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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를 넘어서는 만화적 ‘쇼츠’의 예술성을 꿈꾸며

웹툰의 쇼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세로로 긴 높이와 가로로 짧은 형식에서 펼쳐지는 웹툰의 쇼츠‘화’는 시공간을 마음껏 변주하는 애니메이션과는 같을 수 없다.

2026-09-28 문종필

홍보를 넘어서는 만화적 ‘쇼츠’의 예술성을 꿈꾸며 


기술의 가능성? 


이 글은 선언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웹툰의 쇼츠‘화’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리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며칠 전 〈웹툰 플랫폼의 새로운 도전 속 ‘쇼츠’의 역할과 웹툰의 미래 전망〉이라는 주제에 대해 청탁받았다. 이 청탁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웹툰’이라는 장르가 내놓은 웹툰으로 만든 짧은 영상인 ‘컷츠’1)라는 형식이 당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쇼츠가 무엇이길래 사회적 이슈가 되는가. 세대를 불문하고 쇼츠는 가장 많이 소비되는 콘텐츠로 짧은 영상을 통해 가볍게 시대와 문화를 시청할 수 있는 형식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스낵 컬처’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쇼츠를 습관적으로 탐닉하니 그렇다. 무엇보다도 쇼츠는 젊은 세대의 것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10대를 겨냥해 나는 왜 쇼츠를 멈추지 못하는지에 관해 묻는 책2)이 나왔겠는가. 젊은 세대들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쇼츠에 열광하고 있다. 그래서 이 청탁에는 만화의 쇼츠‘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쇼츠에게 자리를 내준 웹툰의 위기를 생각해 보자는 것으로도 읽힌다. 쇼츠가 문제적인 것은 ‘책을 읽지 않는 독자’3)들이 늘어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는 책 읽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웹툰마저도 보지 않는 시대로 기울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웹툰의 미래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다. 어쩌면 이 질문이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현재 웹툰의 위치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웹툰의 위치가 예전과 같지 않으니 불안해서 하는 질문이다. 미래가 끝없이 희망적이라면 굳이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 미래는 불안이 잠식할 때, 꾸는 꿈이다. 특정한 조직이나 사회가 미래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그 공동체는 온전하지 않은 것이다. 웹툰 시장에서 웹툰의 미래에 대해 강박적으로 질문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정확한 통계를 확인할 수 없지만, 웹툰 산업 자체가 예전만큼 호황이 아니니 직감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만화계 사람들은 웹툰 IP의 확장과 변형에 대해 앞다투어 이야기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나의 이런 생각과는 무관하게 최근 〈만화규장각〉에 올라온 〈쇼츠에 빼앗긴 웹툰의 시간…숏폼 시대, 웹툰은 어떻게 살아남을까〉4) 라는 글을 읽었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웹툰이 다양한 콘텐츠에 밀려 독자가 줄어들고 있으니, 당대에 인기 있는 형식인 쇼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독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숏폼은 웹툰의 강력한 경쟁자지만 동시에 플랫폼 밖의 새로운 이용자를 웹툰으로 끌어들이고, 웹툰 IP를 새롭게 확장할 기회”라는 것도 강조한다. 간단히 말해 독자가 줄어드는 웹툰의 위기를 쇼츠의 방식으로 극복하자는 말이다. 나아가 쇼츠의 방식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오디오 웹툰이나 라이트 애니메이션처럼 독립적인 콘텐츠에 적극 활용”될 수도 있다는 여운도 남긴다. 


