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웹툰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영상화'일 것이다. 영화 전문 리뷰어로 주목해야할 23년도 웹툰 원작 드라마들을 정리해 보았다.
| 무빙
2023 웹툰 원작 드라마로는 역시 <무빙>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무빙>이 최고의 드라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무빙의 후반부는 분량 조절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얼기설기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적을 조명하느라 주인공들에게 분량을 할애하지 못해 서둘러 끝맺은 결말은 보기 좋다고 하긴 어려운 마무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시장에서 돋보이는 완성도라고 하긴 어려우며, 웹툰 원작 드라마로 한정해도 초반부의 흡입력은 <이태원 클라쓰>, 전체적인 완성도는 <지옥>이 더 높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마냥 혹평만 받을 드라마인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유독 기를 못 쓰던 슈퍼히어로 장르로 저변을 넓혔으며, 슈퍼히어로 장르의 전체 시장으로 넓혀봐도 무빙의 드라마는 독특하다.
<무빙>의 감정선은 투박하다. 2023년의 드라마임에도 트렌디하고 세련되었다고 하긴 도저히 어려운 드라마다. 하지만 그 특유의 투박함으로 슈퍼히어로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눈에 띌 정도로 공을 들인 캐릭터 빌딩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결국 픽션에 불과한 슈퍼히어로의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일까? 여러가지 답이 있겠지만, 필자는 캐릭터에 있다고 본다. 필자는 완벽초인 슈퍼맨보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에 더 열광하곤 하는데, 더 공감하기 쉬운 캐릭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은 불행을 달고 살고,
배트맨은 존재 자체가 불행이다. 꼭 불행해야만 매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약점을 만들기 위해 가공의 물질인 크립토나이트까지 필요한 슈퍼맨과는 다르게, 이들의 약점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리고 이런 인간미는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다. 물론 반드시 공감해야만 좋은 작품은 아니다. 올드보이나 조커를 보며 공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히어로 장르로 한정 짓는다면 공감대 형성은 중요한 덕목이다. 범죄자를 죽기 직전까지만 패는 배트맨이든, 범죄자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단하는 퍼니셔든, 이들의 행동 원리에 공감만 한다면 그들의 행위는 당위성을 지니게 되고, 그게 곧 개연성이 된다. 그렇게 형성된 공감대에 계속해서 정련시키는 질문과 상황들을 던져가면 점점 더 단단한 아이덴티티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슈퍼히어로의 정석이 아닐까?
그런 가운데 <무빙>의 드라마는 독특하다.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어머니의, 풋풋한 고등학생의, 혹은 한 가장으로서 지극히 일상적인 감정들이 강조된다. 학원물 파트는 슈퍼히어로라기보단 청춘로맨스에 가깝다. 장주원 파트는 순정물에 더 가깝고, 이렇게 장르를 넘나들며 전하는 이 투박한 감정들은 그만큼 진솔하게 다가온다. 카피라이트는 우린 괴물도, 영웅도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딱히 이 드라마는 사명감이나 정의를 강조하는 작품은 아니다. 능력들은 하늘을 날고, 육체가 재생되지만, 그들은 영웅보다 소시민에 가깝다. 이들은 가족, 혹은 가까운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들은 때로는 살인도 서슴치 않는데, 원리원칙에 의해 행동하는 영웅들에 비해 훨씬 공감하기 쉬운 인간상이다. 그리고 이런 소시민스러운 점이 캐릭터 빌딩 위주의 서사와 겹쳐지며 독특한 시너지를 자아낸다. 소소한 일상의 비중이 높은 슈퍼히어로물도 흔치 않은데, 이들을 영웅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긴가민가할 정도니 개성 하나는 확실하다
한국 작품들은 태생적으로 할리우드 작품에 비해 디메리트를 끌어안고 있다. 자본력, 기술력이라는 큰 차이는 영상 매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아무리
한국 최대 제작비를 강조해봐야 왠만한 미국의 중소규모 작품과도 비비기 쉽지 않은데, 시청자의 눈은 제작 측의 사정에 맞춰주지 않는다. 결국은 돈으로 메울 수 없는 차이는 이야기의 힘으로 메워야 한다. 잘 만든 이야기는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되니까.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무빙은 그 가능성을 잘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싶다. 뒷마무리는 살짝 아쉬웠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좋은 반응을 얻었고, 후속작 얘기도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으니 앞으로의 개선점을 기대해 볼만한 작품.
| 이두나!
일단 필자의 취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서두에 밝혀두겠다. 로맨스도 즐겨보는 편이지만, 이두나는 로맨스에서도 감성의 영역의 비중이 높은 작품이다. 일단 화면의 색감부터가 다르다. 당위성이나 인과보다는 그때 그때의 감성에 몰입할 수 있는 분들이 보기에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감성의 영역으로 본다는 기준점에서는, 분명 메리트가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일단 수지가 가지는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건축학개론과는 다른 의미로 리즈를 갱신한 느낌이며, 이두나의 캐릭터 설정인 그룹에서 홀로 인기 있던 은퇴한 아이돌이라는 설정이 미스에이에서 독보적인 인지도를 누렸던 수지의 현실과 굉장히 흡사하다. 그렇기 때문일까. 매혹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지치고 염세적인 모습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블랙 데빌을 피는 모습은 살짝 투머치한 감이 있지만, 이 또한 작중 장치 중 하나이니 감상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여기에 남자주인공은 눈치도 빠르고, 충분히 매력적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싹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서브여주와의 관계도 이 이상 깔끔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 결국 사랑 받을만한 남주와 매혹적인 여주가 합쳐지니 그림이 깔끔하다.
