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그 시대의 문화적 정서와 체험을 담는다. 시대는 만화에 반영되고, 만화는 다시 당대 대중의 정서를 자극하며 독자를 웃고 울렸다. 만화에도 장르가 많지만, 독자들의 일상을 담아내고, 희로애락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독자들과 함께한 것이 명랑만화였다. 일반적으로 밝고, 잘 웃고, 즐겁게 지내는 태도를 ‘명랑하다’고 한다. ‘명랑’은 긍정적인 활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명랑은 개인의 성격을 규정짓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일상과 삶의 태도를 규정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우울한 전후의 시대상황과 근대화의 과정에서 비롯된 급속한 도시화와 억압적 정치상황, 고도성장의 그늘아래 불안한 경제적 변환기를 감내해야 했던 한국사회는 ‘명랑’이라는 기표를 통해 저항보다는 ‘기대’와 ‘순응’의 태도를 습득했다. ‘명랑한 사회’는 ‘행복한 나라’와 동의어로 느껴지고, 명랑만화는 엉뚱한 소동이나 일상에 기초한 해프닝을 통해 유쾌한 웃음을 전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가 제시하는 가치질서를 훈육하고 계몽하는 의미도 동시에 포함하는 양면성을 지녔다.
추억의 골목 그리고 친근한 벗
명랑만화는 일상성에 기초한 장르적 특색을 갖는다. 다양한 만화 장르가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때, 명랑만화는 어린이들의 일상을 창작소재로 친근하게 다가갔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학교생활, 놀이공간인 골목, 가족관계 등 독자들이 ‘지금-여기’라고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이 다양한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실수를 연발하고 말썽을 부리다, 엉뚱한 소동을 일으킨다. 비범하고 똑똑한 인물이 아닌 평범하고 어리숙한 주인공은 어린이들에게 친근한 벗으로 사랑받았다. 1960년대 김경언의 <칠성이 시리즈>, 박기준의 <두통이>, 방영진의 <약동이와 영팔이>, 임창의 <땡이 시리즈>, 1970년대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로봇 찌빠>, 윤승운의 <요철 발명왕>·<말썽대장 한심이>,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 이정문의 <심똘이>, 1980년대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희재의 <악동이>, 배금택의 <영심이> 등 명랑만화는 오랜 시간 만화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다른 만화들이 우주를 누비고, 악인을 물리치는 영웅담을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날 때, 명랑만화는 평범한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 방영진<약동이와영팔이>_1963(좌), 박기준<두통이>_1963(중), 길창덕<꺼벙이>_1970(우)
△ 윤승운<요철발명왕>_1975(좌), 이희재<악동이>_1988(우)
1960년대와 1970년대, 1980년대 명랑만화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존재한다. 한국만화의 융성기였던 1960년대는 만화방을 통한 단행본 만화로 도시인의 일상생활을 배경으로 가정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1970년대는 국가주도의 심의가 강화되면서 만화방은 축소되고, 어린이잡지를 통해 만화가 유통되었고, 명랑만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1970년대 명랑만화는 경직되고 억압적인 규율사회에서 해프닝과 웃음으로 어린이들의 위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건강한 국민정신’을 창출하기 위한 정권 주도의 규율담론으로 대중의 감성 자체를 규율하고 훈육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였지만, 민주화운동 등 국민적 저항도 강화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 명랑만화는 권위적인 어른의 세계에 대항하고, 어린이의 삶을 진지하게 드러내는 악동들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는 독자의 일상과 호흡하는 명랑만화의 장르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명랑만화의 일상성은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르는 사회변동의 내적변화 뿐만 아니라 공간적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서 명랑만화는 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도시 중산층의 평균적 삶이 영위되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동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공간은 아니었지만, 독자들의 생활공간과 유사한 동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구성은 작품에 대한 공감도를 높였다.
