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히어로들의 다음 선택지, 웹툰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 프랜차이즈는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은 무의미하다. 모두가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마블의 MCU,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2010년대를 지배한 콘텐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언맨>으로 시작해 7월 개봉한 <토르: 러브 앤 썬더>까지 30여 편의 영화가 관객을 만났다. 규모 면에서도, 흥행 면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성공이다.
규모 면에서는 조금 밀리지만, 팬덤의 파워는 결코 밀리지 않는 DC도 있다. 최근 <조커>의 흥행이나 <더 배트맨>의 흥행을 보면 DC 역시 IP의 힘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인 ‘배트맨’이나 사이드킥 ‘로빈’, 가장 유명한 빌런 ‘조커’부터 ‘수퍼맨’, ‘아쿠아맨’ 등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성공적인 IP를 가진 기업들이 달려나가기 위해 공통적으로 선택한 플랫폼이 있다. 바로 웹툰 플랫폼들이다.

웹툰으로 만나는 “마블”
사실 마블의 작품이 웹툰 플랫폼에서 ‘웹툰’ 형식으로 연재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독자들에겐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독자들은 마블의 세계관을 단행본이 아니라 웹툰으로도 만날 수 있게 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네이버웹툰에서 먼저 선보였던 <샹치>나 <블랙 위도우> 시리즈가 대표적이고, 카카오페이지에서도 DC의 <배트맨>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 <미즈 마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를 포함한 7종의 웹툰을 카카오페이지에서 선보였거나 선보일 예정이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OTT 시리즈, 또는 극장 개봉 영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개봉 일정과, <미즈 마블>은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미즈 마블>과 일정을 맞췄다.
마블이 선보이고 있는 전략은 영상 매체의 시너지를 원작에도 이어 가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카카오페이지 역시 국내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마블 시리즈의 인기를 통해 카카오페이지 이용자를 늘리는 시너지를 얻을 수 있어 상호간에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마블코믹스의 국내 출판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시공사가 웹툰화 작업을 담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작 코믹스에 높은 이해도를 갖춘 곳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모바일에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방식을 고안하고, 출판만화 형식을 읽으면서 했던 경험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의 시너지 역시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미 이전에도 <배트맨> 시리즈를 통해 웹툰 연출에 최적화된 연출을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DC코믹스도 ‘웹툰과 함께’
마블코믹스와 쌍벽을 이루는 DC코믹스 역시 웹툰과 손을 잡았다. 네이버웹툰이 글로벌 인기 IP를 가진 콘텐츠 기업과 손잡고 펼치는 “슈퍼캐스팅”의 주요 파트너가 바로 DC코믹스다. DC코믹스는 지난해 <배트맨: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를 공개하고 이미 연재 중인 작품을 선보이기보다 완전 신작을 웹툰에 최적화해 공개하는 방식을 꾀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공개되는 작품은 히어로뿐 아니라 DC코믹스가 자랑하는 수퍼 빌런이나 사이드킥 라인업이 포함되어 있어 DC코믹스의 팬들을 기쁘게 했다. DC코믹스의 유서 깊은 ‘레드후드’나 DC 유니버스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 캐릭터 ‘자타나’ 등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양대 코믹스 기업이 우리나라의 웹툰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웹툰에서 최초로 ‘웹툰’ 형식의 히어로 코믹스, 아니 수퍼히어로 웹툰을 선보이고 있다.
배트맨에 이어 이제는 ‘로빈’과 동의어로 통하는 ‘레드후드’가 등장한다는 말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이들 시리즈들이 의미하는 바는 이제 웹툰이 코믹스의 하위 요소가 아니라, 독자적인 표현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2014년 <어벤져스: 일렉트릭 레인>을 통해 한국 캐릭터 ‘화이트 폭스’를 선보이는가 하면, 시리즈 내 가장 인기 많은 캐릭터 중 하나인 ‘헐크’ 시리즈에 한국계인 아마데우스 조가 등장하는 등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위 예시는 스핀오프 시리즈에서 정식 등장까지 시간이 걸렸고, 등장인물의 설정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콧대 높은 미국의 코믹스 제작사들이 스크롤 방식으로 작품을 편집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블과 DC는 ‘글로벌’로 간다
미국 최대 코믹스 기업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IP를 가진 DC와 마블이 굳이 웹툰을 선택한 이유는 이들의 행보를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코믹스, 즉 ‘출판만화’의 유통 대부분은 다이아몬드 만화 유통(Diamonds Comics Distribution)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한때 반독점법 재판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유통의 2019년 매출 30%는 DC가, 40%는 마블이 만들어 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사태와 함께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됐고, 먼저 DC코믹스가 다이아몬드 유통망 탈퇴를 선언했다. 표면적으로는 다이아몬드 코믹스가 코로나19로 인해 1분기 대금 지급을 늦춘 것이 이유였지만, 2020년 여름 DC는 전 세계 1억 명이 관람한 ‘DC FANDOME’ 행사를 개최했다. 최근 개봉한 <더 배트맨> 등 영상물의 최초 공개 행사는 물론, DC코믹스가 가지고 있는 IP들의 최신 시리즈들을 함께 공개하면서 팬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동시에 ‘독점 유통망’을 벗어나면서 중소 유통사 2곳과 계약, 미국 유통망을 정비하는 한편 전 세계 코믹스를 취급하는 서점들 중 온라인 배송을 하는 곳들과 계약해 최대 3천 부씩 한정판 커버를 독점 제공하는 기획을 선보이기도 했다. 중소 서점을 살리며 ‘상생’하는 이미지와 함께 자체 글로벌 유통망 정비에 나선 셈이다.

마블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21년 말 ‘펭귄 랜덤하우스 퍼블리셔 서비스(PRHPS)’와 다년 계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유통망 정비에 나섰다. 다이아몬드에 저주를 퍼붓고 뛰쳐나온 DC와 그림은 다르지만, 전 세계 최대 유통망을 가진 펭귄 랜덤하우스와 계약했다는 점은 결국 마블과 DC가 지향하는 지점이 ‘글로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이아몬드 유통이 꽉 쥐고 있는 미국 시장을 벗어나 전 세계에서 마블과 DC의 ‘수퍼히어로 코믹스’를 판매하겠다는 계획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그 과정에 웹툰화를 통해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선보이는 전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시리즈들의 등장은 웹툰이 이제 ‘글로벌 채널’로서 기능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이벤트성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IP확장의 시너지를 유도할 수 있는 확고한 채널로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DC와 마블, 전 세계 IP 시장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두 기업이 함께하는 곳이 웹툰 플랫폼이라는 점은 웹툰의 위상이 이제는 한국이나 만화가 유통되는 일부 국가만이 아니라 ‘마블과 DC의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모든 곳’, 나아가 ‘인터넷이 연결되는 모든 곳’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