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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만든 빵을 먹고 과장된 표현을 하는 캐릭터들/(애니메이션 [따끈따끈 베이커리] 中) |
“심사위원이 죽어버렸어!!”
“큰일입니다! 쿠로야나기 씨도 호흡과 맥박이 멈추었습니다!!”
“살인이다!!” “어서 구급차를!!”
:「따끈따끈 베이커리(Hashiguchi Takashi, 대원씨아이)」5권 中 자아, 여러분들께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요리만화에서 ‘요리가 맛없어 보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앙꼬 없는 붕어빵에다, 계란 안 들어간 물냉면!”이라고 외치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연재중단은 떼놓은 당상’이겠지요. 그런 요리만화를 일부러 사서 보는 독자가 있을 턱이 없잖아요. 아무리 천하일미(天下一味)라도 그것이 독자에게 시각적으로 ‘맛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요리만화로서는 실격입니다. 미각을 얼마나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치환하는가, 나아가 어떻게 그림만으로 독자의 식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요리’를 만화의 주된 소재로 삼은 만화가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고민거리일 겁니다.
| 주인공이 만든 초밥을 먹고 ?꽃을 연상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미스터 초밥왕] 1권 中) | |
물론 요리의 생김새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분명 ‘맛있는 음식’을 표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만일 요리만화의 목적이 맛있는 음식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뿐이라면, 차라리 레시피북의 사진을 발췌해 그대로 올려놓는 것이 오히려 나을 테니까요. 본래부터 혀로 맛보는 음식이라는 존재를, 흰 종이 위에 펜을 달려 표현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 작중 요리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을 만화가들이 고안해내게 된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그림의 떡’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요리 자체보다 그 외적인 요소들에 더 의존하는 작품마저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습니다. 여기서도 요리만화 ‘공식’의 탄생입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요리를 먹는 시식자의 입 속에서 재료들이 살아 움직인다거나, 그로 인해 입에서 참치가 뛰놀고 눈알이 뒤집히는 등의 부작용이 가끔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은 물론이요, 심하면 땅을 가르고 용이 승천하거나 폭탄처럼 사람들이 하늘로 치솟으며, 가끔 천국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고 오기도 해요.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주의 : 본 텍스트는 판타지 만화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쟁.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는 요리만화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즉 요리대회가 대부분의 요리만화에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독자로서는 알 수 없을 요리의 맛 - 특히나 미각이라는 주관적인 감각에 대한 판정 - 을 설득력 있게 작품과 융화시키는 기제야말로 심사위원들의 반응과 설명이며, 그 수단은 바로 ‘리액션’이라 불리는 캐릭터의 반응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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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냄비 짱! (글그림 사이조 신지, 대원 씨아이(주), 총 27권 완결) |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면 ‘싸우는 중화요리사들(?)’을 다룬「철냄비 짱!」이라든가, 일명 ‘제빵왕’이라 불리는 「따끈따끈 베이커리」같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혹은 대회 심사위원들)의 시식 포즈가 그것입니다. ‘오버 액션’이라는 말이 따로 없을 정도로 몸을 비틀고 굽히고 쓰러집니다. 이계와 우주를 넘나드는 캐릭터의 반응은 그야말로 압권. 물론 과장되지 않은 조용한 리액션만으로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작품도 존재합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앤티크’의 케이크를 먹은 손님들의 반응이 비근한 예겠죠. 단순하지만 풍부한 시식자의 표정 연기만으로도, 독자에게 충분히 요리에 대한 공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요리만화를 풍부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 리액션입니다.
다른 하나를 꼽아보죠. 어디까지나 전문적 소재를 다루는 만화라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세밀한 그림의 묘사 이외에도 일정한 정보를 텍스트로 전달해야 합니다. 물론 지나친 정보 나열식의 전개는 만화로서 거북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미비하면 오히려 독자가 요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요리만화라는 ‘장르’의 난이도가 더욱 올라가 버리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 딜레마를 뚫기 위해 만화가들이 찾아낸 나머지 하나의 해결방법은, 바로 ‘배경’입니다.
| 맛을 표현함에 있어서 배경을 풍부하게 살리는 만화 [신의 물방울]중 한 장면. - 주인공이 와인을 먹고 락그룹 퀸(QUEEN)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편집자 주) | |
어쩌면 배경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이들은 어쩌면 요리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일지도 모르지요. 요리의 매력과 정보 전달, 분위기 반전을 한번에 이루어내는 것은, ‘배경이 세밀하다’거나 ‘훌륭하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다지 변화가 없는 보통의 평범한 풍경에 지나지 않지만, 캐릭터들이 요리를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분위기를 주도하는 중요한 표현의 장으로 변모하는 공간. 이러한 캐릭터 주변의 여백이야말로, 다른 만화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며 그만큼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테지요.
개개의 만화에서 배경의 활용법은 다양하지만, 포인트는 비슷합니다. 요리의 원전(元典)이 나오는 지역의 배경이라거나, 유명한 인물의 모습이 드러나 텍스트와 어우러지며 독자에게 상상 가능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또, 시식 전에는 빈칸이었던 배경에 반짝이톤과 실선만을 채워 넣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작품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도 있을 테죠. 마지막으로, 음식에 쓰였던 원재료의 싱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독자에게 식감을 직접적으로 전해줄 수 있다는 겁니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미스터 초밥왕」에서, 음식의 원재료들이 바다에서 뛰노는 장면을 캐릭터의 배경에 그려 놓은 것이 제일 알기 쉬운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리액션과 배경, 앞서의 두 공식에서 벗어나는 작품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리고 요리를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접근시키는 또 다른 방식이 언젠가는 등장할 터이고, 표현방식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일일 겝니다. 하지만, 앞서의 두 방식이 요리만화에서 아예 사라지는 날은 아직 멀고도 먼 것 같습니다. 그만큼 ‘그림을 독자들의 입 속에 넣어주는’ 방식은 너무도 효과적이기에 그럴 테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음식을 먹고 무표정한 얼굴로 “맛있군.”이라고 캐릭터가 ‘언제나’ 조용히 말하는 요리만화, 독자가 과연 만화를 맛나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웃음).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이지만- 배고프거나, 한밤중에는 요리만화를 보지 마시기를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과식 확정에, 일주일에 3Kg 정도가 부풀어버리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여러분으로서도 과히 좋은 편이 아닐 거라고 확신하니까요. 어느새 날씨도 선선한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요리만화 보시다가 말처럼 살찌지 않게, 부디 조심하시길!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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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식객 (글그림 허영만, 김영사, 총 14권, 미완) 오른쪽) 스위트 레시피 (Sweet Recipe - 요리 초보의 웰빙 라이프) (글그림 윤이현, 대원시아이(주), 총 2권, 미완) |
아쉽게도 현재 출간되는 요리만화 가운데, 국내 작가의 작품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내년 초 MBC 드라마로 방송 예정인 허영만 작가의 「식객」, 2004년 발간되었던 윤이현 작가의 「스위트 레시피」. 이 둘을 제외하면 요리를 주된 만화의 소재로 삼은 한국 작품을 찾아보기란 힘들지요. 앞서 언급한 요리만화 자체의 난이도도 그렇거니와, 요리만화는 작가 혼자 노력하기엔 너무 힘든 장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장편 요리만화는 필연적으로 출판사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만,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한 명의 편집기자가 여럿의 작가들을 맡는 편이라 정보와 소재수집에까지 손을 뻗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연히 부담이 무거워지는 요리만화를 작가 혼자 시도하기란, 결단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