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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축제 (1)만화속의 축제를 즐겨라

만화로 축제를 이야기한다니, 호기심이 생긴다. 동시에 여럿이, 떠들썩하게 즐긴다는 축제와 혼자 펴놓고 보는 만화는 어딘지 서로 다른 범주인 것도 같다. ‘만화’라 하면 어쩐지 혼자서 바닥에 배를 깔고 찐 고구마를 먹으며 즐길 만한 ‘개인문화’의 이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2008-08-01 이영미

                                                                          [연중기획 Comic & Culture 16 ] 만화속 축제

여름입니다. 여름하면 휴가나, 시원함을 찾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뜨거운 열기와 더불어 다양한 축제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만화와 축제를 살펴봅니다. 만화속의 축제.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또한 만화와 함께 즐기는 축제는 또한 어떨까요? ^^ (편집부)

만화로 축제를 이야기한다니, 호기심이 생긴다. 동시에 여럿이, 떠들썩하게 즐긴다는 축제와 혼자 펴놓고 보는 만화는 어딘지 서로 다른 범주인 것도 같다. ‘만화’라 하면 어쩐지 혼자서 바닥에 배를 깔고 찐 고구마를 먹으며 즐길 만한 ‘개인문화’의 이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축제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고 즐기는 문화요. 놀이다. 과거 권력은 정치적 이슈와 국민통합을 위해 정부 주도의 거대 축제를 시도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참여가 없으면 실패했다. 보통 모여서 즐기며 의미를 찾는 것을 축제라 부르지만, 낙천적이고 놀이문화에 익숙한 우리 세대는 시위를 ‘축제’로 승화시키기도 하는 즐겁고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
우리 세대는 모든 문화와 예술을 축제로 승화하고 즐길 능력과 재주가 있다. ‘처용제’는 아내의 불륜에서 시작된 축제 아닌가. 세상 만물에 즐기지 못할 일은 없다. 그런 면에선 젊은 만화 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보다 훨씬 화려하고 파란만장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만화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축제를 맞이하고 어떻게 즐길까.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일본 만화의 축제 속에는 으레 일본식 전통축제인 <마쯔리>가 곧잘 나온다. 기모노를 차려입고 사당에 가서 소원을 빌고 한 해의 운세를 점쳐보기도 하며, 경단을 먹고, 물고기 뜨기 놀이를 한다. 그 외에도 여자아이에게 히나 인형 세트를 선물하기도 하며, 남자아이의 날에는 잉어 모형을 설치하여 건강과 안녕을 빌기도 한다. (히나 인형 세트는 만화 <스마일 키코>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다.)

20세기 소년
<20세기 소년>

만화에 소개되는 축제를 보다 보면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일본식 전통 문화를 느낄 수 있다. 반면에, 다양한 지역 색이 있다지만, 어쩐지 일본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전통 축제의 모습은 ‘놀이’라는 면에서는 획일적인 모습도 보여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초거대규모로 국가가 직접 기획하면서 일본의 선진화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1970년의 <만국박람회>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20세기 소년> (우라사와 나오키) 에선 이 <만국박람회>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등장한다. 이 박람회는 실제로 6400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인파가 오갔다고 하며 오랜 시간 줄을 섰다 살짝 훑어보고 돌아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겪은 박람회는 범국가적 충격이면서 자랑거리지만, 한편으로는 거대 규모의 권력을 체계적으로 주입한 이념으로도 읽힌다. 박람회로 각인된 동세대들의 솔직한 감상은 국가적 자부심인 동시에 하나의 스트레스는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 과거 이야기는 접어두고 지금, 현재의 만화 주인공들은 축제를 어떻게 즐기는지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즐기는 그런 축제 말이다.

후르츠 바스켓
<후르츠 바스켓>

학교 축제. 이 말에는 밝고 신선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고등학생 시절의 가을’하면 축제, 또 ‘고등학생 시절의 축제’ 하면 가을이다. 축제가 한창일 때는 물론이거니와 축제를 준비하면서 젊고 신선한 에너지로 온 학교가 들썩이는 그 싱싱한 분위기. <후르츠 바스켓> (타카야 나츠키)에서 가을 문화제를 준비하며 각양각색의 주먹밥을 만드는 학생들의 표정이 돋아나는 생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축제’라는 단어가 열여섯 살 소년?소녀들의 유쾌한 에너지 그 자체를 상징하듯, 이 유쾌한 에너지는 급기야 예쁘장한 남자 주인공 유키가 여자 옷을 입게 만들고 만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학교 축제라면 <아즈망가 대왕> (아즈마 키요히코)에서 보이는 코스프레 카페를 빼 놓을 수 없는데 그 중 치요는 귀여운 펭귄 코스프레로 작품 내외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각자의 개성이 확실한 등장인물들의 소박하고 별난 이야기는 <아즈망가대왕> 만의 전매특허였다.

