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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한국산 플랫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한국 만화, 그것을 증명하는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2024-08-26 김성훈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한국산 플랫폼

  모 대기업 회장의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공전의 히트상품이 된 것은 1989년의 일이다. 국내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이 출간된 그해 우리나라의 총수출액은 623억 불이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2023년에는 총수출액이 6,322억 불(이상 한국무역협회 ‘K-stat’ 통계 기준)로 무려 10배가 되었으니 -책 내용에 대한 호불호는 일단 제쳐두고- 책 제목에 담긴 진위는 데이터로 명확히 입증해 보인 셈이다. 그렇게 이 책의 제목은 일종의 명제가 됐고, 지금의 한국만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다. 현재 한국만화야말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몇 가지 사례들을 올 상반기에 목격했다.

의 나스닥 상장

  플랫폼 해외 진출과 관련, 2024년 상반기 최대 사건은 단연코 네이버웹툰의 나스닥 상장이라는 점에 이견이 있기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는 웹툰엔터테인먼트(WEBTOON Entertainment)’. 네이버웹툰이 20175월에 네이버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법인을 세웠고, 3년 후인 2020년에는 미국에 본사를 두게 되면서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유럽 등지에 현지 법인을 거느리게 됐다. 그리고 미국 현지 시각으로 2024627,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에 이르렀다. 상장 첫날 공모가보다 10% 상승 거래하며, 시가총액이 무려 4조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하니 만화계를 넘어 문화산업 전체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건인 셈이다. (* 참고로 4조 원이라는 금액은 국내 주식시장인 코스피의 시가총액으로 보자면 20248월 현재 대략 100위권(820일 기준)에 드는 금액이다. , 단순하게 보자면, 네이버웹툰이 국내 상장했을 경우 단숨에 100위 안에 드는 기업이라는 얘기가 된다.)

  네이버웹툰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그러니까 2014년 여름에 영어로 웹툰을 서비스하는 라인웹툰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강력한 콘텐츠 기업으로 우뚝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나스닥 상장은 그러한 성장을 확인시켜 주는 일종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네이버웹툰이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몇 가지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우선 국내의 도전만화 시스템과 유사한 캔버스를 통해 다양한 창작자들의 유입을 유도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고료 외에 광고나 유료 판매 등을 통해 적극적인 수익모델을 창출한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나스닥 상장으로 마련된 자금은 북미 지역 플랫폼 확장, AI 기술 등에 사용된다고 하니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반까지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빠르게 변화하는 웹툰 산업의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지속적으로 글로벌 무대 공략에 나서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장 당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만화산업의 디지털 변혁을 주도하면서 K-팝과 K-콘텐츠에 이어 웹툰의 국제적 인기를 이끌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 웹툰의 해외 진출이 일이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기에 굳이 이 시점에 이러한 기사가 나오게 된 것은 순전히 웹툰엔터테인먼트의 나스닥 상장에서 비롯된 내용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 같은 영국 언론 기사는 현재 네이버웹툰의 본사가 미국에 있고 나스닥에 상장했을지라도 그 토대가 한국 그리고 한국 웹툰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정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코스피가 아닌 나스닥에서의 상장은 콘텐츠 기업으로서 네이버웹툰에 관한 향후 전망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나스닥 상장이 주는 무게감은 국내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평가를 가능하게 만든다. 나아가 경쟁과 협업 등 웹툰을 둘러싼 산업적 환경이 특정 기업 혹은 특정 국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글로벌 무대에서 논의가 이뤄지게 되었음을 공표한 셈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웹툰은 한국이 만들어낸 차별적인 장르를 넘어 세계가 즐기는 대중적인 장르로 안착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든다.

