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OTT 시장이 웹툰을 보는 시선
2022년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불확실성’의 한 해였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전례없는 호황기를 맞은 콘텐츠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네이버웹툰은 2019년 실적이 1,610억 원에서 2020년 2,460억 원으로 52% 증가했고, 카카오페이지는 2019년 2,970억 원에서 5,280억 원으로 77% 성장했다. 물론 웹툰은 그 이전에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이 속도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
코로나19로 인해 갑작스러운 성장기를 맞은 건 웹툰뿐만이 아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웹툰의 파트너로 자리를 잡은 OTT 역시 크게 성장했다. 2019년 1분기 1억 4,890만 명이었던 유료 구독자 수는 2020년 1억 8,290만 명으로 3천 4백만 명 가까이 늘었고, 2021년 1분기에는 2억 명을 돌파하며 명실상부 최대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에 미리 찾아온 겨울
2020년과 2021년, 2년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업계에는 엄청난 호황의 시기였다. 이렇게 성장이 계속되었으면 좋았겠지만, 2022년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2022년 시작을 알린 넷플릭스의 1분기 실적발표는 그야말로 다가올 겨울을 알리는 듯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넷플릭스는 러시아 서비스를 종료했고, 때마침 코로나19 역시 일상 속에 녹아들면서 ‘비대면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 넷플릭스 2022년 주가 현황 (출처_구글)
넷플릭스는 1분기 실적발표에서 11년 만에 처음으로 순 가입자가 줄어들었다고 알렸고, 그 날부터 넷플릭스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2분기 실적발표에서도 연달아 순 가입자가 감소했다. 여기에 고금리로 이어지는 시장 상황이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시장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어려움은 곧 다양한 작품들의 제작 취소로 이어졌다. 3월과 4월에만 7개의 시리즈가 취소를 알렸고, 40여개 시리즈의 취소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많이 만드는 만큼 원래 취소도 많았던 것이 넷플릭스 시리즈라지만, ‘제작비’가 이유였던 적은 드물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넷플릭스는 5,500원짜리 광고 구독 서비스를 내 놓으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다행히 3분기에는 순수 가입자 240만 명이 늘어나며 안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불안한 건, 넷플릭스만이 아니다
이렇게 불안을 겪고 있는 건 비단 넷플릭스만이 아니다.
‘왓챠 2.0’을 선언하며 OTT를 넘어선 OTT를 예고했던 왓챠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금리와 투자 위축으로 매각설까지 나왔고, 내부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기도 했다. 그 덕에 4월로 예고했던 웹툰은 10월이 되어서야 시작했고, 오리지널 시리즈와 제대로 호응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또, KT의 시즌은 전략적 합병을 목적으로 CJ의 티빙(TVING)과 합병했다. 스마트폰 시대에 업계 2위를 다투는 통신사가 보유한 OTT마저도 콘텐츠 제작사와 합병해야 하는 상황은 업계에 꽤나 충격을 줬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신호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콘텐츠가 키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 역시 꾸준히 가입자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마블 페이즈4의 시리즈들과 영화가 예상보다 크게 흥행하지 못하면서 201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던 밥 아이거를 3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불러오기도 했다. HBO MAX는 디스커버리와 합병한 이후 휘청거리고 있고, DC와의 연결고리를 전면 재설정하는 등 내부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역시 <힘의 반지> 시리즈가 생각만큼 흥행하지 못해 골치를 썩고 있다.
‘사람들이 찾는 콘텐츠’가 열쇠다
이렇게 OTT들은 불안한 2022년을 보냈다. OTT 시장은 이제 큰 투자를 통해 가입자를 무한정 늘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콘텐츠 시장에선 ‘사람들이 찾을 만큼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진리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말은 쉽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면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찾고, 그러면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기는 정말 너무나 어렵다. 특히 모두의 입맛에 맞는 만능 콘텐츠는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리스크는 줄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웹툰이 가진 강점으로 이어진다. 2023년 방영이나 제작이 확정된 웹툰 원작 작품은 넷플릭스에만 11작품이다. 여기에는 팬들이 오래도록 기다려 온 <살인자ㅇ난감>이나 <이두나!>처럼 화제작도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TVING과 웨이브 등 국내 OTT를 포함하면 작품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만능 콘텐츠’가 없기 때문에 미리 실험과 확인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이 웹툰이 가진 강점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단순한, 그렇지만 직설적인 로그라인으로 드라마 등으로 컨버전되었을 때 변환이 용이하다는 것도 웹툰이 가진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시리즈,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컨버전이 용이하다는 점도 있다.
불확실성은 투자하는 입장에선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지금 시장에선 웹툰은 OTT를 비롯한 콘텐츠 시장이 먼저 테스트해볼 수 있는 확실한 카드 중 하나다. 실패하더라도 드라마 등에 비해 부담이 적고, 성공한 콘텐츠를 컨버전해 제작하는 것도 검증된 방식이다.
물론, 웹툰 원작이 만능 카드는 아니다. 하지만 이미 까다로운 독자들의 눈을 거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검증된 콘텐츠라는 의미를 가진다. 비단 ‘1위 작품’이 아니라, 연재가 되었다는 것은 일련의 검증 프로세스를 거쳤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시스템이 웹툰이 가진 타 콘텐츠 대비 가장 강력한 강점이다.
OTT는 웹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2023년에도 여전히 OTT 입장에서 웹툰은 ‘가능성의 바다’일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또 그 안에서 히트작을 찾아내기 위한 분주한 IP 확보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2023년에 보게 될 작품은 오래 전부터 준비되었겠지만, 2023년에 새롭게 쓰일 계약서는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이 된다. 이 계약은 2023년에도 여전히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위기 상황이라고 손을 놓고 있으면 그대로 가라앉는 것이 콘텐츠 업계라면, OTT는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깊게 노를 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들은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다양한 작품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 오징어게임’이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웹툰과 웹소설 같은 ‘검증된’ 콘텐츠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역시 불확실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분야에서의 불확실성 역시, 2020년과 2021년 연속으로 보여준 기적적인 성장이 아닌 일반적인 성장세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 ‘성장세가 꺾였다’고 받아들일지, 아니면 ‘여전히 성장 중’으로 해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콘텐츠에 정답은 없지만, 그 간극 사이에 답을 찾아가는 길이 있다. 위기를 대비하면서 성장을 준비하는 자세가 지금 웹툰, 그리고 OTT 사이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