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웹툰 플랫폼의 시련과 성공 그리고 각성한 망가
들어가며 : 성숙기 진입한 글로벌 웹툰 산업의 위기
한국 웹툰 산업은 세로 스크롤 방식과 주간 연재 주기, 몰입도 높은 컬러 작화와 캐릭터 중심 서사구조를 무기로 세계 만화 시장에서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다. 다수의 웹툰 원작이 넷플릭스 등 OTT 드라마로 전 세계에 퍼지면서 ‘글로벌 웹툰’, ‘글로벌 웹툰 산업’이라는 신규 영역이 형성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계 글로벌 웹툰 기업과 서비스 플랫폼이 받아 든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일본과 북미에서는 기록적 거래액과 나스닥 상장이라는 성과가 나왔다. 하지만 유럽과 동남아시아에서는 법인 해산과 서비스 중단이라는 극단적 결과가 나왔다.1)

새로운 위협도 추가됐다. 세계 만화 시장의 ‘1황’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망가가 달라지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2024년 6월 ‘새로운 쿨 재팬 전략’, ‘새로운 자본주의 그랜드 디자인 및 실행 계획(콘텐츠산업 활성화 전략)’, ‘지적재산 추진 계획 2025’를 연속 발표했다. 경제산업성은 2025년 이를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크리에이티브 산업 전략-콘텐츠 산업 해외 매출 20조 엔 달성을 위한 5개년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 기준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수출 규모는 4조7천억 엔(일본의 반도체 산업 수출액과 비슷한 규모)이다. 4배 이상 성장해야 가능한 목표이다. 일본은 이를 위해 2033년까지 17개 성장 분야에 민관합동 총 33조7천 억 엔(약 310조원 이상)을 우선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게임 24.5조 엔, 애니메이션 3.3조 엔, 망가는 1.6조 엔이 투입될 계획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2040년까지는 총 370조 엔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2)
일본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맞춰 기업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망가의 디지털화에 다소 보수적 입장을 취했던 출판사들이 전자만화책 유통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2026년 8월 창립 100주년을 맞은 슈에이샤는 웹서비스 ‘망가 밀리언(MANGA MILLION)’을 오픈했다. 369 작품, 100만 페이지 분량의 망가를 한국어 포함 최대 107개 언어로 번역해 전 세계 독자에게 무료로 공개했다. 이중 약 300개 작품은 이 이벤트를 위해 처음 번역된 작품이다. 디지털만화 등 뉴미디어 콘텐츠 영역에서 한국 웹툰과 K-컬처에 뒤처졌던 일본의 공세가 시작된 셈이다.
유럽·동남아 철수 : 글로벌 웹툰 산업의 시련
글로벌 웹툰 시장을 구축한 한국계 웹툰 기업과 플랫폼 서비스사에게 유럽과 동남아시아, 대만, 중국 등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신흥 진출국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23년을 기점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 지역에서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철수했다.
카카오의 글로벌 자회사 카카오픽코마는 유럽 시장의 핵심 거점이던 프랑스에서 2021년 9월 현지 법인 ‘픽코마유럽’을 설립했다. 2022년 3월 서비스를 론칭했으나 2024년 철수를 결정했다. 픽코마유럽은 2022년에만 약 1억 3,260만 유로, 한화 약 1,981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예상을 밑도는 성장세와 지속적인 수익성 악화에 시달렸다. 이에 콘텐츠를 공급하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프랑스 조직을 해체했다.

