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만화학과 커리큘럼부터 레드 오션 업계 생존법까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받은 진로 희망서에 적었던 직업은 ‘교사’였다. 보통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접하며 재능을 키워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그림을 그리는 건 재미없었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보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게 더 재미있었고, 웹툰은 즐겨 보기만 할 뿐이었다. 초등학생 때 진로 희망서에 엄마가 추천해 준 직업을 의문 없이 적었던 나는, 당연히 교사가 될 줄 알았다.
변화는 중학교 2학년 학기 초에 시작되었다.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친구가 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신기했고, 잘 그린 그림에 동경심이 생겨났다. 그 친구와 친해지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같이 보게 되었다. 그림 도구는 종이에서 태블릿으로 바뀌었고, 나의 인생 웹툰을 만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림을 업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한 공모전을 만나게 된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플랫폼의 홍보 웹툰을 그리는 공모전이었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선화도 채색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웹툰을 그려 제출했고, 나는 작은 상을 받게 된다(기억상으로는 공모전에 참여자가 적었는지 대상이 없었고 당시 내가 어렸기에 작은 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은 성취감이 계속해서 응어리처럼 마음속에 남아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새로 받은 진로 희망서에 ‘웹툰 작가’라고 적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라던 대로 공주대학교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공주대학교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는 2학년 때부터 세부 전공으로 나뉜다. 1학년 때는 만화와 애니 모두 배울 수 있다. 신입생으로서 심화한 내용보다는 기초에 집중한다. 만화 관련 강의에선, 주제를 한 장면으로 표현해 보기, 당시 유행이 시작되던 인스타툰의 생태, 인스타툰 제작 등 전문적인 기술보다는 창의력을 향상할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니 관련 강의에선, 공 튀기기, 사람의 걷기 등 기초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응용하여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이 외에도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되는 포토샵 기초 강의와 만화의 역사를 배운다. 또한, 드로잉 강의를 통해 실제 모델을 크로키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 드로잉 능력을 향상한다. 이렇게 기초를 다지고 단편 만화(혹은 애니)를 스스로 완성해 보는 것으로 1학년을 마친다.
2학년이 되면 카툰코믹스 전공과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나뉜다. 1학년 때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각 전공의 기초를 다시 배운다. 카툰코믹스 전공은 스토리 작법 방법과 만화 연출, 카툰의 역사와 캐리커처, 풍자에 대해 심도 있게 접근한다.
카툰코믹스 전공이더라도 애니메이션전공과 밀접하게 연관된 강의도 있다. 주로 3D가 이에 해당하는데, skechup, 3ds max, maya를 배울 수 있다. 얼핏 보면 3d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이 카툰코믹스 전공과 무관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만화(웹툰)는 배경이나 인물, 소품에 3d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3d를 더 효율적이고 완성도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 3d 모델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일련의 과정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작가 이외 직업의 길을 열어둘 수 있다. 이렇듯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강의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미래의 경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 된다.
1학년과 2학년이 전공의 기초를 다지고 준비하는 해였다면, 3학년부터는 배운 것들을 응용한다. 배운 것들을 토대로 웹툰 3화를 한 학기마다 완성하고, 인체 해부학 강의를 통해, 캐릭터 디자인, 사실적인 인체 묘사 등에서 디테일과 입체감을 부여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이 외에도 교육론과 비평을 배워 객관적인 시선을 습득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포트폴리오의 양분이 되고 잠재력을 발전하여 졸업 작품을 완성하면 4년간의 교육과정이 끝난다. 하지만, 이 과정을 버텨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학과의 과제량이 절대 적지는 않다. 특히 3학년은 주간 연재하는 웹툰 작가처럼 한 달 동안 3화 분량의 웹툰을 완성해야 한다. 웹툰 작가는 오로지 작업에 집중할 수 있지만, 학생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같이 해야 하므로 힘든 생활이 될 수 있다. 다만, 유흥을 줄이고, 만화를 그리는 것에 익숙하다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양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이러한 치열한 환경 속에서, 교수님들의 피드백은 학생들의 주체성을 존중하며 진행된다.
대체로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한다. 학생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그 의사를 지지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조금씩 지도해준다. 한 교수님은 피드백을 주기보다는, 학생끼리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이를 통해서, 학생들은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기르고, 자기 작품의 척도를 알 수 있다. 자기 작품과 타인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장단점을 파악해,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는 의도가 담긴 유익한 시간이 된다. 하지만 학교에서 실력을 쌓아도, 졸업 후의 현실은 또 다른 문제다.
막연히 졸업만 하면 작가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 많이 고민하고 있다. 처음 전공을 결정했을 당시에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웹툰을 만들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 웹툰 업계는 그때와는 사뭇 달라, 이 전공을 택했던 이유를 돌이켜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웹툰 작가도 되고 싶고, 웹툰 PD, 만화 평론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주어진 일을 최대한 하면서 차근차근 역량을 쌓아 올리고 있다. 다양한 웹툰과 만화, 게임, 영화 등 콘텐츠를 가리지 않고 향유하며 나만의 감각을 만들고, 이것이 기초가 되리라 생각한다.
