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색깔있는 만화들

2017년 웹툰시대. 우리는 매월 6000여 편의 작품이 연재되는 온라인 공간의 웹툰을 간편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소비한다. 지난 100여 년 간 우리는 출판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종이에 인쇄된 만화를 읽어 왔다. 하지만 최근 십여 년 동안 한국 만화의 발명품인 웹툰의 히트로 인해 우리가 만화를 읽고 소비하는 방식이 급변했다.

2017-08-15 김성진

(색깔있는 만화들 1)


2017년 웹툰시대. 우리는 매월 6000여 편의 작품이 연재되는 온라인 공간의 웹툰을 간편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소비한다. 지난 100여 년 간 우리는 출판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종이에 인쇄된 만화를 읽어 왔다. 하지만 최근 십여 년 동안 한국 만화의 발명품인 웹툰의 히트로 인해 우리가 만화를 읽고 소비하는 방식이 급변했다. 종이책의 형태보다는 모바일 기기나 컴퓨터를 통해 텍스트와 이미지를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고, 젊은 세대들에게 웹툰은 만화책보다 더 친근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웹툰은 일부 히트한 웹툰 작품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더 많은 작품들이 웹에서의 연재로 끝을 내린다. 어려서부터 만화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만화를 접해 온 중년의 독자들은 만화책이라는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지 않은 웹툰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좋아하는 작품을 소유할 수 있는 출판만화와 달리 웹툰은 온라인상에서 닿을 수 없는 실체로 존재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출판만화와 웹툰은 비슷한 듯 다르다. 작품의 소비 패턴과 매체에 따른 연출의 차이, 독자들이 만화를 읽는 호흡 등이 완전히 호환되지 않기 때문에 웹툰을 출판만화로 옮겼을 때 원작 웹툰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웹툰이 급성장하면서 점점 출판만화 시장이 어려워지고, 만화의 다양성이 없어졌다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지만, 웹툰의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만화의 다양성이 확대된 측면도 있다. 웹툰을 통해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성을 가진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고 작품이 다루는 주제나 소재의 폭도 넓어졌다. 하지만 웹툰이라는 형식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형식과 내용의 작품들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주류 웹툰에서 선호되지 않는 훨씬 넓은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만화들이 웹툰의 그늘에 가려 대중들에게 잘 보이지 않게 된 것도 아쉽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웹툰 시대에도 그러하지만 이전 잡지만화 시대에도 그러했다. 주류만화와는 다른 길을 가는 만화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비단 웹툰시대만의 특징은 아니다. 오늘은 이러한, 다수 대중들에게는 숨겨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만화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러한 만화들은 항상 주류 만화 시스템을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상업적 지향의 만화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만화들을 우리는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1) 라고 지칭했고, 이 글에서는 이들을 포함한 일련의 활동을 ‘다양성 만화’라는 좀 더 넓은 개념 속에 포함시켜 논의를 진행 해 보려 한다.

다양성 만화의 개념에 대하여
우선 ‘다양성 만화’라는 개념을 제안하는 데 있어, 아직 만화계에서 ‘다양성 만화’에 대한 연구나 학술적 논의가 진행되지 않아 개념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하지만 ‘다양성 영화’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듯이, ‘다양성 만화’라는 개념도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보다 더 폭넓은 활동들을 수렴할 수 있는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 글에서는 주로 대안만화라고 지칭했던 한국만화의 역사와 다양한 활동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양성 만화’에서 ‘다양성’이라는 개념은 ‘문화 다양성’ 논의에서 의미하는 ‘다양성’과는 약간 결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미리 알린다. ‘문화 다양성’ 논의에서 ‘다양성’은 권력관계, 소수성, 인권적 맥락을 포함하는 사회적 의미가 중요한데 비해, ‘다양성 만화’에서의 ‘다양성’은 소수성을 포함한 새로운 실험과 만화의 장르, 창작 및 유통 시스템, 시대의 경향성 등이 주된 논의의 관점이 될 것이다.
‘다양성 만화’의 역사를 살펴 볼 때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당대 주류 만화의 흐름이다. ‘다양성 만화’는 당대 주류 만화의 시스템, 자본, 대중적인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주류의 시스템과는 다른 새로운 활동을 한 만화들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의 ‘다양성 만화’에 대해 이야기함에 있어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의 활동은 그 핵심이 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다양성 만화’는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이러한 내용과 시도를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으로서,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로서의 선언과 주장을 표방하지 않았던 당대의 다양한 실험적 활동들을 포괄해야 할 것이다.2)
그리고 이 글에서는 1980년대 이후의 다양성 만화에 대해 다룰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넓은 의미에서의 다양성 만화는 존재했지만, 필자는 본격적인 대안만화적 활동들이 일어난 80년대 이후의 다양성 만화에 대해 주로 주목해 왔고 또 80년대 이후 다양성 만화의 흐름을 주도한 많은 작가들이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맥락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 ‘다양성 만화’의 역사
1980년대 만화계의 세 가지 사건
1980년대는 어린이-청소년들을 주된 독자로 한 만화 잡지와 대본소용 성인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시대였다.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중앙>, <보물섬> 등 어린이-청소년 용 잡지와 만화 전문 잡지들이 인기를 끌었고, 만화방이라는 대본소를 통해 유통되는 대본소용 만화가 유행했는데, 이는 주로 성인 남성 독자들이 타겟이었다. 한편 청소년-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순정만화들도 창작되어 대본소를 통해 유통되었는데, 현재 중견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만화가들이 대부분 신인으로서 새로운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85년 ‘다양성 만화’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성인만화 잡지 <만화광장>의 창간이고, 다른 하나는 최초로 독립 만화 시스템을 도입한 무크지 <아홉 번째 신화>의 창간이다.


