전작인9) <도덕정감론>을 전제로 쓴 책이며 그는 이 책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는데 <도덕정감론>은 무엇보다 측은한 마음과 강렬한 동감(fellow-feeling)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10) 게다가 그 보이지 않는 손이란 용어는 <국부론>에서 ‘딱 한 번 등장할 뿐’이다. 그것도 ‘자유시장의 유익한 영향을 기술하기 위한 용도로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11)
분명 획일화 혹은 최적화 현상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피드백 과정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일이다. 적자생존도, 생명의 항상성도, 모든 생태계도, 날 선 바위가 매끄러운 차돌이 되는 과정도 모두 피드백 과정의 결과로 일어난 최적화다. 그러나 최적화 만이 ‘최상의 예증이라 믿는 그 믿음’은 오류고 어리석다고 화이트헤드는 말한다.12)
화이트헤드는 동물들의 사소한 행동조차 잘 살펴보면 환경을 개조하는 행위이며 생명은 고등한 형태로 진화할 수록 주변 환경을 개변하는 데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 능동적 사실이야 말로 이성의 기능이며 진화의 정체라고 말한다.13) 그는 물고기가 뭍으로 나간 진화의 역사를 예로 든다.14)
물고기가 물 밖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능동적으로 도전하여 다양성을 시도하였기에, 지금 우리 인류는 인터넷에서 웹툰을 보고 있다. 이 사실을 무시한 채, 획일화와 다양성의 파괴는 어쩔 수 없다거나 그냥 방임하면 된다고 뒷짐을 지고 있으면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2. 플랫폼의 독과점과 무료정책이 획일화에 박차를 가한다.
공짜는 위험하다.
플랫폼, 특히 포털 사이트가 독과점으로 웹툰을 무료로 서비스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는 다른 연구자들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지배적인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츠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는 현상은 콘텐츠 생산자의 수익 기반 약화를 초래하여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출처: 김영재. 웹툰 콘텐츠 생산자 비즈니스 모델. 애니메이션연구, 11(3) (2015). 1p)15)

