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시작된 「부천 만화 대상」도 어느새 20회를 맞이했다. 국내외 만화 작가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만화 출판 장려를 통한 한국만화산업 발전을 위한다는 기치 아래에 동시대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해 온 「부천 만화 대상」의 수상작 수도 어느새 96 작품이나 나오게 되었다. 수상 부문이 년대에 따라 크게 변화했지만, 2023년의 20회는 2022년의 19회와 같이 대상/신인만화상/해외작품상/독자인기상/학술상의 5개 부문을 선정했다. 올해는 대상에 이해진의 <도박 중독자의 가족>, 신인만화상에 정해나의 <요나단의 목소리>, 해외작품상에 테아 로즈망의 <침묵공장>, 독자인기상에 LICO의 <화산귀환>, 학술상에 이행미의 「웹툰 <웰캄 투 실버라이프>의 노년 재현과 스토리텔링 연구」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발표가 이루어진 한여름의 8월 28일로부터는 조금 늦은 초가을이 되었지만, 그래도 어떤 작품들이 수상의 영광을 받았는지 되돌아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 독자인기상 : <화산귀환> - 비가/LICO
2019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총합 5억뷰를 돌파한 비가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화산파 13대 제자 매화검존 천명이 천마의 목을 베고 사망, 100년 뒤의 중원에 환생하며 시작되는 무협 장르의 작품이다.
이 <화산귀환>이 2023년에 ‘독자인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꽤 주목할만한 사건이지 않을까. 무협은 한국 서브컬처계의 가장 원형적인 펄프 픽션 장르다. 만화에 있어서도 황재, 이재학 등의 이름으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 뒤에도 소주완/지상월의 <협객 붉은매>, 전극진/양재현의 <열혈강호>, 권가야의 <해와 달>, 류기운/문정후의 <용비불패>부터 동일 콤비의 근작 <고수>까지 한국 만화의 역사 내에서 언제나 인장이 될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의 문호 김용의 작품들을 그 뿌리로 삼고 있지만, 신무협운동을 통해 ‘한국식 무협’이라는 고유화할 수 있는 영역을 또한 개척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협은 한국 서브 컬처의 역사에 확고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설정의 공고함, 장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신성의 시대적 격차 등으로 인해 시대와 호응하는 데에 난항을 겪은 장르이기도 하다. 무협은 자주 다른 장르에게 주류의 자리를 내어주며, 또 한편으로는 다른 장르와 규합하면서 시대의 한켠에 위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 이르러 웹소설의 다양한 요소들과 융합하며 다시금 인기 장르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셈이다.
<화산귀환>은 그러한 2020년대 무협 장르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되살아나는 환생이라는 설정을 시작으로, 100년의 격차를 통해 발생하는 정보의 이격과 배후를 추적하는 미스테리 요소, 무너진 화산파를 다시금 재건시켜나가는 일종의 재건과 경영 서사 등. 무협을 기반으로 하되 여타 장르의 특성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그리고 이런 배경이 다시금 무협 작품이 우리 시대의 ‘인기 작품’에 등극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크리스티앙 메츠가 말했듯, 이것이 바로 장르라고 불리우는 무한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 해외작품상 : <침묵공장> - 테아 로즈망
어떠한 세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는 섬세함을 필요로 한다. <침묵공장>이 소재로 삼는 소아에 대한 성폭력 역시 그렇다. 이러한 소재들은 자칫 잘못하면 과도한 폭력의 묘사 혹은 무의미할 정도로 순수한 이상주의라는 함정에 빠져버리기 쉽상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논견을 가지지 못한다면 공허한 작품이 되어버린다.
테아 로즈망의 방법은 현실의 문제를 환상성의 장(場)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따라서 <침묵공장>은 조금 복잡해진다. 이 작품에서 폭력의 피해자들은 그들의 고통은 어떠한 환상적인 표현들을 통해 묘사되는데, 그와 동시에 이 세계의 환상성은 이 현상을 실재하는 현상인 것처럼도 다룬다. 말하자면 <침묵공장>에서 고통은 추상과 실재의 중간 어디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이 작품이 다루는 배경은 우리와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는 세계이지만 또한 그 고통은 명백히 실존하게 됨으로, 로즈망은 작품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일정량의 거리감을 생성시킨다. 이는 환상성을 통한 감정적 수용과 거리감을 통한 냉엄한 시각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매우 유효한 표현법이 된다.
