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만화, 르뽀만화, 다큐멘터리 만화, 일상만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만화들이 있다. 대개 <쥐>나 <팔레스타인>을 이야기하고, <내가 살던 용산>을 꼽기도 한다.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이나 최근작 <울기엔 좀 애매한>도 다른 만화들과 다르다고 한다. 구분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말이다.
가만 보니, 어떤 경향이 보인다. 바로 논픽션(nonfiction)이다. 허구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을 픽션(fiction)이라 부르고, 사실에 근거하면 논픽션이 된다. 논픽션에는 르뽀, 여행기, 일기 등이 포함된다.
시사만화를 제외하면 대개의 만화는 픽션이었다. 만화의 범위를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만화(극화나 코믹스 등으로 불리는)로 한정하면, 거의 모든 만화는 픽션이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민중만화(1982년 카톨릭농민회의 제안을 받아 농촌문제를 만화로 옮긴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 1984년 한국기독교 농민회에서 펴낸 김봉준의 <농사꾼 타령> 같은 만화들)의 경우 사실을 담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그 역시 취재를 통해 이야기를 보편화시킨 만화들이어서 픽션, 논픽션을 명확하게 가르기에는 좀 애매했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논픽션의 요소가 포함된 픽션이었다.
그런데 <내가 살던 용산>이나 인터넷에 발표된 ‘4대강 반대 만화’는 모두 목적을 갖고, 취재를 통해 완성된 논픽션 만화, 더 명확하게 구분해 보면 르뽀만화다. 만화의 다양성이 확대되는 시대, 구분하기에 좀 애매한 논픽션 만화들을 좀 더 명확한 틀에 의해 구분해 볼 때가 되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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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자와 케이지가 자신의 피폭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 <맨발의 겐>은 이야기 만화이지만, 내용 대부분이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자전만화다.
자전만화(Autobiographical comics)는 언더그라운드 만화에서 시작된 새로운 만화 장르로 자서전이라는 용어 그대로 자신의 경험을 옮긴 만화. ‘자서전(Autobiography)’은 성공한 이들 몫이라 생각했지만,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작가들은 자신 혹은 가족의 경험을 그대로 거짓없이 만화로 옮겼다. 슈퍼히어로, 탐정, 판타지 등 장르만화를 보던 독자들은 물론 만화를 보지 않던 이들도 이들의 이야기에 눈을 돌렸다. 개인의 경험이지만, 모두가 함께 경험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생생함을 얻은 역사는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다.
많은 이들이 자전만화의 시초로 아트 슈피글먼(Art Supiegelman)의 <쥐(MAUS)>를 꼽는다. 프랑스의 이론가 티에리 그로엔스틴(Thierry Groensteen)은 1996년 CNBDI에서 발행된 연간지 <아홉번째 예술(9e Art)>에서 1972년 발표된 저스틴 그린(Justin Green)의 <빙키 브라운(Binky Brown Meets the Holy Virgin Mary)>, 아트 슈피글먼(Art Supiegelman)이 어머니의 죽음을 그린 <지옥별의 죄수(Prisoner on the hell Planet)>,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의 <로버트 크럼의 고백(The Confessions of R. Crumb)> 등을 ‘자전적 만화’의 초기 형태로 꼽았다.(한상정, <나를 둘러싼 현실을 더듬어 풀다>, ≪SICAF2003 공식도록≫, p39에서 인용)
하지만 일본으로 눈을 돌리면, 1961년에 발표한 나가시마 신지(永島?二)의 <만화가잔혹이야기(漫?家?酷物語)>가 있다. 서구와 일본만화를 통틀어 자전만화의 첫 사례로 기록된 작품이다. 이어 1968년 나카자와 케이지(中?啓治)는 자신의 히로시마의 피폭경험을 담은 자전만화 <검은 비를 맞으며>로 데뷔한다. 그 이후 1973년 <소년점프>에 소년 시절 피폭경험을 만화로 옮긴 장편 <맨발의 겐>을 발표한다. <맨발의 겐>은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1960년대 , <가로> 등의 성인취향의 작가주의 만화잡지는 일본만화의 폭을 확대시켰고, 그 결과 나가시마 신지나 나카자와 케이지 같은 작가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 나카자와 케이지 사진.
일본 <뉴스위크>( 2009년 6월 29일) 특집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중 나카자와 케이지, 원폭의 비극과 희망을 그리다(原爆の悲劇と希望を描)에서 인용함.
( http://newsweekjapan.jp/stories/2009/06/04.php )
▲ <쥐>의 작가 아트 슈피글먼. 자전만화의 새로운 장을 연 작가다.