NHN은 2023년 독일에서 웹툰 플랫폼 ‘포켓코믹스’를 철수한 데 이어, 2025년 1월 프랑스 포켓코믹스의 신규 업로드를 중단하면서 사실상 유럽 사업을 종료했다. 네이버웹툰 역시 2023년 추진하던 유럽 통합법인 설립 계획을 접고 미국 법인에서 다국어 서비스(에스파냐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를 시행하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동남아시아와 중화권에서도 구조조정 기조가 뚜렷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심각한 불법 복제 유통과 낮은 독자당 평균 매출(ARPU)을 이유로 2024년 인도네시아, 2025년 대만에서 철수했다. 카카오웹툰의 중국 서비스 ‘포도만화’도 2025년 7월 서비스를 공식 종료했다. NHN 역시 베트남과 태국 거점을 정리했다.3)
연쇄적 시장 철수 배경에는 전통 출판 만화 중심의 소비문화, 일본 망가의 견고한 점유율, 디지털 결제 장벽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프랑스의 경우 유럽 최대 만화 소비국으로 연평균 11.6%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지만 자국 만화인 ‘방드 데시네(Bandes Dessinées)’와 일본 망가에 대한 선호가 뚜렷했다. 네이버웹툰(웹툰엔터테인먼트)이 한국의 ‘도전만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현지 작가들의 작품을 자율 연재할 수 있도록 한 ‘캔버스’ 서비스를 통해 현지 소비자의 입장을 수용한 것과 달리 카카오와 NHN 등은 한국 웹툰을 번역 제공하기 바빴다. 결과적으로 동남아에서는 정식 번역본의 유료 전환율보다 불법 유출 속도가 더 빨랐고 재무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미국 확장 : 글로벌 웹툰 산업의 성공

일본과 미국은 글로벌 웹툰 산업의 매출 거점이자 세계만화시장의 핵심 경쟁축이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툰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수출액 중 49%가 일본, 북미가 21%를 차지했다.4) 글로벌 웹툰 플랫폼 기업과 서비스가 유럽과 동남아 시장에서 철수한 것은 당연스럽게 일본과 미국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일본은 약 4조 원 규모의 세계 최대 만화 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자국 만화인 ‘망가’가 핵심 상품이다. 그 일본에서 한국 웹툰 플랫폼이 모바일 앱 마켓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카카오픽코마의 ‘픽코마’와 네이버웹툰의 ‘라인망가’가 일본 디지털만화시장을 양분하며 각각 연간 거래액 1,000억 엔, 한화 약 8,800억~9,000억 원의 매출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두 앱에는 웹툰뿐만 아니라 망가도 서비스된다. 픽코마는 일본 전체 모바일 앱 마켓(게임 제외) 소비자 지출 1위를 유지하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고수익 구조를 입증했다. 라인망가는 월 거래액 1억 엔 이상의 히트작을 배출하고 전자책 플랫폼 ‘이북재팬’을 인수해 독자 접점을 다각화하는 한편, 콘텐츠 수입망을 확대했다. 한국에서 만든 웹툰 콘텐츠와 한국식 웹툰 플랫폼 서비스가 일본의 망가콘텐츠와 독자를 수용해 낸 결과이다.5)
한국 웹툰 플랫폼이 북미 시장에 진출하고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은 웹툰 산업이 글로벌 자본 시장과 미디어 산업의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알린 계기였다. 네이버웹툰의 모기업이 된 ‘웹툰엔터테인먼트’는 2024년 6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주당 21달러로 상장해 약 29억~40억 달러, 한화 약 3조 7,000억~5조 3,000억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만화 앱 기준 북미에서 유일하게 월간 활성 사용자(MAU) 1,0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타파스’, ‘래디쉬’, ‘우시아월드’를 통해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타파스는 약 1,100개의 검증된 한국 IP를 바탕으로 매출의 85%를 창출하고 있다. 웹툰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웹툰IP를 바탕으로 다양한 유형의 미디어믹스를 추진하고 있다.6)
두 시장의 성공 요인은 도전적이지만 선명하다. 디지털 전환에 적합한 인적‧물적 인프라, 두터운 만화 독자와 유료 결제 저변, 현지 생태계와 결합한 서비스 운용 정책 및 역량이다. 일본에서는 망가에 익숙한 독자를 위해 작품의 현지화와 ‘기다리면 무료’ 같은 유료 결제 정책을 정착시켰고 미국에서는 아마추어 창작 공간 ‘캔버스’를 통해 현지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미국 히어로 코믹스의 대표 출판사인 마블과의 협업 등을 추진하면서 한국에서와 유사하지만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다. 매출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이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도 지속하겠다는 의지이다.
철수와 확장의 차이 : 결국은 투자수익률(ROI)
유럽·동남아 시장에서의 ‘철수’와 일본·미국 시장에서의 ‘확장’은 결국 투자수익률에 따른 전략적 전환이다. 주요 요인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플랫폼 실패의 재무적 원인은 신규 이용자 유치 비용(UA)에 비해 독자 1인당 생애 가치(LTV, (Customer Lifetime Value))가 미달하는 ‘유닛 이코노믹스(Unit Economics)’의 붕괴에 있다. 유럽과 동남아 진출 초기, 국내 플랫폼은 대규모 마케팅비를 투입해 다운로드 수를 늘리는 외형 성장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무료 포인트를 소비한 독자가 유료 결제로 전환되는 비율은 낮았다. 인앱 매출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운영비와 서버비, 번역 인건비가 누적됐고 적자 폭을 감당하지 못한 기업은 철수를 택했다. 반면, 일본과 미국은 유료 전환율을 확보해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켰다. 특히, 픽코마는 한국식 웹툰과 서비스 구조만 고집하지 않고 현지 ‘이용자가 새로운 취향과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만전을 기하는 등 ‘작품 퍼스트(First)’ 정책으로 독자 저항을 최소화했다.
