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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게 제안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화정책을

스무 살을 맞은 부천국제만화축제가 마련한 만화 컨퍼런스는 만화문화와 정책, 그리고 향유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이들 만화 컨퍼런스 가운데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 만화학과 대학교수와 만화 관련 연구자 들이 참여한 포럼도 한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2017-08-03 박세현


20회 부천국제만화축제 만화 컨퍼런스 ‘우리가 생각하는 만화정책’을 정리하며
스무 살을 맞은 부천국제만화축제가 마련한 만화 컨퍼런스는 만화문화와 정책, 그리고 향유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이들 만화 컨퍼런스 가운데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 만화학과 대학교수와 만화 관련 연구자 들이 참여한 포럼도 한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만화 컨퍼런스의 제목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화정책’으로 대중이 다소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포럼의 올해 과제가 ‘만화계 지원사업과 정책, 그리고 만화진흥’으로, 만화를 위한 가장 본질적인 물음 -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정부가 들어선 시점에서 - 이 무엇인가, 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거창한 혹은 시쳇말로 포퓰리즘을 유도하는 섹시한 제목보다 진정성이 있는 제목을 선택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컨퍼런스의 제목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하겠는가? ‘대체 뭐가 중헌디.’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문화계에 된서리를 맞은 현 시점에서, 만화진흥을 위한 진정한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보자는 데 있다. 웹툰 6000편 시대, 웹툰 작가 6천 명에 이르는 웹툰 전성시대에, 어쩌면 만화방이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안착하여 누구나 어디서든 언제든 웹툰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이 시대에 “과연 만화는 성공했는가? 아니, 과연 만화와 만화가는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다시 끄집어내고자 했다.

10명의 포럼 위원들은 각자 하나씩 주제를 선정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포럼 위원들의 연구 주제는 다음과 같다.

‘만화상 시상 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김소원)’
‘다양성만화 창작 지원 사업 현황과 확대의 필요성(김종옥)’
‘웹툰 업계의 불공정 거래 및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박기수)’
‘만화 도서관의 만화 교육/강좌 현황 및 제안(서은영)’
‘3차 만화산업 진흥 중장기계획 지원사업 분석(이승진)’
‘웹툰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만화 지원사업 혁신 방안(장상용)’
‘웹툰 자율심의 조정제도에 대한 연구(주재국)’
‘2016년 만화정책 예상의 허와 실(윤기헌)’
‘새 정부, 만화산업의 현황과 해결 과제(한상정)’
‘도서관의 만화 수서와 사서의 만화에 대한 인식 연구(박세현)
이들 연구 가운데 20회 부천국제만화축제 만화 컨퍼런스에서 발제를 진행한 주제는 ‘새 정부, 만화산업의 현황과 해결 과제(한상정)’, ‘도서관의 만화 수서와 사서의 만화에 대한 인식 연구(박세현)’, ‘2016년 만화정책 예상의 허와 실(윤기헌)’, ‘다양성만화 창작지원사업 현황과 확대의 필요성(김종옥)’ 이었다. 사실, 연구 주제 가운데 현 시점에서 웹툰 작가나 웹툰 창작업체 등이 가장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제라고 공감했던 ‘웹툰 업계의 불공정 거래 및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는 하반기에 출간되는 만화연구지 <칸>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발제인 한상정 인천대 교수의 ‘새 정부, 만화산업의 현황과 해결 과제’는 이번 컨퍼런스의 핵심 정리라고 할 법하다. 문재인 정부가 취해야 할 만화에 대한 진흥 정책의 현황과 지침을 보여주며, 그에 대한 문제점과 대책을 제언하는 내용으로, 만화진흥에 대한 법과 제도의 미비점과 정책기관의 엇박자와 무관심, 간행물윤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분리되어 있는 심의제도, 만화진흥을 위한 통합된 국립만화진흥기관의 설립, 만화기금 마련 계획안, 만화진흥법 개정 추진, 웹툰에 대한 자율 심의 제도, 만화 관련 기관들의 지원 사업 평가 등 전반적인 만화 정책과 현황의 문제점을 개괄했다.
이 발제에서 가장 이슈는 국립만화진흥기관의 설립이었다. 이미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만화영상진흥원에서 이미 만화 관련 정책과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별도의 국립만화진흥기관 설립은 집중되어야 할 만화진흥 지원 사업의 분권화를 더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명암이 제기되기도 한 시점에서 만화 관련 정책과 예산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긍정적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기초지자체의 산하기관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국립만화진흥기관 서립에 대한 제언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준다는 의견도 나왔다.

