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이:세계, 2022 부천국제만화축제, 다녀왔습니다.
코로나19로 굳게 닫혔던 축제의 문이 다시 열렸다. 2020년과 2021년, 만화박물관 일대에서 열리던 만화인의 축제,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으로 개최되면서 직접 만날 수 없었지만, 올해는 직접 만나 축제를 함께 할 수 있었다.
3년 만에 열린 대면 축제의 열기는 뜨거웠다. 쾌청한 가을 날씨에 전국 각지에서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모여 행사를 즐겼고, 가족단위 관람객들도 만날 수 있었다. 푸드트럭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붐볐다. 올해 부천국제만화축제의 테마는 “이:세계”였다. 웹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세계물은 물론, 우리가 그리워하던 ‘이 세계’의 모습을 온전히 다시 찾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지하주차장 열어 만든 부스
이전까지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참가자 부스는 소위 ‘굼벵이관’처럼 가설 대형 천막에서 열렸다. 그러다 보니 관람객과 참가자들이 땡볕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갈 곳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지하주차장 1~2층을 비우고 그 공간을 활용해, 1층에는 개인 작가 참가자들의 부스가, 지하 2층에는 기업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별도의 조명을 설치해 야외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려고 유도했다는 게 눈에 띄었다.
넓은 공간과 별도로 마련된 휴게공간은 코스튬 플레이어들이나 관람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부스는 작가들이 자리를 지키며 독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다시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이 뜻깊다.
지하 2층에는 기업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띈 것은 2층에 내려가자마자 보이는 웹툰 플랫폼 만화경의 부스였다. 만화경에서 연재 중인 작품 <중간계 사우나>를 주제로 부스를 꾸몄는데, 최근 유행하고 있는 네 컷으로 인쇄되어 만날 수 있는 즉석사진 기계를 설치해 줄이 끊이지 않았다. 코스튬 플레이어와 일반 관람객 모두 즉석사진 촬영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이벤트에 참여했다.
다만, 원래 전시나 인원 수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환기나 온도조절 문제가 있어 향후에도 이 공간을 사용한다면 특히 지하 2층의 환풍과 에어컨디셔닝을 살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선을 더 많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부스를 만날 수 있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원자폭탄’부터 ‘미래의 골동품가게’까지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는 부천만화대상 수상작 전이 함께 열린다. 이전에도 전시는 열렸지만,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즐길 수 있는 전시여서 의미 있었다. 박물관 1층에서는 해외작품상을 수상한 디디에 알칸트, 로랑 프레데릭-볼레, 드니 로디에가 함께 만든 <원자폭탄>과 이명재 작가의 <위아 더 좀비> 전시가 진행됐다.
<원자폭탄> 전시는 압도적인 비주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만화’를 새롭고 낯선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책 안에서 보던 그림과 스케일이 다른 ‘작품’을 마주한 독자들은 찬찬히 작품을 둘러보며 다음 전시로 향했다.
이명재 작가의 <위아 더 좀비>는 전시에 들어가기 전 플래시를 받고 전시장 안에 진입해 작품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방식으로, 일종의 체험형 전시였다.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재치 있는 개그 센스, 날카로운 사회 풍자로 주목받은 이명재 작가의 작품에 어울리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앞선 전시와 ‘경험’의 차이가 큰데도 불구하고 공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 독자들이 <원자폭탄>이 주는 경험에서 벗어날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꼽힌다.
부천만화대상의 대상과 독자인기상 수상작인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가게>는 2층에 마련된 별도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미래의 골동품가게>를 테마로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 작품 속 다양한 주제들을 웹툰이 연재되는 방식인 ‘스크롤’에 초점을 맞춰 살펴볼 수 있었다.
입장하면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된 전시공간을 차근차근 돌아볼 수 있도록 짜여진 동선은 작품이 가진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다만 전시가 2층에 위치하고 있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야만 전시를 볼 수 있어 상대적으로 한산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꼽힌다. 공간의 한계가 있었겠으나, 대상과 함께 ‘독자인기상’을 수상한 작품이 독자와 더 만나기 쉽게 위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친환경, 로컬 신경 쓴 축제
오랜만에 개최된 축제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 붐빈다는 점도 꽤나 의미 있었다. 더불어 참가자 기념품이 꽤나 의미 있었다. 그동안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참가자들에게 증정하는 기념품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휴대용 선풍기, 보조 배터리 등과 웹툰과 출판만화를 소재로 한 기념품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천에 처음 생겼다는 제로웨이스트 기업 산제로상점의 샴푸바와 린스바를 린넨 천에 포장해 제공했다. 또한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친환경 클렌저가 함께 재활용이 가능한 장바구니에 담겨 부천만화영상진흥원 마스코트 ‘만덕이’ 인형과 함께 제공됐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친환경과 로컬의 의미를 담았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다만, 현장에서 가장 많은 소비가 일어나는 푸드트럭 등에서는 여전히 일회용품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다회용기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비닐 사용이나 플라스틱 사용 대신 종이, 나무 등의 친환경 소재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이 함께 연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부천국제만화축제는 흥겨움과 즐거움도, 아쉬움도 남겼다. 하지만 다시 만난 만큼,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내년에는 ‘이: 세계’가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독자들을 만화의 즐거움으로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