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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음악을 만나다(1) 음악을 그리는 만화

만화를 통해 음악을 표현하는 것은 상당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하지만 그럼에도 음악과 음악계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내버려둘 수는 없는지 매체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그려내는 만화가들이 있다. 만화의 시각적, 언어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가며 소리의 부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때로는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기까지 한다. 음악을 그려낸 만화, 그 소리 없이 들려오는 세계를 탐색해 보자.

2007-03-07 김혜신


                                                                    [연중기획 Comic & Culture ①] 만화, 음악을 만나다.

요즘 문화계의 화두가 [음악]인 듯 싶습니다.
3-4년 사이 뮤지컬 열풍이 불기도 하고, 영화계에서는 “미녀는 괴로워” “복면달호” “드림걸즈”등 [음악]영화가 뜬다고 난리법석입니다. 아, 물론 방송(드라마)계에서도 그동안 수 없이 만들었던 OST들에 만족하지 않고 본격 음악드라마를 만든다고 합니다.
“만화”속에서도 수많은 [음악]들이 그려졌던 것 알고 계시죠?. 물론 다른 장르처럼 [음악]을 직접 들을수는 없지만 눈으로만 보는 “만화”로 표현되는 [음악]의 매력은 정말 색다르답니다.
자, 이번호에서 만화 속 다양하게 그려지는 [음악]들을 만나 보세요. 물론 만화규장각 매거진 추천작중 몇 타이틀은 읽어주시는 센스! 잊지 마시구요- 편집부 -


음악을 그리는 만화


만화를 통해 음악을 표현하는 것은 상당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일단 근본적인 차원에서 만화는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치명적인 결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소리’의 부재다. 음식은 그나마 ‘눈으로 즐긴다’는 말도 있는 만큼 미각, 후각 외에 시각적 요소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음악을 구성하는 것은 순전히 ‘소리’ - 청각뿐이다.

청각만으로 전달되는 예술을, 청각성이 결여된 만화라는 시각적 매체 속에서 효과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음악의 세계 역시 (어떤 세계든 마찬가지겠지만) 제대로 접근하려면 음악의 구조 및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분위기를 위해 인용되는 노래가사나,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의 배경 정도의 역할 (예를 들어 마츠모토 토모의 「KISS」가 그런 축에 속한다)을 넘어서 음악 그 자체를 본격적으로 다룬 만화, 즉 진정한 [음악 만화]는 창작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음악과 음악계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내버려둘 수는 없는지 매체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그려내는 만화가들이 있다. 만화의 시각적, 언어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가며 소리의 부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때로는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기까지 한다. 음악을 그려낸 만화, 그 소리 없이 들려오는 세계를 탐색해 보자.


 ● 기호의 사용

음표는 음악, 내지는 소리를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기호다. 낙서에도, 한 컷 만화에도 음표를 그리는 것은 멜로디 - ‘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이것은 음악이 분명히 청각적인 매체임과 동시에 언어라는 시각적, 잔존적, 기호적 형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태생적인 관련성을 상징하며 음악을 만화로 표현하는 작업에 힌트를 제공한다. 음악의 발전은 음표와 가사, 연주법 등을 남긴 [언어적 기록]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만화는 언어-말과 그림이라는 두 가지의 특성과 강점을 가지고 있으니, 오로지 문자만으로 표현되는 문학보다는 훨씬 폭 넓은 표현력이 허용된다. 단순히 음표를 그리는 것만으로, 노래가사를 쓰는 것만으로 언어와 기호가 동시에 허용되는 만화는 간단히 음악을 표현해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출발점에 불가하다. 음악이 중심적인 만화에서 내내 비슷한 음표나 가사만으로 음악을 연출해버린다면 표현력도 떨어질 뿐더러 독자를 질리게 할 것이다. [음표]는 만화가 가진 기호적, 언어적, 시각적 특성이 바로 음악을 그려내기 위한 도구임을 인지시키는 하나의 상징이자 출발점이다. 비록 소리는 없지만, 읽고 보고 알게 함으로써 소리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는 있다. 음표는 그 길을 향한 첫 걸음이다.