픽코마의 유럽 철수

  일본 온라인 만화시장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는 픽코마는 올해 상반기에 유럽에서의 사업 철수를 알려왔다. , 상반기에 사업을 정리하고 하반기에는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카카오재팬이 일본에서 웹툰전문 플랫폼 픽코마(ピッコマ, Piccoma)’를 처음 선보였던 것은 2016년 상반기의 일이다. 2016년 당시 웹툰이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던 한국과 달리 여전히 책으로 만화를 보는 것에 익숙한 일본에서 그야말로 파란을 일으키며 단숨에 앱만화의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최근까지도 일본 디지털만화 1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여전히 일본 시장에서의 입지를 지켜나가고 있다. 가령, 얼마 전에 일본 앱마켓 게임 포함 전체 카테고리 소비자지출 부문일본 앱마켓 도서 및 참고자료 부문 액티브 유저수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인기작들 상당수가 국내 작품을 번역해 서비스한 작품이라는 점은 인상적이다. , 다음 웹툰, 카카오페이지 웹툰 등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많은 작품들을 현지화하여 서비스했고, 이를 통해 한국 웹툰의 일본 시장 진출 교두보 역할을 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십여 년 전 일본만화 공세에 한국만화의 미래를 걱정해야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한국 웹툰의 경쟁력을 입증한 픽코마의 성장은 그 자체로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연착륙 이후 픽코마의 시선은 유럽으로 향했다. 20219, 프랑스에 픽코마 유럽(Picoma EUROPE)을 설립했다. 더불어 같은 해 11월에는 카카오재팬을 카카오 픽코마(カカオピッコマ, Kakao piccoma)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이를 통해 픽코마를 전면에 내세우며 유럽까지 진출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어 2022317일에 프랑스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글로벌 종합 디지털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본격적인 걸음을 내디뎠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모델로 정착한 기다리면 무료도 진행하면서 유럽 내에서 한국 웹툰의 인기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적 정착과 안정적 성장을 보였던 일본 서비스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성장이 더디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법인 철수와 서비스 종료라는 결론에 다다른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는 주력 시장인 일본에 더욱 힘쓰겠다는 내용도 함께 한다. 실상 출판만화로부터 장르에 대한 인식, 창작의 방법, 소비의 패턴 등등에서 매우 유사한 측면을 공유한 일본과 달리 상대적으로 유럽에 대해서는 물리적 거리만큼 문화적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불어 20245월에 웹툰 전용앱인 <점프 TOON>을 선보인 슈에이샤의 경우처럼 일본 현지에서도 출판만화 틀에서 벗어나 웹툰이라는 장르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선택과 집중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일본에서 시장 장악력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만타의 프랑스어 지원 및 웹소설 서비스 추가

  네이버웹툰과 픽코마 이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2024년 상반기에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여준 또 다른 글로벌 플랫폼으로 만타(Manta)를 놓칠 수 없다. 만타는 금년 상반기에 기존 웹툰 서비스 외에 웹소설 카테고리도 추가했으며, 또한 프랑스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202011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만타는 권별 과금을 시행 중인 여타의 플랫폼과 달리 월정액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영어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20231월에는 스페인어 서비스를 추가했으며, 이어 올해 2월에는 프랑스어 서비스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특히 서구권 독자들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 서비스를 종료하는 플랫폼도 있는 것과 대비되어 이와 같은 만타의 행보는 적어도 한동안은 유럽시장에서 공격적인 사업 전개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요컨대, 거시적 관점에서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목표는 동일하지만, 특정 언어권이나 문화권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은 플랫폼에 따라 상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편으로 이처럼 동일 문화권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각자의 선택지를 취할 수 있을 만큼 한국발() 글로벌 플랫폼의 역량이 축적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한편, 만타가 상반기에 시작한 웹소설 서비스 역시 웹툰의 사업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 웹소설 기능의 핵심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보인, 이른바 노블코믹스’, 즉 웹소설 원작 웹툰들과 연관되어 해당 원작 웹소설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목적이 크다 하겠다. 이는 결국 웹툰 독자의 웹소설 독자화 혹은 웹소설 독자들의 웹툰 독자 유입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서비스의 성과가 기대된다.

세상은 넓고 글로벌 플랫폼은 할 일이 많다

  웹툰 독자들은 자신이 재밌게 보는 작품만큼이나 그 작품을 창작한 작가에게도 많은 애정을 지니게 된다. 작품을 보는 가운데 그 작가는 자연스럽게 우리 작가가 되며, 그러한 독자들 다수가 모이면 이른바 팬덤이 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면서 플랫폼을 옮기게 되면 충성도 높은 독자들 역시 작가를 따라 자연스럽게 신규 플랫폼의 구독자가 되기 마련이다. 이는 곧 우리 작가는 있어도 우리 플랫폼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외로 진출하는 플랫폼을 목격하게 되면서 - 국내시장 내부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 ‘우리 플랫폼에 대한 애정까지 목격할 수 있는 법하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보았던 나의 최애 작품이 연재되는 곳, 그래서 내 돈 주고 본 콘텐츠가 자리 잡고 있던 그 플랫폼이 글로벌 무대에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라는 감정이 발현되며, 그것은 특정 작품에 관한 독자로서의 애정을 넘어 ‘K-웹툰에 대한 자부심을 경험하게 만들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간 당시 우리나라 수출액에 포함된 만화의 지분은 얼마나 되었을까. 정확한 자료는 찾기 어려우나, 극히 미약하거나 혹은 지분 자체가 아예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타당할 듯하다. 그 시절에 만화는 수출 품목이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웹툰으로 대변되는 한국만화의 수출 그리고 수출액을 전하는 기사와 소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제 수출된 작품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만화시장에서 움직이는 한국 웹툰기업 혹은 글로벌 마켓에서 주목받는 한국산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우리의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참고자료

https://www.thebell.co.kr/free/content/ArticleView.asp?key=202208051729421800104245

https://www.korea.kr/multi/visualNewsView.do?newsId=148931377&call_from=naver_news

https://news.heraldcorp.com/view.php?ud=20240814050684

https://www.kakaocorp.com/page/detail/9690

https://www.mk.co.kr/news/it/10948261

https://www.sedaily.com/NewsView/2D57C6K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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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