콘텐츠 실패의 문화적 원인은 단순 국경 이동(Cross-border Distribution)과 초현지화(Hyper-Localization)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유럽에 공급된 한국 웹툰 상당수는 국내와 아시아에서 검증된 판타지, 로맨스 판타지,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장르에 편중됐다. 이러한 서사 공식은 아시아 독자에게는 강력한 몰입감을 줬으나 예술적 독창성과 정교한 서사 문법, 개성 있는 그래픽노블(또는 방드데시네)에 익숙한 유럽 독자에게는 진입장벽이자 피로감으로 작용했다(일부에게는 그것이 곧 성공 요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반면, 성공한 시장에서는 언어 번역을 넘어 현지 문화 코드와 정서를 반영하는 초현지화가 실행됐다. 네이버웹툰의 ‘캔버스’는 현지 작가가 직접 문화에 맞는 서사를 창작하게 함으로써 타깃 독자와의 밀착도를 극대화했다. 철수 시장에서는 급격한 물량 공급에 치중해 어색한 번역과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는 콘텐츠 자체의 매력을 반감시켰고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 역시 만들지 못했다.

콘텐츠 생존에 필수적인 유료 소비 환경 조성 여부도 한 원인이 된다. 프랑스 같은 전통 출판 만화 강국은 종이 단행본의 소장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실물 서점 중심의 오프라인 소비문화가 견고하다(청소년 세대는 달라지고 있지만). 이 환경에서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며 짧게 소비하는 웹툰 형식이 주류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적·문화적 지연이 불가피했다. 동남아에서는 불법 복제 유통이 정상적 시장 조성을 가로막았다. 정식 번역된 작품이 수 시간 내에 불법 사이트로 유출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유료 플랫폼이 설 자리를 잃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저작권 보호 체계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드라마·애니메이션·게임으로 이어지는 미디어믹스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어서 IP의 부가가치가 플랫폼 밖으로 확산되는 선순환 환경을 갖췄다. 진출국 만화시장 내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연관 콘텐츠산업으로 전선이 확장된다. 투자 대비 이익률이 낮은 쪽에 분산 투자하는 것보다 거점 시장에 집중 투자하고 기대 수익률을 강화한 셈이다.
결론 : 넓고 얕게 가던 길에서 좁지만 깊게 가는 길로
유럽과 동남아 시장의 철수와 일본과 미국 시장의 확장은 글로벌 웹툰 산업이 다음 국면으로 접어 들었음을 시사한다. 특정 지역의 철수는 한국 웹툰 전체의 실패나 작품의 한계로 볼 수 없다. 문화적 수용성, 결제 인프라, 저작권 환경에 대한 단계적 접근 없이 단행된 일방향적 플랫폼 이식의 한계였다. 분명히 소비 시장은 존재했다. 하지만 ‘유료 소비 시장’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본은 출판만화인 망가를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일본이 인터넷과 디지털만화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던 시기에 한국은 웹툰과 웹툰 플랫폼, 웹툰 플랫폼 비즈니스를 세계 시장에 내놓아 적잖은 성과를 냈다. 불편한 진술일 수 있지만 망가가 신경 쓰지 않는 틈새에 웹툰이 자리를 잡고 시장 파이를 키워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망가가 웹툰 플랫폼 사용자(콘텐츠 제공자) 입장에서 벗어나 망가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세계적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그만한 플랫폼(유통망)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대비해야 한다. 분산됐던 전력을 두 국가에 집중하고 있는 양대 플랫폼의 현재는 아쉽지만 다행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간 얕고 넓게 가던 방식이 웹툰의 글로벌 전략이었다면 이제 깊어져야 한다. 네이버웹툰이 웹툰IP를 바탕으로 자국기업들과 OTT드라마를 만들고 미국기업들과 영화를 만들고, 일본기업들과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자칫 방만해 보일지 모르지만 가장 폭발력 있는 깊이를 찾는 노력일 것이다. 결국 콘텐츠, 결국 IP이다.
[각주]
1) 머니투데이, 카카오 웹툰 유럽 이어 대만·인니에서도 철수, 2024.10.21.
2) 마이니치신문, 쿨 재팬 펀드 합병 가능성에 직면 손실 3억3,400만 달러 달성 후 삭감, 2026.06.26.
3) 파이낸셜뉴스, K웹툰 글로벌 확장 멈추나… 유럽시장 등 잇단 철수, 2025.06.16.
4)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웹툰산업 실태조사 보도자료, 2025.12.29.
5) 제드넷코리아, 웹툰엔터vs픽코마, 3분기 성적·확장 전략 비교해보니, 2025.11.14.
6) 테크엠, 올해도 1등·2등은 '카카오픽코마'와 '라인망가'...韓이 점령한 日 웹툰 시장, 202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