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를 활용한 웹툰 디지털 제작 툴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클립스튜디오에서 AI까지, 일상이 된 ICT를 활용한 웹툰 제작
웹툰은 ICT(정보통신기술) 기반 콘텐츠 산업이다. 유통, 소비는 ICT가 없으면 아예 성립할 수 없고, 제작에서도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디지털 툴을 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현대 사회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ICT 기술 흐름에 따라 웹툰 제작 방식도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단순하게 클립스튜디오나 스케치업과 같은 디지털 툴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AI(인공지능)와 협업까지 고려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 폭이 크다.
그림 그리고 이야기를 쓰는 AI 등장
몇 가지 단어와 조건을 제시하면 자동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AI ‘미드저니(Midjourney)’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결과물 완성도가 상당한 수준인데다가 사람이 직접 그린다면 숙련된 그림 작가라고 하더라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만한 결과물을 짧은 시간 안에 그려 준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놀라고 있다. 이미 유료 서비스를 시작했을 정도로 돈 내고 쓸 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 필자가 테스트를 위해 ‘미드저니(Midjourney)’에게
몇 가지 단어와 조건을 입력해 얻은 결과물 (출처_ⓒ미드저니 https://www.midjourney.com/home/)
사실 ‘미드저니’는 AI 그림 작가 분야에서는 후발 주자이다. 2021년 1월 공개된 ‘달리(DALL-E)’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두 번째 버전을 내놓았으며, 역시 조만간 유료 서비스를 예정하고 있다. ‘DALL-E’는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와 픽사 애니메이션 ‘월-E’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이름이다.
△ ‘사실적인 스타일로 우주인이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이라는 요구에 달리가 그린 결과물
(출처_DALL-E 공식 사이트 https://openai.com/dall-e-2/)
‘미드저니’와 ‘달리’ 외에도 AI 그림 작가에 대한 연구는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많이 알려진 것 만해도 10여 가지에 달한다.
2021년 국내에서는 AI 연구자 이동익씨가 이말년 작가의 <이말년 씨리즈> 그림체를 AI에게 학습시킨 사례도 있다. 이 AI에게 인물 사진을 제시하면 이말년 작가 그림체로 초상화를 그려 준다.
△ AI 연구자 이동익씨가 개발한 AI가 이말년 작가의 그림체로 그린 초상화
(출처_이동익씨 블로그 https://github.com/bryandlee/malnyun_faces)
그림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AI가 쓴 단편 소설이 일본 ‘호시 신이치’ 문학상 공모전에 출품 돼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최종 수상은 못했지만, 사람이 쓴 출품작 대다수 예선에서 탈락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1차 심사 통과도 대단한 성과다. 이처럼 이야기를 만드는 AI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간단한 기사를 작성하는 AI 기자는 이미 상용화되어 여러 언론사에서 활용하고 있다.
창작 예술 분야만큼은 AI가 쉽게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 놀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창작자에게 미래는 없다!”, “인류는 이미 졌다!”라는 우려 섞인 탄식이 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AI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의 일을 완전하게 대신하거나 인간을 뛰어 넘는 ‘특이점’은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곧 만나게 될 AI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웹툰 분야도 마찬가지다 AI는 기존에 활용되고 있는 디지털 툴 중 하나로 편입되어 작가의 작업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웹툰 제작에 활용되는 디지털 툴 현황
현재 웹툰 창작에 활용되는 디지털 툴은 소프트웨어는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셀시스)와 ‘스케치업’(ⓒ트림블), 하드웨어는 액정태블릿 ‘신티크’(ⓒ와콤)가 대표적이다.
‘포토샵’(ⓒ어도비)이 널리 사용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태생이 디지털 사진을 편집하고 가공하기 위한 용도의 도구라는 한계가 있다.
반면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는 처음부터 만화 원고 제작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 디지털 툴이다. 꾸준하게 발전을 거듭해 ‘포토샵’ 기능 중 작가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들을 대부분 현하면서 ‘포토샵’이 제공하지 않는 획기적인 기능을 대거 선보였다.