게다가 플랫폼의 독과점을 유지한다고 해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소비자의 경험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산업의 생산유발계수, 산업영향력계수, 부가가치유발계수는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폭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웹툰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원인으로는 창작자 개인에 의존하는 웹툰의 생산방식,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 방식, 소수의 인기작품에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OSMU에서 기인한다.16)
플랫폼의 이러한 수익모델을 ‘후리-미엄(Free-mium)’17) 수익모델이라 부른다. 이 수익모델은 미국 <와이어드>지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소개해 유명해진 모델로, ‘일반 사용자에게 무료제공품을 제공함으로써 특정 사용자에게 유료제공품 구입동기를 만들고’, 동시에 ‘무료제공품 주변에 관련된 다양한 유료콘텐츠를 배치함으로써 관련 매상을 올리고, 사업 전체 이익의 증대를 노리는 전략’이다.18) 무료 콘텐츠의 비용을 광고 스폰서가 지불하고, 주요 원재료나 비용이 인터넷과 컴퓨터의 도움으로 한계비용(특히 생산비용과 유통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졌기에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이 논한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고 방식이 틀렸다19)고, 크리스 앤더슨은 주장한다.20)
무료, 공짜라는 개념은 독특한 특징이 있어 위험하다. 행동경제학의 대가 다니얼 커니먼에 따르면 인간은 전과 달라진 변화에 가장 집중하며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항상성 상태가 같기만 하면 무시하는 성질이 있는데21) 이를 프로스펙트 이론이라 부른다. (그는 이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다니얼 커니먼(2015)에 따르면, 프로스펙트 이론은 효용보다는 상황의 변화에 근거해 만족을 판단하며22), 부를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를 나타내는 절대량이 아니라 득실을 따지는 가치 함수에 의존한다.
가치 함수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얻기 보다 잃는 쪽에 더 크게 반응하는 ‘손실회피성’이다. 실제로 두 배 더 강하다고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득에서 오는 기쁨 보다 손실에서 오는 고통을 더 크게 느껴, 손실을 회피하려든다.23)
무언가를 무료로 손에 얻는 체험은 그 자체로 우리가 평소 품고 있는 금전 감각을 왜곡시킨다. 무료로 무언가를 얻으면, 평소에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금전적 항상성24), 다시 말해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재정 상태 감각을 전혀 망가뜨리지 않는다. 따라서 매우 큰 변화로 느끼게 된다.25)
공짜로 얻던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현상유지를 하려는 인간의 경향(familiast)를 크게 회손하는데, 이때 나타나는 인지적 편향을 행동경제학에서는 뉴리스크 프리미엄(New-Risk premium)이라 부른다. 친숙한 리스크는 그 정도를 줄여서 느끼는 반면 새로운 리스크에 수반되는 비용을 부풀려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26) 공짜로 얻던 것을 얻지 못해 겪는 비용을 매우 부풀리고 당연하게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가 플랫폼 구조 상 직접적으로 작가에게 전달되기 쉬우며 이로 인해 작가의 노동권이나 안녕이 크게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자유방임경쟁 제도가 구술문화적인 상투성을 부활시켰다.
플랫폼이 방임하는 거대한 마당에서 창작자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적자생존을 해야 하는 것이 웹툰 6000편 시대의 본 모습이자, 살아남으려고 서로 똑같은 모습으로 최적화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구술사회(oral society)와 상당히 닮아있다.
구술사회는 기록할 방법이 없기에 기억에 의존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에,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적 피드백 과정, 말하자면 신진대사에 의존해야 한다. 구술사회는 이미 현재와의 관련이 없어진 기억을 버림으로 해서 균형상태 또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그런 현재 속에서 영위된다.27)
언뜻 보면 인터넷에 기록되니 웹툰 생태계는 문자문화에 가까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웹툰 생태계는 유행에 민감하고, 입소문에 의존하며, 반복해서 깊게 읽어야 하는 밀도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대표적인 구술문화의 특징이다. 구술문화와의 유사점은 숙련된 작업을 위한 안내서 같은 것이 부족한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숙련 직업은 도제(徒弟)살이를 통해 배웠다.’ 즉 ‘연습으로 배우는 것’이었다. ‘말로 하는 설명은 최소화’되었다.28) 도제식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모방에 있다. 독창적인 것 보다는 기존의 것을 최대한 모방하는 것이야 말로 도제식 교육의 핵심이다.
웹툰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은 인기 웹툰작가 조석이 2012년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쪽에 실력 좋은 사람이 모이는 건 장점인데 단점은 시장이 커지면서 이러이러해야 연재가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거다. 그러면 자기 생각을 배제하고 남의 생각으로 만화를 만든다. 전에는 그림을 못그려도 발상이 특이하고 연출이 재밌는 만화가 있었는데 요즘은 다 똑같다”29)

(출처: 위근우. 새로운 데뷔 시스템은 웹툰 시장을 어떻게 성장시켰는가. 실천문학 (2015). 7p)

현대는 문자문화다. 진부한 상투구나 정형구에 의존하는 작품은 더 이상 높게 평가받지 못한다. 그러나 대량고속소비를 전제로 하는 통속작품이나 장르양식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쉽게 보인다. 빠르게 생산 가능하고 향유자는 별다른 코스트를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어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포털이 전문적인 여과과정 없이 자유방임경쟁 방식으로 만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은 구술문화적인 상투구와 정형구에 의존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 인해 질적 저하와 획일화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30)


3. 정보과잉이 초래한 양극화가 다양성을 파괴한다.

