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만화교육의 철학 및 2024년도 지역별 만화 관련 학과 근황
‘왜 교육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
교육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며 필요한 지식, 기술, 가치관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왜 교육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교육철학에서 교육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하는 질문이다. 기초 학습능력과 삶을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지식이 주가 되는 중등교육(중학교, 고등학교)를 이어 대학은 특히 고등교육을 통해 전문 지식과 인재를 양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만화 관련 교육은 기초학습능력이라기 보다는 전문적 능력에 가깝다. 이것이 고등교육에 해당하는 대학에서 만화관련 학과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만화·웹툰 관련 전공 1년에 10곳 이상 생겨
위와 같은 관점에서, 스승과 제자의 형식을 띤 도제식 교육으로 진행되었던 과거의 만화교육에 비해 전문적 능력을 배양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대학의 만화 관련 학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지방 대학의 위기나 만화와 웹툰 관련 산업의 급격한 성장이라는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2020년대 이후 만화·웹툰 관련 전공 대학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주로 인기 있는 ‘웹툰’을 전공으로 하는 학과 설립이 크게 붐을 이루었다.
필자가 논문 작성을 위해 개인적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하던 2018년에는 만화·웹툰 관련 전공이 18개였다. 2022년 입시 모집에서 50여 곳, 2023년에는 60여 곳. 2024에는 약 70 곳의 대학이 관련 전공 입시생 모집에 나서게 된다. 6년 동안 50곳 넘는 관련 전공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거의 매년 10여 곳씩 웹툰 전공이 생긴 셈이다.
대구경북, 부산경남 지방으로 갈수록 관련 학과 신설 크게 늘어
관련 학과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다. 특히 지방대 위기가 본격화되던 시점인 2021~23년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구경북이 11곳, 부산경남이 12곳 등 영남권이 가장 많이 생겼다. 2024년에도 4개 대학 전공이 새롭게 신설되어 상반기 기준 68개 대학 전공에 이르렀다.
경기도에는 지방에서 캠퍼스 이전을 한 곳과 청강대, 부천대를 제외하고도 모두 7개 대학에 웹툰 관련 전공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충남 금산에 본교가 있는 중부대는 고양 캠퍼스를 만들면서 만화애니메이션학과가 옮겼고, 예원예술대학교 만화게임영상학과가 경기북부권인 양주캠퍼스로 이전했다. 영주에 본교가 있는 동양대는 동두천캠퍼스에 웹툰애니메이션학과를 신설했다. 지방대학 위기에 수도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존의 학과들도 정원을 크게 늘리는 추세이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가 2010년대초 40명 정원에서 200명 가까운 신입생 증가를 보인 것 외에도 백석문화대, 한국영상대, 경일대, 대구대 등이 100명이 넘는 신입생을 모집한다.
필자가 한때 적을 두고 있던 목원대는 2020년 웹툰애니메이션과(신입생 정원 40명)에서 2021년 웹툰애니메이션학부가 되었다가, 2022년 웹툰애니메이션게임대학으로 개편되었다. 2년 만에 단일 학과에서 단과대학으로 성장하였다.
광역시나 도단위에 만화·웹툰 관련 전공이 없는 곳은 인천, 울산, 제주 등 3지역에 불과하다. 해당 지역 대학들 가운데 학과 설립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몇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설 대학은 거의 대부분 ‘웹툰’을 학과 전공 명칭으로 채택하고 있다. 기존의 만화 전공도 점차 웹툰으로 바뀌는 추세다.
웹툰 전공의 인기는 같은 대학 내에도 유사 전공이 생기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예원예술대학교는 만화게임영상전공, 애니메이션&웹툰전공에서 각각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영산대학교도 웹툰학과와 만화애니메이션전공이 별도의 학과로 독립되어 있다. 백석문화대는 기존의 웹툰애니메이션학부 웹툰과 외에 웹툰디지털영상과라는 계약학과(계약학과 :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맞춤식 직업교육체제(Work to school)를 대학의 교육과정에 도입하여, 산업체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거나(채용조건형) 소속 직원의 재교육 및 직무능력향상(재교육형)을 위해, 산업교육기관(대학)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산업체 등과 계약하여 설치·운영하는 학부·학과를 말한다. 다양한 인력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산학협력교육의 일환으로 2003년 도입되었다.)를 운영 중이다. 백석문화대와 설립자가 같은 서울의 백석예술대도 만화애니메이션전공이 따로 있다. 같은 학교 법인인 계명대와 계명문화대도 이름이 같은 ‘웹툰과’가 각각 개설되어 있다.
대학 만화 관련 전공의 양적 성장, 시스템의 보완
대학에 만화·웹툰 관련 전공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웹툰 산업의 빠른 성장과 함께 지망생이 크게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만화 관련 전공의 고등교육의 필요성이라는 이상적인 이유와, 대학의 어려움과 관련 산업의 성장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또한 유사 콘텐츠 분야 가운데 학과 설립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가 바탕이 된 경우, 전공 시스템 구축에서 보완이 시급한 경우가 발생한다. 교원 확보, 공간, 장비 구축, 커리큘럼 구성 등이 부실한 경우가 그것이다.
물론 충분한 준비를 통해 신설 학과를 구축한 경우도 있지만, 필자가 전수 조사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학과 홈페이지가 여전히 모체가 되었던 학과로 되어 있거나 만화·웹툰 관련 전공인 교수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다른 대학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도용하거나 홍보영상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웹툰을 앞세워 ‘장사’를 하고 실제 교육은 본인의 다른 전공으로 하면서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도 있다.
반면 관련 분야의 전공자나 전문가를 교원으로 초빙해야한다. 본인이 전공자가 아니라면 늦게라도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만화·웹툰을 서브컬처, 하위장르로 폄훼하고 본인은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고고한 예술가 행세를 하는 인물도 여럿 있다.
