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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일본 만화 시장의 변화

디지털 만화로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며 큰 변화를 맞이하는 23년 일본 만화 시장을 살펴봅니다

2023-12-05 지식공장장

일본이라는 나라는 잘 변하지 않는다. 2023년에도 공문서를 FAX로 주고받으며, 공공기관, 산업현장에서 플로피디스크를 쓰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인의 능력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딱히 불편함이 없다면 있는 것을 유지하려는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일본인을 표현하는 말 중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라는 말이 있듯, 그들은 위기에 직면하여 바뀌어야 할 때라던가, 자신에게 유익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취하는 성향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일본인의 성향은 현재 일본 만화 시장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번에는 다사다난한 23년 말을 맞이하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이한 변화, 하지만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와도 관련이 있는 변화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 디지털 만화로의 전환

일본에서 만화란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출판문화 중심의 비즈니스였다. 주간, 월간지를 만화전문으로 만들거나, 전문지에 만화를 실어, 잡지를 일종의 광고지 형식으로 만화를 홍보한다. 그 후, 연재만화를 보고 팬이 된 만화의 독자들에게 단행본을 판다. 이후 단행본의 판매량으로 시장성이 증명되면 그 시장규모에 걸맞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미디어 믹스(メディアミックス)’를 진행한다.

미디어 믹스는 하나의 상품 또는 미디어 소스를 여러 미디어 형태로 확장하여 판매 및 판촉하는 것을 일컫는 일본식 영어 조어로 서양권의 경영학 서적 등에서는 ‘원 소스 멀티유즈(one/single source & multi-use)’라고 한다. 즉 하나의 소스를 다양하게 활용,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형태로 기획하여 비즈니스로 판매한다는 뜻이다. 일본 만화시장은 이렇게 2018년부터 연 5~6%씩 꾸준히 성장해 왔다.

하지만 현재 일본 시장은 여러 가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주된 요인 중 하나는 ‘디지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일본의 만화시장은 종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2010년, 일본에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디지털 시장이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만화부문도 예외가 아니라서 아시아 최대의 앱 시장을 가진 일본은 앞으로 연평균 9.1%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 예상된다고 한다.


문제는 그 시장을 일본만화가 온전히 차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원래 해외 기업의 진출이 쉬운 국가가 아니었다. 해외기업의 생산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진출이 힘들었던 이유는 일본의 소비자가 새로운 상품에 쉬이 지갑을 열지 않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본 소비자도 더 나은 대체재가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구매한다. 하물며 10대처럼 출판만화를 접하기도 전에 디지털 만화부터 접한 세대라면 당연히 디지털 만화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일본 출판기업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현재 일본 웹툰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한국 기업 혹은 한국 기업이 최대 지분을 가진 기업이며 일본 만화 출판사는 후발주자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디지털 전환이 안정적인 일본 시장에서 뜻하지 않은 외부요인으로 인해 급성장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 사진1, 출판지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직접 작성 >


출판과학연구소의 「출판지표」는 2014년부터 전자 만화(전자책) 시장 규모를 발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2017년과 2020년의 급성장이다. 

그 계기는 2016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픽코마가 픽코마(ピッコマ) 서비스였다. 일본의 출판사, 2014년 네이버 웹툰의 라인망가가 공개되면서 디지털 만화 시장은 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출판만화의 페이지를 그대로 스캔한 것일 뿐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것은 아니었다. 출판만화는 가로로 긴 지면을 살리기 위해 가로읽기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스마트폰, PC에서 제공되는 디지털 만화는 세로 스크롤에 더 적합하기에 가로읽기 콘텐츠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즉 이때까지 디지털 환경만을 위한 디지털 콘텐츠는 제공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픽코마는 모바일과 데스크탑 환경에 최적화된 디지털 서비스였다. 그리고 시장이 이에 반응이라도 한 듯, 픽코마가 진출한 지 1년이 되던 2017년, 디지털 만화의 매출이 종이 만화의 그것을 처음 넘어섰다. 