상대적이고 차가운 시스템 1 vs. 절대적이고 뜨거운 시스템 2
정보화 시대를 사는 우리지만 우리의 정보처리능력은 과거 어느 때 보다 뒤떨어져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역설이다. 주의력은 모두 소진된 상태다.31) 전문성과 여과과정을 갖추기에 우리는 너무 지쳐있다.32)
인터넷과 컴퓨터라는 미디어의 속성마저 이를 방해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피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처럼 인터넷 서핑을 하는 동안에도 깊은 사고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이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권장하고 또 가져다주는 사고의 종류는 아니다.’33) ‘온라인 세상에 들어갈 때 우리는 겉핥기 식 읽기, 허둥지둥하고 산만한 생각, 그리고 피상적인 학습을 종용하는 환경 속으로 입장’하게 된다.34) 너무 많은 정보는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35)
우리는 더 에너지를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손실회피성은 여기서도 발현된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신경쓴다.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상관없다. 조사 전문기업인‘오피니언 리서치(Opinion Research)가 최근 내놓은 연구자료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피니언 리서치에 따르면 응답자 중 61는 새로운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 전에 온라인 리뷰나 블로그, 그리고 다른 소비자의 온라인 후기를 읽어본다고 한다. 게다가 ‘적어도25는 관계자들, 해당기업 직원들, 마케터 등등이 작성한 거짓후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의 생각을 참조해 구매행위를 한다.36) 그 결과 베스트셀러가 탄생한다. 좋아서가 아니라 유명해서 팔리는 것이다. ‘대다수 다른 브랜드들은 실패의 구덩이로’ 빠지고 만다.37)
지금과 같은 경쟁상황에서는 ‘초기단계에서 인기를 얻은 것들이 결국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쥔다.’ 이는 우리에게 상당한 불안을 안겨준다. 마틴 린드스트롬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실제로는 훌륭하지 않은 데도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선택한다면, 거꾸로 TOP 10 목록에 올라있지 않다는 이유 만으로 우리는 여태껏 얼마나 훌륭한 책이나 노래들을 그냥 흘려 버렸던 것일까?’38)
결국 정보를 적극적으로 추려낼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행동할 때 두뇌가 순식간에 내리는 무의식적인 판단이 더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온라인 세계에서 더욱 더 숙고하기 보다 반응하고 직감적으로 움직인다. ‘온라인 세계는 자극이 두드러진 공간’이라 보다 본능적인 사고에 쉽게 종속되게 만든다.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것은 화면 자체가 아니다. 화면 속 세상이 우리들 첫인상에 따라 행동하기 쉽도록 만든다.’39)
심리학에서는 직감적이고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체계와 숙고하고 성찰하는 체계가 아예 다른 경로임을 발견했다. ‘심리학자인 키스 스타노비치(Keith Stanovich)와 리처드 웨스트(Richard West)는 우리 정신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는 두가지 모두로 구분한다. 시스템 1은 감정이나 본능에 따라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시행착오를 통해 익힌다고 해서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부른다. ‘반면 시스템 2는 성찰적이고 조심스러우며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정보에 기반을 둔다.’ 이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와도 대응되며, 마셜 맥루언의 차가운 미디어와 뜨거운 미디어와도 대응된다.
더 큰 문제는 시스템 1이 무엇에 자극 받게 되는 지 불확실하며, 우리가 인식조차 못하는 단서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시스템 1은 소위 말하는 잠재의식과 닮아있으며, 시스템 2와 분리되어 있기에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시스템 2 경로로는 그 자극이 무엇인지 단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다. 결국 과도한 감정 상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할 기회도 없이 우리는 자극받고 동기를 부여 받게된다.40) 궁극적으로 일종의 좀비나 노예 상태가 되어 상업성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는 종말론적인 불안에 빠지게 된다.


제대로 된 연료만 주면 시스템 2는 지지 않는다.
린드스트롬이나 힐 같은 많은 마케팅 전문가들이 구매행위에서 시스템 1과 감정이 큰 역할을 하지 시스템 2의 의식적이고 언어적인 생각은 ‘속 내’를 알 수 없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시스템 1으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정보과잉 상태의 인터넷 세계에서 익숙하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고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 2가 시간을 들여 숙고할 만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의외로 시스템 1은 쉽게 차단된다. 이는 각각의 경로가 서로 길항작용을 하는 대뇌변연계(시스템 1)과 전전두엽(시스템 2)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문화의 범주화와 필터링 도구가 도와주면 시스템 1을 우회할 수 있다.
범주화는 시스템 2를 위한 매우 강력한 도구다.41) 다른 예는 칼 린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가운데 한 명인데, 그는 이름을 만들고 붙이는 작업, 그 중에서도 범주화 작업으로 유명하다. 린네의 분류법은 각 종에게 고유의 이름을 부여했을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 생물학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42)
범주화와 필터링은 선택과부화(choice overload) 효과를 차단해준다. 정보과잉으로 인해 선택을 회피하고 익숙한 것이나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따라하는 현상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선택과부화 효과라고 부르는데, 과장된 구석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선택과부화를 다룬 50개의 연구결과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선택과부하 효과의 영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고 한다.43) 그런데 영향력이 낮게 나타난 데에는 공통적으로 강력한 필터링 기능을 갖춘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는 점이 있었다.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추려내는 것이 관건이다.44)


