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못 그려도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 '오토드로잉' 향한 네이버웹툰의 꿈
웹툰이 대중문화로 자리잡고 웹툰 업계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요즘, 웹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웹툰 작가 해 볼까?'
그러나 이내 그만두게 되는 것은 '그림도 못 그리는데 무슨 웹툰 작가......'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림을 못 그려도 웹툰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꿈을 네이버웹툰이 주도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웹툰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인공지능(AI) 학회인 ‘국제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컨퍼런스 학술대회(약칭 CVPR)에서 논문 2건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네이버웹툰은 자체 개발한 기술 2가지를 소개했다. 바로 ‘자동 배경 분리’ 기술과 ‘웹툰미(WebtoonME)’이다. 이들이 어떤 기술인지, 이들 기술 개발을 통해 네이버웹툰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어떤 미래가 도래할지 짚어 보고자 한다.
자동 배경 분리와 웹툰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먼저 ‘자동 배경 분리’ 기술은 대상 이미지에서 배경과 분리된 피사체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이번에 발표한 논문이 인정받은 것은 피사체와 배경 분리 공정을 효율적으로 개선하여 공정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것이 인정받았다. 자동 배경 분리 기술을 이용하면 클릭 몇 번으로 대상 이미지에서 피사체만 빠르게 분리해 낼 수 있다.
△ 2022 CVPR에서 발표한 ‘자동 배경 분리’ 기술 논문의 요약 포스터 (출처_네이버클로바)
다음으로 ‘웹툰미’ 기술은 사진, 영상 등을 웹툰 그림처럼 바꿔 주는 기술로, 사람의 얼굴을 포함해 신체 부위뿐만 아니라 배경이나 소품도 웹툰 그림처럼 바꿀 수 있다. A웹툰 그림체, B웹툰 그림체, C웹툰 그림체로 고유의 그림체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웹툰미는 독자가 자기 얼굴 사진을 찍으면 웹툰 화풍으로 바꿔 줬던 하일권 작가의 인터랙티브 웹툰 <마주쳤다>에 쓰인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웹툰미 기술은 현재로서는 비교적 실사체에 가까운 <여신강림> 그림체로만 제공되는 점, 눈의 움직임 등 표정 변화가 세심하게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점 등의 한계가 있지만, 격한 움직임도 시간차 없이 거의 즉각적으로 트래킹이 되는 등 놀라운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지난 6월에는 라이브 커머스에서 진행자가 웹툰 그림처럼 바뀐 모습으로 등장해 눈길을 끄는 등, 웹툰미 기술을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 웹툰미 기술을 활용한 라이브 커머스 장면 (출처_깃헙 웹툰미)
시선이 허공을 향하거나 윙크는 반영되지 않는 모습. 하지만 배경도 웹툰 그림처럼 펜선처리가 되어 있는 등 기술이 디테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동 배경 분리 기술과 웹툰미 기술이 이전에 전혀 없었던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어도비는 포토샵에서 AI 기술을 활용한 배경 제거 기능을 제공하고 있고, 틱톡과 스노우에서는 사진을 만화 그림체로 바꿔 주는 필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네이버웹툰이 개발한 이 기술들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이 기술들을 네이버웹툰이 직접 개발하여, ‘웹툰 제작에 활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동 배경 분리 기술과 웹툰미 기술을 합쳐서 생각해 보자. 이 두 기술을 함께 활용하면 이미지에서 배경을 빠르게 없앨 수 있고, 인물을 웹툰 그림체로 손쉽게 바꿀 수 있다. 즉, 사진만으로 웹툰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웹툰에 그리고 싶은 캐릭터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웹툰 그림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들 기술을 활용하면 그림을 못 그려도, 심지어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웹툰을 만들 수 있다.
△ 웹툰 AI 페인터 (출처_ https://ai.webtoons.com/ko/painter)
궁극의 목표는 오토드로잉
네이버웹툰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AI 기술을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10월에는 클릭 한 번이면 1초 만에 명암까지 자연스럽게 채색해 주는 ‘웹툰 AI 페인터’ 베타 버전을 공개했으며, 현재 웹툰 속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용자 식별 정보를 심어 불법 유통되는 웹툰을 추적하는 ‘툰레이더’ 기술을 활용 중이다. 최근에는 웹툰을 볼 때 해당 웹툰과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골라 재생해 주는 기술의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다.
네이버웹툰이 이렇게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웹툰은 현재 ‘웹툰 전용 편집 도구를 개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는 작년 한 북미 컨퍼런스에 참여해 ‘창작의 허들을 낮추는 게 목표’라고 언급한 바 있다. 네이버웹툰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오토드로잉' 기술의 구현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오토드로잉 기술을 통해 누구나 웹툰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창작에 뛰어들게끔 해 더 많고 다양한 IP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결국 자동 채색을 포함해 자동 배경 분리와 웹툰미 기술은 ‘오토드로잉’ 기술의 일부이고, 이들 기술 개발은 '오토드로잉' 구현을 위한 과정 중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토드로잉’이 구현된 미래, 희망적인가
네이버웹툰이 꿈꾸는 ‘오토드로잉’ 기술이 수준급으로 구현된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네이버웹툰은 이와 같은 기술 개발의 이유로 ‘작품의 다양성’을 들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웹툰 창작자가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웹툰으로 풀어 낼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바람직한 미래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좀 더 직관적으로 기대되는 효과는 작가들의 노동시간 단축이다. 여전히 웹툰 작가들은 평균 주 6일, 하루 10시간이라는 장기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웹툰 작가의 살인적인 노동량은 스토리 구성과 콘티 작업도 있지만, 대부분 스케치-펜선-채색-후보정으로 이루어지는 그림 작업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알아서 그려질’ 정도의 기술이 구현된 미래라면 작가들의 노동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면만 기대되는 것은 아니다. 예상해 볼 수 있는 ‘절망편’ 미래도 있다. 스토리를 짜지 않고 그림만 그리는 그림 작가들의 입지가 좁아지다 못해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창작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어도 경쟁은 심화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간연재가 아니라 일간연재하는 작품이 등장하는 것이다. 특색있는 그림체가 더더욱 사라지고 '오토드로잉' 그림체로 그림체가 평준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오토드로잉’ 기술을 네이버웹툰만이 독점해 타 플랫폼 연재 작가들은 여전히 하루 10시간씩 죽어라 그림을 그려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창작의 허들을 낮추겠다’는 발언과 도전만화 시스템을 전 세계에 도입해 꾸준히 아마추어들을 양성해 내려는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와 같은 걱정들을 하기에는 아직 일러 보인다. 지금까지 네이버웹툰이 발표한 AI 기술들이 놀라움을 주기엔 충분하지만, 해당 기술들을 웹툰 창작에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아직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웹툰은 스튜디오 분업체제로 더욱 정교하고 퀄리티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AI 기술로만 독자들의 만족시킬 작품을 내 놓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AI 기술 발전 속도가 날로 빨라지고 있으니, 또 새롭게 개발될 AI 기술로 웹툰계가 어떻게 바뀌어 갈지 계속 주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