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나라 말,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피폐는 극에 달해 황궁은 십상시라 불리는 내시들이 점령하고 있던 때. 자신의 야망과 꿈을 가슴 안에 품고 있던 환관 조숭의 양자 조조는 때마침 터진 황건의 난을 이용하여 자신의 패도를 걷기 시작한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비를 중심으로 하던 기존의 삼국지 만화들과는 다르게 악역으로 알려진 조조를 중심으로 다룬 삼국지로 유명한 작품이다. 팔방미인 형의 재능을 지닌 조조의 외면만이 아닌 재미있고 짓궂기도 하면서 냉정하고 때로는 잔인하기도 한 인간적 내면까지 다루고 있어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인물평을 받던 조조의 삶을 화려하고 멋지게 그리고 질펀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은 흔히 ‘7실 3허’라고 불리는 삼국지연의보다도 허구성이 짙다. 하지만 기존의 역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을 적절히 조절하며 그리고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이랬을 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고 있으며 장수 각각의 캐릭터 성 또한 잘 살려 작품 자체의 재미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_ T-Bell
만화로 보는 6월 민주항쟁「100℃」
최규석 /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혹 혁명이라는 표현이 프랑스나 러시아 같은 곳에서만 있었던 이야기라 생각했던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도 짧은 역사에 비해서 길바닥에 꽤나 잦은 피울음을 쏟아낸 나라다. 4·19가 있었고 5·18이 있었고- 바로 얼마 전 21주년을 맞이한 6월 민주항쟁(혹은 6월 민주화운동)도 그러한 역사의 핏자국 가운데 하나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정권은 1987년 4월 13일 ‘현행헌법대로 자기 후계자에게 정권을 이양한다’는 이른바 호헌조치를 발표하는 등 장기 독재 야욕을 끝도 없이 드러냈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시민들은 점차 호헌 철폐와 직선제 요구, 독재 타도 등을 외치기 시작했고 학생들과 민주운동 단체들이 일으킨 움직임에 여기에 상황을 보다 못 한 시민들까지 가세하며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쏘아댈 최루탄도 동이 난 6월 말,, 전두환 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끝내 항복하고 만다.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씨, 직사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씨와 같은 젊은 목숨은 물론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피와 눈물을 쏟아내며 외친 결과였다.
「100℃」 는 바로 그러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과정을 만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작품은 그 6월에 사람들이 왜, 어째서, 어떻게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는지를 만화의 힘을 빌려 사실적이고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원주민」과 같은 작품에서 현실의 무게와 그 안에서 비치는 인간 군상들의 소소하면서도 펄떡대는 이야기들을 날것 그대로 엮어 온 최규석 씨의 장기는 이 작품에서 그야말로 물을 만났다. 그 ‘광야’에 가득했을 사람들의 피울음을 누가 이 이상 절절하게 전할 수 있었을까?
비록 6월민주항쟁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렇게 얻어낸 직선제로 뽑은 대통령이 노태우 당선이었다는 것, 당시 그토록 싸워야 했던 세력이 지금 이 시점 그 시절에 저질렀던 행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와 시대의 아이러니다. 이 비극 앞에 「100℃」는 영호를 달래던 수감자의 대사를 통해 99도의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 물은 백 도 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 보면 불을 얼마나 더 떼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셀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떼야 되는지. 그래서 불을 떼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백 도 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 년을 버텨 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허허허”
그 해 6월, 사람들은 비등점을 넘어 거세게 끓어올랐었다. 시간만 지났지 그 때와 다르지 않아 보이는 바로 지금 2008년 6월의 광야는 어떠한 걸까. 그 때나 지금이나 거리에서 외치는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시민들이다. 투사가 시대를 끌어가는 게 아니라 시대가 우리를 투사로 만드는 웃지 못 할 현실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100℃」는 아들 걱정만 하던 영호 어머니가 마이크 앞에서 대범하게 소리를 지르게 되듯. _ 서찬휘
김혜린 작품군 「비천무」,「테르미도르」,「불의 검」,「북해의 별」,「아라크노아」 |
[비천무]:대원문화출판사(대원씨아이) / 전6권 완결 / 애장판 전4권 출간 [테르미도르]:도서출판 서화·도서출판 대원(대원씨아이) / 전3권 완결 / 길찾기 복간판 전3권 출간 [불의 검]:도서출판 대원(대원씨아이) / 전12권 완결 / 애장판 전6권 출간 [북해의 별]:도서출판 프린스·세주문화·도서출판 길찾기 / 복간판 전8권 완결 [아라크노아]:김혜린 / 도서출판 대원(대원씨아이) / 전2권 미완 |
시대만화가라는 호칭을 굳이 붙이자면 과연 누구를 그 호칭에 어울리는 작가라 말할 수 있을까? 여러 이름들이 오르겠지만 그 중에서 김혜린 씨의 이름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혜린 씨 작품에는 유독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다.