절대가치를 통한 절대평가는 다양성을 보장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경향, 많은 에너지를 쓰기 싫어하는 뇌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가장 편리하게 최소의 정보를 활용하려는 경향은 행동경제학의 중요한 요소다. 특히 막대한 정보가 있을 때는 인지적 구두쇠 경향 탓에 휴리스틱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막대한 정보를 빠르게 범주화 하고 필터링 해 최소의 정보만 남길 수 있다면 인지적 구두쇠 경향을 우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범주화와 필터링은 객관적인 기준을 전제로 한다. 소위 말하는 ‘스펙’ 또한 범주화와 필터링으로 걸러낸 정보이다. 이러한 종류의 정보를 경영학자 이타마르 시몬슨과 엠마뉴엘 로젠(2015)은 절대가치라고 부른다.45)
절대가치를 통한 평가를 절대평가라고 부르는 데, 지엽적 맥락을 넘어 활용가능한 정보 가운데 가장 적합한 정보를 활용해 더 좋은 해답을 얻기 위한 평가과정이다. 이는 유명세나 브랜드 파워에 관계 없이 객관적인 절대가치만을 제시하기에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쟁은 일어나지 않는데, 각자가 취향에 맞게 범주화와 필터링을 거쳐 재맥락화 하기 때문에 콘텐츠 간의 경쟁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상대평가가 의존하는 시스템 1을 쉽게 우회할 수 있다.
상대평가의 위험함은 콘텐츠를 향유하는 측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실은 창작자에게도 상대평가는 상당히 위험한 면이 있다. 상대평가는 눈 앞에서 벌어지거나 존재하는 지엽적 맥락에 기초를 둔다. 그런데 아무리 인간이 타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참조한다고 해도, 스스로는 고유한 존재라고 믿는 생득적 모순이 있다. 상대평가는 창작자의 창작에 대한 내적 맥락이나 자아를 무시하여 평가자 눈 앞의 지엽적 맥락에만 의존하기에 창작자의 자존감을 심하게 상처입힌다.46)
웹툰은 피드백이 불특정 다수에게서 날아들고, 그 내용 또한 지엽적이고 말초적이며 간혹 공격적인 경우가 많다. 평범한 피드백 조차 창조성과 개성을 손상시키기고 개성을 잃게 하며 고객만족도를 줄이는데, 웹툰에 가해지는 소위 ‘악플’이라 불리는 피드백은 훨씬 더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 명확하다. 또한 이를 통해, 작품 간의 기준이 없는 무자비한 상대평가와 비교 또한 마찬가지로 창작자의 사기를 크게 손상시킨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플랫폼은 창작을 온전히 창작자에게만 의존하고 있고, 창작자에게 창작에 관련된 모든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적 성장과 경제효과 그리고 다양성과 예술적 성취의 경제적 뒷받침이라는 질적 성장까지 바라는 것은 아무리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너무한 것이다.

4. 엘리트주의를 경계하라

절대가치의 절대전제, 문자문화
절대가치를 위해서는 문자문화가 필수적이다. 이타마르 시몬슨과 엠마뉴엘 로젠(2015)는 ‘사람들의 선호는 제각각인데 한 사람의 평가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상품의 절대가치는 보편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이는 ‘스펙’을 따질 수 있는 공산품의 경우다. 웹툰과 같은 예술적인 창작품은 먼저 다양한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평가가 가능하게 하는 매뉴얼과 기준이 필요하다.
구술문화적인 현재 상태로 방임해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구술문화에 뿌리박은 정신은 단어의 정의에 무관심하다.’47) 말로써 자기를 분석하는 데 곤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기 분석이든 절대평가든 상황의존적인 사고가 어느 정도 깨지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48)
비록 도제식이기는 했으나, 일본의 만화업계 또한 편집자 개인의 수준에서라도 독자적인 문자문화적 언어를 구축해 타자로서 삼는 과정이 요구되었다.

편집자는 작가에 대해 타자일 것을 요구받는 존재입니다. 즉 신인작가가 원고를 써 왔는데 재미 없다면, 어째서 재미없는 지에 대해 그 작가한테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명하는 언어를 구축해야만 하는 거죠.