나 역시 이 글에 동의한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웹툰이 웹툰으로 우뚝 서 있기보다는 동시대의 유행하는 매체 환경에 지나치게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웹툰 독자가 줄어든 것을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쇼츠 현상이 원인이라고 진단하는 태도가 그렇다. 원인이 쇼츠이니 웹툰 역시도 쇼츠를 활용하거나 쇼츠‘화’되어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방식으로 계속해서 걷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그것은 바로 ‘작품’ 자체다. 우선 작품이 되어야 변형도 모험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기술의 활용과 발전만이 해결책이라고 보는 이 글이 우려된다. 물론, 이 글을 쓴 필자 역시도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테지만, 만화계 사람들이 내용뿐만 아니라 기술의 형식마저도 지나치게 유행을 좇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많은 만화인이 모여 함께 토론해야 하지만 이 글에서 모두 다룰 수는 없다. 아쉽지만, 이 글은 이런 우려 속에 어떻게 하면 만화의 지속성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지 웹툰의 쇼츠‘화’에 국한해 고민해 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로 우선 시선을 돌려야 한다. 밖을 보고 안을 봤을 때, 안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만화를 논하는 자리에서 음악 콘텐츠와 영화 콘텐츠를 다루는 이유다.


타 장르에서 활용되는 쇼츠 형식의 의도 


만화계에서 6년 동안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만화 자체가 토론되거나 이야기된다기보다는 자본에 의해 급속도로 ‘소비’된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나는 만화계가 돈이 되는 웹툰 IP만을 급하게 뽑아서 자본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물맛이 좋다고 우물에 있는 깨끗한 물을 한 번에 모두 길어 올리니 우물은 마를 수밖에 없다. 나의 이런 발언과는 상관없이 20년 이상 지속해 오던 웹툰의 관성이 하루아침에 멈추지는 않겠지만, 소비의 속도에 비해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창작자들의 훈련과 수련은 날이 갈수록 위태롭게 시드는 것 같다. 


창작자들이 성실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창작자들을 수련하지 못하게 막는 것 같다. 그래서 먼 훗날에는 웹툰이라는 플랫폼만 남고 작품은 모두 사라질 것 같은 불안이 느껴진다. 종이책처럼 향기도 촉감도 후각도 아우라도 시간성도 선물하지 못하는 인터넷 환경의 미래는 밝지 않다. K 웹툰이라는 긍지가 소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런 불안의 요소로 인해 만화가 ‘쇼츠’의 형식을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웹툰이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살기 위해 짧은 영상인 ‘쇼츠’의 형식마저도 탐하는 것이다. 웹툰 산업 자체의 불안이 틈의 형식으로 쇼츠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 틈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이 작은 구멍이 웹툰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뮤지션 에피톤 프로젝트의 ‘dingo music’ 부분이다. 이 영상의 길이는 21분 57초이다.


[그림 설명] 뮤지션 에피톤 프로젝트의 ‘dingo music’ 부분이다. 이 영상의 길이는 21분 57초이다. 


어쨌든, 〈딩고 뮤직(dingo music)〉 채널에 〈킬링보이스〉라는 콘텐츠가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구독자 555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증명해주듯이 많은 사람이 이 채널을 통해 음악을 즐긴다. 이 프로그램은 웹툰이 현재 지향하고자 하는 ‘쇼츠’와 닮았다는 점에서 참고해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다소 타임라인이 긴 이 영상이 쇼츠와는 무관하다고 반문할 수 있으나, ‘짧다’라는 동사적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점에서 ‘짧다’의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Killing voice’의 한글 의미는 ‘죽이는 목소리다’ 채널에서 다루는 음악이 압도적으로 노래가 좋다는 의미이다. 노래가 좋으면 좋지, 대체 얼마나 좋길래 이런 표현을 쓰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뮤지션이 이 채널에 등장하면 이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말로 ‘죽이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의 한 명인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의 콘텐츠를 예를 들어 보자. 12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그의 콘텐츠는 가을에 참 듣기 좋다.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런데 그 이유는 특별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 뮤지션은 2006년에 데뷔했는데, 21분 57초 안에 20년 동안 발표한 히트곡을 모두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전성기 시절부터 최근 노래까지 뮤지션이 직접 하이라이트 부분만 뽑아서 노래를 부르니 무한 반복하면서 듣는 팬(fan)으로서는 좋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성장했던 팬으로서는 다시 젊은 시절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젊은 시절은 물론, 나이가 든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도 쳐다보게 된다. 사랑에 실패했을 때,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파했던, 그 시절을 다시 회상하며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 음악을 통해 이런 경험을 겪게 된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것이다. 이처럼 〈킬링보이스〉는 긴 노래 중 가장 핵심적인 ‘하이라이트’만을 뮤지션이 직접 선곡해 여러 곡을 부르는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횡단한다. 20분가량의 짧은 시간에 15곡을 소화한다. 노래 한 곡당 5분 정도라고 생각해 본다면 하이라이트 잔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청자들은 ‘축제’에 놓이게 된다. 콘서트장에서 ‘앵콜’을 부르게 된다. 이 채널의 구독자가 500만 이상인 이유를 알 것 같다. 