이처럼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교육과정은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을 나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커리큘럼은 교원, 시설, 장비 등과 직결되는 문제로 가장 선행적으로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함에도 대부분 간과되고 있다.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과정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교원’이 할 수 있는 교과목 개설이 선행되는 것은 정말 피해야한다.
2024년, 대학의 만화과는 무엇을 교육하려 하는가?
그렇다면, 현재 만화 관련 학과들의 전공 교육에 대한 교육과정적 접근은 어떠한가? 몇몇 대학의 예를 들어,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비판적인 관점이 포함 될 수 있으므로, 대학명 대신 만화 관련 전공에서 각각 뚜렷한 특징을 가진 A, B, C, D 대학과 교육학 관련 전공인 E로 지칭하여 대학별 홈페이지, 교육과정 편람 등을 요약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A 대학은 산업 현장과 밀접하게 연결된 심화된 전문 교육을 제공한다. 이 대학은 학생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문교양수업과 특화된 전공수업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산업에 즉각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실무 중심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학의 커리큘럼 역시 제작인력 양성을 주로 이루어져 있지만 교과목 별로 수직적 연계성을 쉽게 연결하기는 힘들다.
B 대학은 만화 교육에 있어서 미학적 접근을 중시하며 웹콘텐츠 제작자를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만화에서의 미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학과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다만, 교과목 구성에 있어 교육과정을 종료 시에 어떠한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수평적 분류가 아쉽다.
C 대학은 뉴미디어와 하이브리드 교육을 강조한다. 이는 웹툰 작가와 같은 창작자를 위한 고도 전문 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뉴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융복합 교육을 실시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디지털, 제작도구 등 신기술 관련 과목들이 교육과정에서 다수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기술 관련 교과목 간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반대급부로 만화 자체에 대한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찾기에는 교과목 편람만으로는 알아채기 힘들다.
D 대학은 융복합 교육과 대중문화 탐구에 중점을 둔다. 기초 실기능력을 배양하며, 다양한 문화적 접근을 통해 만화의 대중적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만, C 대학과 유사하게 교육과정에 있어서 융복합 교육과 타 교과목과의 관련성을 찾기는 힘들다.
각 대학의 사례 분석 결과, 교수진과 개별 교과목의 우수성과는 별개로 교육과정에서 각 교과목간의 수평적, 수직적 연계성을 높일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평적 연계성은 교육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인재상과 연관된 부분으로, 만화 제작에 있어서 각각 필요한 역량, 연구에 있어서 필요한 역량 등 해당 교과목과 수직적으로 연계된 교과목을 수료할 시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인재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수직적 연관성은 기본적인 개론에서 시작하여 심화된 내용으로 발전하고, 이를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으로 구성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수평적, 수직적 연계성을 고려하였을 때 일종의 교육과정에 있어서 로드맵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
물론 문서를 바탕으로 한 위의 분석은 실제 교육현장의 내용과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 각 대학의 교수진의 역량으로 교과목간 수직적, 수평적 연계성을 확보할 수도 있으며, 비교과 과목이나 기타 비공식 교육과정에서 뚜렷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교육이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웹툰) 대학교육에서 참고할 수 있을 만한 사례를 하나 제시하고자 한다.
E 대학의 교육학 관련 전공은 다음과 같은 교육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먼저, 교육의 필요성과 학문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을 통해 ‘왜 교육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인재상을 제시한다. 학문 자체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한 후 수평적, 수직적 연계성을 고려하여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한 숙고를 통해 각 교과목에 따른 교수요목과 교육과정 로드맵을 제공하여,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재학생은 진로에 따른 전공 선택과 전공선택의 결과로써 역량을 개발할 수 있다.
대학 만화 교육의 성장과 기대
초인지(Metacognition)는 자신의 인지 과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외부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본다는 의미이며,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나무보다는 숲을 바라보자는 뜻과도 유사하다.
본 글에서 다뤄본 대학의 만화 교육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쓴 글이다. 우수한 교수자의 확보, 우수한 교과목의 구성은 많은 대학에서 공을 들여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도 드러나고 있다. 다만, 양적 성장에 따른 부작용으로 시스템 구축에 있어서 전공에 부적합한 교원, 교육환경의 미구축 등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각 교과목 간의 연계성에서 개선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며, 이러한 수평적, 수직적 연계성 확보는 각 대학의 만화 전공 자체에서 해결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대학 교육에서 만화 관련 전공이 필요한 이유와 운영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시스템 구축, 교육과정 수립에 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 우수 사례를 답습하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요인들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지만 대학 만화 교육에 대한 질문을 반복해서 던짐으로써 개선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만화·웹툰 관련 전공 대학 현황>
(학과 명칭에 만화나 웹툰이 없어도 만화웹툰 전공 교수와 커리큘럼이 있으면 포함.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전공 등이 분리되어 모집하지 않으면 신입생수를 합산한 전체 정원 옆에 세부 전공 개수를 표기. 신입생수, 학과명칭 일부 변동 있을 수 있음. 세종사이버대학과 서울디지털대학은 사이버대학 특성상 정원 표기가 없음. 학과에 2개 이상의 전공이 있는 경우 전체 인원에서 전공수를 나눈 것임.)
권역별로 대학 비중을 보면 영남권이 23개 대학으로 가장 많은 만화·웹툰 전공이 운영되고 있고, 수도권이 21개 대학 중부, 호남권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경기도가 13개 학과가 밀집되어 광역시, 도 단위 가운데 가장 많다. 부산은 모두 9개 대학으로 차순위에 있다.
<권역별 관련 전공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