(출처:오쓰카 에이지, 선정우. 같은 책. 70p)

문자문화는, 특히 쓰기는 ‘생활경험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지식을 구조화한다.’ 그리고 세련되고 분석적인 범주화는 쓰기에 의존한다. 구술문화는 그 세련된 분석적인 카테고리가 결여되어있어서, 그 모든 지식을 인간 생활세계에 다소라도 밀접하게 관련시키는 방식으로 개념화하고 언어화하지 않을 수 없다. 웹툰의 경우라면 일상세계나 모두가 다 봤을 법한 유명한 작품과 관련시켜야만 한다. 이 과정으로 획일화가 벌어진다. 그런데 쓰기로 대표되는 분석적인 범주화는 이를 막아주고 개별 작품의 다양성을 보장하게 된다.49)
문자문화를 통해 문해력(literacy)가 배양된다. 본래 예술작품의 향유에는 문해력이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법이다.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문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학자였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읽기는 단순히 글자 또는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 아니다. 읽기는 실타래 같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풀어내는 과정이다. 언어와 현실은 역동적으로 얽혀있다. 비판적 읽기를 통해 이해하기란 글과 세계(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일이다.’

(출처:파울로 프레이리, 도날도 마세도. 문해교육 - 파울로 프레이리의 글 읽기와 세계 읽기. 학이시습 (2014). 1p)

프레이리는 삶의 맥락에서 읽기란 글자와 세계사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라 말한다. 독서란 세계를 읽는 일(reading of the world)과 글자를 읽는 일(reading of the word)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50) 웹툰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말초적인 쾌감을 위한 스낵컬쳐를 위한 콘텐츠 만이 웹툰의 전부는 아니다. 스낵컬쳐는 막대한 양과 획일화 말고는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다양성은 양이 아니라 섬세한 읽기와 쓰기에서 나온다.
문해력을 갖춘 문화 향유자는 필연적으로 개인주의자가 된다. 그는 유행이나 트렌드와 별개로 독자적인 맥락으로 작품을 보게 되고, 이는 유행이나 트렌드와 동떨어진 곳에 숨어있는 작품을 발견하게 만든다. 문화역사학자 모리스 버만은 개인주의에 입각한 이러한 해법을 ‘수도사적 해법’이라 부른다. 그에 따르면 수도사는 영웅적인 모습이 있어서는 안되며 안된다. 각자 개인이 건전한 문화 창조를 위한 도구일 뿐이며, 이렇다 할 빛도 명예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개인적인 보람을 찾는 것 외에는 어떤 돈벌이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51) 극단적이기는 하나 이는 절대가치를 중시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민중은 무능하지 않다.
  • 절대평가는 결국 좋은 큐레이션과 마찬가지다. 큐레이션이란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여과하고 선별한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큐레이션은 전문지식과 취향, 판단을 바탕으로 하나,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공감, 배려 또한 아우르고 있어야 한다. 큐레이션에서 이 세 가지 요소가 빠지게 되면 이내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해당 큐레이션 작업은 한낱 허세에 그치고 만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을 전도하는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는 큐레이션을 두고 ‘사람을 우선하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52)
    그러나 버만은 너무 극단적으로 갔다. 버만과 같은 ‘대중문화라서, 저속해서 그렇다’는 식의 엘리트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그는 이런 주장을 펼쳐놓는다.

    오늘날의 수도사는 기업들이 지배하는 소비주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과장과 혼란을 거부한다. (……) 이들은 플로베르와 버지니와 울프로부터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지혜를 얻으며 (……) 엘리트주의자라는 명칭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허울만 화려한 오늘날의 문화에서 진정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만약 그가 고등학교 교사라면 학생들에게 고전문학인 오디세이를 읽게 하고 다른 교사처럼 다니엘 스틸의 작품을 읽게 하지 않는다. (……) 어머니라면 아이를 데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가기 보다는 아이들과 캠핑을 가거나 미술 박물관을 찾는다.

    (출처: 모리스 버만. 미국 문화의 몰락. 황금가지 (2002). 12-13p)

    이는 너무 과한 태도다. 대중은 무지하지 않고 민중은 무능하지 않다. 이러한 태도야 말로 프레이리가 가장 경계한 태도다. 그는 말한다.

