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환경의 새바람: 드라마 원작 웹툰 시대
드라마를 원천 IP로 삼는 웹툰이 늘고 있다. 물론 오리지널 창작 웹툰과 수량의 비율을 논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현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수의 사례가 출현하고 있다.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웹툰이 창작의 새로운 모델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에 따라 웹툰 창작의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드라마 원작 웹툰 시대가 도래한 원인과 전망을 살펴보자.
△ (좌) <쌈 마이웨이>, 순정 (출처_네이버웹툰) / (우) <쌈 마이웨이>, 이나정/김동휘 (출처_KBS)
대표적인 사례로는 <W: 너와 나의 세계>, <쌈 마이웨이>, <또 한 번 엔딩>, <다크홀: 또 다른 생존자>, <해피니스> 등이 있다. TV드라마 또는 웹드라마를 원작으로 삼은 웹툰들이다.
<W: 너와 나의 세계>는 2016년 MBC 미니시리즈 <W>를 원작으로 한 웹툰이다. 여주인공 오연주가 사는 현실 세계와 웹툰 속 인물 강철이 살고 있는 가상세계를 오가며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쌈 마이웨이>는 2017년 KBS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 원작 웹툰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려는 파이터 고동만을 중심으로 한 청춘들의 성장과 로맨스 이야기로 호평 받았다.
<또 한 번 엔딩>은 2020년 방영된 웹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웹툰이다. 전세금 사기를 당한 인영은 어쩌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 윤수와 계약 결혼을 통해 신혼부부 전세 대출을 받으려 한다. 인영과 윤수, 인영의 전 남친 사이의 삼각관계 로맨스다.
<다크홀: 또 다른 생존자>는 2021년 방영된 OCN 드라마 <다크홀>을 원작으로 한 웹툰이다. 싱크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체불명의 연기를 마신 인간들이 변종이 되어 가지만, 식물인간인 준호는 오히려 돌연변이로 깨어나 변종을 죽이는 이야기를 다뤘다.
<해피니스>는 2021년 tvN의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웹툰이다. 이현과 새봄은 위장 결혼으로 한 집에 살게 되지만 돌연 등장한 좀비로 인해 삶이 뒤엉킨다. 웹툰은 드라마와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매체 전환과 스토리 세계 구축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웹툰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드라마의 스토리를 그대로 각색(adaptation)하는 경우다. 각색은 근대 이후 다양한 서사 사이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현상이다. 예컨대 소설이 영화나 연극이 되고, 영화가 뮤지컬이 되고, 만화가 애니메이션이 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현상은 주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는 용어로 설명돼 왔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제안한 이 용어는 텍스트 사이의 영향과 교차, 삼투와 교섭을 드러낸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는 ‘상호장르’(inter-genre)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같은 이야기가 서로 다른 장르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피니스>는 드라마 원작과 웹툰이 스토리를 공유한다. 그러나 웹툰은 8화를 넘어가면서 다른 스토리 장치를 선보인다. 여주인공 새봄이 몸속에 좀비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인데, 이는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상상력이 된다. 이렇게 스토리 전체는 공유하면서 구체적인 장치를 바꾸는 경우도 각색의 범주로 설명된다.
같은 이야기가 다른 장르가 될 때는 부득이하게 매체 전환 현상이 발생한다. TV나 웹사이트 혹은 OTT를 통해 드라마로 방영됐던 이야기가 웹툰이 된다는 건 영상매체에서 평면매체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 뜻에서 이는 장르 내부에서의 재창작을 포함하는 ‘리메이크’와도 다른 개념이 된다. 이런 사례는 한 가지 원천을 다양한 매체로 다시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철저한 OSMU 전략을 따른다.
둘째는 ‘스토리 세계’를 구축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웹툰이 드라마의 프리퀄(원작의 이전 이야기)이나 시퀄(원작 이후의 이야기), 스핀오프(원작에서 파생된 이야기) 등의 스토리를 담는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경우는, 드라마를 ‘원작’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고, ‘선행 창작물’ 또는 ‘1차 창작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옳다.
예를 들면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 바탕을 둔 웹툰 <그해 우리는: 초여름이 좋아!>는 드라마의 프리퀄이다. 드라마가 주인공들이 어른으로 자라난 뒤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비해 웹툰은 이들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그려 낸다.