명랑만화의 쇠퇴와 소년만화의 변신
1990년대 이후 명랑만화는 몇몇 작품이 명맥을 유지했지만,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퇴조를 보인다. 1990년대 한국사회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거대담론이 축소되고 미시적인 사회적 이슈와 개인적 삶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한국만화계는 개인의 일상성을 기반으로 한 명랑만화가 퇴조를 나타낸다. 이 현상의 바탕에는 명랑만화 장르가 갖는 내적 한계와 함께 일본 잡지시스템의 도입과 일본만화 연재를 기점으로 변화한 한국만화생태계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명랑만화가 1990년대 격변하는 한국사회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는 30년 이상을 권위주의 체제에 억눌려 왔던 다양한 시민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시기였으며, 특히 기득권에 대한 저항, 권위에 대한 도전과 해체 등의 전복적 웃음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시기였다. 둘째는 만화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1988년 『아이큐점프』, 1991년 『소년 챔프』 등 일본만화잡지시스템의 도입과 일본만화의 연재를 들 수 있다. 특히 『아이큐점프』가 1991년부터 연재한 「드래곤볼」과 『소년 챔프』가 1992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슬램덩크」의 폭발적인 인기는 장편만화 창작 및 소년만화장르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왔고, 이러한 서사구조의 변화 속에서 일상의 생활체험을 소재로 한 명랑만화는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외에도 정재현은 명랑만화 쇠퇴의 원인을 독자들의 주거환경 변화로 분석하는 독특한 시각을 제기하였다.1) 단독주택에서 아파트 중심으로 주거환경이 변화되면서 명랑만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었던 ‘골목과 마당’이 사회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정재현은 사람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단독주택의 골목이 사라지면서, 그 속에서 나타났던 소통과 갈등의 다양한 소재도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은 명랑만화가 일상성을 통한 독자와의 공감을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수용자의 주거환경 변화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분석으로 보인다. 또한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생성되는 공간에 주목한 점은 이후 웹툰의 한 장르로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는 일상툰2)을 이해하는데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웹툰시대의 개막과 일상툰의 등장
1990년대 장르 쇠퇴를 보인 명랑만화는 199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확대된 인터넷망과 컴퓨터를 통해 웹공간에서 ‘일상툰’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1990년대 말 웹툰의 연재는 체계적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만화가들이 인터넷 스포츠신문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 혹은 개인홈페이지 등을 통해 비정기적으로 만화를 연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상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98년에는 권윤주 작가가 <스노우캣>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일기를 쓰듯 만화를 그렸다. 이 시기는 IMF로 대한민국이 큰 불안과 무기력 속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별다를 것 없는 개인의 일상이지만 그 속에 등장한 <스노우캣>의 ‘귀차니즘’에는 당시 위기 앞에서 절망하고 분노했던 우리가 있었다. 시크한 고양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독자들은 이 새로운 형식의 만화를 보려고 작가의 홈페이지를 찾았다. 2002년 심승현은 다음 카페에 남녀 주인공 ‘파페’와 ‘포포’의 감성적인 이야기를 담은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정철연은 2001년 회사 생활 등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그린 <마린블루스>를 연재했다.
△ 권윤주<스노우캣>_1988(좌), 심승현<파페포포메모리즈>_2002(중), 정철현<마린블루스>_2001(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초기 웹툰(1세대)은 개인 작가들의 자전적 이야기로 공감을 얻으며 독자들을 만났고, 독자들은 작가의 자기고백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다시 확산시켰다. 특히 이들의 자기 고백은 자아에 대한 탐구와 자신의 삶에 대한 사색을 감성적으로 보여주었다. 이후 다음·네이버·야후·파란 등 포털 사이트가 웹툰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자 자기재현적 소재의 이야기는 ‘일상’이라는 카테고리로 하나의 장르를 형성했다. 현재 일상툰은 1세대 웹툰 작가들의 사색적이고 감수성 강한 주인공의 스토리가 아니라, 주변의 인간사에 소소하게 관계하며 이루어지는 일상이다. 이제 일상은 이웃과의 관계의 문제이며, 그 속에서 나의 사적인 삶을 공유해가는 것이다.
△ 네이버 장르별-일상(좌), 다음 장르별-일상(중), 케이툰 장르별-일상(우)
스마트 시대 명랑만화의 진화, 일상툰
일상툰을 명랑만화로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 일상툰의 장르적 특성을 정의해보자. 일상툰의 장르적 특징의 첫째는 일상성이다. 일상툰의 소재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일상을 담는다. 일상생활에서 한번쯤 겪었을 법한 생활 속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웃음이다. 일상툰의 웃음은 유쾌하고 긍정적 웃음이다. 가치 전복적인 날카로운 풍자보다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해학적 웃음이다. 셋째는 당대성이다.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보편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넷째는 평범하고 안정된 세계관이다. 긴장감 있고 첨예한 사회·정치적 문제보다는 해소 가능한 사건이나 갈등이 일반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개된다. 일상툰의 이러한 특징은 출판만화에서 분류된 명랑만화의 장르적 특징과 동일하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시대 디지털 환경에서 연재되는 일상툰은 기존의 오프라인에서 연재되었던 명랑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자와의 상호작용’이라는 장점도 지닌다. 디지털매체의 특징인 실시간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독자는 작가의 재현된 일상에 공감의 댓글을 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사례를 제시하며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도를 높인다. 또한 이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은 단지 작가와 독자의 소통뿐만 아니라 독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온전히 반영하기 보다는 독자와의 암묵적 합의 하에 선택적으로 소재를 채택하며, 따라서 이렇게 탄생한 에피소드는 작가의 일상이지만 또한 사회적 구성물이기도 하다.
