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국내 만화상 수상작으로 보는 한국 만화·웹툰 경향
국내 만화·웹툰 3대 만화상
국내 만화·웹툰 관련 유수한 상으로는 일부 이견이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오늘의 우리만화상, 부천만화대상, 대한민국콘텐츠대상을 꼽는다. 어떤 이는 가장 오래된 만화상이며 만화의 날에 시상을 진행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최고의 상이라 하고, 어떤 이는 국내 만화축제를 대표하며 한 해에 최고작 하나를 뽑는 부천만화대상의 대상 수상작을 최고의 영예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대통령상인 대한민국콘텐츠대상이 가장 높은 격의 상이라 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어떠한 상에 대한 정량적 평가를 할 때는 상의 훈격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훈격으로만 보자면 대한민국콘텐츠대상(대통령상), 오늘의우리만화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부천만화대상(부천시장상)순이 되겠다.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우리 만화인들에게 그러한 훈격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영예로운 상이기에 한 해에 수천 편씩 연재되는 작품들 중에서 선정된다는 것은 작업실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만화·웹툰 작가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순간일 것이다.
과거에는 우수한 작품이 한 해에 2~3개 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통상적으로 평가를 진행할 때 타 만화상을 수상한 작품은 제외하는 경우가 많아 최근에는 중복 수상이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작품성, 대중성, 시사성을 보인 작품들은 3개 만화상을 모두 수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올해에는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을까? 그리고 수상작들을 바탕으로 올해 만화·웹툰의 경향성을 분석해 볼 수 있을까? 먼저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는지 살펴보자. 2024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으로는 <똑 닮은 딸>(이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들개이빨), <세화, 가는 길>(한혜연),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김성희), <황제와 여기사>(팀 이약), 2024 부천만화대상으로는 대상 <정년이>(서이레/나몬), 신인만화상 <안 할 수 없는 임신>(파란거인), 독자인기상 <1초>(시니/광운), 2024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만화부문으로는 대통령상 <열혈강호>(전극진/양재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가비지타임>(2사장), <마루는 강쥐>(모죠), <더 그레이트>(광진, 지민), 한국콘텐츠진흥원장상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안그람)이 있다.
△ 부천만화대상 대상작, 정년이(좌),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우)
만화상은 어떻게 선정할까?
그렇다면 이러한 작품들은 어떠한 방식과 기준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 걸까? 오늘의 우리만화상,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등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해보자면 대부분 1차, 2차, 3차 등 많은 단계로 나누어 평가가 진행된다. 1차 평가에서는 주최측에서 미리 선정한 작품 혹은 출품한 작품을 대상으로 평가위원들이 각자 우수한 작품을 선택한 후 평가 결과를 취합한다. 혹은 1차 평가 단계에서 주최측이 작품을 미리 선정하지 않고 평가위원들이 당해 연재된 평가 기준에 맞는 모든 웹툰을 대상으로 각각 10여 개의 작품을 선정하여 리스트를 보낸 후 취합한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 명의 평가위원들이 선정한 작품 리스트가 약 300여 작품이 되기도 했다. 2차 평가에 선정된 작품들은 만화상마다 상이하지만 보통 10~30여 개로 정리되며 이 단계에서부터는 평가위원들의 정성적 평가 및 토의가 진행된다. 2차 평가위원들은 1차 평가위원 일부와 새로운 위원들로 재구성되거나 1차와 2차 평가위원을 완전히 다르게 구성하기도 한다. 만화상마다 제시되는 평가 기준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창의성, 완성도, 성과, 발전과 확장, 시의성, 동시대성 등의 요소를 중심으로 평가되며 해당 만화상의 성격에 따라 평가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 토의를 위해 평가 위원장을 선정하게 되는데 통상적으로 해당 만화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평가 경험이 많은 위원이 장으로 선출되고 만화상 취지에 맞는 작품들을 선별하기 위한 안내를 진행한 후 토의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평가위원들이 해마다 일부 혹은 전체가 교체되기 때문에 그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질 수는 있겠다. 작품을 선정하는 토의 과정에서 만화·웹툰 작품에 대한 정성적 평가와 더불어 해당 작품이 재미있는, 돋보이는 이유를 각자 언급하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평가위원들도 대다수가 만화인이기 때문에 팬심을 보이거나 소위 덕후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는 등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들도 있다. 물론 평가위원 개인의 취향에 맞춰 수상작이 선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작품의 선정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작품이 선정되지 않았을 때 아쉬워하는 반응들을 보는 재미가 있는 정도겠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분위기는 만화상마다, 해당 연도마다 다를 수 있다.