 ● 대중음악 -만화적 이미지의 활용

음표와 문자(가사)를 흥미롭게 표현한 만화로 니시야마 유리코의 「드래곤 보이스」가 있다.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이 5인조 소년 밴드의 멤버로써 화음을 맞춘다는 점이나, 다른 쟁쟁한 가수들과의 노래 대결, 내용 중의 중대한 갈등과 문제는 노래와 춤으로 해결되는 뮤지컬 같은 연출 등 포커스가 유난히 음악에 맞춰진 덕분에 아이돌 밴드가 주인공임에도 불구, 연예인 만화가 아닌 음악 만화라고 분류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 준다.

대중음악, 그것도 춤과 의상이라는 무대적 요소가 중요한 아이돌 연예인이 주역일 경우 원래가 비주얼이 중시되는 장르니 (나쁘게 표현하자면, 비주얼‘만’ 중요하고 음악성은 뒷전인 가수 역시 현실적으로 많은 분야다) 여타 음악 장르를 다루는 만화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 하지만 「드래곤 보이스」의 차이점은 그러한 비주얼한 춤이나 안무마저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역동적인 율동과 자선의 사용으로, 대중음악 특유의 리듬과 비트를 형상화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작년 말 개봉했던 뮤지컬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의 감독은 ‘관객이 관람 도중 일어나 춤을 추고 싶을 만큼’ 음악과 춤에 공을 들였다는데 「드래곤 보이스」는 노래는 들려줄 수 없는 대신 춤을 통해 얼마나 대중적이고 활기찬 리듬과 비트의 노래인지를 표현한다.

작품 내에서 노래가사는 다양한 문자의 형태로 재미있게 표현되는데, 그 연출이 극치에 다를 때가 바로 [노래로 싸우는] 노래 대결에서다. (소년잡지에 연재되면 대결구도는 피할 수 없는 듯하다.) 가창력의 차이로 음이 먹히거나 파열될 경우 문자 그대로 가사가 부서지거나 엷게 지워지며, 가사의 임팩트가 강하다는 그룹의 경우 아예 문자의 폭풍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결뿐이 아닌 주인공과 같은 밴드 멤버들과의 화음도, 서로 음이 어긋나거나 만대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을 경우 판이하게 다른 문자와 음표의 모양이 연출된다. 상투적인 의미로 지극히 ‘만화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덕분에 통통 튀는 기호와 문자, 리듬의 묘사는 가벼우면서 포용력이 넓은 대중음악을 다루는 내용과도 잘 맞물려져 흥미로운 결과를 탄생시켰다.

 

 ● 클래식 - 아름답게 압도하듯이
대중음악과는 달리 클래식은 전에 비해서는 많이 대중화되었다는 평에도 불구, 여전히 딱딱하고 어렵고 지루하다는 인상을 준다. 짧고 인상적인 멜로디와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에 춤과 안무 등 퍼포먼스가 많이 개입된 대중음악에 비해 오랜 연주시간과 무대 위의 연주자들 외에 딱히 화려한 볼거리가 없다는 점이 (오페라의 경우, 의미 불명의 기나긴 유럽어 가사라는 장벽이 서 있다.) 만화로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대중음악과는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피아노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피아노의 숲] 속에서 피아노의 음은 수개의 작은 빛의 흔적으로 묘사된다. 건반의 음이 하나하나 청명하고 분명하게 울리는 피아노 특유의 음색을 재미있게 형상화한 것이다. 동시에 별빛처럼 흩어지는 피아노 음은 작품 특유의 동화적인 분위기에도 적합한, 마치 마법과도 같은 멜로디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클래식의 강점 중 하나는 특유의 장대함과 스케일 덕분에 일종의 압도적인 파급력이 있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악기와 인간의 합주만으로 장내를 뒤덮는 음의 향연은 [피아노의 숲]에서는 방대한 숲처럼 장내를 감싸고,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는 적절한 스크린 톤의 사용과 방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을 통해 분위기를 단번에 압도하며 관객의 집중력을 사로잡는 음악을 그려낸다. 특히 「노다메 칸타빌레」의 사진 고증을 거친 다양한 악기들의 연주모습과 다채로운 스크린 톤을 사용한 연출법은, 철저한 조사라는 탄탄한 기반 위에 특유의 귀엽고 가벼운 터치로 그려낸 작품 내의 클래식 세계와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 분투하는 인디 - 음악의 정신, 자유의 정신