△ 뽀짜툰
고양이를 기르는 유리작가의 일상을 담은 <뽀짜툰>은 100화가 넘는 연재동안 냥이들의 작고 소소한 생활을 담았다. <뽀자툰>은 작가와 반려동물의 일상 뿐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책임감을 갖고 생명을 대해야한다는 마음도 전한다. 3화에서 “좋아하는 마음보다 책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반려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다섯 마리 고양이들의 따뜻한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오랜 기간 고양이를 키웠지만, 모르는 게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애정을 가지고 꼼꼼하게 묘사한 고양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무척 좋아한다. 도도하면서도 은근히 애교 많은 고양이는 한번 키우면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일상툰의 모든 작품을 명랑만화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일상툰은 때때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굴레에서 벗어나 새롭게 삶을 시작하기 위해 어둡고 상처가득한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연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툰의 장르적 특징을 일상생활 공간에서 겪는 자신의 경험과 내면세계의 감성, 주변의 관계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일상성을 지녔다는 측면에서 명랑만화 장르의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일상툰은 7-80년대 명랑만화와는 일정한 차별성을 보인다. 7-80년대 명랑만화가 허구적 캐릭터를 중심으로 당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창조했다면, 일상툰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다. 작가들은 삶의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소재로 일상툰을 연재하면서 지난 시절 자신의 생활을 기록하고, 가족과 주변인물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한다. 이 과정은 작가에게 관계 속에서 따뜻함과 위로를 느끼며, 스스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한 독자들은 타인(작가)의 평범하고 소소하지만 따뜻한 일상 속에서 팍팍한 현실을 위로받는다.
일상툰을 읽는 사람들
우리는 왜 일상툰을 읽는가? 늘 종종걸음으로 바쁜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즐기게 되는 스낵같은 콘텐츠라는 의미의 스낵컬쳐는 웹툰, 유투브동영상, 웹소설, 웹드라마, SNS 등 스마트폰과 함께 짧은 시간에 접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스낵컬쳐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문화트렌드로 감성적 내용을 통해 공감을 형성해 나가는 콘텐츠가 많다. 짧은 한편의 에피소드로 마음의 위로가 되고, 잔잔한 웃음을 주는 힐링콘텐츠로 일상툰도 사랑받아 왔다. 특히 88만원세대, 3포세대 등의 세대명이 상징하는 사회적 불안은 젊은 세대에게 작은 위로를 필요로 하게 만든다.
△ 퀴퀴한 일기
다음에서 연재되고 있는 2B작가의 <퀴퀴한 일기>는 썸네일의 포스부터 남다르다. 노란런닝셔츠에 볼록히 나온 배 그리고 불량스럽게 바지에 넣은 손 옆으로 비닐봉지가 보인다. ‘즈질스럽고 퀴퀴한 언니의 쿰쿰한 일상다반사’는 시종일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30대 프리랜서로 싱글여성인 주인공은 결혼·출산·육아·노후대비 등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직면해서는 “그저 털어내면 그만인 골치덩어리일 뿐 나라는 우주를 흔들 수 있는 빅딜은 아니라고 자위”하고, “평균의 삶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촌스러운 외투에 굳이 내 몸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지 싶다”고 말하고, “과거의 창피한 기억을 다 지워버린다면 이 세상에 이런 괴랄한 나무는 없겠지 생각하니.... 그래서 그냥 그대로 못생긴대로 그렇게 두기로 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어딘지 남루하고 퀴퀴하지만 세상의 풍파에도 관조적으로 대처하는 해학적 웃음을 담고 있다. 왠지 보고 있으면 가식적이지 않고 나를 긍정하게 하는 힐링 캐릭터다.
