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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만화책을 보자 (1) 만화, 만화책

한국에서 만화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다. 만화가 독립적인 작품이자 상품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상익의 『한국만화통사』에 따르면...

2006-10-01 박세웅

만화는 언제 책이 되었는가. 보통 사람들은 만화하면 만화책을 떠올리지만, 사실 만화가 책에 담겨 나오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 된 일은 아니다. 이전의 만화들은 거의 상당기간 신문과 잡지에 실려야만 독자에게 전달 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보통 만화를 보지 않는 성인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화는 신문의 만평이나 4칸 풍자만화이다.)


한국에서 만화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다. 만화가 독립적인 작품이자 상품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상익의 『한국만화통사』에 따르면, 만화책이 발행 붐을 맞으면서부터 한국 만화계는 상업만화의 시대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는 신문과 잡지라는 대중 매체로부터 독립해서 만화책에 정착하면서부터 치열한 경쟁의 공간에 홀로 놓이게 된 것이다. 만화가도 더 이상 신문사의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전업 작가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당시의 만화책은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려졌는데, 이것은 당시의 열악한 출판계 상황에서 성인을 만족시킬만한 질과 양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지 않은가 추측된다. 종이가 부족하고 인쇄비용이 높은 탓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조잡하게 인쇄된 딱지 만화가 당시 만화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의 어려운 출판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만화는 점차 그 대상을 성인에서 어린이로 옮기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만화를 교육적 목적이라는 기준에서 재단하여 비판하는 세력을 만들어, 뒷날 만화 탄압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럼 만화는 ‘책’이라는 공간에 자리 잡은 이후 그 틀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만화는 칸의 연속으로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는데, 신문의 제한된 지면 위와는 달리 종이의 다발로 이루어진 책에서는 이를 길게 표현할 수 있다. 원래 책은 긴 글을 담기 위한 매체이다. 책의 이러한 기능을 생각해 볼 때, 만화가 만화책이 되면서 가장 발달한 장르가 스토리(이야기) 만화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만화가들은 책의 일정한 크기의 페이지 안에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지 고민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읽는 호흡과 페이지 전환을 고려해 칸의 크기와 배치, 그림의 디테일 조절 등을 포함한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만화의 연출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만화책이 보급되면서부터 만화에 대한 공격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문인들의 만화에 대한 일방적인 비하는 당시 만화책의 질적 수준이 조악한 작품이 많았던 탓에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만화가 책으로서 나오는 것이 자신들의 시장을 위협할 것이라 판단해 공격을 가한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신들의 집권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사회악 일소를 외쳤고, 그 희생양으로 만화도 선택되었다. 그래서 악서 추방의 기치 아래 열린 관제 행사에서 만화책은 거의 정기적으로 모여져 불태워지게 된다. 비교적 최근인 90년대까지도 이러한 행사가 열린 것을 볼 때, 만화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독자들은 만화를 계속 찾았고 만화가들이 펜을 꺾지 않았기에 한국에서 만화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비록 일반 책에 비해 다소 조악한 품질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만화책은 바로 이러한 시대 속에서 만화를 계속 독자에게 전달해 왔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만화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면서 만화책도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버스나 지하철 등지에서 만화책을 꺼내 읽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큼직한 만화 관련 행사가 열리기도 하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비록 만화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콘텐츠 산업의 핵심 중 하나로 다시금 주목을 받으면서 만화는 탄압을 받던 처지에서 벗어나 정부 지원을 받는 위치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만화책 시장 자체는 몇몇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것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다. 출판 시장 불황도 불황이지만 기형적인 유통과 대여 중심의 왜곡된 소비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만화책 외의 오락 매체의 다수 등장과 인터넷의 발달이란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 게임기, PMP 등 휴대용 기기들이 넘쳐나고 인터넷은 그것들에 들어갈 영화나 음악 등의 콘텐츠를 순식간에 전달해 준다. 이에 비해 아날로그 미디어인 만화책은 부피와 무게가 큰 탓에 휴대성이란 면에서 앞에 이야기한 디지털 매체와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시리즈 만화의 경우는 많은 권수로 말미암아 보관에 애를 먹는 독자들도 많다.
부피와 무게는 다른 출판물에도 적용되는 문제이지만, 만화책의 경우에는 그런 면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도 매우 높아 채산성 문제가 점점 더 고질화하고 있다. 이런 연유들로 말미암아 현재 잡지들이 종이를 버리고 온라인판으로 전환하거나, 기존 출판된 단행본들을 온라인 만화방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겉으로만 보자면, 만화책은 짧았던 전성기를 뒤로 하고 다시 내리막길로 들어선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인터넷 상에 연재되는 디지털 만화도 인기가 있으면 책으로 다시 출간되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가장 편하고 익숙하게 만화를 접하는 매체는 아직까지는 만화책이라 생각한다. 만화의 강점은 감성적인 그림과 논리적인 글을 동시에 전달한다는 데에 있고, 미래에도 이러한 전달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읽혀 갈 것으로 생각한다. 만화책은 이러한 만화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틀을 제공하였고 그 안에서 만화를 발전시키고 보급해왔다. 디지털 매체에 담길 앞으로의 만화를 그릴 작가들은 이러한 만화책에서 기존의 만화가 쌓은 많은 성과들을 어떻게 옮기고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국에 만화책이 등장한 지 60년이 넘었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표현 공간을 찾아낸 만화들은 새롭게 변모해 가고 있는데 반해, 기존의 만화책들은 시대에 뒤쳐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만화책을 읽으면서 재미와 지식을 얻고 감동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휴일에 시간을 내어 신간이든 구간이든 만화책을 펴고 페이지를 넘기며 독서의 가을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 문헌>
한국만화통사(하)/손상익/시공사
만화보기와 만화 읽기/정준영/한나래
만화의 미래/스콧 맥클루드 저,김낙호 역/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