클래식만큼 고상하지도, 대중적인 팝음악만큼 가볍지도 않은 인디 음악의 세계는 어떻게 표현될까? 이미 화려한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이나 비싼 레슨비, 학비라는 장벽 때문에 주인공들이 어느 정도 넉넉한 집안일 수밖에 없는 클래식 세계와는 달리 (아예 음대생들을 다루고 있는 「노다메 칸타빌레」보다 「피아노의 숲」이 상대적으로 더 동화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은-특징이지 단점은 아니지만-바로 이 점에 기인한다.), 인디 음악, 특히 락은 헝그리 정신과 기성사회에 대한 반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이 음악과 상통하는 것이 이상적으로 여겨진다.

돈과 명예와 안락만을 추구하는 속물적,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에 대해 노골적으로 저항과 반항의 의지가 명확한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은 80년대였기에 가능한 신파와 처절함을 보여주며 음악의 극치를 추구하는 주인공 이강토의 삶과 맞물리게 한다. 흥미로 시작한 기타가 주인공을 배신하고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여성들에 대한 복수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여성상 역시 비슷한 시대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음악의 한계에 도전하며 폭포 아래서 처절한 수행을 하는 주인공이 오로지 복수심만으로 노력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분명 사회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불씨는 제공하나, 마지막에 불태우는 것은 음악인으로써의 혼이다. 후반부에 득도한 주인공의 연주는 하얀 실루엣으로 처리되어, 마치 천상에서의 음악과도 같은 몽환적인 느낌까지 불러일으킨다.

사쿠이시 해롤드의 「BECK」은 21세기의 소년들이 주인공인 만큼 80년대 특유의 분노나 반항, 저항심리는 볼 수 없지만, 그보다는 덜 과격해도 묵묵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는 분명히 락의 정신이 살아있다. 유일하게 주인공에게 호의적인 세계였던 「고독한 기타맨」의 음악계와는 달리 「BECK」의 음악계는 경쟁자, 음반 회사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심지어 밴드 내부의 갈등까지 더한 또 하나의 각박한 현실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밴드는 실력과 잠재력이 있어도 앞서 말한 외적인 요인과 함께 그때 그때의 컨디션이나 경험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음악을 펼치지 못하기도 한다.

「노다메 칸타빌레」와 공통적으로 음악과 음악계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이해를 기반으로 그려지는 음악을 향한 주인공들의 열정은 덕분에 더 높은 설득력과 진솔함을 지닌다. 굵직하고 힘 있으면서 명료한 선으로 그려진 연주장면은 실제 라이브 콘서트의 박력을 재현하고, 관객들의 열성적인 반응은 장내의 열기를 가늠하게 해 준다.


 ● 부재의 미학

「BECK」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유키오의 노래가 절정에 이를 때라고 할 수 있는데, 분명히 보컬 부분인데도 특이하게 전혀 가사를 넣지 않고 컷 가득 가수의 얼굴만으로 채운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이 작사 과정에 가사를 두고 의논하면서 가사의 일부가 보이기는 하지만, 정작 중요한 콘서트 장면에서는 문자는 없어지고 페이지를 압도하는 가수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오히려 가사와 문자를 생략함으로써, 대체 어느 정도의 목소리, 멜로디, 가사일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상상하도록 자극한다. 음표와 문자로 문자 그대로 음악을 묘사하는 방법의 극 대칭점에 서 있는 연출이 아닐까.

동시에 처음에는 음악만화의 결점으로 보였던 ‘소리의 부재’가 역으로 최고의 강점이 될 수 있는 증거다. 천상의 포크송, 기이한 천재의 즉흥곡, 투박하지만 매혹적으로 폭발하는 목소리는 그림과 글자로만 표현되기에 실존하지 않은 음악이면서 동시에 만화가와 독자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궁극의 음악이기도 하다. 만화로만 그려낼 수 있는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