수작업으로 할 경우 최소 몇 분에서 몇 십분, 심지어 몇 시간, 며칠이 걸릴 수도 있는 작업을 간단한 조작만으로 순식간에 완료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업 부담을 줄여 주고 있다.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의 다양한 기능을 잘 조합하면 실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도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프로 작가뿐 아니라 지망생들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사용자가 만든 소재를 공유하고, 사고팔 수 있는 자체 마켓도 매우 유용하다.
액정태블릿도 비교적 저렴한 보급형이 등장하면서 기본 도구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과거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린 후 스캐너로 스캔해 후반 작업을 디지털 툴로 하거나, 판상형 태블릿을 사용하던 것에 비해 좀 더 직관적으로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
웹툰 배경에 ‘스케치업’으로 만든 3D 그래픽을 사용하는 방식도 일반화됐다.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가 ‘스케치업’으로 만든 3D 배경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사례를 제시했고, 강좌와 저서를 통해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빠르게 보급됐다.
‘스케치업’은 원래 건축인테리어를 위한 3D 그래픽 도구이다. 초보자도 쉽게 배워 그럴 듯한 3D 배경을 만들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만든 배경을 제공받거나 구입해 사용할 수 있어 작업 시간 단축과 노동 강도 완화에 획기적 기여를 하고 있다. 배경 작업이 서툰 지망생과 신인 작가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좌)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셀시스 (우) 스케치업ⓒ트림블
이종범 작가는 2019년 <닥터 프로스트> 시즌 4에서 게임 개발 엔진 ‘유니티’를 활용해 대규모 군중 장면을 표현하기도 했다. 손으로 그리면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 작업을 게임 개발 엔진을 통해 빠르고 간편하게 구현했다.
한편 1996년 출판만화 작가로 데뷔할 때부터 컴퓨터 그래픽으로 원고를 제작한 천계영 작가는 3D 그래픽 툴 ‘시네마4D’(ⓒ맥스온)로 제작한 Full-3D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음성 명령만으로 Full-3D 웹툰을 제작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Full-3D 만화 저작 툴 ‘코미Po!’(ⓒ웹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작품도 웹에서 간간히 볼 수 있다. 기본 제공되는 3D 소재를 드래그 앤 드롭 방식으로 배치해 간단하게 만화 원고 제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2021년 네이버웹툰에서 ‘웹툰 AI 페인터’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다. 선화만 그려진 그림을 AI에게 제시하고 사용자가 색을 선택한 후 원하는 곳을 지정하면 자동으로 색칠해 주는 AI이다. 조만간 채색 보조 작가 역할을 맡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웹툰 AI 페인터
(출처_ⓒ웹툰AI페인터 홈페이지 https://ai.webtoons.com/ko/painter)
2016년 바둑 두는 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의 충격 이후 막연하게 상상됐던 AI 보조 작가 초기 모델이 불과 몇 년 만에 등장했다. 웹툰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ICT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웹툰 제작의 미래
머지않아 웹툰 작가가 AI에게 소재와 아이디어를 제시한 후 AI가 만든 이야기와 컨셉 아트를 초안으로 활용한다든가, AI에게 원하는 장면을 입력한 후 AI가 그린 그림을 원고에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 AI에게 작가의 스타일과 그림체, 작업 방식을 학습 시킨 후 보조 작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작업 시간과 노동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혹시 AI에게 모든 일을 빼앗길까 염려하진 않아도 된다. ‘작가적 의도’를 바탕으로 작품을 정교하고 선명하게 기획, 구성, 연출, 표현, 편집, 마무리 하는 것은 계속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AI는 작가의 요구에 따라 작업을 도우면서 노동 강도를 완화해 주는 보조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적당한 수준의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분야는 AI가 대부분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ICT 기술에 바탕을 둔 웹툰의 디지털 툴 활용 방식은 앞으로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만화는 출판, 웹, 모바일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며 변모해 왔다. 작가도 급변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해 왔다. 새로운 미래는 웹툰 제작 현장에 이미 와 있다.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