1985년 창간한 <만화광장>은 당시 대본소용 성인만화와 차별화된 수준 높은 성인 만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당시는 인기 만화가들이 수십 명의 문하생을 두고 만화를 대량생산하는 공장제 시스템을 도입하여 만화의 질적 저하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는데, <만화광장>에서는 당대 대본소 만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리얼리즘 만화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을 대거 게재하고, 탄탄한 서사를 가진 작품들과 함께 실험적인 단편만화들을 선보였다. 이와 함께 만화계의 소식과 수준 높은 비평을 게제함으로써 만화잡지의 모범적 전형을 만들었다. 이희재, 오세영, 박흥용, 박광성 등은 <만화광장>에서 단편만화를 통해 작가주의적 만화 세계를 선보였으며, 허영만이 연재한 ‘오 한강’은 한국의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다룬 기념비적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만화광장>이 보여주었던 실험과 비판정신은 향후 다양성 만화뿐만이 아닌 대중 서사만화를 하는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화광장>이 주로 남성 작가들이 남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였다면, 같은 해 창간한 <아홉 번째 신화>는 주로 여성 작가들이 여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적인 잡지였다. <아홉 번째 신화>는 당시 기성작가였던 김진, 김혜린, 서정희, 신일숙, 이명신, 이승희, 이정애, 황미나, 황선나 등 9명의 순정만화가로 구성된 ‘만화동호회 나인’이 1985년부터 1987년까지 3회에 걸쳐 발행한 순정만화 동인잡지이다. (2호와 3호에서는 고상한, 김미상, 유승희 등의 작가가 참여하였다.)
<아홉 번째 신화>는 최초의 독립 만화 시스템을 시도한 잡지로 평가받는다. <아홉 번째 신화>에 참여한 작가들은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매체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기존 출판사의 제작-유통 시스템을 벗어나 자비(自費)로 잡지를 제작했으며, 당시의 검열 기관이었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피하기 위해서 비매품으로 유통했다. 그 결과, <아홉 번째 신화>는 정식 출판과 유통의 형식이 아니었지만 실력 있는 작가들의 탄탄한 스토리와 실험성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한국 최초의 순정만화 잡지 <르네상스>의 창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만화광장>, <아홉 번째 신화>와 함께 소개할 만화 그룹은 1988년에 결성된 ‘네모라미’이다. 네모라미는 홍익대 미대 동아리로, 시각디자인학과 학생 5명과 섬유미술학과 학생 1명으로 출발했다. 네모라미는 서구 만화의 영향과 그래픽적인 감수성에 바탕을 둔 실험적인 작가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이전 만화와는 차별화된 시각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작화로 하나의 경향을 만들었다. 네모라미의 작품들은 당시 일본 만화풍의 작화에 익숙해있던 독자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고, 작가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만화로 한정하지 않고 애니메이션, 광고, 그래픽 아트 등 다양한 분야로 넓혀 갔다. 네모라미 1기 출신인 홍승우, 이우일 등은 만화와 일러스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관용, 박명천 등은 향후 디자이너, CF 감독 등으로 활약하게 된다. 네모라미는 대학 동아리였지만, 그 활동이 대학 동아리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통해 만화적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려 노력했던 그룹이었다.