한국에서 사회 전반에 불안이 극대화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끝 무렵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언론은 장기적 경기침체와 수출경기의 적신호, 부동산경기 과열과 물가불안 등 장기적인 한국경제의 전망을 쏟아냈다. 고성장을 거듭했던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지나 급격하게 제기된 경제불안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지나며 국가적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아닌 개인의 영역으로 전가시키고, 이에 따라 사회 전반에는 불안과 공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에 대한 의지가 분출했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청년세대의 위기의식은 ‘안정과 보수적 삶’을 추구하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소망한다. 이러한 현실 속 소망의 이미지가 일상툰에 소박하고 평범한,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이미지를 소비하게 한다. 김예지는 “일상툰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만화를 보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일기를 엿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며, 그것은 “누군가와 비슷한 삶을 공유하고 있다는 ‘공감’과 타인과 마음을 교류하는 듯한 ‘안도감’, 그로부터 쌓여가는 ‘친밀감’이 일상툰을 이끌어가는 힘”3)이라고 분석했다.

△ 삼삼한 처자
투믹스에서 연재되는 <삼삼한 처자>는 33살이지만 아직 ‘삼삼’하게 살고 싶은 여성의 이야기다. 연상연하커플에 대한 이야기는 골드미스에게나 해당되는 먼나라 이야기고, 칙칙한 피부와 다크서클이 “슬슬 우리랑 즐길 때가 됐잖아?”라고 말을 걸어온다. 대학 때는 최고의 퀸카였다며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지만, 결혼정보회사에라도 등록해야 하나 고민한다. 어딘지 모르게 ‘웃픈’ 현실이지만 우울할 땐 눈높이를 낮춰 세상을 보면 훨씬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위로한다. 주인공의 ‘내 나이가 어때서(1화)’ 류의 에피소드는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사랑받고 있다.
일상은 늘 명랑한가?
현대인들은 디지털매체에 익숙해지면서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등의 다양한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고, 타인의 일상을 소비한다. 물론 SNS를 통해 전시된 나의 일상은 선택적으로 추출되고 편집되어 전시된다. 이러한 디지털커뮤니케이션 공간에서의 스펙터클은 엔터테인먼트산업과 연결되면 더욱 확장된다. 생활예능은 이미 영상매체를 통해 넘쳐나고, 연예인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상품으로 전시되어 대중에게 소비된다.
디지털공간에서 일상툰은 작가의 실생활이 그대로 일기처럼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생활을 이야기로 골라 다듬고, 잘 포장해서 일상만화로 게시한 것이다. 이때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의 상실된 일상보다는 행복하고 유쾌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라도 긍정적인 감성으로 전한다. 지금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하루에도 수백개의 만화 작품이 연재되는 시대이다. 작가의 일상이야기도 평가의 대상으로 노출되고, 일상툰으로 그려진 작가의 ‘일상’은 더 이상 사적영역이 아닌 경쟁되는 문화상품으로 진열된다. 일상툰에서 보이는 ‘명랑’은 소소한 재미와 공감이 가장 큰 매력이고, 가볍게 즐기고 위로받기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한 에피소드의 선택적 결과물인 것이다.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던 <미쳐 날뛰는 생활툰>은 이러한 일상툰 작가의 이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 미쳐 날뛰는 생활툰
네이버에서 song작가가 연재한 <미쳐 날뛰는 생활툰>은 일상툰을 그리는 작가의 격동하는 삶을 그렸다. 이 작품은 액자식 구성으로 주인공 김닭은 웹툰작가이고, 생활툰을 그린다.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상툰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시각디자인과 학생 김닭은 어린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꿨다. 판타지 만화를 그리고 싶어 오랜 기간 노력했지만 결국 아직 그리지 못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생활툰(일상툰)을 그리면서 좀더 길게 준비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연재는 김닭을 파국으로 몰고간다. 일상툰의 압박, 준비되지 않은 주변 인물들에 대한 과도한 설정 그리고 피해의식과 무리한 일정 등 작가는 피폐해지고, 기다리던 베스트 도전만화에 올랐으나 또 다른 긴장이 폭발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피폐함에서 김닭을 건져낸 것은 가족들이었고, 다시 시작해보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준 것은 같은 고민을 했던 동아리 선배들이었다. 연재 중 song작가는 “힘든 날에도 개그 그려주시는 많은 생활툰 작가님들 존경합니다.”라는 작가의 말로 일상툰 작가들을 향한 응원을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song작가가 번외편에서 ‘하이텐션 빵터지는 개그 일상툰으로 먹고 사는 사람에게 주연 캐릭터가 헤어졌다는 무거운 이유로 갑자기 빠진다는건 밝히기 곤란한 일이라며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헤어진 걸 비밀로 해달라’고 하는 에피소드를 넣었다. 명랑하지 않아도 명랑하게 그려야 하는 일상툰 작가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만화다. 일상툰을 좋아한다면 꼭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여전히 일상툰의 선택은 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치면서 재미있는 장르일 것이다. 이런 작품을 찾는다면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이동건작가의 <유미의 세포들>을 추천한다.
