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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결산] 도약과 과제 사이에 선 K-웹툰

한국 만화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였던 2024년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요?

2025-01-06 임재환

[2024년 결산] 도약과 과제 사이에 선 K-웹툰

 

  한국 만화ㆍ웹툰 산업계가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일까? 2024년 산업계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도약과 과제를 마주해야 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 과정에서 네이버웹툰이 나스닥 상장으로 글로벌 도약을 선언하는 한편, 카카오, NHN 등은 동남아 시장 철수나 유럽서비스 중단을 결정하며 일본과 미국 시장에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글로벌 웹툰산업을 이끄는 플랫폼 기업들의 양면적 행보는 K-웹툰이 마주한 현재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조 원에 달하는 시장 규모, 드라마·게임 등으로 확장되는 IP 비즈니스의 성공 이면에는 불법 유통, 창작자 권리 보호, 지역 균형 발전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놓여있다. 관련 산업의 외연이 커질수록 내실을 다져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플랫폼 글로벌 전략 변화와 웹툰 IP의 다각화

  2024년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도약과 과제를 직면한 해였다. 네이버웹툰은 지난 6월 나스닥 상장을 통해 기업가치 267000만 달러(37500억 원)를 인정받았다. 상장 이튿날 주가가 25.66달러까지 오르면서, 기업가치는 한때 최고 44000억 원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2분기 실적 쇼크 이후, 급락한 주가는 미국 주주들의 집단소송까지 더해지며 주가 회복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프랑스 픽코마 유럽법인 해산을 결정하고 유럽 지역 웹툰 서비스를 종료했으며, 연내 인도네시아와 대만 시장도 철수할 계획이다. 이는 수익성이 낮은 지역을 정리하고 미국과 일본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실리 추구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새로운 플랫폼들의 약진도 주목된다. 리디는 글로벌 웹툰 구독 서비스 '만타'를 통해 북미·유럽·아시아 16개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누적 다운로드 수 1,500만 건을 돌파했으며, 대표작 <상수리나무 아래>는 글로벌 누적 조회 수 1억 회를 넘어섰다. 이처럼 다양한 플랫폼들이 차별화된 현지화 전략으로 K-웹툰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웹툰 IP의 활용에서도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게임으로 제작되어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했다. 출시 5개월 만에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 5,000만 명을 달성하며 K-웹툰 IP의 게임화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정년이>는 여성국극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화제를 모으며 최고 시청률 16.5%를 기록했다. <정년이>는 단순한 웹툰IP의 성공을 넘어 공연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쳐, 실제 여성국극 공연의 매진 사례가 이어지는 등 문화적 파급효과를 창출했다.

  미국 출판만화 시장에서 <이태원 클라쓰>K-웹툰의 경쟁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현지 일반 작품 월 평균 판매량의 5배에 달하는 6개월 만에 6만 부 판매고를 기록했다. 디지털 플랫폼 중심의 한국 웹툰이 종이책 시장이 강세인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의미 있는 성과로 보인다.

정책 지형도의 변화와 산업 보호를 위한 모색

  정책적 측면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한 만화진흥위원회 발족이 주목할 만하다. 위원회는 창작자, 산업계, 학계 등 15인으로 구성된 자문기구로 출범했지만,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독립적 진흥기구와는 실체적 차이가 있다. 예산 집행이나 정책 수립에서 자문 기능 외 실질적 권한이 제한되기 때문에 정책 영향력이 미미한 상태이다. 향후 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만화ㆍ웹툰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으며, 각 지역의 웹툰산업 육성정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대구는 총 194억 원 규모의 글로벌웹툰센터 설계를, 대전은 399.4억 원 규모의 웹툰 IP 첨단 클러스터를 추진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였다. 경산시는 대한민국 대표 웹툰 도시로의 성장을 위해 '경산웹툰창작소'를 개소하고 작가 양성의 거점을 마련했다. 순천시는 글로벌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 케나즈와 오노코리아의 본사를 앵커기업으로 유치하였다. 광주광역시는 AI 기술과 웹툰의 융합을 통한 특화 육성을 추진 중이며, 충남도는 웹툰산업 활성화를 위한 창작 공간 확충과 예산 확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웹툰 산업 지형을 지역으로 분산시켜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의지에 더하여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나, 요원한 상황이다.

  학계에서는 70여 개 대학에 웹툰 관련 전공학과가 개설되어 양적 성장을 거듭하는 한편, 청강문화산업대학교를 비롯한 일부 학교는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답사와 실무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글로벌 교육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고 있다. 동시에 인력양성 정책예산의 효율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지역 진흥원을 대상으로 6개 플랫폼 기관을 선정하여 각 국비 1.5억 원을 매칭 지원하는 지역기반형 웹툰 작가 양성사업을 시행했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는 15명의 소수 정예 인원을 대상으로 한국만화웹툰아카데미를 운영하였다. 대학의 전공 교육과는 별개로 작가양성 사업에 정부예산이 중복 투자되는 현 상황에 대해 효율적 예산 활용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문체부는 표준계약서 개정을 통해 작가 휴재권, 수익배분 규정 명료화, 매출 관련 정보 공개 등 창작자 권리 보호를 강화했다. 50회 연재당 2회의 휴재권을 보장하고, 회차별 최소·최대 분량을 합의하도록 한 것은 작가들의 건강권과 창작권을 동시에 고려한 조치로 평가받는다. 이어 서울시도 웹툰 보조작가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개발했다. 근로자용과 프리랜서용 2종으로 구분된 이 계약서에는 대금(임금) 지급 방식, 상호 의무 및 협조, 검수, 경력증명, 지식재산권 귀속 등의 조항이 담겼다. 특히 보조작가가 참여한 작품을 포트폴리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웹툰 보조작가의 업무 특성을 반영하여 메인 작가뿐 아니라 보조작가의 권리 보호까지 정책이 확대되는 진전을 보였다.