김혜린 씨의 데뷔작 「북해의 별」은 낭트 칙령까지의 프랑스 주변부 유럽을 소재로 삼아 가상 국가의 가상 시민혁명을 그려낸 작품이고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대혁명 발발에서 테르미도르 반동에 이르는 격변기가 무대다. 여기에 「불의 검」은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상고시대의 부족 국가 전쟁을, 「비천무」는 중국 대륙의 원명교체기를 다루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실제 시대적 배경이나 실존 인물에 가상으로 설정한 주연 인물들을 솜씨 좋게 엮어 마치 역사서를 보는듯한 생동감과 실제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다만 그 작품들이 단순히 역사 교육 만화가 아닐 수 있는 건 다양한 시대 속에서 시대 그 자체의 메시지나 역사적 사실에 매몰되기보다 그 시대 속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드라마를 그리는 데 무게 중심을 두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앞서의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인 「아라크노아」가 김혜린 씨 작품 중에선 독특하게도 화성 이주가 가능해진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근미래 SF지만 보고 있노라면 다른 작품들에서 작가가 고집스레 그려 온 일관된 주제를 역시나라고 할 만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어떤 시대 어떤 배경을 그려내든 김혜린 씨는 묵직한 서사 속에 ‘인간’을 향한 시선과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향한 갈구를 담아낸다. 그렇기에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그 시대 속에 이단아적인 위치에 서는가 하면 그 시대 현실 속 진창에 구르고 벽에 부딪쳐 처절한 꼴을 당하기가 일쑤다. 그 과정 끝에 놓인 게 해피엔딩이라 할 수 없을지언정 그들은 그렇게 그 시대에 힘껏 부딪쳐 나가며 한 인간으로서, 민초로서,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 그들 사이엔 지도자적인 인물이 있는가 하면 그 흐름 속에 짓밟히고 마는 인물이 있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하는 인물도 있다. 김혜린 만화의 미덕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대 명제나 대의 따위에 그들을 손쉽게 파묻고 지나가지 않는다는 점이고 바로 그 안배가 시대적 배경에 오히려 진한 설득력을 부여하여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대를 살아가는 것도 사람이고 시대를 끌어가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한편 김혜린 씨가 활동을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 우리나라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또 한 차례의 민중 운동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었다. 독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광야에서’ 민주주의를 꿈꾸던 이들이 ‘다시 선 들판에서 뜨거운 흙을 움켜쥐던’ 그 시기, 구체제의 모순과 암투에 저항해 민중의 혁명을 이끌어내 성공시키고 스스로 평민으로 내려오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온 「북해의 별」이나 프랑스 대혁명기의 인간 군상들을 다룬 「테르미도르」는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그 시대의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운동가, 학생들에게는 마치 교과서와 같은 작품으로 자리했다. 시대를 담은 만화가 책장 바깥에서 또 한 시대의 흐름의 한 가운데에 놓이는 기묘한 광경이라 하겠다. _ 서찬휘
「십자군 이야기」
김태권/ 길찾기
까마득한 옛날의 그것도 머나먼 유럽, 지중해, 중동 땅의 전쟁을 그리고 있기에 대관절 현 시대에 어필하는 점이 무엇인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만화가 연재되던 당시 이라크에는 폭탄이 쏟아지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십자군 전쟁 속의 참상과 오해와 분열이, 현재에도 계속되는 것임이 끊임없이 상기되고, 따라서 재미있는 역사 교양서일 뿐이 아니라 현실까지 관통하는 일종의 시사 비판서로서 쌍방 기능을 만족시키는 저서, 게다가 알기 쉬운 만화의 형태이고 도중도중 작가 특유의 썰렁 개그까지 더하니 금상첨화다. 성자 피에르, 보에몽, 알렉세이오스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활약과 실수와 분투 속에 피비린내 나면서도 낯설지는 않은 중세전쟁사가 펼쳐진다. 특히 성자 피에르의 나귀는 어쩐지 굉장히 익숙한 관상이기도 하다. _ 시바우치
「쥐」
아트 슈피겔만/ 아름드리
유태인 대학살 생존자인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이야기. 유태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미국인은 개, 집시는 나방 등 민족, 국가 별로 의인화된 동물들이 그려지는 것이 특징. [아프가니스땅]이나 [헤타리아]류의 국가 자체를 모에 캐릭터화한 일본의 인터넷 만화보다 무게가 느껴지는 것은 일단 한 집단을 하나의 개인으로 압축하지 않은 선택도 있지만 내용과 그림체가 가지는 무게감 때문도 있다. 동시에 실화인 만큼 동물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더 그리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에, 역으로 더 여과 없이 (심지어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아들에게 이 이야기는 넣지 말라고 한 부분마저!) 그려지고 이야기의 진실성과 신뢰도를 높인다. 블라덱의 폴란드에서의 청춘 시절과 결혼생활, 전쟁, 수용소 생활, 전후 아내와의 재결합, 그리고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아트의 현실진행적인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진다. _ 시바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