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2022년 상반기 웹툰계
‘다사다난’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한 해를 보내면서 돌아보면 이 말만큼 잘 어울리는 단어도 드물다. 2020년 이후 지난 2년이 그랬듯이, 2022년 역시 우리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이 가득했다. 2022년을 돌아보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기획, 첫 번째로 상반기의 키워드를 찾아 보도록 하자.
1) 구글 인앱결제 강제 : 방통위는 아직까지 묵묵부답
2021년 대한민국 국회는 전세계 최초로 플랫폼 기업이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소위 “구글갑질방지법”, 즉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애플과 소송전을 하고 있던 에픽게임즈의 CEO 닉 스위니는 “나는 한국인”이라며 거대 플랫폼의 일방적 수수료 부과를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은 2022년 4월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인앱결제 의무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구글이 제공하는 ‘개발자 제공 인앱결제’와 ‘구글 인앱결제’라는 선택지를 제공했으니 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구글은 주요 사업자들에게 6월 1일을 기점으로 인앱결제와 개발자 제공 인앱결제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구글 플레이스토어 입점을 취소하고 다운로드를 받을 수 없게 만들겠다는 강수를 두었다. 이 문제에 국회는 물론,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가 도마에 올랐다. 방통위는 사실조사 이후 법적 조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8월 밝혔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구글의 개발자 제공 인앱결제는 매출의 최대 26%, 인앱결제는 매출의 최대 30% 수수료를 요구한다. 따라서 웹툰업계 역시 쿠키, 캐시, 코인 등의 상품 가격 인상이 부득이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를 비롯한 콘텐츠 사업자들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구매 가격을 20%가량 인상하는 등, 구글의 일방적인 요구에 방통위가 미적지근한 대처를 보이면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에서는 내년에도 구글 인앱결제 강제 문제가 다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법안 개정이나 별도의 대책 마련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콘텐츠 사업자와 구글-애플 등 대형 사업자 이슈는 망사용료 이슈와도 연결되어 있어 내년에는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2) 네이버-카카오, 이번엔 유럽에서 붙는다
네이버웹툰은 2022년 3월 말 프랑스에 ‘웹툰 EU’를 설립하고 글로벌 사업 거점을 추가해 아시아(한국), 북미(미국), 유럽(프랑스)를 축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네이버웹툰은 2019년 프랑스와 스페인 서비스를 시작으로 2021년 독일 서비스를 시작하며 유럽 3개국에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향후 추가될 국가들의 서비스를 총괄할 본부 개념으로 프랑스에 가칭 ‘웹툰 EU’를 설립한 것이다.
또한 카카오의 픽코마 역시 일본을 넘어 2022년 3월 프랑스에 진출했다.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웹툰은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진출한 바 있지만, 애초에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는 픽코마가 해외 진출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프랑스는 대표적인 유럽의 만화 강국으로 손꼽히며, 독자적인 만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또한 키다리스튜디오가 인수한 델리툰, 웹툰팩토리 등 현지에서 생겨난 웹툰 플랫폼도 있을 정도로 웹툰에 대한 관심 역시 높은 편이다. 네이버웹툰과 픽코마가 프랑스를 핵심 국가로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것으로 풀이된다.
2022년 본격 거점을 수립한 네이버웹툰과 막 진출한 픽코마는 아직 겉으로 드러나는 경쟁을 보여 주고 있지는 않지만, 다가오는 2023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유럽시장을 가져오기 위한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네이버웹툰은 한국 리더를 담당하던 김여정 리더를 유럽 지부장으로 임명하는 등 주요 인사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는가 하면, 전자상거래 등 네이버와 카카오가 미래 전략으로 점찍은 사업의 유럽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점 등이 카카오와 네이버의 본격적인 유럽 격돌을 점치게 한다.
웹툰의 관점에선 태국-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 시장, 일본 시장과 북미 시장에 이은 유럽 시장으로 ‘글로벌 진출’이 이제는 정점에 달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웹툰 서비스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원년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네이버웹툰이 해외진출 원년을 선언한 지 8년 만이다.
3) 고금리+킹달러, 상장 철회와 서비스 연기 줄이어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첫 폭탄을 맞은 것은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는 실적발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비스 중단, 코로나19 상황 완화 등으로 인해 순 가입자 수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주가가 절반 가까이 폭락하는 ‘사건’을 겪었다.