2026년에 한국에 개봉된 〈오디세이〉 포스터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재구성한 영화 〈오디세이〉는 어떠한가. 이 영화는 국내에서만 천만 관객이 관람했다는 점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관객 동원이 작품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세밀한 서사와 사건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유명한 감독과 함께 할리우드 톱스타인 맷 데이먼, 마블 스파이더맨의 톰 홀랜드, 현재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젠데이아 콜먼 등 수많은 스타 배우들이 출연해 흥행에 성공한 것은 분명히 맞지만, 아무리 감독과 배우가 실력이 월등하다고 해서 몇천년을 버텨오면서 사람들의 입으로 언어로 책으로 전해져 왔던 이 이야기를 넘어설 수는 없다. 원작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원작 자체가 되어야지, 원작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오디세이〉는 동시대의 오락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 영화로 인해 ‘원작’ 역시 크게 주목받았으니, 쇼츠의 감각으로 상상해 본다면 역사적 시간 속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짧은 쇼츠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영화 〈오디세이〉는 흥행에 성공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유명한 감독과 배우가 총동원된 영화여서 흥행에 성공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흥행에 도움을 준 것 중의 하나가 쇼츠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예고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는 총 172분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3시간에 육박한다. 그런데 두 편의 예고편은 1분 48초, 3분 1초이다. 각각의 예고편을 2분과 3분으로 계산하면 86분의 1이고, 57분의 1이다. 그만큼 짧다. 긴 영화를 압축한 쇼츠 중에 쇼츠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짧은 영상에서 제작자들은 무엇을 담으려고 했을까. 이 의도를 생각하는 것은 웹툰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짧은 ‘형식’인 쇼츠의 형태를 생각하게 한다.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영화 〈오디세이 >


1분 48초 영상의 ‘1차 예고편’은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무덤이 전시되면서 시작한다. 이 장면 이후, 오디세우스의 독백이 깔린다. “수년간의 전쟁이 끝나고…그 누구도 병사들의 귀향 의지를 꺾지는 못했지 나조차도” 이 목소리와 함께 오랜 시간 그를 기다렸던 아내 페넬로페와 그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얼굴이 짧게 비친다. 높은 곳에 있는 고향집과 집으로 가는 여정도 오버랩된다. 잠시 후 감독의 이름 ‘크리스토퍼 놀란’이 검은 화면 속에 주목된다. 그다음 트로이 목마를 끌고 가는 트로이 병사들의 모습과 목마에서 숨죽이며 전투를 준비하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이 화면에 잡힌다. 화면은 또 바뀌어 고향으로 가는 길에 만난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화면은 또다시 바뀌어서 전쟁에서 죽은 영혼들이 등장하고, 험난한 파도를 뚫고 고향으로 향하는 오디세우스 일행이 카메라에 담긴다. 화면은 다시 어두워진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널로페의 독백이 이어진다. “돌아온다고 약속해요.” 오디세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못 돌아오면?” 다시 화면은 검게 변하고 영화 제목 ‘오디세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가득 채워진다. 마지막으로 2026년 8월 5일에 개봉한다는 정보가 담긴다. 