웹툰은 드라마가 다 다루지 않는 이전/이후의 이야기, 또는 파생 사건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 확장 가능한 스토리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물론 이때 ‘스토리 세계’가 할리우드 히어로물의 ‘유니버스’처럼 거대한 경우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드라마와 웹툰이 서로 전후좌우의 이야기를 확장함으로써 매체를 전환하는 ‘스토리 세계’의 일부분을 선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콘텐츠 생태계의 역전
콘텐츠 생태계를 살펴보면 드라마가 웹툰이 되는 경우는 일종의 ‘역전’에 해당한다. 콘텐츠의 사슬은 기초콘텐츠-응용콘텐츠-종합콘텐츠로 이어진다. 기초콘텐츠는 스토리 중심, 문자 중심, 평면(2차원) 중심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전통적으로는 소설이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지만, 요즘에는 웹소설을 예로 들 수 있다.
웹소설은 스토리를 기반으로 원천 IP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웹소설 원천 IP는 보통 웹툰이나 영화, TV드라마로 다시 활용된다. 응용콘텐츠는 바로 이런 원천 IP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영상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응용콘텐츠는 스토리와 이미지 중심, 언어 중심, 입체(3차원)의 평면화가 중심 요소가 된다.
웹툰은 엄밀하게 말하면 기초콘텐츠와 응용콘텐츠 사이에 있다. 기초콘텐츠가 응용콘텐츠가 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웹툰은 기초콘텐츠처럼 스토리 중심이지만, 이미지도 포함한다. 다만 응용콘텐츠처럼 움직이는 동적 이미지가 아니라 평면 위에 구현되는 정적 이미지이다.
따라서 웹소설→웹툰→드라마(영화/TV/웹)로 이어지는 콘텐츠 생태계의 사슬은 흥미로운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원천 IP가 이미지를 만나면서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웹툰은 사실 드라마(영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스토리(시놉시스와 시나리오), 이미지(스토리보드)를 선행하여 해결해 주고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웹툰은 웹소설이 갖고 있는 스토리의 강점과 영상이 구현해 내는 사실적 이미지와는 다른 평면 이미지를 통해 ‘사이 콘텐츠’로서의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을 콘텐츠 기획과 제작의 측면에서 보면, 제작비용의 증가와 고위험-고수익 구조로의 전환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웹툰은 중위험-중수익 구조 속에서 스토리보다는 진일보한 볼거리와 영상보다는 소박한 읽을거리라는 이중구조를 갖는다.
드라마의 웹툰화라는 현상은 이런 구조를 역전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개념으로는 기초콘텐츠→응용콘텐츠로 이어지던 순차적 계열화가 응용콘텐츠→기초콘텐츠로 뒤바뀌는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2021 웹툰사업체실태조사 보고서 (출처_한국콘텐츠진흥원)
웹툰 시장의 성장과 독자적인 콘텐츠 소비자
드라마 원천 IP의 웹툰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원인은 몇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웹툰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웹툰 시장은 1조 538억 원(2020년 기준)에 이른다. 이는 코로나 이전 국내 영화 시장의 절반에 육박할 만큼 큰 규모다. 게다가 이는 전년에 비해 64.6%가 증가한 수치다.
웹툰 시장이 이렇게 성장한 데에는 물론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콘텐츠가 무용지물이 되자 많은 이들이 모바일 웹콘텐츠로 눈을 돌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21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웹툰 이용 시간이 증가했다고 답한 비율이 79.4%에 이른다.
이와 같이 웹툰을 직접 경험한 콘텐츠 소비자는 앞으로도 자신의 소비 태도, 즉 경험이 학습이 되고 학습이 습관이 되는 패턴을 유지, 확장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웹툰 시장은 앞으로도 더 크게 성장할 것이며, 그에 따라 더 많은 스토리의 원천 IP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를 달리 바꿔 말하면, 이렇게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웹툰이라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경험하는 고유한 소비의 공간이 존재하며, 그 공간을 독자적인 콘텐츠 소비자가 채우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결국 웹툰만이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로서의 매력, 스토리와 평면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매력이 돋보이게 된다. 웹소설이나 영상 드라마가 전달하지 못하는 ‘사이의 상상력’이 바로 웹툰만의 매력이다.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웹툰이 로맨스, 성장물, 좀비물 등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특정한 성별만이 웹툰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드라마의 웹툰화가 충분한 확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웹툰의 스토리와 이미지는 상호 의존적이다. 이미지 없는 웹툰, 스토리 없는 웹툰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스토리는 웹툰을 웹툰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다. 웹툰은 이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스토리를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생산해 오던 단계를 넘어, 그것이 웹소설이든, 드라마든 막론하고 끌고 들어와 IP를 만들어내는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웹툰은 이제 ‘스토리의 포식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