2020년에는 코로나 판데믹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출할 수 없게 되면서 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이를 기점으로 일본의 웹툰 시장은 월평균 사용자(MAU)는 무려 1천만 명에 이용자층은 10대부터 40대까지 폭넓게 분포한 시장이 되었다. 디지털 만화 시장은 제작, 배포 비용이 출판만화보다 저렴하므로 일단 플랫폼만 구축되면 이후 들어가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는 강점이 있다. 이런 장점 덕에 디지털 만화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확보하며 성장했다

이런 시장의 흐름은 출판만화 중심의 기존 사업자들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디지털 만화시장의 전년 대비 금액, 성장률 모두 절반으로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현재 디지털 만화 시장의 성장률은 10%로 잡힌 상황인데 대부분의 일본만화 출판사들은 기존 출판물을 스캔한 것만을 제공하다 슈에이샤가 2023년, 점프툰으로 뛰어드는 등 뒤늦게 뛰어든 상황이라 급성장세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했다. 

즉 일본의 디지털 만화 시장을 장악한 것은 일본이 아닌 한국기업이라는 이야기다. 2023년 게임을 포함한 애플리케이션 중, 일본인이 가장 많은 돈을 쓴 애플리케이션은 카카오픽코마의 앱, 즉 한국의 애플리케이션인 「픽코마(ピッコマ)」였다. 

픽코마는 일본만화 앱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2021년 7월부터 현재까지 글로벌 만화 앱 1위' 카카오픽코마 日 웹툰 왕좌 견고…올해 상반기 앱 마켓 소비자 지출 1위 (서울경제, 2023년 7월 21일)

이다. 반면 라인 망가(LINEマンガ)의 경우는 일본의 국민 메신저 다운 사용자 수가 돋보이는 서비스로 웹툰 플랫폼 사용자 수가 1,380만 명에 달하며 일본 내 만화 앱 다운로드 수는 4,000만 건, 통합 월간 활성 이용자 수도 2,000만 명 이상으로 일본 디지털 만화업계 최대 수준의 이용자 수를 확보한 상황이다.

미래 먹거리 시장인 디지털 만화를 잠식당한 건 일본 국내만이 아니다. 정체된 내수 시장의 대안인 해외 시장도 글로벌 업체들에 공략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로 스크롤 기반의 웹툰 시장은 북미의 경우 거의 무주공산인 상황인데 이 시장에 아마존, 애플 등의 거대 IT플랫폼 기업이 직접 참가한 상황이다.

유럽 시장의 상황도 일본엔 심상치 않다. 프랑스는 유럽 만화 시장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해외 시장에서 ‘일본만화’가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시장인데, 프랑스 시장 1위는 다름 아닌 네이버 웹툰이며 2위는 네이버웹툰이 최대 주주인 콘텐츠퍼스트의 ‘태피툰’이다. 픽코마는 2021년 9월 프랑스에 '피코마 유럽'을 설립하고, 2022년 3월 '프랑스 피코마'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유럽 시장을 공략 중이다. 즉 유럽 디지털 만화 시장마저 한국에 내준 상황인 셈이다.

또한 제작 부문에서도 경쟁자가 나타났다. docomo、DMM、U-NEXT 등이 디지털 만화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소니뮤직, TBS 등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투자하여 웹툰 제작 부문에 뛰어드는 등 현재 일본의 만화시장은 급속도로 재편되는 상황이다.


|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믹스

기존 일본의 만화 출판사는 디지털에서는 후발주자지만 아직은 탄탄한 출판만화 시장이라는 배경과 탄탄한 IP를 확보했다는 강점이 있다. 그래서 본의 출판사들은 미디어 믹스를 통해, 잠재고객을 발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전자 만화 시장 개척에 주력하면서 해외 판매, 웹툰, IP 전개(특히, 이벤트, 굿즈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위기의 배경에는 일본 시장에 불어닥친 외래종,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등의 OTT가 있다. 일본에 이들 OTT가 진출한 것은 2015년으로, 이후 이들의 성장세가 가팔라지자 2019년에는 디즈니플러스가 진출하면서 일본 시장은 글로벌 OTT 업체의 각축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 각축장에서 주목받은 것은 일본의 콘텐츠가 아니라 해외 콘텐츠로, 한국의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일본 콘텐츠가 세계 시장의 주류에서 밀려났음을 확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이런 흐름을 바꾼 콘텐츠가 등장한다. 하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2019), 오리지널 영화인 「아리스 인 보더랜드(2020)」였다. 이는 일본의 콘텐츠가 OTT 고객들에게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로, 콘텐츠 자산을 많이 확보한 출판사에는 일종의 청신호이기도 했다.