다소 장황하게 1분 48초짜리 영상에 관해서 서술한 것 같지만, 이 예고편에서 핵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트로이 전쟁에서 이긴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 자체라는 것이다. 이 여정 속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아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고향으로 가는 여정을 더 애달프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동료들의 죽은 영혼이 등장하거나, 외눈박이 괴물의 존재 역시 이 여정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한다. 짧고 정적인 영상이지만, 느리면서도 빠른 화면전환과 핵심적인 대사로 영화 〈오디세이〉가 어떤 여정을 통과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의 개봉일이다. ‘오디세우스’라는 한 인물이 험난한 고난을 이겨내며 고향으로 가는 여정의 이야기가 8월 5일 한국의 영화관에서 개봉한다는 사실을 이 예고편은 정확히 알린다. 이 말은 이 영상을 보고 대중들에게 이날 영화를 보러 오라고 설득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마디로 잘 만들어진 ‘홍보’인 것이다. 이런 핵심적인 연출을 통해 천만 관객들은 앞으로 보게 될 영화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보다 조금 더 긴 3분 1초짜리 영상은 어떤 의도를 담고 있을까. 이 영상에서는 감독과 배우들이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를 직접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앞선 예고편에서 볼 수 없었던 두세 장면이 새롭게 더해진다. 하지만 이 장면은 큰 의미가 없다. 이 영상에서는 영화가 촬영된 ‘장소’성과 ‘촬영’ 방법에 대해서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감독) : 〈오디세이〉는 거대한 이야기라서 영화로 만든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도전입니다. 


로케이션 촬영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몇 주마다 나라를 옮겨 다니는 거였어요. 강한 추진력을 만들어주거든요. 다만 이번 작품은 장소 자체가 워낙 특별해서 가는 것부터 촬영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도전이었어요. 


맷 데이먼(오디세우스 역) : 이 작품은 제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영화입니다. 영화를 여섯 편, 아니 일곱 편 정도 만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모험의 모든 챕터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진행됐고 매번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죠. 

모든 로케이션에 도착할 때마다 저는 그냥 웃음이 나왔어요. “도대체 여기서 촬영하자고 한 사람이 누구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런 장소를 실제 촬영 현장으로 바꿔놓은 걸 보고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감독이 또 있을까 싶었죠. 

그리스에 있는 네스토르 동굴에서 촬영했는데 정말 놀라운 장소였지만 그곳에서 영화를 찍으려 한 사람은 이제껏 없었어요.

이 이야기를 ‘오디세이(여정)’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작품 자체가 ‘오디세이’이고 정말로 다양하고 놀라운 마치 마법 같은 장소들을 가로지르는 여정이에요. 그리고 이 여정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과 즐거움을 전달하길 바랍니다. 


히메쉬 파텔(에우릴로코스 역) : 이야기를 실제로 구현하다 보면 로케이션 역시 하나의 ‘캐릭터’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장소들은 더 특별해야 했고, 우리는 정말 놀라운 곳들을 찾아다니게 됐죠. 


젠데이아(아테나 역) :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제가 평생 가보지도 알지도 못했을 세계의 장소들이 있어요. 배우로서 이렇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정말 큰 행운이죠. 배 위에 있는 척 연기할 필요가 없어요. 실제로 배 위에, 진짜 바다 위에 있으니까요. 정말 선물 같은 경험이죠. 

팬으로서 정말 기대돼요. IMAX 극장에 앉아서 감독님이 만들어낸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 순간이 기다려져요. 


앤 해서웨이(페넬로페 역) : 그것이 현실일 때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감각이 있어요. 그런 장소에 가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고 그게 연기에 또 다른 깊이를 더해주죠. 


로버트 패틴슨(안티노오스 역) :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는 베이스캠프가 세트 바로 옆, 몇 초 거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샌들을 신고 45분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의상을 전부 갖춰 입은 상태로요. 


톰 홀랜드(텔라마코스 역) : 규모가 정말 엄청났죠. 놀란 감독님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현장에서부터 모든 것이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 덕분에 극장의 관객들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거죠. 