    권위주의자, 엘리트주의자, 그리고 반동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민중은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민중들은 사리분별력도 없고, 인식능력과 사고력도 부족할 뿐 만 아니라 창의력도 떨어져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중들은 영원히 열등할 수 밖에 없고, 이들의 생각도 비현실적인 것이 라고 치부된다. 이들에게 민중지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민중문화의 순수한 발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출처: 파울로 프레이리, 도날도 마세도. 같은 책. 16-17p)

    프레이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개인주의적 취향조차도 특정한 사회의식의 표현이라고. 사회의식에 주목하지 않고 비판적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왜냐면 대개 개개인은 자신이 조건화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거꾸로 나는 자유롭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일쑤기 때문이다.53)
    민중을 무시하는 태도도, 대중의 획일적 취향을 절대시하는 태도도, 결국은 사회의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태도다. 대중이 섬세하고 다양한 범주로 나뉘어 질 수 있고 각각의 일상세계와 개인의식이 사회적 조건으로 어떻게 제약을 받는 지를 따지지 않고 어떻게 작품의 다양성과 절대가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 절대적인 기준은 상대적인 제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600년 전 부처가 보리수나무에서 깨달은 연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단순히 “내가 재밌으면 재밌는 거지” 같은 맥락을 무시하는 태도는 언뜻 보기엔 반지성적인 행위로 보이지만 사실은 엘리트주의를 포섭하는 태도다. 나 자신의 공부부족과 지면 상의 주제와 분량의 제약으로 자세한 언급은 후일로 미루나, 인종이나 성별, 젠더와 같은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절대평가는 매우 위험하다. 잊어서는 안된다. 절대는 상대적 제약과 맥락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려 할 때 만이 기능한다.
    매사추세츠대학교 인문예술교육대학 교수 도날드 마세도는 파울로 프레이리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프레이리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마세도: (…) 다른 사람의 목소리, 예를 들어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의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 원주민의 목소리 등은 해방 문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프레이리; (…) 서로 다른 목소리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정치적이고 사회적 변혁이 필요합니다.

    (출처: 파울로 프레이리, 도날도 마세도. 같은 책. 학이시습 (2014). 28-29p)

    결국 다양성은 세계읽기와 세계쓰기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현실적 변혁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