두 번째 발제인 박세현 상명대 만화학과 외래교수의 ‘도서관의 만화 수서와 사서의 만화에 대한 인식 연구’는 웹툰 전성시대에서 왜 만화는 여전히 도서관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진단이었다. 전국 초등학생들의 10대 희망 직업 가운데 웹툰 작가도 들어 있다. 그럼에도 도서관은 여전히 만화를 수서하는 것을 꺼려한다. 전국 도서관은 19,290개로 이들 도서관에서 만화 수서 현황은 2에 못 미치고 있다. 그럼 도서관에 책을 수서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도서관 사서다. 전국 도서관 사서는 24,000명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도서관의 만화 수서에 가장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도서관 사서인 셈이다.
그렇다면, 도서관 사서들의 만화에 대한 인식은 어떠할까? 사서들의 만화에 대한 인식을 우선순위 별로 정리하자면, ‘기분 전환을 준다’ ‘정보 전달이 용이하다’ ‘다른 자료보다 재미있다’ ‘정보가 오래 지속된다’ ‘심리적으로 독서욕구를 자극한다’ 등이다. 즉, 만화를 기분 전환과 학습 효과로만 생각한다. 다시 말해, 만화의 가치를 정보와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학습만화의 효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왜 이리 찾아보기 힘든 걸까?
사서들이 생각하는 도서관에서 만화 수서에 부정적인 이유는 이러하다. ‘도서 구비 예산이 한정적이다’ ‘만화책은 시리즈가 많아서 도서 구비가 힘들다’ ‘도서관의 도서 수서 원칙에 따른다(즉 판타지 등 장르 문학과 만화 도서 구비는 지양하라)’ ‘서가의 규모가 한정적이다’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 등이었다. 과연 사서를 위한 만화 관련 프로그램은 있는가? 국립중앙도서관은 매월 전국 도서관 사서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그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도서관 마케팅과 홍보’ ‘전문 도서관 기초’ ‘도서관 이용자 커뮤니케이션’ ‘도서관법 실무’ ‘디지털 도서관 운영’ ‘사서를 위한 발표 스킬’ 등 30여 개 정도였다. 이들 프로그램 가운데 사서를 위한 교양 프로그램은 ‘사서를 위한 인문학 강독’이 유일했다.
그렇다면, 과연 도서관의 만화책 수서 활성화을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정량적 방안과 정서적 방안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로는 디지털 만화의 수서 확대, 우수 만화 보급 제도 부활, 만화상 시상 제도 개선을, 후자로는 국립도서관 연계 사서에 대한 만화 프로그램 신설, 도서관 내 만화작가와의 만남, 만화향유 프로그램 신설 등을 꼽을 수 있다.


세 번째 발제인 윤기헌 부산대 교수의 ‘2016년 만화정책 예상의 허와 실’은 전 세계 유례없는 지원금을 받는 한국 만화계의 지원 사업 현황??? 진단했다. 3차 만화산업 중장기계획에 해당되는 2016년 만화 지원 사업을 통해서 만화 지원 사업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사업 규모와 배분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보았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되는 3차 만화산업 중장기 계획은 급변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과 다양화 되는 정책 등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웹툰 작가와 장르 다양화, 트랜스미디어의 원천 콘텐츠로서의 웹툰 창작과 유통 등을 고려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다시 말해, 창작 → 제작 → 유통 → 소비에 이르는 만화산업의 선순환적 가치 사슬과 건전한 만화 생태계를 지향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2016년 지원 사업의 현황은 어떠할까? 2016년 만화 지원 예산은 총120억 원 규모에 이른다. 이 지원 사업은 4개의 분류로 나뉘어져 진행되는데, 1) 창작 지원으로 ‘만화 콘텐츠 창작역량 강화’ 2) 인프라 구축으로 ‘국산만화 유통 및 기반 조성’ 3) 웹툰 시장 개척으로 ‘웹툰 시장의 전략적 육성’ 4) 웹툰의 해외 진출을 위한 ‘해외 수출’ 사업 등이다.
각 사업을 진단해보면, 1) 창작 지원(56억 2천만 원)에서 작가에게 가는 지원금은 57로 추산된다. 이는 점차 지원 사업이 만화 창작 업체에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작가에게 직접적인 지원 사업으로서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2) 국내 인프라 구축 사업비(16억 7천만 원) 가운데 만화자료 집적과 보존, 전문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정보, 자료 통계, 학술 연구 예산은 4억으로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3) 웹툰 시장 개척 사업(25억 원)으로 10억 원이 투입된 웹툰 창작 체험관의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지방 소도시에서 창작 체험관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4) 해외 수출 사업(13억 4천만 원)에서 마케팅, 포럼, 페스티벌 지원사업 가운데 대부분 대형 업체나 대형 행사에만 집중되어 만화문화 향유와 다양한 만화행사 참여에는 취약한 게 현실이다.
웹툰의 창작과 소비에 대한 지원 사업은 어느 정도 연착륙했다고 평가해도 좋을 듯하다. 이제부터는 만화문화의 확대와 지역 만화문화 향유의 확산이 지속적인 만화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데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공공도서관의 만화 구입, 만화도서관 설립, 지역 만화 페스티벌의 활성화, 만화 커뮤니티 활성화 등이 모두가 공유하는 건전한 만화 생태계를 이루는 데 필요하다.


