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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만화로 느껴보자!(1) 한국에 공포만화를 허하라

만약 당신이 한밤중에 흰 레인코트에 긴 생머리, 그리고 커다란 낫을 든 아가씨를 보면 최대한 몸을 숨기시길 바랍니다. 특히 빨간 마스크를 썼다면 더더욱 말이죠. 만일 그 아가씨의 눈에 당신이 들어온다면, 빠른 속도로 다가와 "나 예쁘니?" 하고 물어볼 공산이 큽니다.

2006-07-01 백인성

빨간 마스크
빨간 마스크 (입 찢어진 여자괴담)(이누키 카나코 作, 총 2권, 완결, 학산문화사)

만약 당신이 한밤중에 흰 레인코트에 긴 생머리, 그리고 커다란 낫을 든 아가씨를 보면 최대한 몸을 숨기시길 바랍니다. 특히 빨간 마스크를 썼다면 더더욱 말이죠. 만일 그 아가씨의 눈에 당신이 들어온다면, 빠른 속도로 다가와 "나 예쁘니?" 하고 물어볼 공산이 큽니다.

절대로, 섣불리 예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너도 이렇게 만들어주마!"라며 당신의 입을 길~게 찢어놓을 겁니다. 그렇다고 “예쁘지 않다”고 대답하면 화를 내며 당신을 죽일 겁니다. 도망간다고요? 저 아가씨는 놀랍게도 100m를 3초 만에 주파한다고 합니다. 우와, 이 아가씨를 만나버린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80년대 말, 저를 포함한 전국의 국민학생들을 공포와 악몽 속으로 몰아넣었던 이 아가씨. 그 유명한 이름을 들어보신 분은 아마 꽤나 많으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빨간 마스크’ 아가씨입니다. 당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각 방송사의 9시 메인뉴스에까지 등장해 전파를 탈 정도로 ‘악명을 떨쳤던’ 아가씨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이야기를 알고 계신 분이시라면, 일본의 공포만화 한 편을 이미 보신 셈입니다. ‘빨간 마스크’의 이야기가 한국에 전해진 경로는 ‘입 찢어진 여자’ 소문을 모티브로 삼은 일본의 공포만화(이누키 카나코 작, 라이센스 발매)였기에 그렇습니다. 빨간 마스크가 ‘국내파’인 줄 아셨던 분은 조금 실망하시려나요.

물론 한국에도 기담(奇談)과 괴담(怪談)은 넘쳐납니다. 한국의 ‘홍콩할매귀신’이라거나, ‘몽달귀신’ 등의 토종 귀신들의 수는 일본의 팔백신에 못지않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을 메타포로 삼은 한국의 공포만화는 존재할까요. 안타깝게도, ‘제대로 알려진’ 한국의 공포만화는 드뭅니다. 아니, 공포만화의 시장이 사실상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죠.

무엇보다 공포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지닌 ‘창작의 난이도’는 작가들에게 만만찮은 벽으로 느껴졌을 법합니다. 좁은 만화용지 위에 ‘공포’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훌륭히 녹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다, 영화 등 영상매체와는 달리 입체적인 구성이나 음향효과가 없는 만화의 특성상 더욱 어려움을 더합니다. 일찍이 한국에서 ‘공포만화’ 혹은 심리물의 라벨을 달고 출간되었던 만화들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사건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의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구성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거기 있는 셈이죠. 그리고 그것을 능숙하게 해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파트
아파트(강풀 作)

올해 7월에 개봉한 영화 ‘아파트’의 원작인 「미스터리 심리 썰렁물 아파트(약칭 미심썰)」는 좋은 선례로 꼽을 수 있을 테지요. 2004년 인터넷 만화가 강도영 씨가 <미디어다음>(http://media.daum.net) ‘만화속세상’ 에 공개한 이 작품은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공포의 대상과 미스터리를 바라보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시각과 심리가 주가 되는 만화의 유형을 정립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작품이지요. 허나 최근 영화로 개봉된 「아파트」가 원작에 비해 관객들로부터 공포를 쉽게 자아내는 것을 보면, 공포를 표현하는 데 있어 만화라는 장르의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셈입니다.

네무키 표지 이미지
일본 여성대상의 공포만화잡지 <네무키> 표지 이미지

그러나 이러한 창작의 난이도를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의 공포만화란 ‘마이너 중의 마이너’입니다. 일본의 거대 만화시장에 비해 한국의 만화시장이 소규모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작품과 작가 수가 특히나 부족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성 대상의 공포만화잡지 『네무키』가 격월로 발간되는 등, 공포만화가 한 장르의 축으로 당당히 대접받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 공포만화의 위상은 어디까지나 취향을 많이 타는- 시쳇말로 ‘인기 없는’ 장르에 불과합니다. 한때 야설록 프로덕션이 여러 만화가들과 손잡고 공포만화잡지 『아디』를 창간한 바 있습니다만, 곧 폐간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두사람이다
두사람이다
(강경옥作,전4권 완결, (주)시공사)

99년, 『소용돌이』와 『토미에』 등의 작가이자 걸출한 공포만화가인 이토 준지의 단편집들이 한국에 출간되기 전까지 철저히 잊혀진 장르였습니다. 작품에 ‘공포’라는 단어를 붙이면 그제야 비로소 공포만화가 되는 수준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품이 강경옥 씨의 「두 사람이다」와 아동 대상의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됐던 작가 ‘신비’의 「공포 환타지」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물론 ‘애들이 보는 것’으로 치부해 교육적이고 시사적인 메시지만을 원하는 한국 만화 시장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이겠습니다만, 만화가 대중예술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장르의 다양화가 필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제는 공포만화 작가와 작품 양자의 풀을 늘리는 데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국 공포만화 붐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그래서이지요. 한국에서도 공포만화 장르를 대표하는 위치의 ‘스타 탄생’이 절실하다는 얘깁니다.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진정으로 만화에 요구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그러한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작가들의 성찰일 것입니다. 비교적 ‘쉬운’ 장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일뿐더러, 개개인의 취향에 부합할 수 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인 예술의 발전 과정입니다.

만화를 읽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며, 그에 따라 만화 장르의 세분화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만화가 자극에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그 부족분은 외국의 만화가 들어와 채울 수밖에 없을 테죠. ‘공포 만화’를 논할 때 사람들이 처음으로 떠올리는 것이 한국의 작가가 아니라 일본 작가 ‘이토 준지’라는 사실, 그가 커다란 인기를 얻은 이유를 다시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그리고 ‘빨간 마스크’를 만났을 때 살아남는 방법은 다행히 있습니다. ‘포마드’를 2초만에 세 번 외치거나, 가락엿을 주면(!)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렇게 빠르게 입을 오물거릴 자신이 없기에, 여름에 가락엿을 상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PS> 공포물의 매력에 대해
공포물의 쾌감은 주로 ‘안도감’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만화의 경우 독자들은 극중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러한 감정이입을 통해 주인공이 겪는 공포와 고통을 심리적으로 공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포물의 종결 시점에 현실로 도피함으로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만화 속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죠. 만화에서 그려진 상황이 현실을 침식하지 않는다는 것. 단절된 세계에 말려들 수 없고, 말려들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이 독자를 감싸고 위안해줍니다. 공포물이 쾌감을 주는 이유는 거기에 놓여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