단지 이들의 매력을 다 보여준 이후에는 작품이 조금 갈피를 못잡는다. 연예인과 일반인의 사랑이라는 뻔하디 뻔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뒤로 갈수록 멜로화되면서 이야기가 처지는 감도 있을 뿐더러, 이러다 보니 초중반부에 보여줬던 매력적인 캐릭터는 잘 보이지 않고, 답답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캐릭터로 인상을 남긴 작품이 캐릭터가 흐릿해지니 매력이 떨어질 수 밖에, 다만 스물다섯 스물하나처럼 논란이 많았던 원작의 엔딩 대신 훨씬 정갈한 엔딩을 가져왔다는 점은 높이 살만한 부분. 초반부에 한정되지만 배우의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면에선 분명 누군가에겐 인상에 남을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 D.P 시즌 2
썩어도 준치라고, 1시즌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높은 완성도를 보였던 D.P 시즌 2.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다는 건 참 오묘한 밸런스를 요구한다. 너무 리얼해버리면 드라마가 안되고, 과장이 심해지면 소재를 못살린다고 욕을 먹는다. 그런 면에서 줄타기가 잘됐던 시즌1에 비하면 시즌 2는 드라마틱함이 조금 강조된 편이다. 정확히는 극적인 장면을 너무 극적으로 연출하려다보니 생기는 묘한 위화감? 시즌1을 좋아하셨을수록 아쉬워할 확률이 높지만, 다소의 극적 과장만 감안한다면 여전히 던지는 질문들은 울림이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연시 해서는 안된다는 질문. 누군가에게는 입맛이 찝찝한 2년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변곡점이 되기도 하는 곳.
특유의 폐쇄성, 미디어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라도 다뤄진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첫화를 장식했던 김루리 에피소드. 에피소드 자체가 가지는 감정적 과잉이나, 다소 작위적인, 수류탄을 가진 채로 탈영을 한다던가, 발포 지시를 하는 장면들은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소재가 가지는 힘이 있고, 시즌 1에서부터 이어지는 만큼 상당히 인상 깊은 에피소드. 그 이후의 장기 탈영병 에피소드나 GP 에피소드 역시 다소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군대가 부패할 수 밖에 없는, 내부 고발이 얼마나 힘들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집단인가 라는 점을 조명하는데 있어서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 드라마 한 편으로 어떻게 사회가 바뀌겠냐만은,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라는 변명도, 기계적으로 시키는 일을 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도 이런 물방울들이 두드려 파동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시작될 터. 관성에 이끌리기 쉬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의 시스템 속에서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특히나 엔딩의 버스씬은 일종의 밈이 되기도 했지만, 군대란 어떤 곳인가? 라는 질문을 함축하는 인상 깊은 한 컷이 아닐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엔딩 만으로도 분명 시즌 1에 비해 다소 아쉬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권할만한 작품.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한국에서 정말 보기 힘든 소재인 정신병동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 개인적으론 2023년 웹툰 원작 드라마 중 가장 재밌게 보았다. 정신병동에 관심이 없어도 박보영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도전해봄직한 작품이다
점점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곤 하지만, 한국에서 여전히 정신과는 기피 되고 신경정신계 질환들은 가볍게 여겨지곤 한다. 마치 우울증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면 낫는 병이지 병원 약을 먹을 것 까지는 없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가운데 이 작품은 첫화부터 가히 충격적인 전개로 시작된다. 조증과 망상으로 인해 옷을 다 벗어던지거나 방뇨를 하는 '오리나'의 에피소드로 시작하는데, 이후엔 좀 더 소프트한 소재들로 이루어진 걸로 봤을 때 일종의 충격요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런 오리나를 단순히 동물원 원숭이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어떤 점에서 병이 기인했는지를 조명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존재가 아닌, 우리들과 같은 고민을 안고 있을 뿐인 한 사람임을 조명하는 것이다.
포커스를 단지 환자들에게 맞추지만도 않는다. 환자들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의사나 간호사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드라마에 으레 등장하는 숭고하고 자기희생적인 의사와는 좀 거리가 있다. 사랑에 서툰 모습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소위 밥맛 없는 성격의 의사나, 의사와 간호사 간의 기싸움 등도 여과 없이 등장한다. 친절한 간호사보다 맡겨진 일을 빠르게 수행하는 간호사를 선호하는 모습 역시,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괴리가 있는 모습이다. 일에 치여 아이가 아픈데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한밤중에야 집에 돌아가고, "엄마는 간호사인데 왜 나는 간호 안 해줘?" 라는 아이의 질문은 짐짓 서늘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정신병동이니 만큼 자해나 자살 시도도 여과 없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소재가 정신병동이니 만큼, 다른 드라마였다면 진상 환자 취급 받았을 환자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넷플릭스라 가능했던 소재 선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 작가가 간호사 경력이 있는 만큼, 이런 묘한 현실감은 정신 병동의 고유한 장점. 결국 병원 안이냐 밖이냐의 차이일 뿐이지, 문명화된 사회에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고충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이 지점을 절묘하게 파고든다. 환자와 비환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얼마든지 치료에 따라 돌아올 수 있음을, 비환자 심지어 정신 건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료계 종사자라도 문제를 겪을 수 있는 점을 적나라하게 선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재밌는 점은 이런 현실적인 면을 그리되 따뜻한 시선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너무 현실적이고 팍팍하기만 하면 드라마를 보는 이도 기운이 빠질 터, 친절한 간호사 정다은과 의료진을 중심으로 보채지도, 냉소하지도 않고,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천천히 풀어나가는 것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매력이다. 기실 제목부터 이런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가장 깜깜한 새벽을 지나면 언젠가는 아침이 온다.
23년도 주목해야할 웹툰 원작 드라마 4작품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24년도에도 웹툰 원작 드라마들의 선전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