스쿨럼블속의 축제 이미지
<스쿨럼블>속의 축제 이미지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축제라면 <스쿨럼블> (코바야시 진) 속 2학년 가을축제도 있다. 마치 메이드 카페를 연상시키는 2학년 C반과 이에 대항해 코스프레 찻집으로 맞선 다도회. 그리고 화려한 연극과 공연으로 참가 학생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까지 함께 즐기는 축제의 모습은 인기 연예인 쇼만을 유치해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네 학교 축제와 비교가 돼 부러움마저 들게 한다.

학교의 특성을 잘 살린 <노다메 칸타빌레> (토모코 니노미야)의 ‘모모케자카 음대 축제’는 또 다른 맛을 준다. 자신만의 색을 맘껏 드러내고자 작정하고 쇼맨십을 펼친 S오케스트라의 공연은 특히 그렇다.

음악적 편향성이 지나친 여자 주인공 노다 메구미가 망구스 옷을 입고 멜로디언을 연주하는가 하면 기모노를 입은 빅밴드와 드레스를 입어 여왕처럼 꾸미는 팀파니 담당 남학생 마스미 등. 일종의 퍼포먼스를 가미한 파트별 연주들이 하나의 묘한 하모니로 어우러진 S오케스트라의 “랩소디 인 블루”는 유쾌하면서 의미 있는 장면이다. 음악에 스스로의 철학마저 갖고 있던 이들 모두의 협연이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동시에 각자에게도 완성과 성숙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공연을 통해 인물들 각자가 한 뼘씩 성장해가는 모습은 이 작품을 읽어가던 독자에게 즐겁고도 무게 있는 감동을 선사한다. 그 축제 속에서 남자 주인공 치아키가 슈트레제만과 보여주는 협연도 빼놓을 수 없는 장면. 실제 귀에 들려오는 음악 없이도 음악의 매력과 음악인의 철학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린 본 작품의 명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이런 환상적인 학교가 있을까 싶은 ‘야자와 학원’의 가을 축제도 빠지면 섭하다. 아마도 ‘야자와 월드’ 내에서만 존재하지 않을까 싶은 <파라다이스 키스> (야자와 아이)의 의상 발표회는 그 중 백미이다. 특히, 파란색 장미로 장식된 드레스를 입은 주인공 유카리의 아름다운 모습은 지금도 수많은 만화 블로거들이 갖고 있을 만큼 유행 이미지가 되었다.

정말로 진짜
<정말로 진짜>

어떤 때는 그 축제의 에너지가 소외된 자신과 대비가 되어 스스로에게 외롭고 서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의 유키노와 아리마는 친구에서 연인이 된 직후 축제 준비기간 동안은 학급 임원으로서의 역할 때문에 만날 시간조차 없이 바빠져 섭섭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엄친아’, ‘엄친딸’ 커플인 이들의 연애란 너무도 완벽한 것이어서 공부와 학교행사 모두 차질 없이 해나가는 모습에는 질투마저 느끼게 하지만 이런 서운함을 호소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공감을 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적인 성숙이 이루어지는 건 학교 축제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은 것이 아닐까?

물론 일본의 학교에만 즐거운 축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청춘남녀의 터질 것 같은 열기와 설렘이 존재하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진짜> (권교정)의 유진이와 재영이가 연극의 주인공을 맡는 학교 축제가 빠져서는 안 된다. 이 둘의 학급 아이들이 총동원된 연극 ‘잠자는 공주’는 소박하고 발랄한 한국 고교생의 재치를 보여준다. 본래 잠이 많아 잠자는 공주를 연기하게 된 유진이와 이미지에 맞게 건들건들한 배달부 역을 맡은 재영이의 풋사랑이 가을하늘처럼 익어간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코스프레한 또 다른 커플, 초미와 성재의 커플댄스도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명장면이었다.

황토빛 이야기
<황토빛 이야기>

그리고 옛날에도 이런 축제는 존재했다. <황토빛 이야기>(김동화)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이화와 덕삼이의 결혼식 풍경은 소박하면서 조화롭고 정겹고도 오묘한 고전미로 가득하다. 신랑과 신부 두 사람만의 잔치인 듯 보이지만, 잔치 음식과 기러기 한 쌍, 이불의 무늬 한 땀 한 땀까지 두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들의 깊은 마음과 뜻이 담겨있다.

본인에게 축제란 십수 년 전 여고 시절, 연극 공연을 마친 후 이어진 앵콜 요청에 못 이겨 무대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추던 연극부 단원들에게 의자를 집어던진 교장 선생님의 충격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만화 속에서 가을 단풍처럼 여물어 가는 열정과 사랑들이 현실에서 절반이라도 이루어진다면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사실 축제의 꿈과 열정은 모든 청춘에게 존재하지만 현실의 벽이 그렇지 못해 그들은 촛불을 켜고 나름대로 열정을 표출하여 광장을 꾸민 것이 아닐까 한다. 꿈과 열정을 입시 밑에 묻어두는 현실이지만 만화를 보며 키워 온 꿈을 표출할 현실이 그나마 늘어난 것은 다행이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축제로써, 그들 스스로가 나서고 만들며 즐기는 것 자체가 큰 의미인 동시에 희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