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만화축제 전문가 집담회
: K-컬처의 중심, 한국만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한다.
올해로 제25회를 맞은 부천국제만화축제는 3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로 개최된 만큼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꾸며졌다. 각종 마켓과 전시, 시상식 등을 즐길 수 있게 자리가 마련된 가운데 업계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만화·웹툰계의 현안을 심도 깊게 다루는 컨퍼런스도 개최되었다. 총 세 개 세션으로 구성된 집담회는 10월 1일 토요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지하1층 웹툰캠퍼스에서 오후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었다.
집담회 1 : 이세계로의 출발 - Come together!
먼저 집담회의 첫 포문을 연 것은 ‘이세계로의 출발’이었다.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이 모더레이터로서 진행을 맡고, <공포의 외인구단> 등 한국 만화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만화가 이현세, 방송산업 OTT 전문가인 유건식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플랫폼 설계자인 이광용 레드브릭 부사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한국 만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짚어 보면서 OTT, 혹은 그 너머 메타버스, NFT로까지 펼쳐지는 만화의 확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먼저 만화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유건식 소장은 만화가 영상화의 원작 소스로 각광받는 이유로 다양한 소재와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있는 점, 그리고 미리 형상화가 되어 있어 콘티 작업이 간편한 점 등을 꼽았다. 특히 OTT에서 만화를 주목하는 이유로는 넷플릭스의 니치 마켓 타겟팅을 언급했다. 로맨스가 주류인 기존 한국 드라마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새로운 콘텐츠를 찾다가 청소년 이용불가의 장르물에 주목하고, 그에 맞는 좋은 스토리를 가진 것이 웹툰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현세 작가도 웹툰의 경쟁력은 ‘자유로움’이라며 공중파에 비해 자유로운 OTT는 그런 점에서 웹툰과 닮았다고 덧붙였다.
이광용 레드브릭 부사장은 웹툰이 만화의 진입장벽을 낮춘 것처럼 크리에이터들이 주역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자사 서비스를 소개했다. 특히 이현세 작가에게 <떠돌이 까치> 등 이현세 작가의 작품을 메타버스 세계에 구현하고 싶다며 소망을 전했다.
메타버스와 AI로 화제가 전환되자 이현세 작가는 후대에 ‘이현세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이런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를 보여 줄 수 있는 이현세 AI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의 그림 AI의 발전 속도를 보면서 예술가로서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만화는 언제나 앞서간다며 어떻게 하면 인간성을 잃지 않는 세상이 계속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세 작가가 과거 <천국의 신화>로 국가 검열에 시달렸던 이야기부터 현재와 미래의 NFT, 메타버스, AI까지, 한국 만화가 가진 확장성이라는 힘을 되짚어 보며 첫 번째 집담회가 마무리되었다.
집담회 2 : 스튜디오 창작을 말하다
이어서 2시부터는 현재 웹툰 제작 생태계에서 결코 빼 놓고 말할 수 없는 스튜디오 창작에 대해 이야기가 펼쳐졌다. 만화연구가인 장상용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이 모더레이터로, 웹툰 스튜디오 현직에서 직접 실무를 맡고 있는 이훈영 툰플러스 대표와 김지연 클로버툰 대표와 함께 그리고 이재민 만화평론가가 스튜디오 창작의 여러 현안을 짚어 보았다.
먼저 스튜디오 시스템은 웹툰 산업이 발전하면서 웹툰 퀄리티가 올라가고, 웹툰 제작이 전문화, 분업화되면서 탄생한 것이라고 이훈영 대표가 설명했다. 웹툰작가의 과도한 노동량과 스트레스가 자주 문제로 지적되는데, 스튜디오 체제에서는 노동량의 합리적인 분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분업이 잘 조율되어 있다면 스튜디오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화실 시스템과 스튜디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직접 화실 문하생을 경험해 본 김지연 대표가 답했다. 도제식으로 들어가 처음부터 배우는 화실과 달리 스튜디오는 4대 보험이 적용될 뿐만 아니라 실력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고, 최근에는 저작권 배분에 대한 논의도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민 평론가는 ‘책임을 누가 지느냐의 차이’라며 화실은 작가가 권리와 수입을 다 가져가는 대신 책임도 작가가 지지만, 스튜디오는 회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또한 스튜디오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협업이기 때문에 그림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이라고 양 대표들이 입을 모아 강조했다. 특히 스튜디오는 아무래도 상업적인 작품을 하기 때문에 작품관이 뚜렷하고 작가 성향이 있는 경우는 스튜디오에 잘 맞지 않을 수 있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스튜디오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한 반동으로 인해 향후 2~3년간은 스튜디오 암흑기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의견도 있는 반면, 유행만을 좇는 노블코믹스가 아닌 창작 중심의 스튜디오가 나오면 또 달라지지 않을지 긍정적으로 미래를 점치기도 하며 두 번째 집담회가 마무리되었다.
집담회 3 : OTT 속 웹툰을 말하다
마지막으로는 웹툰이 영상화의 원천 IP로 각광받는 지금, OTT 관계자들을 웹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라마 업계인들에게 듣는 세 번째 집담회가 진행되었다. 소개와 달리 현장에서는 <시맨틱 에러>를 맡은 김수정 감독이 모더레이터로 나서고, 최근 웹툰 원작 드라마 <아직 낫서른>을 담당한 오기환 감독,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모범택시> 등을 제작한 김영배 그룹에이트 콘텐츠제작본부장, 그리고 한국일보에서 10년간 문화부를 담당한 양승준 기자가 함께했다.
먼저 웹툰 원작 드라마 <모범택시>에 대해 김영배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모범택시>는 한줄 로그라인이 강력해서 선택하였으며, ‘왜 이들이 사적 복수를 하게 되었나’에 대해 살을 붙이는 데에 각색을 주력했다고 밝혔다. 드라마에는 이처럼 ‘보편적인 가치’를 잘 녹여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웹툰 원작 드라마가 국내를 물론 해외에서까지 각광받는 이유로 양승준 기자는 ‘낯선 소재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꼽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를 보면 좀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학교라는 보편적인 공간에서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 장르물인 게 아니라 시대성을 함께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전 세계에 통한 요인이라는 의견을 냈다.
덧붙여 <술꾼도시여자들>, <닭강정>, <아이쇼핑> 등 최근 드라마화되었거나 예정 중인 웹툰 원작들을 언급하며 웹툰과 OTT는 ‘비주류적인 소재를 경계 없이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차별성이 있다’며 감독들은 웹툰과 OTT의 궁합이 좋다는 것을 입을 모아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다양하고 유의미한 질문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웹툰계 현안에 대한 참여자들의 관심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약 한 시간 정도 더 이어진 질의응답과 함께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 집담회가 막을 내렸다. 현재 한국 만화계에서 가장 빠르고 뜨거운 현안에 대해 업계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