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다.
21세기 첫 번째 10년을 마무리하며 ‘돈’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좀 더 노골적이다.
‘만화가, 얼마나 벌어요?’
우리는 이 궁금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솔직하게 꺼내지 못했다. 고작해야 어느 정도 술이 오른 뒤 한국 만화계를 걱정하는 열변 끝에 슬쩍 내 동료의 수입을 물어보곤 했다. 그러니까 난 당신의 수입에 특별한 관심이 없지만, 한국만화계를 걱정하기 때문에 물어보는 거야, 뭐 이런 뉘앙스를 팍팍 풍기면서. 그런 질문이 들어오면, 알코올이 내 중추시경을 사로잡은 상태라도 ‘조심’ 신호가 들어온다. 신호에 따라 앞뒤를 잰다. 먼저, 내 수입을 재빠르게 계산한 다음, 적당히 둘러댄다. 돈에 적당히 무심한 듯, 하지만 나름 잘 나가는 만화가로 수입은 있는 듯, 쿨하게 대답한다.
“응, 벌만큼 벌어. 그래도 너무 적어.”
“그래? 이번 연재 원고료 얼마야? 단행본 인세는? 초판 몇 부 찍었어? 캐릭터 라이센스비는?”
궁금한 것도 많다. 당연하다. 우리는 한번도 제대로 수익을 까지 않았다. 남의 고료도 잘 모른다. 오죽했으면 인터넷 만화작가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카툰부머(http://cafe.naver.com/boomcartoon)에서 ‘작가들의 정보공유’라는 항목에 ‘원고료 현황’이란 게시판을 두었을까.
아무튼 술자리에서 친한 이에게 내 평균 수익을 말해 줬다고 치자. 슬쩍 흘린 고료가 며칠 뒤 다시 내 귀에 들어온다. 키우던 닭이 이미 어미소가 되어있다. 게다가 뱃속에는 송아지가 세 쌍둥이다.
한국사람들에게 돈 이야기는 참 거북한 소재다. 우리는 단 한번도 ‘쿨’하게 돈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돈과 관련된 논의는 짐짓 피하고 싶어진다. 돈 이야기를 하면, ‘밝히는 놈’ 취급 받기 쉽다. 그러다 보니 원고료를 정확히 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흔히 말하는 갑과 을 모두, 원고료를 말하면 내 패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타짜들도 아니면서 참 고생한다.
하긴, 나도 그렇다. 출판사 편집장과 만난 자리였다. 꽤 오래 전에 제안한 프로젝트가 성사되려는 시점이다. “비용은?” “출판사에서 기존에 나가던 비용대로 주세요. 작업이 난이도 있으니까 좀 더 주시면 좋구요.” 이 시점에서 서로 난처해진다. 둘 다 밥상을 엎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갑의 예산은 뻔하고, 을의 욕망도 뻔하다. 더 적게, 더 많이.
대신 남 이야기는 참 하기 좋아한다. 누구 고료가 얼마더라, 모 출판사에서는 얼마부터 준다더라, 누구는 뭘 샀더라, 누구는 세금만 얼더라. 그런 루머는 대충 거의 맞고, 거의 틀리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속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럼 만화가들이 얼마나 버는지 까보자고 했다. 우리끼리 ‘하나 받고 하나 더’, 레이스 할 거 아니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했다. 더러는 공감했고, 많이들 거부했다. 게다가 이건 기사지 실태조사가 아니니까. 조사에 한계도 분명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개월.
참 어렵게 40명의 만화가가 동참해 주었다. 각종 인맥을 동원해 가능하면 폭넓은 만화가들을 조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40대가 2명, 30대가 21명, 20대가 17명. 통상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주로 젊은 작가들의 수익을 조사했다. 해외 진출 작가도 있고, 장르만화 작가도 있고, 웹툰 작가도 있다. 약속대로 받은 설문지의 이름 대신 연번을 무작위로 넣고 뒤섞어 누구의 수익인지 모른 채 통계를 냈다. (두 번째 기사 참조)
먼저 수익구조. 얼마나 버는 가도 중요하지만, 어디에서 버는 가도 중요하다. 만화가 수익구조의 핵심은 원고료와 인세로 구성된다. 원고료는 매체에 연재를 하며 받는 돈이고, 인세는 매체에 연재된 만화가 단행본의 형태로 출간될 때 받는 저작권료다. 원고료 + 인세의 수익구조는 90년대 연재-단행본 출간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원고료 뿐이었다. (표 만화가의 수익구조 참조)
고료와 인세 구조가 원활하게 작동할 경우 만화가의 수익은 안정적이 된다. 하지만 고료만 있거나(만화방 만화나 웹툰) 인세만 있는 경우(학습만화나 일부 창작만화)는 당연히 수익구조가 악화된다. 2000년대 이후 출판만화 시장(특히 잡지-단행본 시장)의 불황은 안정적인 원고료+인세 구조 대신 불안전한 원고료 / 인세 / 매절 구조를 가져왔다. 작가들의 서면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득 일정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노동강도를 높여야 되는 결과를 낳았다.