루스 데용(프로덕션 디자이너) : 쉬운 로케이션은 단 한곳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장소가 스토리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어요. 실제로 그곳에 가서 촬영하지 않았다면 〈오디세이〉는 완성될 수 없었을 겁니다. 


앞선 1분 48초짜리 영상이 정적인 연출을 통해 영화 〈오디세이〉를 홍보했다면, 3분 1초짜리 영상에서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감독과 배우들이 직접 이야기한다. 여기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오디세이〉가 세트장이 아닌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만든 영화라는 것이다. 그만큼 ‘장소’가 중요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에서 장소는 인위적인 세트일 때가 많은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의 경우는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과 장소에서 영화를 촬영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자연스럽게 화질, 넓은 화면, 음향 등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IMAX 전용 영화라는 것을 강조한다.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영화의 장점은 계속해서 피부에 각인된다. 


이처럼 긴 영화를 짧게 소개하려는 의도는 장소성과 IMAX 촬영 기법이 특별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 의도를 누군가는 의식하지 않고 볼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이 짧은 영상을 통해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제작자의 의도가 명확하니 쇼츠 형식도 의도에 따라서 재구성된다. 웹툰이 실험해 보려는 웹툰 영상 ‘쇼츠’도 마찬가지다. 〈킬링보이스〉처럼 쇼츠라고 해서 무작정 짧을 필요가 없다. 영화 〈오디세이〉처럼 다양한 ‘의도’를 통해 하나의 작품을 전혀 다르게 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니 웹툰 쇼츠‘화’ 역시 홍보가 아닌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접근해야 새로운 것을 지향할 수 있다. 


‘쇼츠’ 만화의 예술성


웹툰의 쇼츠‘화’를 논하는 자리에서 음악의 한 프로그램 〈킬링보이스〉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 같다. 만화규장각에서 다뤄지는 소재인 웹툰(만화)의 독자들이 조금은 엉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를 뽑아서 짧은 영상을 제작하는 설정은 세로 스크롤 문법인 웹툰이 만든 새로운 발명품(?)인 ‘컷츠, 스토리챗, 캐릭터챗’의 형식과 무관하지 않다. 장르만 다를 뿐이지, 그 의도가 다르지 않다. 〈킬링보이스〉도, 영화 〈오디세이〉의 두 예고편도 결국에는 듣고 봐달라는 것이다. 우리 콘텐츠를 소비해달라고 애걸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것을 ‘홍보’라는 단어로 써도 무방하다. 홍보가 무엇인가. 자신을 쳐다봐 달라는 것이지 않겠는가. 물건을 사달라는 것이지 않겠는가.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콘텐츠로 조회 수를 올려 수익을 내야 하고,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봐야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우리 영상을 시청해 달라는 것이다. 예고편이나 짧은 음악 편성, 웹툰의 쇼츠‘화’를 들여다보면 결국은 이런 인정과 자본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 소비자로서는 흥미롭고 기발해서 몸만 움직이는 것이겠지만, 이 움직임 속에 그런 논리가 깊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질문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 글의 청탁 목적은 “웹툰 플랫폼의 새로운 도전 속 쇼츠”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새로운’이라는 단어를 청탁서에 넣은 것으로 봐서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드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만화규장각 편집위원들은 웹툰의 요약본인 영상 ‘쇼츠’가 새로운 것이라고 인식한 것 같다. 불안을 돌파해 줄 수 있는 동아줄로 인식한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웹툰이 이 형식으로 모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 역시 편집위원들과 같은 마음이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을 쫓아가는 것만이 새로운 것일 수는 없다. 


