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Over The Top)의 사전적 의미는 “개방된 인터넷을 통하여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OTT의 등장으로 우리는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시청 환경의 제약이 사라지고 바뀐 것을 넘어서, 이제는 국가와 인종, 문화의 경계까지 사라지는 중이다.
올 한 해 글로벌 트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열에 일곱은 <오징어 게임>을 꼽을 것이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선보인 <오징어 게임>은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쓰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조차 세우지 못한 시청 기록을 세우며 전세계에 K-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줬다. 아시아를 넘어 미 대륙,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거의 모든 국가에서 언어나 문화와 상관없이 모두가 <오징어 게임>의 내용이나 음악, 의상, 놀이 등을 하나의 밈(Meme, 인터넷에서 시작된 유행을 여러 2차 창작물이나 패러디로 재생산하는 것)으로 연결됐다.
전세계인이 한국의 놀이를 배우고, 한국말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부르는 광경은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그건 넷플릭스의 성공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만든 넷플릭스의 힘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상에서 바이럴이 일어나는 작품들 대부분이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서 공개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경험은 <오징어 게임>이 끝이 아니었다. 최근 공개된 <지옥>이 <오징어 게임>의 뒤를 이어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지옥>은 글로벌 시장에서 메가 히트한 한국 콘텐츠의 파급력이 어쩌다 걸린 행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약 5,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K콘텐츠 확보를 선점해 치열해지고 있는 OTT시장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외 OTT가 확보하려는 K콘텐츠의 중심에 웹툰이 원천소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그림 1 넷플릭스 차트 사이트에서 공개한 TOP TV Show(드라마) 랭킹에서 <지옥>이 1위에 올랐다. (출처 : flixpatrol.com)
OTT시장의 과열 경쟁이 낳은 이상적인 콘텐츠 제작 환경
<지옥>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동명의 웹툰이다. 연상호 감독이 직접 스토리를 쓰고 그의 창작 소울메이트인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맡고 있다. 영상화가 확정되기 전부터 민감한 소재인 종교와 초자연 현상을 다뤄 화재가 됐다. 영상화가 확정되고 넷플릭스의 투자가 결정되자 원작 팬들은 걱정보다 기대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옥>의 투자와 배급을 넷플릭스가 맡았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제작 환경에서 좋은 퀄리티의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넷플릭스의 경쟁력은 단연 규모의 경제이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콘텐츠 제작 환경을 꼽기도 한다. 국내 영상 제작 환경이 열악한 데다가 투자사의 입김이 심한데 비해 넷플릭스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간섭을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동혁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얘기한 바 대로, <오징어 게임>이 탄생했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믿기 어려울 정도의 반응을 얻었다. 넷플릭스는 이렇게 최고의 창작 환경을 검증되거나 가능성 있는 창작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해외 언론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넷플릭스 내부 문건을 근거로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의 가치를 8억9,110만달러(약 1조원)로 평가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총 제작비가 약 240억원으로 알려진 것과 대비하면 무려 41배에 달하는 수익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수익분배가 없다’며 넷플릭스를 비판하기도 했다. 일견 타당한 지점이 있지만, 넷플릭스가 가진 규모의 경제, 플랫폼 파워와 마케팅을 무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제작에 있어 ‘안정적인 수익 보장’과 ‘위험 부담’ 중에서 제작사는 안정적인 수익 보장을 택하고 다음 작품에서 제작비를 올려받는 것을 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는 이 점에서, 국내 플랫폼보다 ‘보다 높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셈이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에 제공한 것처럼 기성 시스템과 차별화되는 콘텐츠 제작 환경을 제공하는 이유는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OTT시장의 경쟁 상황과 맞물린다. 해외에서는 콘텐츠 공룡 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 애플의 ‘애플TV’, HBO의 ‘HBO맥스’, 아마존의 ‘아마존 프라임’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고, 국내에서는 지상파 3사가 힘을 합친 ‘웨이브’, CJ의 저력이 돋보이는 ‘티빙’, 쿠팡의 ‘쿠팡 플레이’, KT의 ‘시즌’, 카카오의 ‘카카오TV’ 등 메이저 기업의 OTT부터 ‘왓챠 플레이’, ‘라프텔’ 등의 스타트업도 필드에서 자웅을 겨루고 있다.