  불법 웹툰IP 유통 문제는 산업계가 직면한 핵심과제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불법 웹툰 시장 규모는 7,215억 원에 달하며, 이는 합법 시장규모의 40% 수준이다. 이러한 불법 유통 문제는 해외 시장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우 100여 곳이 넘는 사이트에서 불법 유통이 이뤄지는 등 현지 사업의 수익성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불법 유통의 초국가적 특성으로 인해 개별 플랫폼 기업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국내 웹툰 플랫폼 기업의 해외시장 철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 간 협력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창작기술 발전과 산업이 직면한 과제들

  창작기술 발전과 함께 생성형 AI기술의 역할도 주목받았다. 주목할 점은 현장에서 AI기술이 창작보다는 콘텐츠 추천과 큐레이션에 중점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웹툰은 'AI 큐레이터'를 도입해 '알아서 딱!' 서비스를 시작했고, 카카오는 '헬릭스 큐레이션'을 통해 개인화된 추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는 창작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도 독자 경험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평계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지난 4월 사단법인 체제로 한국만화웹툰비평가협회가 발족하여 체계적인 만화웹툰 비평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협회는 7월 일본 만화계와의 교류를 시작으로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도 나섰다. 11월에는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글로벌 웹툰 산업 세미나'를 주최하며 K-웹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공론의 장을 열어 웹툰 산업의 글로벌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과 과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더불어 연구모임 만화 연구와 비평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BL''로맨스 판타지' 등 주요 장르에 대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고 총서로 연구성과를 엮어내며 만화ㆍ웹툰 연구의 학문적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네이버웹툰의 '2024 지상최대공모전' 1차 심사를 통과한 <이세계 퐁퐁남> 논란은 웹툰 플랫폼의 콘텐츠 관리 체계에 대한 세세한 검토가 필요함을 보여줬다. 여성혐오적 관점으로 이용자들의 논란을 일으키며 플랫폼의 콘텐츠 관리에 있어 부실한 문제점이 공론화 되었다. 공모전이나 도전만화 등 정식연재가 아닌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했고, 혐오·차별 콘텐츠에 대한 사후조치도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를 계기로 네이버웹툰은 혐오·차별 콘텐츠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을 수립하고 외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콘텐츠 관리 정책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인스타툰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국내 웹툰 이용자 중 인스타그램으로 만화를 보는 비율이 20.9%, 카카오웹툰(20.8%)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2021년 이용률 5.9%와 비교하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인스타툰은 독자와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고 해시태그를 통해 관심 독자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인스타툰 작가들은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상품 제작, 이모티콘 출시, 공공기관과 기업의 광고 의뢰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례는 '멍디' 작가다. 멍디 작가가 진행한 200만 원대 인스타툰 강좌 온라인 설명회에 1,600여 명이 동시 접속했고, 해당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 수 1만 회를 넘어서며 인스타툰 창작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2025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

  글로벌 시장 진출이 확대되는 만큼 전 세계 독자층을 고려한 웹툰의 다양성 확대와 문화다양성에 대한 창작계의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장르와 소재의 다양화를 통해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문화다양성과 다문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창작자 교육 강화가 필요하지만, 현재 전공 대학과 기관에서는 이러한 교육 과정의 준비가 미흡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웹툰 종주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한 인바운드 형태의 글로벌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해외 인재들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K-웹툰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문화적 교류와 이해를 바탕으로 글로벌 웹툰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새로운 도약을 위한 만화웹툰 아카이브 구축과 더불어 UCI 식별체제 정비 등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웹툰의 도서정가제 적용은 피했으나 체계적인 식별체계가 없다면, 저작권 보호나 유통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창작자 지원, 불법 유통 대응, 해외 진출 지원 등 다양한 과제들을 통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만화웹툰 분야 정책 컨트롤 타워의 부재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만화진흥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위원회의 기능상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지역 웹툰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콘트롤타워 부재라는 정책 공백의 한계를 보여준다. 만화웹툰 산업 전반을 조망하는 안목과 균형 잡힌 정책 제시를 통해 건강한 생태계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체계적인 정책 지원과 지속적인 업계의 노력이 조화를 이룰 때, K-웹툰의 진정한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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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환

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웹툰 비평의 유형별 질문법」 저자
2018 신인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19 부천만화대상 우수학술 연구상
前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포럼 위원, 前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경영기획실 책임연구원
교토 세이카대학 만화학과 졸업, 공주대학교 만화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