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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기술 발전의 역사와 인간의 현재

기술의 발전이 만화 제작 기술을 어떻게 변화 시켜나갔는지 살펴보자

2023-05-17 김민태


기술 발전에 관한 세 가지 시선 

2023년 4월 20일 미국의 민간 우주 개발회사 ‘스페이스X’의 유인탐사용 대형 우주선 ‘스타십’이 발사 4분 만에 공중 폭발했다. 하지만 발사 현장의 직원들은 낙담이 아니라 환호했다. 일론 머스크 CEO는 발사 실패 후 “시험 비행 발사를 축하한다.”, “몇 달 뒤에 있을 다음 테스트를 위해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발사 영상 유튜브를 보면 시종일관 발사실패 후 암울한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스페이스X는 실패를 통해서 배울 편익이 컸다고 판단했다. 21년 우리나라의 첫 우주 발사체 ‘누리호’도 한 차례 실패 후 다음 해에 성공했다. 올해에는 실제 인공위성을 싣고 3차 발사에 나선다. 우주 탐사라는 거대한 인류의 ‘발전이즘(발전+ism)’과 연관 된 기술 발전의 사례이다.



2005년 SBS에서 방송을 시작한 교양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은 사람의 ‘먹고사니즘(먹고사는+ism)’의 치열함을 중계한다. 해당 방송은 ‘보여준다.’라는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처절함과 처연함이 느껴진다. 개인의 육체를 이용해 삶과의 혈투를 벌이는 격렬한 현장은 보는 이에게 숙연함과 숭고함을 전달한다.  

달인으로서 신묘한 기술을 보여줌과 함께 달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감동사연이 더해지면 특이한 재능의 소유자라는 인식에서 인간으로서의 역경을 극복한 승리자로 바라 봐진다.



필자는 ‘수상 소감’을 찾아보는 취미가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32회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 남명렬 배우의 수상소감 기사인용)(1)

“잔망을 좀 떨겠습니다. ‘엄마! 나, 이해랑연극상 먹었어!’ 직장 잘 다니던 아들이 연극을 하겠다고 모든 걸 내팽개치니 걱정이 태산이셨겠지요. 공연 중이라 임종도 제대로 못 지켰습니다. 시상식이 끝나면 이 자랑스러운 상패를 들고 어머니를 찾아뵙겠습니다.”

“내 삶은 배우로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끝없는 싸움이었다.”며 “30년 전 연출가 임영웅 선생님이 ‘얘가, 배우가 되겠냐?’ 하신 말씀이 나를 지배했고 감사하게도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이제야 조심스럽게 ‘네’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이경모의 수상소감 기사인용)(2) 

강원 동해시 망상리조트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경모씨는 “매일 밤하늘 별들과 파도치는 밤바다와 돋는 해를 만난다.”고 했다. “쉬지 않고 파도치는 바다는 얼지 않습니다. 하얀 파도처럼 끊임없이 치열하게 동시를 쓰겠습니다. 불끈불끈 떠오르는 붉은 해처럼 힘들고 지친 독자들에게 힘을 주는 작품을 쓰겠습니다.  


(제16회 차범석 희곡상 김민정 작가의 수상소감 기사인용)(3)

“글을 너무 쓰고 싶었고 희곡이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늘 부족한 것 같고, 다음 기회가 없을 것 같고. 수상 통보를 받고 연극을 하며 좋았던 날들을 떠올렸고 주변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오늘은 저를 믿고 기다려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는 날입니다. 다음 작품을 쓸 용기와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상소감은 자신이 어떤 어려운 과정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 단련하고 정진하여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를 함축적으로 설파한다. 생활의 달인이 보여주는 비범한 기술이 눈에 보이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연마한 술기라면, 위에서 언급한 수상소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에 보이기 위한 인고의 과정 즉, 창작의 능력 발전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정받기즘(인정받기+ism)’아닐까 한다.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쳐 도전과 좌절을 통해 얻어낸 작가 내면의 정수(精髓)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상당수 수상 경력은 수상 이 후 해당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 또는 면허증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의 역사와 인간의 현재’를 만화 안에서 논하기 위해 세 가지 키워드를 꺼내봤다. 첫 째 거대한 기술 발전, 둘 째 개인의 기술 연마, 셋 째 창작 역량의 개발이다. 거대한 기술 발전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미래까지 연결 될 역사의 발전과정이라면, 개인의 기술 연마는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승되는 세대 간 발전이다. 창작 역량의 개발은 지극히 개인에게 집중해 내면의 온도를 끓게 하는 발전이다. 