1) 가와카미 노부오. 콘텐츠의 비밀. 을유문화사 (2016). 132p
2) 오쓰카 에이지, 선정우. 순문학의 죽음-오쓰카 에이지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북바이북 (2011). 26p
3) 나가토는 당시의 일본 대중은 음악 방송을 굳이 찾아보지 않기에 길거리에서 새로운 음악을 들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당시에는 노래방이 크게 유행해, 집에서 연습할 목적으로 CD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사용자의 환경에 맞추어, 전문 음악인이나 마니아가 듣기에는 조화가 깨지게 들릴 정도로 보컬의 음량을 크게 설정하고,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보컬을 기용해 길거리 잡음을 뚫고 가사가 들리도록 유도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가와카미 노부오. 같은 책. 129-130p)
4) 위의 책. 121-123p
5) 이는 철학에서는 매우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로, 2600년 전 석가모니는 이를 우주 전체의 법칙으로 보았다. 그는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로 요약할 수 있는 우주 만물이 상호참조하여 스스로를 생성하는 과정을 연기(
起)로 불렀다. 또한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는 이와 비슷한 과정을 합생(合生, Concrescence)이라 불렀다.
6) 마틴 린드스트롬.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2). 163p
7) 슬로모 베나치, 조나 레러. 온라인 소비자, 무엇을 사고 무엇을 사지 않는가. 갈매나무 (2016). 127p
8) 마틴 린드스트롬. 위의 책. 162p
9) 조나단 B. 와이트. 애덤 스미스 구하기. 생각의 나무 (2003). 160-161p
10) <국부론>에서조차 분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순 있어도, 분업이 사람을 파괴하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정부의 공교육을 중시한다.
11) 라즈 파텔. 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북돋음 (2016). 111p
12)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이성의 기능. 통나무 (1998). 35p
13) 같은 책. 47p
14) 만일 물고기가 최적화를 거듭하며 적자생존하기만 했다면, 그리고 그걸 진화라 부른다면, 물고기는 절대 물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더 빨리, 더 멀리 헤엄치도록 최적화되만 했을 것이다. 실제로 바닷가 생태계에 남은 생명은 그러한 과정을 밟았다.
15) 김영재(2015)는 포털 중심의 웹툰 산업 구조에 대한 부정적 담론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고 지적한다. 공짜경제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포털 사이트가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으로써, 사용자들에게 웹툰은 무료라는 인식을 각인시켜 콘텐츠의 가치를 저하시켰으며, 창작자의 수익 기반 약화, 신예 작가의 희망 무임노동 착취, 원고료의 하향평준화, 대중적 기호에 영합하는 웹툰의 양산으로 인한 콘텐츠 다양성의 저하, 투자 위축으로 인한 콘텐츠 질적 저하 등을 일으켰다. 포털 중심 산업 구조의 문제는 웹툰 생태계의 장기적 발전 저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김영재. 웹툰 콘텐츠 생산자 비즈니스 모델. 애니메이션연구, 11(3) (2015). 2-3p)
16) 위의 책. 4-5p
17) 공짜를 의미하는 프리(free)와 상품을 뜻하는 프리미엄(premium)이 결합된 용어로, 이 글에서는 발음 구분 편의 상 ‘후리-미엄’이라고 부르겠다.
18) 토마베치 히데토. 같은 책. 22p
19)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광고 스폰서가 대금을 내는 목적은, 무료 콘텐츠 이용자에게 광고를 노출하고 상품을 사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결과 상품을 샀으니 광고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광고 스폰서가 아니라 소비자 집단이 서로 비용을 돌려막기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세상이 되더라도 공짜 점심은 없다.
20) 위의 책. 36-37p
21) 
다니얼 커니먼. ダニエル・カーネマン、心理と経済を語る. 楽工社 (2011). 30p
22) 댄 힐. 이모셔노믹스. 마젤란 (2011). 64p
23) 위의 책. 61p
24) 행동경제학에서는 금전적 항상성을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라 부르는데, 특정한 카테고리에 기꺼이 사용할 돈의 금액의 한계를 마음속으로 정해 두는 것을 말한다. 무료로 무언가를 얻으면 손실회피성을 완전히 우회하게 된다. 손실은 없고 이득만 있기에, 심적 회계 상 당연한 것으로 분개 된다. 그 결과, 공짜로 얻을 때는 큰 효용이나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것을 박탈 당할 때 손실회피성으로 인해 금전적 항상성이 깨져, 막대한 불편감을 느끼게 된다.
25) 
토마베치 히데토. FREE経済學入門. フォーレスト出版 (2010). 113p
26) 댄 힐. 같은 책. 64p
27) 월터 J.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1995). 77p
28) 같은 책. 72p
29) 이러한 모습은 구술문화에서는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은 서양철학의 기초를 닦은 매우 이성적인 문화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들이 값지게 평가한 문학 작품에는 ‘관용구, 정형구, 판에 박힌 형태의 수사, 더욱 엄격히 말하면 진부한 상투구’ 투성이었다. 이는 ‘단지 시인뿐 아니라 구술문화에 속하는 인식세계 또는 사고의 세계 전체가 그러한 정형구적인 사고의 조립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구술문화에서는 일단 획득한 지식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지혜를 작용시키는 데도, 또 효과적으로 사무를 처리하는 데도 고정되고 형식화한 사고 패턴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플라톤 시대에 이르러서다. ‘기억을 도와주는 정형구 속이 아니라 씌여진 텍스트 속에 지식을 저장하는 새로운 길이 열렸던 것이다.’ (월터 J.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1995). 42p