△ 유미의 세포들
<유미의 세포들>은 주인공의 일상과 그녀의 세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유미가 회사 사람들, 친구, 연인과의 소통하는 과정에서 유미의 세포들은 기발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판단들을 내놓는다. <유미의 세포들> 이야기는 20대 여성의 소소한 일상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주인공의 고민이나 결심 등의 과정에 작가는 다양한 감정들을 세포로 의인화해서 유미의 일상에 관여하게 한다. 회사에 일이 생겼을 때, 남자친구와 감정적 문제에 세포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다. 출출세포, 자장자장세포, 세수세포, 자린고비세포, 사랑세포, 이성세포.... 정말 무수히 많은 세포들이 미묘한 감성을 표현하고 좌충우돌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많은 변수를 생각하며 번민한다. 이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도 ‘세포들이 좌충우돌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명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모든 일상툰이 명랑한 만화인 것은 아니다. 작가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작품화하며 정면으로 직시하고자 하는 작품도 있다. 한없이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얻기 위해 작가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는 단지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 구석진 곳에서 아직도 고통 받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기에 작가의 용기는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요즘 표현으로 고구마를 열 개쯤 먹은 것 같은 답답한 이야기 두 편은 <열정 호구>와 <단지>다.
△ 열정 호구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솔뱅이작가의 <열정 호구>는 만화 데뷔를 준비하는 주인공 박소연이 인터넷 신문사의 시사웹툰 작가로 취직하면서 벌어지는 비상식적 일상이다. 회사는 6개월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는다. 편집장은 무례하고 무지하며 권위적이다. 회사 뿐 아니라 주인공의 가족도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아들 중심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축소판이다. 이 만화는 현재 18화까지 진행되었으며, 연재 중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나는 출구 없는 열정페이의 사이다 같은 반전을 기대하며 정주행 중이다.
<열정 호구>의 주인공 박소연의 가족도 따뜻하지 않지만, <단지>의 가족은 화목하고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아빠, 엄마, 오빠, 단지,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가족 내에서 주인공 단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온 가족의 폭력에 시달린다. 작가는 “서른 하나. 독립한지 10개월째, 생각해보니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가족을 겪어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그들에게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으며 바보같이 버티기만 해왔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일기장에만 꾹꾹 눌러담아왔던 마음 속 이야기를 이제 시작합니다.”라고 작품을 연재하는 이유를 고백했다. ‘각박한 세상에서 그래도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다.’ 우리는 쉽게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가족의 폭력 앞에 학대받고 두려움에 떠는 수많은 단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 단지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icus)는 공감하는 인간이다. 미래사회는 공감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가장 큰 재능은 공감능력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일상툰은 소소한 이야기로 타인을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생활 속 이야기는 공감을 넘어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독자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일상툰은 그래서 정서적 힐링을 주는 만화이다.
또한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통해 삶의 진실을 다룰 수 있다는 일상툰의 주제의식은 디지털패러다임과 맥을 같이하며 향유되고 있다. 일상툰은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고, 주인공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공감의 정서를 지닌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나도 경험해 본’것 같은 공감이 형성될 때 독자는 ‘작가도 독자와 같은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인’으로 친숙하게 느끼며 수평적 소통도 활성화 된다. 작가의 블로그·페이스북 혹은 댓글 같은 SNS를 통해 독자들은 일상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참여하게 되고, 이 내용 중의 일부는 새로운 에피소드로 차용되어 만화 속에서 재현된다. ‘참여와 공유’를 중시하는 디지털 패러다임의 소통 구조 자체를 일상툰이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 지친 심신에 힐링의 에너지를 주고 싶다면 일상툰 한편을 권한다.
※ 주)
1) 정재현, 「명랑만화 쇠퇴에 대한 고찰」, 『크리틱엠』, 2015.9.11
2) 일상툰은 웹툰 초기에는 ‘다이어리툰’, ‘생활툰’, ‘에세이툰’, ‘감성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러져왔으나, 작가의 일상을 담은 작품으로 일상성이 장르에 중요한 특징이며, 포털사이트 등의 장르분류에도 ‘일상’으로 구분되어 ‘일상툰’이라는 명칭이 대표적 으로 사용되고 있다.
3) 김예지, 「일상툰의 대중화와 감정 재현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논문, 2016.2, p.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