국내 만화상 수상작으로 보는 한국 만화·웹툰 경향
올해 만화상을 수상한 작품들에는 특별한 경향성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여성작가가 창작한 여성 중심 서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이제는 여성 중심의 서사라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일찍이 만화·웹툰계에서는 여성 독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작품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올해에는 그중에서도 더욱 많은 작품들이 수상되었다. 특히 ‘오늘의 우리만화상’의 경우 수상한 모든 작품이 여성 작가가 창작한, 여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작가의 성향을 과감하게 노출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필두로 GL 장르와 오토픽션 및 메타픽션 요소를 융합해 경계를 알 수 없고 정체 모를, 다 읽고 나서도 궁금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들개이빨), 이동하는 작업실을 만들기 위해 대형 면허도 없는 상황에서 덜컥 캠핑카를 구매한 후 목공을 배우고 1종 대형 면허를 취득하여 전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김성희), 연인의 죽음 이후 사찰에서 음식을 요리하고 나눠먹으며 위로를 얻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완성도 높게 엮어내 호평을 받은 <세화, 가는 길>(한혜연), 완벽 무결한 딸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엄마와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모녀의 관계를 치밀한 서사로 묘사하고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독자들을 놀랜 스릴러 웹툰 <똑 닮은 딸>(이담), 많은 차별을 극복하고 여기사로 성장한 이야기를 다루며 웹소설을 어떻게 웹툰으로 각색해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모범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노블코믹스 <황제와 여기사>(겨울/혜윰) 5개의 작품 모두 여성 작가가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늘의 우리만화상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매체에서 여성의 차별을 극복하고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다룬 이야기로 언급하였으며 드라마로 제작되어 높은 인기를 얻은 시대극, 부천만화대상의 대상작 <정년이>(서이레/나몬), 남성이 임신할 수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코믹하게 다룬 신인만화상 <안 할 수 없는 임신>(파란거인)도 마찬가지다.
사실 만화·웹툰계에서 여성 작가의 수상, 여성 중심의 서사가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1999년도 최초의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 8개 중 <레드문>(황미나), <this>(문흥미), <바람의 나라>(김진), <오디션>(천계영), <short stor>(이애림) 5개가 여성 작가의 작품이었고 그 이후로도 김혜린, 박은아, 김은정, 박소희, 이빈, 이해경 등 많은 여성 작가들이 수상을 해왔다. 나름대로 여성 친화적인(?) 만화계였지만 시대상의 한계로 표현이 제한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애초에 만화를 검열해오던 시대가 그리 오래지 않았으니. 점차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당시에는 묘사하지 못했던 다양한 표현들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음지에 있었던 BL장르의 대중화와 더불어 과감한 성적 표현, 보다 많은 장르의 시도, 자전적 이야기를 통한 성향 표출 등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졌고 여성향 지향의 웹툰 전문 플랫폼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유사한 성향의 콘텐츠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이며 한국은 그러한 흐름을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라 해석해 볼 수 있겠다. 또한 대학을 중심으로 한 만화, 웹툰, 애니메이션 관련 아카데미 교육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일찍이 전문적으로, 그리고 많은 대학에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근 들어 대다수의 학교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70~80%를 차지할 정도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도 있겠다. 자연스럽게 여성 작가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를 소비하는 독자들 역시 적극적인 소비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통상적으로 네이버 웹툰은 남성향 지향의 작품들이 많고 카카오페이지, 봄툰, 레진코믹스 등은 여성향 작품이 많다고 인지되고 있다.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페이지는 대형 플랫폼이기에 남녀 구분을 따로 두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었는데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여성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또한 해외 시장을 개척할 때 해당 국가의 주류 독자층과 경쟁하기 위하여 여성 독자들을 타깃으로 진입하는 경우도 많다. 네이버 웹툰은 2019년 <여신강림>과 <재혼황후>로 프랑스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역시 ‘픽코마’, ‘타파스’ 등의 플랫폼을 통해 해외 시작에 진출했는데 북미 웹툰 플랫폼인 ‘타파스’이용자는 여성이 약 80%로 관계자에 따르면 북미의 주류 시장과 다른 고객층을 만들기 위해 다른 고객층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공략, 확대해 나가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한국 웹툰 시장이 여성을 위한 작품으로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높게 평가하는 대한민국콘텐츠대상의 경우 2023년에는 <사신>(임재원)이, 2024년에는 <열혈강호>(전극진/양재현)이 수상했는데 두 작품 모두 오래전부터 남성향 장르를 대표하는 기성작가의 작품이다. 2023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2024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은 <가비지타임>(2사장) 역시 스포츠 장르로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오늘의 우리만화상’ 최초의 노블코믹스 수상작인 <황제와 여기사>(겨울/혜윰)도 주목할 만하다. 대중적인 작품보다 작품성, 동시대성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상’에 철저하게 대중적인 노블코믹스가 선정되었는데 상술했던 것처럼 웹툰에 적합한 각색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대통령상, 열혈강호(좌), 문화콘텐츠장관상 가비지타임(우)
나가며
전반적인 경향성을 분석할 때 성별에 의한 구분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진다. 일찍부터 만화·웹툰은 다양한 장르와 세부적인 독자 공략을 통해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소녀(순정)만화, 소년만화, 성인극화, 열혈물, 병맛물, 일상툰 등 시대적 변화에 따라 독자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져왔다. 2024년 만화상 수상작들을 바라보면 한국 만화·웹툰계는 꽤나 풍성한 작품들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열혈강호>, <가비지타임>, <똑 닮은 딸> 등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대중적인 작품들부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 등과 같은 자전적 이야기, <정년이>, <황제와 여기사>와 같은 여성 중심의 대중적 작품들,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과 같은 단편집까지. 그럼에도 아직 절대다수의 비중을 차지하는 웹툰 연재 작품들은 노블코믹스를 필두로 한 로맨스 판타지, 무협, 현대판타지, 회귀, 빙의, 환생을 소재로 만든 초현실적 장르들이다. 웹툰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유사한 장르의 범람은 독자들에게는 식상함을 작가들에게는 창작의욕을 저하시키고 획일화된 작품으로 인한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 만화상은 작품의 대중적인 성공과 작품성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시대의 반영 및 다양한 성향과 장르에 대한 새로운 시도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한다. 2024년도 국내 만화상 수장작이 한국 만화·웹툰의 경향성을 완전히 대표한다고는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앞으로 만화·웹툰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가늠하는 좋은 지표가 될 것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