졸업 전시를 끝낸 지금,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웹툰 PD를 지원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지원 사업을 염두에 두고 단편 만화를 기획하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웹툰 업계의 종착지는 출판 만화의 흥행과 여러 플랫폼의 균등화라고 생각한다. 이는 곧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출판 만화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동기 친구들과 함께 만화 앤솔로지(혹은 잡지)를 출간하거나 펀딩해 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만화를 제작하며 작가를 준비하는 것 외에 다른 경험도 많이 쌓아보려 한다. 특히, 올해 열린 ‘2025 대한민국 만화평론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서 평론가로서의 가능성을 좀 더 재고하고 있다. 어떠한 경험이나 직업이든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평론 작업을 통해 만화 산업과 콘텐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기르고 있으며, 이는 웹툰 PD로서 기획력과 작가로서의 창작 영역을 확장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만화 앤솔로지 출간을 꿈꾸는 것이 당장 취업에 도움도 안 되는 경력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로망을 넘어, 실제 출판 및 마케팅 과정을 이해하는 실무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융합되어 결국에는 콘텐츠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완성하는 데 귀한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하며 매일 배움의 자세로 임하고 있다.
한창 웹툰 작가를 꿈꿨던 시기에는 ‘억대 연봉을 갖는 직업’이란 타이틀로 기사가 많이 났었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만화학과에 진학하지만, ‘억대 연봉’이란 타이틀이 그리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내게 웹툰 작가라는 직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앞서 말했듯, 대학을 진학하고 졸업만 하게 되면 웹툰 작가가 되어 연재하며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웹툰 업계가 레드 오션이 되고, 과거의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작품과 그런 작품들을 수용하는 플랫폼은 적어졌다. 더불어 억대 연봉 타이틀은 성공한 극소수의 작가들만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수익이 소수에게만 집중되는 양극화 속에서, 웹툰 업계의 경제 규모가 커져도 작가 수입은 정체되어 있다.
이는 중간 유통사가 제작 관리와 영업 비용 명목으로 큰 몫을 가져가고, 웹소설 원작 웹툰화의 경우 IP 비용이 또 한 번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익이 대형 플랫폼과 소수 상위 작가에게만 집중되는 ‘승자 독식’ 구조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대형 플랫폼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중소 웹툰 플랫폼들은 잇따라 사업을 철수하고 있다. 중소 플랫폼은 신인 작가나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였는데, 이 기회가 사라지니 작가들의 작품 공급 기회는 더 제한되고 경쟁은 치열해진다. 대형 플랫폼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검증된 장르만 선호하게 되어 콘텐츠의 다양성마저 훼손되고 있다.
그러니 인기가 없는 작가나 연재를 시작하지도 못하는 작가 지망생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웹툰 업계의 경제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연재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나 원고가 필요한데, 이를 준비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수입은 없거나 아르바이트로 간간이 충당하게 된다. 이렇게 준비해도 연재의 문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연재를 시작할 수만 있다면 막대한 돈이 들어올까? 아니다. 먼저, 옛날과는 달리 원고료를 지급하는 플랫폼은 상당히 적어졌다. 요즈음엔 MG(Minimum Guarantee) 제도를 많이 사용하는데, 지급 방식에 따라 때로는 빚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최근 웹툰의 평균 퀄리티가 워낙 높아졌기 때문에 어시스턴트를 기본 두세 명은 쓰게 된다.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어도 어시의 월급으로 나가고, 어시를 쓰지 않으면 마감 기한에 적당한 퀄리티를 맞추기 어려워지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또한, 웹툰 업계의 경제 규모가 커져도 작가에게 그에 걸맞은 수입이 들어와야 하는데, 중간 유통사가 늘어남에 따라 작가의 순수익이 계속 적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처럼 복잡하고 냉혹한 업계 현실 때문에, 웹툰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솔직하게 조언하려고 한다.
이 말은 이 학과에 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보면 사기가 떨어질 수 있지만, 꼭 필요한 조언을 하려고 한다. ‘웹툰 작가’를 꿈꾼다면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비추천한다.
’너는 만화학과를 나왔으면서 왜 그런 말을 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더 비추천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웹툰 관련 직업이 아닌, 웹툰을 그리는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글과 그림을 같이 하는 1인 웹툰 작가는 창의성과 많은 경험이 요구된다. 하지만 만화학과는 다른 학과에 비해 폐쇄적이고 배우는 범위가 한정적이다. 재미있는 웹툰을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이야기 혹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상상과 창의력으로 이 간극을 메울 수 있겠지만, 직접 체험하는 것에 비해 훨씬 큰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온라인, 오프라인 어디서든 그림과 만화 작법을 배우기 쉽고 퀄리티도 좋기 때문에, 학과 진학보다는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도 만화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면, 책과 영화, 여행, 사교모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웹툰도 유행을 따라간다. 과거에 정통 판타지가 유행했었다면, 최근 5년간은 현대 판타지, 이 세계 판타지가 주를 이룬다. 특히 웹툰 업계는 유행과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다른 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계이기 때문에, 다양한 매체와 사교 활동을 통해서 발 빠르게 유행을 잡아야 오랫동안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동시에, 다작하는 웹툰 작가는 많이 없다는 건 유명한 사실일 것이다. 웹툰 작업은 긴 시간 동안 앉아서 팔과 손만 움직이기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져 은퇴하는 작가가 많다. 그러니 운동을 꾸준히 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꿈을 이루는 길은 분명 힘든 길이다. 이 글이 막연한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데 작은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