“모든 기술은 실패의 축적으로 발전한다.”공허해 보이는 격언은 우리가 매일 실패를 하는 현장에서 현실로 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화 제작의 기술 전환

만화의 역사적 관점에서 기술이 시대별로 어떤 의미였는지 짚어보자.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를 보면 1909년 이래 약 100년간은 흑백으로 지어진 펜과 먹의 세계였다. 만화 제작의 기술면에서 붓은 펜으로, 먹은 잉크로 대체되었다는 것 외에 큰 변화는 없던 시기다. 만화 페이지 안에 모든 구성요소들은 손으로 그려 넣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던 1990년대 즈음 ‘스크린 톤’이라는 신문물이 우리 만화 제작에서 대중화 되었다.

이미 만화선진국 일본에서는 만화제작에 널리 사용해 발전했으며, 사용법 역시 고도화 되었다. ‘톤을 깎는 기술’, ‘톤을 겹치는 기술’, ‘점 톤, 무늬 톤 등의 다양성과 활용 기술’ 등은 일본 만화가 세계적 명성을 얻는데 일정부분 기여했다. 우리 작가들도 스크린 톤을 활용하고자 했으나 일제품은 구하기가 힘들었으며, 국산 스크린 톤도 판매되었지만 일본산 제품대비 열위였다. 



새로운 무기는 신흥 세력으로부터 발흥한다. ‘스크린 톤’은 잡지만화시대의 작가 때부터 주류로 올라왔다. 그 바탕에 전통적 문하생이 아닌 ‘만화 동아리’ ‘인터넷 만화동호회’라는 새로운 작가 데뷔 시스템에 수많은  지망생이 운집해 실력을 키운 토대가 있었다. 즉,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세대가 빠르게 흡수해 신선한 결과물을 내놓은 셈이다. 

이후에는 스크린 톤을 ‘사서 붙이는 시대’에서 ‘컴퓨터로 생성해 붙이는 시대’로 발전하면서 우리 만화는 디지털 전환이 급속화 된다. 그 배경에는 스크린 톤의 다양한 사용법 개발과 활용에도 목적이 있었지만, 스크린 톤 구입비용이라도 아껴야 하는 출판만화 쇠락시기와 맞닿는다.

스크린 톤 사용 변화는 선화 제작에도 영향을 주었다. 만화창작에서 중요시 되던 ‘선맛’은 디지털 창작이 모색되면서 차츰 의미가 옅어진다. 펜 끝에서 사출되는 잉크의 볼륨감과 날렵한 펜선은 선화를 스캔 후 디지털 스크린 톤 완성하는 작업으로 전환되면서 너프 되었다. 이 후 디지털로 창작 툴로 전향한 기존 작가들과 아날로그 잉크 펜선 작업을 하지 않고 만화가가 된 세대는 디지털 창작 툴로 선화 완성 후 디지털 스크린 톤 작업까지 함으로서 국내 만화 제작시스템은 완전하게 디지털화 한다.  


포토샵, 만화계에 떨어진 스마트폰 혁명

“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었다.”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달라지는 기술과 문명사회의 이중성을 표현했다. 해당 구절은 우리 만화계에도 통용되었다.

우리 만화 제작기술은 만화창작 계에서 디지털을 혁신적으로 도입했고, 만화 산업(출판)계 시스템에서 수용 하면서 발전했다. 다만 발전의 과정에는 ‘만화 제작의 효율성과 비용절감’이라는 장점 속에서‘만화 제작 인력의 감축’이라는 이중성을 내포한다. 당시 만화산업은 여러 명의 문하생 또는 어시스턴트와 함께 작품을 할 시장상황이 아니었다. 디지털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기존의 퀼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적 방편이었다. 