마지막 발제는 김종옥 상명대 만화학과 외래교수의 ‘다양성만화 창작 지원 사업 현황과 확대의 필요성’으로, 이 발제는 만화 창작 지원 사업 가운데 특히, 다양성만화 지원에 대한 평가를 진단했다. 웹툰 6000편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숙제는 장르 다양화다. 특히 3차 만화산업 육성 중장기계획에는 만화 창작 기반 확충을 중시하는 다양성만화 창작 지원금이 2억 5천만 원이 들어가 있는데, 이 금액은 만화 지원 예산의 5에 해당되는 것으로 실질적인 사업 진행에는 미약한 게 현실이다.
더 나아가, 다양성만화 지원 사업의 문제점과 그 현황은 다음과 같다.
1)맞춤형 창작 지원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다양성만화 쿼터제 도입이 필요하다. 제작 지원 평가 기준에서 주류 만화 창작물과의 별도 평가 기준을 마련해서 다양성만화 창작의 지원을 시행해야 한다.
2) 다양성 만화잡지 지원과 예술/다양성만화를 분리하여 지원해야 한다. 지원 내역에 다양성만화에 만화 단행본, 만화 잡지(온오프라인)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 단행본과 만화 잡지(리뷰, 비평 등의 목적) 사업의 평가 기준이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다. 따라서 두 지원 사업의 세분화 작업이 필요하다.
3) 현행 웹툰 플랫폼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화 플랫폼 지원 사업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유통 플랫폼 지원 사업은 대형 업체에 우선적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건전한 웹툰 플랫폼 생태계를 위해서 중소형 웹툰 플랫폼, 다양한 웹툰 플랫폼을 육성 지원하는 사업 마련이 필요하다.
4) 결국 예산의 효율적 운영이 필요하다 등을 들 수 있다. 전체 만화 지원 사업비는 증가하고 있지만, 다양성만화 지원 예산은 3~4억 원 내외에 머물고 있다. 웹툰 플랫폼은 많지만, 그 증가만큼이나 웹툰 장르의 다양화와는 역주행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현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자생력 있는 상업 웹툰에 대한 지원과 육성과 지원이 필요한 다양성만화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구분되어서, 작품성 있는 만화 창작과 만화문화 향유를 확대할 수 있는 만화비평잡지를 위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총평을 한다면, 가장 아쉬운 점은 현 시점에서 웹툰 작가와 웹툰 창작 업체에게 피부에 와 닿는 주제 연구인 ‘웹툰 업계의 불공정 거래 및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의 발제가 촉박한 컨퍼런스 일정으로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급성장한 웹툰 시장에서 웹툰 플랫폼 업체의 작가와의 계약과 진행 사항에 대한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 더욱 그러했다. 컨퍼런스 중에 방청객 중 한 작가가 이와 관련된 질의를 해왔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문제임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컨퍼런스는 만화진흥을 위한 정책과 지원 사업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년에는 더욱 알차고 현실 여건에 맞는 컨퍼런스 주제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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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현

만화평론가
팬덤북스 대표,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前 만화문화연구소엇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