[표] 만화가의 수익구조 변화
많이 그리면 많이 번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40명의 만화가 중 37.5인 15명이 월 100만원 이하의 소득을 거두었고, 35인 14명은 월 200만원 이상의 소득을 거두었다. 10인 4명은 월 5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얻었다. 다음 기사에서 자세하게 소개하겠지만, 경력 5년 미만의 작가는 대부분 100만원 이하, 10년차가 되면 200만원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가 만화가 전체 수익평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지만,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9 한국의 사회 지표 주요결과’에 2009년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344만 3천원. 그리고 2008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272만 2천원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2011년도 희망소득을 묻는 질문에 대해 55인 22명이 200만원 이하라고 답을 했다. 물론 여기에는 데뷔 5년 이하가 대거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목표가 200만원이라면, 연재를 한다면 페이지당 원고료 5만원이면 40페이지. 3만5천원이라면 60페이지만 그리면 넉넉하게 도달하는 수익이다.
90년대 잡지-단행본 시장, 즉 서울,대원,학산의 잡지에 연재를 했다고 가정하면, 보통 신인 원고료가 3만원에서 3만5천원 선으로 알려졌다. 데뷔 5년차라면 3만5천원에서 5만원 사이의 원고료를 받을 터이니, 격주간지 기준 매호 20~30페이지를 연재하면 얻을 수 있는 소득이다. 여기에 단행본 인세 수익이 포함된다면 데뷔 5년차의 수익은 훌쩍 높아진다. 격주단 20쪽 연재, 단행본 1권 200페이지를 기준으로 하면, 5회 연재 5개월에 2권씩 출간된다. 1년이면 4권. 현재 코믹스 판형 가격인 4,200원에 인세 10를 적용하면 420원.
420원 * 4권 * 5,000부=8,400,000원 / 420원 * 4권 * 3,000부=5,040,000원
월 200만원 수익은 90년대 데뷔 5년차 작가에게 ‘희망소득’이라기보다는 현실소득이다. 그런데 2010년 데뷔 5년차 작가들은 90년대 데뷔 5년차 작가들의 현실소득을 희망소득으로 꿈꾼다.
조사를 보면 데뷔 10년차에 도달할 경우 대략 2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그리고 상위 10에 해당하는 4명의 작가는 월 500만원 이상, 많게는 수천만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상의 10를 제외하고 20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10년차 이상 작가들이 목표수익에 도달하는 방법은 주로 작업량이다. 서면인터뷰에 응한 경력 14년차의 E작가의 경우 2010년 월 평균 300만원 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노동량에 비해 수입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경력, 능력, 노동량 등을 고려했을 때 적당한 월 평균 수입을 묻는 질문에 ‘800만원’이라 대답했다. 경력 5년차의 B작가의 경우 월 400~500만원의 수익을 올린다고 답을 했다. 비교적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런 수익에 도달하기 위해 “매일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일해야 하는 노동강도”를 갖고 있고, 수익은 “노동강도에 비해 충분한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을 했다.
많이 그리면 많이 번다. 하지만 많이 그리면 좋은 작품이 나올까? 솔직히 회의적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프리프로덕션에 해당하는 기획 단계에 비용투자를 거의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는 한국만화의 현실, 그리고 많이 그려야만 목표수익에 도달하는 수익구조에서 세상을 뒤 흔들 만화 콘텐츠를 기대하는 건 사실 도둑놈 심보다. 투자를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만화가들은 전부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목표수익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말로 가장으로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을 소비한다. 답답한 일이다.
The Winner Takes All
우리는 이번 설문에 응답한 상위 10에 주목한다. 그들은 월 5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작가 중에서 월 수익 4천만 원(경비 3천만 원)을 기록한 작가도 있었다. 만화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예술의 양측면을 가지고 있다. 흥행산업이라면 성공한 작가들은 월 수익 4천만원이 아니라 그 이상도 거둬야 한다. 승자가 모든 걸 가지고 가도 된다. 단, 우리가 나가서 뛰어야 할 그라운드가 있고, 게임의 룰이 있어야 한다.
만화가는 개인사업자다. (사업자 등록을 안 했더라도). 그래서 사업소득 3.3를 원천징수한다 4대 보험도 없고, 퇴직금도 없으며, 노조도 없다. 하지만 가능성을 보고 게임에 뛰어든다. 우리 설문에 응해준, 그리고 힘들게 인터뷰에 응해준 많은 작가들이 그래도 해 볼만하다고 말한다. B작가는 “어떤 직업보다 자신의 실력에 따라 수입의 규모가 달라지는 것이 만화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만화가들이 뛰어야 하는 한국의 그라운드는 잡초도 많고, 울퉁불퉁하고, 물도 고여 있는 형국이다. 관중도 몇 천명 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십만 명이 운집한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하는 일본과는 가히 비교하기 힘들다. 설문에 답한 작가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는 작가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활동하거나, 일본과 한국 활동을 병행하는 작가들이었다. 그라운드 사정도 꽝이고, 관중도 없으니 멋진 경기가 나오지 않는다. 관중은 경기력이 떨어지니 더 떨어져나간다. 해결을 누가 해야 할까? 자문자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