30)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예가 최근 할리우드에서 벌어졌다. 할리우드의 제작방식은 1950년대 스튜디오 독과점 체제가 붕괴되면서 프로듀서 중심으로 변했다. 영화 제작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프로듀서가 사들인 시나리오를 읽고 상품성이 있다 판단하면 적합한 감독과 스태프를 고용하고 제작비를 대서 영화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작비를 내는 프로듀서가 대부분 시나리오를 읽을 수 있는 영화 제작 전문 지식이 없이, 금융 전문가로서 투자나 재테크 목적으로 영화 제작에 돈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들은 시나리오를 읽을 줄 모르기에, 아무리 시나리오가 뛰어나더라도 제작비를 얻기 어려워졌고, 결국 유명 영화의 속편이나 원작 만화가 있는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을 타개한 스튜디오가 본래 만화 회사인 마블이다. 1980-90년대 자사의 원작 만화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려다 조악한 질로 실패를 맛본 마블은 최근 전문 영화인을 고용해 전문성을 높였고 그 결과 ‘마블 유니버스’를 구축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요는 전문성과 적절한 여과과정이다.
31) 슬로모 베나치, 조나 레러. 같은 책. 25p
32) 흔히 웹툰 플랫폼이 일본 출판만화 업계처럼 편집자의 여과과정이나 제련과정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너무 과한 요구다. 과거처럼 편집자가 작가 개개인의 심신의 안녕이나 작품의 질을 관리하기에는 플랫폼의 양적 성장이 너무 과하다. 게다가 본래대로라면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력이 필요한 인터넷으로 작품을 배포하는 데에 필요한 잡다한 유지보수 작업까지 편집자가 모두 떠맡고 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33)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청림출판 (2011). 174p
34) 위의 책. 174p
35) ‘런던 그레셤칼리지의 심리학자 글렌 윌슨(Glenn Wilson)은 메일함에 안 읽은 메일이 하나 있는 것 만으로도 집중력이 분산되어 IQ가 10점 정도 낮아진다는 점을 발견’하기까지 했다. (슬로모 베나치, 조나 레러. 같은 책. 38p)
36) 마틴 린드스트롬. 같은 책. 170p
37) 위의 책. 172p
38) 위의 책 174p
39) 슬로모 베나치, 조나 레러. 같은 책. 56-57p
40) 위의 책. 82p
41) 집을 정리하는 것 조차 일련의 범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다. 집을 물리적 범주가 존재하는 장소로 만드는 것을 두고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 대니얼 레버티(Daniel Levitin)은 인지기능 회복장치(cognitive prosthetics)라고 표현했다. (마이클 바스카. 같은 책. 210p)
42) 마이클 바스카. 같은 책. 207-208p
43)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다니엘 커니먼 조차, 자신이 제안했던 비합리성(irrationallity) 개념이 오해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개념이 충동, 감정 그리고 합리적 주장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트버스키 교수와의 공동작업이 인간의 선택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라고 인정받을 때 종종 당혹감을 느낀다. 실제로 우리 연구는 단지 인간의 행동이 합리적 인간 가설에 의해 잘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라고 기술한 적이 있다.(이타마르 시몬슨, 엠마뉴엘 로젠. 절대가치. 청림출판 (2015). 45p)
44) 위의 책. 66p
45) ‘절대가치란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실제로 경험하는 품질 또는 가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먹어본 음식에 대한 맛, 책을 읽으면서 느낀 즐거움(또는 지루함), 면도 뒤에 느끼는 상쾌함, 헤드폰의 편안한 착용감,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가치 같은 것들이다. 절대가치란 카메라의 스펙이나 신뢰도뿐 아니라 카메라를 직접 소유해서 사용해보는 경험이 어떤지를 의미’한다. (위의 책. 10-11p
46) 생갈렌대학의 심리학자 크리스찬 힐데브란트(christian Hillderrbrand)는 피험자들이 온라인에서 직접 보석을 디자인하고 결과물을 남들과 공유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1000명 이상의 여성 피험자들이 귀걸이 한 쌍을 만들었고, 모르는 이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피드백 결과, 많은 여성들은 피드백 받은 대로 디자인을 수정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렇게 수정된 디자인은 결국 본인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이 되었다. 후속연구에서 피험자들이 직접 만들었던 귀걸이를 되팔라는 제안을 받았을때, 피드백을 받았던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던 경우에 비해 절반 수준인 14스위스프랑(약 1만 5000원)을 요구했다. 심지어 분명 자기가 원해서 만든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피드백을 받았던 여성들이 실제로 귀걸이를 착용한 비율은 절반 정도였다. 힐데브란테와 동료들은 이 결과에 대해 피드백이 창조성을 손상시키고 개성을 잃게하며 고객만족도를 줄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라고 썼다. (슬로모 베나치, 조나 레러. 같은 책. 128p)
47) 월터 J. 옹. 위의 책. 78p
48) 위의 책. 90p
49) 위의 책. 71p
50) 파울로 프레이리, 도날도 마세도. 문해교육 - 파울로 프레이리의 글 읽기와 세계 읽기. 학이시습 (2014). 17p
51) 모리스 버만. 미국 문화의 몰락. 황금가지 (2002). 75p
52) 마이클 바스카. 같은 책. 399p
53) 파울로 프레이리, 도날도 마세도. 같은 책. 학이시습 (2014). 2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