홍보를 위한 특정한 텍스트의 요약본이라면 다른 장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던 방식이니 새로울 것이 없다. 근대 이야기의 시초인 소설의 경우는 잡지나 신문에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인지 짧은 형식으로 소개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영화의 예고편도 마찬가지다. 다만, 웹툰의 경우는 웹툰 자체의 탄생 배경이 다른 장르와 비교해 매우 젊다는 점에서 타 장르에서 해왔던 방식이 도입될 때마다 ‘새롭다’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 같다. 따라서 “웹툰 플랫폼의 새로운 도전 속 쇼츠”에서 쇼츠의 형식이 새롭다기보다는 도전한다는 의미가 더 짙다고 판단된다. 새로운 것은 이웃의 예술을 견인할 때 이뤄지는 것이지, 닮아가는 것을 새롭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웹툰이라는 장르를 생각할 때 앞에 서술된 부정적인 내용은 소각될 수 있다. 웹툰은 애니메이션과 긴밀하게 만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는 않겠지만, 만화는 애니메이션이 될 가능성을 그 어떤 장르보다도 많이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엄밀히 따지면 같을 수 없지만, 두 장르가 가지고 있는 친밀성이 다른 장르보다 분명히 높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미래의 어느 날에는 본격적인 웹툰의 쇼츠‘화’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멈춰 있던 상상, 숏애니로 움직이다!”라는 표제로 ‘숏 애니 공모전’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현상은 웹툰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그림 설명] “멈춰 있던 상상, 숏애니로 움직이다!”라는 표제로 ‘숏 애니 공모전’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현상은 웹툰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앞서 영화와 음악을 통해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특정한 콘텐츠를 압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가능성을 우리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웹툰 1화, 2화, 3화, 4화로 이어지는 시간 구성이 아니라, 만화(웹툰)로 만들어진 쇼츠 1화, 쇼츠 2화, 쇼츠 3화, 쇼츠 4화로 이어지는 형식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형식이 웹툰에서 새롭게 발명되고 이런 창작 형태가 시스템으로 정착된다면, 그것은 만화도 웹툰도 애니메이션도 아닌 새로운 장르의 탄생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때 만화계 비평가들은 이 새로운 형식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까.


그런 시대 미래의 독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손가락을 이용해 세로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누워서 스마트폰 거치대에 걸어놓고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웹툰의 경우 음향이 들어온 지는 오래되어서 특별할 것이 없지만, 쇼츠의 영역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음향 효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효과음도 살릴 수 있으니, 만화(웹툰)는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닮아갈 것이다. 창작자들에게 넉넉한 지원과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새로운 장르의 ‘발명’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의미에서의 새로움은 다양한 ‘쇼츠’ 영역 안에서 분명히 낯선 장르라고 불릴 것이다. 요약이나 정리나 홍보의 역할이 아닌 작품 자체로서의 ‘쇼츠’는 분명히 중요한 예술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의도와 목적이 소개나 홍보가 아닌 작품 자체라면 그것이 ‘쇼츠’이든 뭐든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 만화(웹툰)가 내용뿐만 아니라 ‘실험’과 ‘도전’ 정신이 있느냐는 것이다. 만화계는 비슷한 내용에만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하고, 비슷한 형식만을 반복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형식이 세련되거나 모험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움에는 삶과 경험과 피부가 녹아 있어야 한다. 이런 경험이 만화가들에게 주어져 있는지부터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만화라고 해서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하는 순간 만화의 모험과 도전은 공허해진다. 이런 마음 없이 ‘쇼츠’ 역시도 헛발질에 불과하다.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려고 애쓰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쇼츠 역시도 좋은 쇼츠가 생산될 것이다.


〈무조건 이혼한다〉가 그린 웹툰의 쇼츠‘화’ 


연재 중인 웹툰 〈무조건 이혼한다〉는 2025년 9월 6일부터 2026년 2월 28일까지 총 26화가 연재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9월 19일 현재 웹툰의 쇼츠‘화’로 진행된 ‘컷츠’는 21화까지 진행되었다.

연재 중인 웹툰 〈무조건 이혼한다〉는 2025년 9월 6일부터 2026년 2월 28일까지 총 26화가 연재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9월 19일 현재 웹툰의 쇼츠‘화’로 진행된 ‘컷츠’는 21화까지 진행되었다.

