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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속에서 그려지는 병(病 )

최근 신종 인플루엔자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치료약도 나오고 백신 접종도 시작되었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바람에 결국 국가에서도 이 병에 대한 경계 단계를 심각(Red) 단계까지 끌어올렸죠. 사람들은 이를 두고, 옛날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에 비유하기도 하며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긴 병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습니다. 만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병을 소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2009-11-13 만 편집부

최근 신종 인플루엔자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치료약도 나오고 백신 접종도 시작되었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바람에 결국 국가에서도 이 병에 대한 경계 단계를 심각(Red) 단계까지 끌어올렸죠. 사람들은 이를 두고, 옛날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에 비유하기도 하며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긴 병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습니다. 만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병을 소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이번 시간에는 병이 내용에 영향을 미친 작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병(病)’이라는 단어는 우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한 부분을 많이 갖고 있죠. TV나 신문들이 환절기나 일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항상 건강에 유의하라는 말을 하는 모습은 우리가 언제나 자연스럽게 보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병이라는 단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은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는데요. 보통 실제로 몸이 아파 통증을 느끼는 것을 병이라고 많이들 부르지만 정서 불안, 소심한 성격 등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너 그거 병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사용하는 병이라는 말. 만화 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모습은 작품 배경으로 활용되는 병의 존재입니다. 대체적으로 이렇게 병이 활용되는 경우는 수수께끼의 병 때문에 작게는 마을에서부터 넓게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쳐 혼란을 겪는 모습들을 많이들 그립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병이 퍼지게 되는 지 설명을 하기도 하고 설명을 하지 않기도 하여 작품이 주는 긴장감을 조절합니다.


「학원묵시록 -하이스쿨 오브 더 데드-」의 표지


우선 직접적인 원인이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이머징」과 「맨홀」을 꼽아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병의 존재가 겉으로 드러나 있죠. 또한, 병의 존재가 곧 작가가 말하려 하는 메시지를 담아서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메시지보다는 설정을 이용하여 다른 부분에 중점을 두는 작품들도 존재하는데요. 「학원묵시록 -하이스쿨 오브 더 데드-」를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수수께끼에 싸인 이유로 좀비가 된 사람들이 일반인들을 습격해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설정을 보여주는데요. 이 이름모를 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던 앞의 작품들과는 달리 생존을 위해 ‘정당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더 전면에 드러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병의 존재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이런 작품들과는 별개로 등장 캐릭터의 성격을 강하게 부각시키거나 새로운 면을 보여주기 위해 병을 이용하기도 하는데요.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김낙수의 경우를 보면 학교에서 시험을 보던 중 급성 맹장임을 모르고 끝까지 버티다 결국 기절하여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짧은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김낙수를 ‘참을성에 대해선 최고’라는 이미지와 최고의 수비수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캐릭터로 만들어주고 있죠. 국내 작품으로는 「굿모닝 티처」의 김영열이라는 캐릭터를 꼽아볼 수 있겠는데요. 작품 초, 단순히 불량 학생 이미지만 가지고 있던 이 캐릭터는 중간에 복막염으로 인해 입원하게 된 병원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좀 더 입체감을 갖게 되고 이후에는 상당히 비중 있는 조연 캐릭터로 거듭나게 됩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표지


하지만 이런 점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는 캐릭터로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 신이치(이하 치아키)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작품의 주인공인 치아키는 어릴 적에 겪었던 사고 때문에 비행기, 배 등을 타는 것에 공포심을 갖게 되어 자신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세바스찬 비에라를 만나러 갈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치아키의 ‘천재 귀공자’ 이미지를 무너뜨려 독자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지는 2부를 위한 복선으로 활용됩니다.


이외에도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이유를 우리가 아는 바이러스 등의 세균이 아닌 다른 세계 생물로 표현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백귀야행」과 「충사」의 경우가 그러한데요. 물론 작품의 주 내용이 병은 아니지만 극 중에서 발생하는 병의 이유를 요괴 혹은 벌레(동물도 식물도 아닌 이형(異形)의 무리를 일컫는 말, 초록이라고도 불림)로 표현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죠. 이러한 작품들은 주인공들이 이러한 다른 세계의 생물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능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들을 쫓아내는, 마치 퇴마사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실제 겪을 일을 토대로 작품을 그린 경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올 중순, 자신의 암 투병 일기를 책으로 엮어내 화제를 모았던 ‘오방떡소녀’ 조수진 씨의 「암은 암. 청춘은 청춘」의 경우가 그러하며 외국 작품으로는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마리사 아코첼라 마르케토 씨의 유방암 투병 일기인 「캔서 앤 더 시티」, 자신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다룬 프레데릭 페테르스 씨의 「푸른 알약」 등을 꼽아 볼 수 있습니다.


「푸른 알약」의 표지


이 중에서 「암은 암. 청춘은 청춘」, 「캔서 앤 더 시티」의 경우 공통적으로 암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요. 암 진단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그려내 암 투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작품입니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암 환자에 대한 심리와 관련 지식을 함께 담고 있어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할 일 같은 것들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되기도 하죠. 이들과 달리 「푸른 알약」은 에이즈(AIDS)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요. 지난 2007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도 그려졌듯이 에이즈는 아직 사람들이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 병 중 하나입니다. 「푸른 알약」에서도 이러한 사람들의 편견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실제로 에이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 또 약간의 제한은 있을지언정,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상적인 생활을 꾸려갈 수 있다는 것을 때로는 위트 있게 때로는 촌철살인의 대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만화는 병을 통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모습을 다루기도 합니다. 또한 좁게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져야 할 자세를, 넓게는 인간이 자연에게 가져야 할 자세를 이야기하기도 하죠. 온갖 새로운 병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이 때에 겁을 내며 무조건적으로 불안해하기 보다는 앞서 말한 작품들 외에도 많은 만화들을 읽으면서 불안한 현실을 치열하게 이겨내는 캐릭터들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