이런 흐름하에 제작된 것이 만화작품을 실사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ONE PIECE」였다. ONE PIECE는 팬들 사이에서 절대 제대로 실사화할 수 없다는 우려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만화의 실사화는 물론 애니메이션화까지 포함하여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1). 공개 1일 차에 59개국에서 일간 랭킹 1위를 차지했으며 2일 차에는 84개국 1위를 차지하면서 시즌 2 제작을 결정지었다. 이는 일본의 만화가 애니메이션만이 아닌 실사화로도 통한다는 증명이었다. 이에 고무받은 판권사인 슈에이샤(集英社)는 2023년 12월에 공개되는 「유유백서」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 사진2, 출처: 넷플릭스 >


미디어믹스는 단순히 영화, 애니메이션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슈에이샤와 고단샤는 최근 게임 사업에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자사의 IP를 외주회사에 맡긴 후 게임화하는 데만 중점을 두었으나 그 결과물은 개발사의 작품 이해도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슈에이샤는 2021년 ‘게임 크리에이터즈 CAMP’을 개설했다. 자사의 IP에 높은 이해도를 가진 크리에이터가 제품을 개발하게 하기 위해서다. 슈에이샤에 따르면 ‘게임 크리에이터즈 CAMP’를 통해 2년간 5천 명이 넘는 크리에이터와 5천 건 이상의 포트폴리오가 등록되었다고 한다. 슈에이샤는 이후 2022년 2월 슈에이샤 게임즈(SHUEISHA GAMES)를 설립해 비디오 게임은 물론, 보드게임과 같은 아날로그 게임도 같이 퍼블리싱하는 상황이다. 이런 흐름은 고단샤도 마찬가지로, 2020년 ‘코단샤게임크리에이터즈랩(GCL)‘를 발족하여 현재 24개의 팀이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 사진3, 출처: 슈에이샤 게임즈 >


이런 일련의 흐름은 IP를 외주에 맡겨 수익하는 과거의 방식을 넘어 기획, 제작, 마케팅을 총괄하는 만화 편집의 노하우를 게임 제작에 활용하여 우수한 제품을 공급하여 수익을 올리려는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리하며

현재 일본 만화시장의 흐름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디지털 만화 시장에 익숙한 한국기업이 제공하는 한국식 웹툰의 진출, 기존에는 없던 OTT라는 서비스의 진출 그리고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이용자의 환경변화에 직면한 상황이며, 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위축된 내수 소비시장에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미디어 믹스는 물론 해외 진출까지 적극적으로 타진하는 상황이다. 한 예로 슈에이샤 게임즈는 자사의 타이틀 「도시전설 해체센터」를 한국에 직접 한글화하여 동시발매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 디지털 만화, OTT 등의 시장에서 기존 생태계에는 없던 경쟁자가 나타났으며 심지어 해외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복제가 쉽다는 디지털의 특성으로 인해 불법 콘텐츠의 범람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 상황이다.

일본의 관련 기관은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콘텐츠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내각부 내 지적 재산전략본부 지적재산권 보호와 소프트파워 향상 그리고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의 해외 진출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경제산업성은 콘텐츠산업 진흥 정책을, 경제산업성과 문화청은 콘텐츠 불법 복제를 방지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하는 등 다방면의 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이런 현황은 기업엔 불안하지만,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좋은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시장에 진출한 기업이 많으며, 이들 기업이 웹툰 작가, 게임 개발자 등의 크리에이터 육성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는 자기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아시아 최대 시장인 일본 시장은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다양한 작품을 내며 경쟁하는 활황기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 한국 기업, 콘텐츠, 작가의 비중을 생각해 보면 우리 만화 시장에 새로운 전기가 열렸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 2023 Quarterly Earnings, 넷플릭스


< 참고 및 인용의 출처 >

* 넷플릭스의 일본 콘텐츠가 세계를 주도하는 방법 (동양경제/2023)

* 일본 OTT 시장의 지각  변동과 시사점 (한국콘텐츠진흥원/2022)

* 일본인이 가장 많이 쓴 어플리케이션은 ‘픽코마’ (Kai-You/2023)

* 일본 웹툰에 히트작이 나오지 않는 이유 (Kai-You/2023)

* 최애의 아이가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화의 효과  (동양경제/2023)

* 출판지표 (출판과학연구소/2023)

* 프랑스 웹툰 시장 선점하라…네이버·카카오 유럽서 맞짱 (한국경제/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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