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영원한 긴 꼬리 호랑이 '김정기' 작가를 돌아보며

'라이브 드로잉' 대가 故 김정기 작가를 기억하며, 김정기 작가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2022-12-02 이세인

영원한 긴 꼬리 호랑이 '김정기' 작가를 돌아보며

△ 김정기의 <디아더사이드 The Other Side>, (출처_롯데뮤지엄)

필자가 기억하는 고 김정기 작가의 첫 이미지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TLT(Tiger the Long Tail)’라는 작품이다. '세계정복'이라는 포부를 외치지만 주인공 긴 꼬리 호랑이 강태호는 소심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롱 테일(the Long Tail)은 '롱 테일 법칙'에서 따온 것으로, 경영에서 상품 수요곡선의 변화를 뜻한다. 작품은 경영을 소재로 정글과 같은 사회에 갓 진출한 강태호가 진정으로 긴 꼬리 호랑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연재 당시 사회생활로 힘들었던 필자에게 TLT는 ‘미생’ 이전으로 경험한 사회 초년생의 지침서였다.

△ 소장 중인 TLT 단행본

필자의 마음속에 김정기 작가가 TLT로 삶의 지침서로 각인되었다면, 대한민국에서 김정기 작가는 드로잉 아티스트로 그의 존재감을 보여 주었다.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에서 보여 준 라이브 드로잉은 9년 지난 지금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 감상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라이브 드로잉에서 보여 준 그의 모습은 많은 작가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그의 재능을 부러워하였지만, 정작 본인은 재능 이전에 '그리고 또 그리는' 노력의 산물임을 강조하였다. 그리는 것을 좋아하며,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노력했던 선배 작가의 발자취를 다시금 되새겨 보고자 한다.

* 작품의 발자취

김정기 작가는 2019년까지 열심히 달려오며 매우 지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코로나로 해외 일정들이 모두 취소되어 개인 작업들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계속 매월 일이 생기며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가운데 그동안 자신이 그렸던 자료들 중 약 2,000점을 모아 한자리에 전시한 대규모 회고전인 김정기의 <디아더사이드 The Other Side>가 2021년 4월부터 7월까지 롯데뮤지엄에서 펼쳐졌다. 해당 전시에는 그의 모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던 만큼 과거 마블과 DC 코믹스와 작업했던 커버아트를 포함하여,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블리쟈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등 그 동안의 그의 작업들이 총망라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 김정기의 <디아더사이드 The Other Side> 롯데뮤지엄 상단 이미지

대중들에게 김정기 작가를 라이브 드로잉 작가로 인식 시켜 준 계기를 2011년 부천만화축제(BICOF) 중 선보인 드로잉 영상으로 뽑는다. 이후 그의 라이브 드로잉을 활용한 다양한 CF와 콜라보레이션을 찾아 볼 수 있다.

△ 김정기 Kim Jung Gi 2011 Bicof 중

김정기 작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인기 게임들과 함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였다.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오버워치',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 그리고 넥슨의 '던전 앤 파이터'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 김정기 작가의 게임과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이외에도 3.1절과 공군 창군 70주년 행사 등 뜻 깊은 날을 맞이한 콜라보레이션들도 진행하였다.

△ 6 좌) 3.1절, 우) 공군 찰성 70주년 행사 콜라보레이션

*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는

1975년생인 김정기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인상 깊었던 만화 작품으로 토리야마 아키라의 ‘닥터 슬럼프’를 꼽았다. 김정기 작가는 과거 회상에서 유치원에서 보았던 스케치북 표지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닥터 슬럼프’라는 작품이었고, 그 그림을 보고 "나도 저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만화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밝혔다.

△ 토리야마 아키라의 <닥터 슬럼프> 완전판 1권 표지, (출처_알라딘)

하지만 당시 만화가는 '돈이 안 되고, 직업으로 불안정하다'는 생각으로 주변에서 반대가 심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릴 수 있는 모든 곳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깍두기 공책의 양면을 빽빽하게 그림으로 채워 나갔으며, 광고 전단지, 핸드폰 요금 영수증 등 종이로 되어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는 그림을 그렸다. 김정기 작가는 자신의 그림 실력 이면에는 항상 이런 노력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며, 노력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 화장지와 캘린더도 자유롭게 - 김정기 작가 EBS 인터뷰 중

*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그리지 않기 위해

김정기 작가가 후배들에게 강조한 또 다른 부분이 있다면 바로 꾸준한 자료 수집과 관찰이다. 그는 항상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사진집, 동양화, 서양화 등 다양한 여러 이미지들을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그리게 된다'라고 조언하였다. 그리고 관찰한 내용과 수집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시금 그리고 또 그려 나갔다.

* 후배 양성을 위한 노력들

김정기 작가는 후배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국내 미술학원 원장으로도 근무하며 노력하였지만 작가로서 활동이 많아져 결국 내려놓는다. 그 이후 해외에서 활동하며 국내외 강의(lectures) 시장의 차이를 몸소 느끼게 된다. 김정기 작가는 국내 시장의 협소함을 항상 아쉬워하며, 유럽과 미국의 활성화되어 있는 시장에 대해 부러워했다. 이런 시장이 유료, 무료 가리지 않고 지역적으로 잘 활성화되어 있으며, 다양한 연령대들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을 통해 최대한 많은 영상들을 남기려 하였으며, 가능한 국내 만화 행사들에 참여하여 후배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였다.

* 해외 활동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김정기 작가의 해외에서의 활동은 그가 다시금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평소 미국의 20세기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노먼 퍼시벌 록웰(Norman Percevel Rockwell)'를 좋아했던 김정기 작가는 그의 도서를 매일 들고 다닐 정도로 정독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외 작가의 작품을 탐독했던 그는 해외에서 활동할 때 '리차드 코벤(Richard Corben)', '밀로 마나라 (Milo Manara)', '테라다 카츠야(Terada Katsuya)' 등 많은 상업 일러스트 작가들을 좋아하며, 그들의 작품들을 탐구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좋아하는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 나갔다.

△ 테라다 카츠야와 김정기 작가의 라이브 드로잉

* 정글 같은 삶 속을 지나 편하게 영면하시길

2022년 10월 3일 유럽 일정을 마치고 뉴욕으로 이동하던 도중 심장에 이상을 느껴 병원으로 이동, 수술과 치료를 했으나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해당 소식에 많은 팬들과 업계 종사자들은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 슈퍼애니 공지사항 내용 중

단행본 TLT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은 "세상은 아마조네스입니다"라고 외치며 의지를 다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시즌2를 완결하며 다음 이야기가 7권으로 이어진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해당 작품의 팬으로써 그 뒷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김정기 작가가 펼쳐 놓은 길을 걷는 후배 작가들과 종사자들은 그의 만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