또한 환상적이며 동시에 확고히 그 물질성을 담지하는 대상물이자, 이 작품의 제목이 되는 ‘침묵공장’은 그러한 표현법의 극치를 보인다. 사람들이 ‘불편해 할’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해 가두는 이 SF적인 건축물은 사회적 고통의 비가시화가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드러내기 위한 은유의 대상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테아 로즈망의 명백한 논견이 작동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통령은 보좌관으로부터 다음 선거에 이기기 위한 명확한 전략으로 일자리 창출, 외국 자본 유치, 성장과 발전이라는 공약을 전달받는다. ‘침묵공장’이라는 산업적 건축물이 이 세계의 문제를 연막한다는 설정과 이 공약들은 전적으로 맞닿게 된다. 로즈망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식 불가능, 특히 어린 아이들의 고통의 목소리가 소멸되는 배경으로 극도의 산업화와 성장 중심의 사회관을 거론한다.
말하자면 <침묵공장>은 우리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을 통해 우리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참고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만화이기에 가능한 담론화 방식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 신인만화상 : <요나단의 목소리> - 정해나
후원형 창작 플랫폼 ‘포스타입’에 연재되어 화재를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기숙사형 미션 스쿨에서 만난 두 소년, 목사의 아들이자 성가대원인 선우와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의영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제목이 ‘목소리’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만화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라는 매개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물론 직접적인 음악이나 사운드의 재생이 아닌 만화적 방법을 경유한 소리의 감정화를 통해서 진행된다. 이야기는 둘이 만나기 전의 시간대를 다루는 선우의 이야기와 현재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의영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지만, 정확히는 양 시간대에 각기 달리 작동하는 선우의 감정(이자 목소리)을 다루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은 선우의 첫사랑인 다윗과의 만남, 그로인해 발생하는 상실의 고통과 더불어 자신의 성적지향을 수용하지 못하는 세계와의 충돌을 그리지만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충격적인 사건의 연쇄같은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정해나가 중시하고 있는 것은 이 내부에서 작동하는 감정의 요동이며, 그것이 어떻게 ‘청각화’될 것이며, 그러한 청각 신호가 다시금 만화라는 비청각적 매개로 표현될 것인가에 가깝다. 그 때문인지 작품은 그 절제된 형식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감정적 울림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요나단의 목소리>가 화제의 작품이 된 배경에는 상당한 리얼리티를 보유한 이야기의 힘과 동시에 이 섬세한 만화적 방법의 운용이 있었을 것이다.
| 대상 : <도박중독자의 가족> - 이하진
이해진의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주식에 중독된 시동생에 의해 고통받은 10년 정도의 시간을 그리는 작품으로 약간의 픽션이 첨가된 그래픽 논픽션이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사건을 둘러싼 이론적 배경 탐구를 위해 많은 참고자료를 확인하는 등 작가의 건실함이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도박중독’이라는 자극적 단어를 포함하는 제목과 달리 이 작품은 엄밀히 ‘도박중독’이라는 사안에 대해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 방점이 찍히는 것은 그 뒤의 단어인 ‘가족’이다. 이해진은 도박중독 보다는 도박중독자의 가족이 됨으로 겪게되는 ‘공동의존’이라는 증상을 더 심도있게 바라본다. 그리고 결국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중독 혹은 의존증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그를 통해 드러나는 가족주의의 민낯이다.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바로 ‘왜 공동의존은 여성이 주로 겪게되는가?’이다. 여기에는 중독자를 가까이에서 케어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를 보통 여성이 진다는 사회적 현실이 도사린다. 이해진은 ‘여성 중독자는 보통 가족으로부터 버려진다’는 자료를 첨부함으로서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 가족주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젠더전형이 있음을 일정량 폭로한다. 물론 그렇다고 젠더전형의 문제만을 집요하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보다 이해진은 이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가족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앙상한 구조를 전면화하고 있는 셈이다. 즉, 젠더 전형을 드러내기 위해 가족의 문제가 동원된 것이 아니라 가족의 문제를 다루다보니 젠더 전형이 드러나버리고 만다. 그는 이를 하나의 구호로 동원하기보다는 사실 그 자체의 적시를 목적으로 삼는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대한민국에서 보일 수 있는 가장 처절한 가족극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가진 가장 근원적인 문제란, 우리가 내부에서 스스로를 박살내려 할 때 드러난다는 사실을 즉시 드러내 보인다. 이는 작가인 이해진이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섬뜩하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어떠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보다는 ‘우리’의 문제란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에게 더 필요한 작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