구독자 기반 수익 모델을 갖고 있는 OTT는 유료 구독자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경쟁력 있는 창작물을 선보여야 한다. 그렇기에 OTT 입장에서 뛰어난 창작자를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것을 넘어 사업 모델의 핵심이나 다름없다. 창작자에게 매력적인 제작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풍족한 지원을 해야 많은 창작자들을 확보할 수 있고 또 그들로부터 경쟁력 있는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이상적인 선순환을 위해 넷플릭스 뿐만 아니라 국내외 OTT 업체들이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외 OTT가 웹툰에 주목하는 이유
OTT의 치열한 콘텐츠 확보 경쟁에서도 손꼽히는 것은 단연 웹툰이다. 2021년도에 주목받았던 영상 작품을 살펴보면 유독 웹툰 원작이 많았다. <유미의 세포들>, , <모범택시>, <나빌레라> 등은 단순히 높은 시청률에 그치지 않고 SNS나 커뮤니티 등에서 높은 피드량을 쏟아내며 화제성도 검증됐다. 이런 화제성은 팬을 넘어 마니아층을 낳고 수익성으로 연결된다. 마니아층이 확보되어 있다는 점은 홍보에서도 수월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홍보포인트가 된다. 일반적인 작품이 론칭할 때 높은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광고한다면 웹툰 원작의 작품은 팬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홍보하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도 절감된다.
무엇보다 웹툰의 저력은 명확한 타겟층과 그 타겟층의 공감대로 형성되는 문화적 유대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다. 는 대한민국 징집제의 부조리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다. 탈영병을 추적해 체포하는 대한민국 육군 군사경찰인 군탈체포조 ‘D.P.’가 소재이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에서 그리는 군대의 모습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에서 보여주는 군의 부조리와 비상식적인 상황에게서 그들 만이 알고 있는 문화적 유대를 느낀다. 그래서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관심 가지면서 단순히 드라마 시청으로 끝내지 않고 공감하는 이들과 연대한다.
의 소재가 독특하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만 연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유미의 세포들>은 평범한 30대 초반 여성인 유미의 연애와 일, 생활을 유미가 가진 세포들의 시각으로 함께 풀어내는 작품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여성들의 문화적 연대를 불러일으킨다. 유미가 처한 상황과 인간 관계에서 느끼는 것들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런 연대에 길들여진 원작 팬들이 자연스레 영상화에 대한 관심과 소비로도 이어진다. 이것이 OTT가 앞다퉈 웹툰의 영상화에 투자하는 이유이다.
2022년 OTT 시장, 웹툰 IP확보 전쟁은 시작됐다. 아니, 이미 치열하게 물밑에서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HBO MAX와 같은 신규 OTT 서비스들이 국내시장 진출을 천명하고 나섰고, 웹툰을 중심으로 한 IP홀더들에게 갖은 구애를 보내고 있다.
웹툰 팬층의 콘텐츠 소비력이 검증됐기 때문일까? 2022년도에도 OTT의 웹툰 투자는 계속 이어진다. 그림2의 표를 보면 이미 국내외 OTT에서 웹툰 원작의 영상화가 예정되어 있다고 발표한 작품이 무려 15작품이나 된다. 영상화는 확정됐지만 아직 방영처를 찾지 못한 작품까지 포함하면 36작품으로 대폭 늘어난다.
△ 그림 2. 2022년 OTT별 웹툰 원작 영상화 작품 목록
기존의 투자를 대폭 늘린 넷플릭스가 가장 많은 작품이 예정된 가운데, 웨이브와 티빙의 약진도 눈에 띈다. 최근 국내 론칭한 디즈니플러스가 무려 500억원을 투자하는 강풀 작가 원작의 <무빙>은 디즈니가 얼마나 국내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국내외 OTT가 웹툰 영상화에 공을 들이는 것은 1차적으로 구독자 확보가 목표이겠지만, 그보다는 더 큰 시장을 노리는 것이 더 크다. 바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검증된 K콘텐츠를 필두로 한국을 아시아 시장의 콘텐츠 거점이자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테스트베드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이다. 그 전략의 중심에 바로 K웹툰이 있다는 점은 많은 웹툰 창작자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부분이다. 앞으로 제2의 <오징어 게임>, <지옥>이 될 웹툰 원작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