디지털 창작 툴 ‘포토샵’은 초기에는 스크린 톤을 생산해 만화의 채색분야 밀도를 높임을 시작으로 선화의 영역을 넘어 배경의 영역에도 크게 활약한다. 포토샵의 등장은 기존 아날로그 만화 제작 도구들을 빠르게 대체했다. 가히 스마트폰급 혁명이다. 스마트폰 이전을 생각해보면 MP3플레이어, 자동차 내비게이션, 카메라, PMP 등 수많은 소형 가전제품이 개별 시장을 차지했으나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모두 사라져버린 것처럼 대부분의 만화제작은 포토샵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시대적 흐름에서 디지털 전환이 어려운 연배의 창작자들을 포함해 신속히 디지털 제작방식으로 이동하지 못한 만화가와 작가 지망생들은 자연 도태한다. 무엇보다 아날로그 만화 분업화 직무의 종사자들이 자리를 잃었다.

결국 기술에는 명과 암이 있다. 기술이 추구하는 목표는 업무의 효율과 편의를 증진하이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램은 연습을 통해서 터득해야 했던 기술을 단번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제작 시간까지 절약해 준다. 


그것은 만화가 아니야

어떤 만화가는 스크린 톤이 대중화 되었을 때 “그건 만화가 아니야”라고 했다. 컴퓨터로 스캔을 하고, 타블렛으로 한 선화작업을 과정에도 “만화가가 그러면 안돼”라고 했다. 만화의 배경작업에 ‘스케치업’을 쓸 때도 같았다. “작가는 배경은 직접 그려야지 했다” 웹툰의 시대가 되면서 웹툰 작가는 만화의 모든 과정을 오롯이 혼자 수행해야 하는 시기였고, 특히 올 컬러 만화여야 했다는 점에서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은 필수가 되었다.

우리 만화가들이 디지털 제작과 창작면에서‘발전이즘’을 추구했고,‘먹고사니즘’에 분투 했고,‘인정이즘’에 몰두 한 결과이다. 

‘팍스 테크니카 (Pax Technica)’과학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를 말한다. 기술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요소가 됐다. 선진국과 빅테크 기업들은 기술을 무기화 한다. 이미 만화산업과 문화는 애플과 구글 마켓에 종속되어 있다. 만화 기술과 기기는 클립스튜디오와 와콤사와 밀접해 있다. 그리고 이제 AI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기술은 만화가 아니야 

흑백만화에서 컬러만화로, 팀 작업에서 개인 작업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핵심에는 만화 제작 기술이 창작자들에게 범용되었기 때문이다. ‘스크린톤’과 ‘스케치업’, ‘포토샵’은 만화의 재미와 무관하다. 기술은 사람의 손을 대신할 뿐 직접 만화를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는 직접 만화를 그릴 수 있을 걸로 전망하지만 ‘만화를 그리는 것’과 ‘사람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만화를 그리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볼테르는 말했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반복 하는 것이다.” 

AI는 새로운 컨셉의 포토샵이자 스마트폰이 아닐까? 사람은 이런 기술을 반복해서 사용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이 반복한다는 말은 어쩌면 AI로 인해 현재 만화의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다. 만화의 디지털 전환 시 사라졌던 직군들을 보면 결국 기능 인력이 아닌 만화가는 살아남았다. 나아가 그 동안 다수의 인력이 투입 된 스튜디오 작품에 개인 작가가 경쟁하기 어려웠는데 아이언 맨의 ‘슈트’ 또는 ‘자비스’처럼 AI를 활용해 반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 시기가 도래할 때 다시 반복해야 할 교훈은 ‘발전이즘’,‘먹고사니즘’,‘인정이즘’을 꺼내 보는 일일 것이다.



* 참고자료 및 관련 링크

(1) “배우로서 존재를 증명하려고 30년 투쟁했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2022.07.14.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7/14/DJ44E3Y4ERHT5HI2E5CHNSMNIM/?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2) “쉬지 않고 파도 치는 바다처럼 끊임없이 쓰겠습니다” (조선일보 이기문 기자 2022.01.21.)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1/21/UJFQDF3VFRCZLATW674S3MHBCI/?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3) “이 길 아닌가 할 때 주신 상… 다음 작품 쓸 용기 얻어”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2022.11.29.)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11/29/QEVO2P2CVBE3DDLVI4HZHBQKTI/?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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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태

만화평론가 및 기획자, 씨엔씨레볼루션 이사
前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