그러면서 시작된 미국 연준(FED)의 본격적인 금리 인상 기조가 겹쳤다. 미국 연준은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 즉 0.75%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4% 금리 시대를 열었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닥쳐온 무지막지한 금리인상은 말 그대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세계를 열어 주었다.
갑자기 웬 세계 경제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이런 시장 상황이 웹툰계를 비롯한 콘텐츠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먼저 구글 인앱결제 의무화의 대항마로 떠오른 원스토어의 상장이 철회됐다. 원스토어는 2022년 5월 상장을 예고하며 ‘상장 철회 계획 없다’고 공언한지 이틀 만인 5월 11일 상장을 철회했다. 제대로 기업 가치를 평가받을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반기 웹툰 서비스 론칭을 예고했던 왓챠 역시 큰 부침을 겪었다. 투자를 받아 기업공개와 상장을 준비 중이던 왓챠는 갑자기 인상된 금리 앞에 투자처를 잃고 매각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이런 불안을 겪으면서 대규모 인력 이동과 해고까지 이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에 상반기 예고됐던 웹툰 론칭은 10월까지 미뤄지면서 반년 가까운 연기를 겪어야 했다.
뒤이어 웹툰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밀리의 서재 역시 하반기 상장을 예고하고 ‘철회는 절대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원스토어와 비슷하게 상장을 철회하며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때 재상장하겠다’고 밝혔다.
금리가 높아지면 예금이나 채권 등 안전자산의 수익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굳이 위험성이 높은 주식시장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투자자가 줄기 때문에 기업 가치는 떨어지게 되고, 당장 투자가 필요한 곳이 아니라면 상장을 철회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된다. 이 흐름이 웹툰계에도 영향을 주게 된 셈이다. 특히 콘텐츠 분야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대표적인 주자로 여겨지므로, 당연히 투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4) 불법웹툰 근절 독자 캠페인
불법웹툰 근절은 웹툰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작가들이 이야기해도 독자가 바뀌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는 작가들의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직접 나선 프로젝트가 있다.
대학생 연합동아리 AD POWER 소속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PROJECT WEB”은 바로 이 문제를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해 모인 대학생 독자들의 자체적인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정식 플랫폼 이용’을 촉구하기 위해 현재 유행하는 대표적 장르인 ‘회빙환’을 소재로 일러스트를 만들고, 제목을 붙여 ‘주인공이 회귀, 빙의, 환생하지 못한 이유는 당신이 불법으로 작품을 보았기 때문’ 이라는 카피로 2호선 주요 역사에 광고를 게재했다.
텀블벅 크라우드펀딩으로 진행된 이번 캠페인은 그동안 독자 참여를 쉽게 이끌어 내지 못했던 불법웹툰 캠페인 방식을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독자들이 직접 작가들과 함께 한다는 메시지를 내 놓은 것으로, 비단 불법웹툰 사용자뿐 아니라 저작권 당국에도 행동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불법 감상이 단순히 ‘불법으로 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 성매매, 마약, 불법도박 등 다른 범죄로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국의 발 빠른 대처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상반기에 이루어진 독자들의 이 광고 캠페인은 불법웹툰 대응 역사에 방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5) OTT는 뜨거웠고, 게임은 차가웠다
2022년 역시 IP확장은 아주 뜨거웠다. 상반기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그 뒤를 <사내 맞선>이 이어받았다. OTT를 중심으로 한 영상화는 이제 글로벌에서도 검증되었다. 전 세계를 뒤흔든 시리즈 중 웹툰 원작을 찾아보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됐고, 2022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젖힌 웹툰은 스마트폰 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매체 중 하나인 게임에서는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4월에 오픈하거나, 오픈을 예고한 게임만 5종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 <신의 탑 M>을 제외하면 매출 순위 상위권을 기록한 작품은 찾기 힘들다.
IP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웹툰 원작 게임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게이머들에게 웹툰 원작 게임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하반기에 개최된 지스타에서 <나 혼자만 레벨업: ARISE>가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대형 게임들이 차차 제작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게이머들의 마음을 흔들 작품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영상물 역시 최초에는 웹툰과 별개로 제작했다가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았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게임 역시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이다.
→이어서, '키워드로 보는 2022년 하반기 웹툰계'를 살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