자전만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쥐> 이전에 <맨발의 겐>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맨발의 겐>이 보여준, 개인의 경험이 역사적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놀라운 성취는 아트 슈피글먼의 <쥐>로 이어졌다. 아트 슈피글먼의 <쥐>는 1972년 어머니의 자살을 그린 <지옥별의 죄수(Prisoner on the Hell Planet)>에서 시작된다. "1968년 나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살해된다."는 죄수 복장을 한 청년(작가 자신)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이 만화는 학살에서 살아남은 어머니의 자살은 작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그려낸 작가의 고백은 이후 <쥐>로 이어졌다. 아트 슈피글먼은 1986년 <쥐> 1권 <나의 아버지 블리드의 역사(My Father Bleeds History)>를 출간했고, 1991년 <쥐> 2권 <여기서 나의 고난은 시작되다(And Here My Troubles Began)>를 펴냈다.
▲ <쥐>는 <지옥별의 죄수>에서 시작되었다. <지옥별의 죄수>는 <쥐>에도 삽입되어있다.
▲ <지옥별의 죄수>에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실험을 엿볼 수 있다.
<맨발의 겐>이 히로시마 피폭을, <쥐>가 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학살 같은 개인이 마주한 역사의 주요 대목을 주로 다루었다. 반면, 그야말로 개인적 경험을 다룬 자전만화의 흐름은 앞서 이야기한 저스틴 그린의 <빙키 브라운>을 꼽을 수 있다. <빙키 브라운>은 강박신경증(obsessive-compulsive disorder)을 앓던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옮긴 이 작품은 아트 슈피글먼, 로버트 크럼, 다비드 베 등에 영향을 미치며 ‘개인적 경험으로’ 자전만화를 완성시켰다.
▲ 저스틴 그린(Justin Green)의 <빙키 브라운(Binky Brown Meets the Holy Virgin Mary)>
자전적 만화의 흐름은 90년대 프랑스의 젊은 작가들에게로 이어졌다. 1995년 발표되기 시작한 다비드 베(David B)의 <간질병의 승천(L Ascension du Haut Mal)>은 간질병에 걸린 형과 함께 자란 자신의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계보를 따지면, <빙키 브라운>의 뒤를 잇는다. 병에 대한 공포를 매우 환상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90년대 프랑스 젊은 작가의 대표작 중 한 편이다. 다비드 베 외에도 요안 스파나 루이스 트롱하임, 마트 콩튀르 등은 사소한 일에서 심각한 내면적 고통 등을 자전적 만화에 풀어놓았다.
프랑스판 자전적 만화의 걸작은 마르쟌 샤트라피(Marjane Satrapi)의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다. 이란의 카스피해 인근에서 태어나 테헤란에서 자란 마르쟌 샤트라피는 이란 혁명을 거치며 성장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시작으로 역사, 종교, 여성성이 내재된 개인의 성장을 흥미롭게 고백했다. 계보로 따지면, <맨발의 겐>, <쥐>의 뒤를 잇는다.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자전만화는 <맨발의 겐>, <쥐>, <페르세폴리스>. 개인의 경험이 역사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그러다 보니 자전만화라고 하면 역사적인 강렬한 경험을 만화로 옮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그래야만 만화를 발표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시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왜 우리가 자전만화를 통해 자꾸 역사에 도달하는 가의 의문을 풀 수 있다.
“역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히스토리(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다’, ‘보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뜻하는 한자어 사(史)는 기록하는 사람, 기록한 문서라는 뜻. 동서양의 단어 뜻을 합쳐보면, 역사가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역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보고, 이를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록들이 힘을 가진 이들, 세상을 지배한 이들을 중심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역사는 ‘이긴 사람들의 기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이긴 사람들만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세상은 누구의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평범한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래서 최근 역사는 이긴 사람들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 시대를 살았던 여러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박인하, <만화로 보는 엄마와 엄마의 엄마 이야기> http://comixpark.pe.kr/130072586761
평범한 이들의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된다. 오늘 자전만화가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하나 둘 씩 새로운 자전만화가 등장하는 이유다. 2008년 출간된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은 1977년 생 작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2010년 출간된 박건웅의 <나는 공산주의자다>는 미전향장기수 허영철의 수기를 만화로 묶었다. 고영일의 <푸른 끝에 서다>는 1990년대 군대에서 겪었던 ‘조직사건’ 이야기다. 모두 자전만화다. 김은성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리고 있는 <내 어머니 이야기>까지 묶어 보면 얼추 개인의 경험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 여기에 전정식의 <피부색깔 = 꿀색>을 더하면 해외 입양인들로 넓혀진 우리 현대사를 개인의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상투적이지만 굴곡 많은 현대사를 지나온 대한민국. 그러기에 개인의 경험은 다시 모두의 경험으로 확산되고, 역사를 만든다. 요약되어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역사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증언이 진짜 역사다. 자전만화가 더 많이 나와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