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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영화 (2) 한국만화-영화의 최고의 흥행작

원작을 어떻게 이식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객관적으로 관객 흥행 수치만을 따졌을 때 대략 세 작품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1986)『비트』(1997)『타짜』(2006)가 그것이다.

2006-11-01 장은선



지난 2003년,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한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관객도 4백만 가량 드는 등 성공을 거두면서 만화를 향한 영화계의 구애가 밀려들고 있다. 이런 구애는 예전에도 줄기차게 있어왔지만 성공한 사례는 그다지 없었다. 당장 떠올려보려 해도 아주 망해서 화제가 된 작품이 먼저 기억나는 형편이다.
그러나 성공작들은 분명 있었다. 원작을 어떻게 이식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객관적으로 관객 흥행 수치만을 따졌을 때 대략 세 작품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1986)『비트』(1997)『타짜』(2006)가 그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히트작이 십년 주기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들이 성공할 때마다 뒤따라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대개는 참담한 성적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현재 극장가에서는 한국 역대 흥행 10위에 진입한 『타짜』가 화제다. 그 뒤를 이어 『식객』『바보』『순정만화』등이 제작에 들어갔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모처럼 찾아온 만화와 영화의 결합무드가 ‘10년 주기설’을 정착시키지 않고 성공적으로 이어지려면, 히트한 작품들을 비교해보는 것이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

이현세의『공포의 외인구단』vs 이장호의『외인구단』서울 관객 28만명
공포의 외인구단

당대 최고의 터프가이 최재성이 주인공 오혜성을 연기하고 이장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외인구단』은 이 다음에 소개할 영화들과 비교해서 가장 원작에 충실한 캐릭터와 내용을 보여준다. 그러나 2시간 내로 줄거리를 압축하다보니 오혜성을 제외한 외인구단원들의 이야기가 누락되었고, 손병호 감독의 공포스런 카리스마나 경기 운영 방식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오혜성과 엄지의 비극적인 사랑을 표현하는데 포커스를 맞췄다. 오혜성만큼이나 집착이 강하고 원작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마동탁조차 저 둘에 비하면 존재가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사실상 야구의 탈을 쓴 로맨스 영화라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된다. 오혜성과 엄지의 로맨스는 원작의 여러 가닥 중에서도 가장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였고, 너무도 사랑했으나 현실에 부딪쳐 산산조각나지 않고서는 맺어질 수가 없었던 두 사람의 비극적인 모습은 실사 화면으로 봐도 강한 임팩트를 남긴다. 단지 80년대 영화라서 지금 보면 발성법이나 대사 등에서 촌스럽다는 감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다.

허영만의『비트』vs 김성수의『비트』
서울관객 35만명
비트

정우성과 고소영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김성수 감독의 『비트』는 허영만?박하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와의 접점은 캐릭터 이름과, 주인공 민이가 뛰어난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것, 로미와의 아픈 사랑 정도이고 서로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물론 전하려는 이야기도 다르다.
만화 『비트』는 90년 당시 X세대라고도 불리웠던 십대들의 힘겨운 사회 진입절차를 그려냈다. 천부적인 싸움 센스를 지녀서 ‘누워서 뜨는 소’라는 별명이 붙은 이 민에게는 건달계에서 크게 성공하려는 친구 태수도 있고, 조금 얄밉지만 더없이 사랑스런 여자친구 로미도 있다. 민이는 위기에 처한 태수를 도와주기도 하고 로미와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등 얼핏 보기에 10대가 이상으로 하던 재능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민이는 허무에 시달리고, 자신이 발붙일 수 있는 땅을 만들어보려 몸부림친다. 그렇게 잘나보이던 민이가 AS기사 견습생으로서 정착하려 노력하는 것을 보자면 가슴 한구석이 싸하게 내려앉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민이의 어머니 말씀처럼,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영화 『비트』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정우성은 지금 봐도 정말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다. 만화에 비해서 설명이 부족한 탓에 민이라는 캐릭터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를 파악하기는 더 어려워졌는데도, 정우성이 담배를 꼬나물면 온몸에서 넘쳐나는 어설픈 반항아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스스로도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겠는,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알 수 없는 사춘기 특유의 고민과 외로움.
영화는 그러한 고독과 방황을 완전히 폭발시키고 그로부터 도망칠 구멍을 주지 않는다. 민이, 태수, 로미는 모두 비극적인 엔딩을 맞고 파멸한다. 영화 속의 민이도 현실사회로 들어가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그러기에는 겉멋이 너무 들어 있었다. 정우성이 가판대 장수를 하고 있는 엔딩은 상상만 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결국 그는 성인이 되지 못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영화는 사회에 물들기에 너무 투명하고 파란 십대의 감수성을 잘 표현해냈다.

허영만의『타짜』vs 최동훈의『타짜』
서울관객 186만 2000명(상영중,10월말기준)
타짜

전국 관객 700만을 넘었으며 지금도 계속 상영 중인 『타짜』. 19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 영화로서는 경이롭기까지 한 기록이다. 덕분에 갑자기 영화계 곳곳에서 만화의 재발견 재평가 재구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타짜』는 어찌 보면 이제까지 언급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원작과 다른 작품이다. 전 4부로 이루어져 있는 원작 중에서 1부를 영화화했는데, 시대 배경이 60년대에서 90년대로 변화했으며 캐릭터들 사이에 얽힌 애증관계도 전혀 다른 양상을 띈다. 특히 만화의 우직하던 고니는 유들유들해서 귀여운 도박사로 이미지가 확 달라졌으며, 그를 포함해 주요 캐릭터들은 만화 『타짜』보다는 오히려 최동훈 감독의 전작 『범죄의 재구성』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영화 『타짜』가 원작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화투에 관련된 인간군상과 드라마에 대한 고찰에서 만화 『타짜』에 빚을 졌기 때문일 것이다.
만화 『타짜 - 1부 지리산 작두』는 전후(戰後)의 격동적인 시대 변화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각도로 그려냈다는데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1부는 고니가 도박을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도박을 끊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의 대화가 말해주듯 그가 진짜 대단한 것은 화투의 대가 아귀를 꺾었기 때문이 아니라 화투를 그만두었다는데 있는 것이다. 그는 의리 없으면 시체인 사람이었고, 의리란 ‘약속을 지킨다’는 데에 기반한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평범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길을 되찾았다. 이러한 현실의 정착은 허영만의 전작 『비트』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대신 영화는 ‘꽃들의 전쟁’이라던 화투의 별칭에 걸맞게 화려한 세계를 보여준다. 피얼룩을 만들며 손에 넣은 돈들이 순식간에 바람에 날려가는 것처럼 허무한 것이 그 바닥 생리인데도 불구하고, 차마 발을 끊기에는 너무도 유혹적이다. 고니는 그 한복판을 껄렁껄렁한 특유의 태도로 지나간다. 때로는 걷고, 혹은 달리고, 심지어 기어가면서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한때 피어난 꽃처럼 확 떨어져가는 인생, 그것 역시 인생사이며 영화가 조명해낸 화투판의 색다른 매력이다. 때문에 ‘사랑보다 의리를 지키겠다’던 고니의 말에는 힘이 담기지 못했다.
결국은 다 아는 사실의 반복일 뿐이지만, 원작의 요소 중 영화에 걸맞는 요소를 적절히 취합하여 영상화한 것이 이들의 성공비결이다. 영화에 있어 원작이란 내용을 담기 위한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원작의 생각과 달라도, 소재 속에 감독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면 그것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재미있는 만화를 사와서 영화로 만들 수는 있어도 그 만화의 재미까지 돈으로 사올 수는 없다는 진리,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