[그림 설명] 연재 중인 웹툰 〈무조건 이혼한다〉는 2025년 9월 6일부터 2026년 2월 28일까지 총 26화가 연재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9월 19일 현재 웹툰의 쇼츠‘화’로 진행된 ‘컷츠’는 21화까지 진행되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과 남성은 가파른 인구 감소로 양성평등 복무제가 실행된 세계관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22세 이하 기혼자는 군대에 가지 않는다. 군대에 가기 싫었던 김민준과 최서연은 이 틈을 노려 위장 결혼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웹툰 〈무조건 이혼한다〉는 다룬다. 하지만 이 웹툰은 웹툰으로만 멈추지 않는다. 이 만화의 창작자인 모닥불은 자신의 웹툰을 쇼츠‘화’해서 전시한다. 웹툰의 연재 속도와 웹툰의 쇼츠‘화’가 같은 속도로 업데이트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속도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이 작품은 홍보나 낚시가 아닌 작품 자체로서의 쇼츠‘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창작자는 쇼츠를 통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려는 목적이 있다.


웹툰의 쇼츠‘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웹툰처럼 세로 길이가 길다는 것이다. 반면에 가로는 짧다. 쇼츠‘화’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동작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기존의 애니메이션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웹툰을 닮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해야 할 듯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쇼츠‘화’된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원작 웹툰을 감상할 수 있다. 나 역시도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무조건 이혼한다〉를 봤다. 편안히 맛있는 진라면을 먹으면서 관람(觀覽)했다. 이런 변화로 인해 웹툰 독자들이 더 이상 스마트폰을 쥐고 화면을 넘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편리함은 확실히 존재한다. 


〈무조건 이혼한다〉 4화와 14화 장면.

[그림 설명] 〈무조건 이혼한다〉 4화와 14화 장면 

4화에서는 최서연과 김민준, 이 두 인물이 서로 다른 취향을 확인하게 된다. 

위의 왼쪽 장면은 최서연의 취향을 같이 사는 김민준에게는 숨기고 싶은 것이다. 

14화 장면은 위장 결혼을 위해 부모님의 이름을 확인하고 가짜 배우자의 전공 등을 맞추는 장면이다.


세로로 긴 높이와 가로로 짧은 형식에서 펼쳐지는 웹툰의 쇼츠‘화’는 시공간을 마음껏 변주하는 애니메이션과는 같을 수 없다. 작품을 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웹툰의 형식을 버릴 수 없다. 이 형식은 결국 ‘웹툰’의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아쉬운 것은 ‘칸’과 ‘칸’ 사이의 ‘상상’이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감각이 익숙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종이책에서 웹툰으로 이동할 때, 칸의 상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웹툰의 쇼츠‘화’는 이런 상상이 부재되어 있다. 컷츠를 보다가 무엇인가 찜찜한 것이 느껴진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보기에 편리한 것이 마냥 좋지 않다는 의미다. 


한 작품의 형태만을 아주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앞으로 이 형식 안에서 새롭고 다양한 만화의 쇼츠‘화’가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토론과 평가는 많은 만화가에 의해 쇼츠‘화’가 진행된 이후에나 가능할 듯 보인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서는 창작자들의 행보와 독자들의 반응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각주] 

1) 이 용어는 앞으로 통일을 해야 할 듯하다. 웹툰을 짧은 영상으로 제작해 의도를 표현하는 것은 같으나 매체마다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2) 김아미, 『나는 왜 쇼츠를 멈추지 못할까』, 창작과비평사, 2025. 

3) 문종필, 〈책 읽지 않는 책 애호가의 미래를 상상함〉, 웹진 문화 다, 2026년 15일, 21일.

 1. https://munhwada.com/content/1623 

 2. https://munhwada.com/content/1624 

4) 박상욱, 〈쇼츠에 빼앗긴 웹툰의 시간…숏폼 시대, 웹툰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만화규장각, 202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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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