1990년대 인디/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등장
1990년대 한국 만화의 키워드는 잡지만화, 일본만화, 도서대여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시기 1988년 창간한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 <르네상스> 등의 성공에 힘입어 수많은 만화잡지들이 창간되면서 만화잡지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또한 정식으로 수입된 일본만화 <드래곤볼>과 <슬램덩크>의 빅히트와 함께 일본만화들이 대거 수입되어 한국 만화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또 만화방이 점차 쇠락하고 도서대여점이 들어서면서, 만화책은 비디오처럼 빌려보는 문화로 정착했고 이에 따라 유통과 소비 문화도 변모해 갔다. 1990년대 중반에는 한국 만화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에서 1995년을 ‘만화산업 진흥의 해’로 지정한 것이다. 이로써 만화는 국가의 중요한 문화산업의 일부가 되었고, 이를 상징하는 대형 이벤트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전신인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이 1995년에 한국종합전시장에서 개최되었다. 우리만화협의회가 주최한 ‘해방 50주년 우리 만화를 찾습니다’전(展), 서남미술관에서 개최한 ‘우리 만화 가까이 보기’전(展)이 개최된 것도 같은 해의 일이다. 1990년대 중반은 만화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함께, 일본만화에 대한 유통 개방과 관련한 논의와 우려가 최고조에 이르던 시기이기도 했다.

1995년은 다양성 만화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해이다. 한국 만화산업에 장밋빛 미래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져가고 있던 한 편에서, 최초로 ‘인디 만화’를 표방한 만화실험 모던코믹스 ‘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만화실험 모던코믹스 ‘봄’은 신일섭, 강성수, 오영진, 오세욱 등 20대 만화가 10명이 결성하여 만든 만화 무크지로 기성만화의 상업성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실험만화운동 집단이었다. <봄> 1호와 2호는 대원출판사라는 ‘거대’ 만화출판사의 유통망을 빌어 유통했지만, 1996년에는 ‘모던코믹스 봄’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설립해 독자적인 유통을 모색하기도 했고, 1997년에는 격월간지 <히스테리>를 창간했다. <봄>의 창간을 주도한 만화가 신일섭은 상업만화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의 화풍을 버리고 왼손으로 그린 만화를 선보였는데, 이러한 그의 의식적인 행위는 인디·언더그라운드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격월간지 <히스테리>는 표절, 포르노, 검열 등 민감하고 도발적인 주제들을 던지며 다양한 실험적 만화들을 창작하며 5호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이들은 이후 1998년에 월간 지하만화 <바나나>를 제작하고 그 다음으로는 활동 공간을 온라인으로 옮겨 1999년 월간 만화 웹진 ‘코믹스’를 창간하는 등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으로서 1996년 5월에 창간한 <화끈>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우리만화연대의 회원인 모해규, 신성식, 이용철, 김동고, 장경섭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독립 만화 잡지를 표방한 <화끈>은 상업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작가들이 직접 출자하고 후원금을 모아 작가들 스스로 기획과 편집을 시도한 만화잡지로서, 만화잡지의 콘셉트 및 시스템 측면에서 진정한 독립 월간 만화잡지 시스템을 시도했다. 저예산 독립 만화 잡지를 표방한 <화끈>이 지향하는 목표는 당시 주류 만화를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이었으며, 이는 전형적인 인디·독립 정신으로 볼 수 있다. 이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발생한 인디·독립 문화의 움직임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1996년 독립영화축제인 인디포럼의 창립, 1997년 언더그라운드 음악 문화잡지 <팬진공>의 창간, 1998년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창립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 젊은 아티스트들은 거대 상업자본에 대항하는 새로운 예술운동, 새로운 시스템을 각 분야에서 실험해 나가는 중이었다.
<화끈>은 대안적인 유통 구조를 실험하기 위해 통신 판매의 형식으로 판매되었고, 1996년 5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통권 7호까지 발행하였다. 이후 1년 2개월여의 휴식기를 거쳐 1998년 2월 인터넷 웹진 ‘핫툰’을 개설하고, 온라인 독립 만화 잡지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화끈> 만화의 시각적, 형식적 실험보다는 다양한 신인 작가들의 발굴과 만화의 새로운 디지털적 실험 등을 시도하면서 2001년까지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활동 외에도 권신아, 이애림, 이진경, 유시진, 박희정 등이 참가한 <믹스>는 1997년에 창간한 여성 인디 만화잡지로, 기존 순정만화의 공식을 깨고 여성 만화계의 인디 만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시도는 같은 해 <나인>의 창간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기존의 공식을 깨고 순정만화잡지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1998년에 창간한 만화잡지 <오즈>는 신인과 아마추어의 작품만으로 이루어진 잡지로 만화 매니아를 주 타겟으로 한 종합 만화 정보 잡지로서의 의미 있는 실험을 보여주었다. 당시 일본 만화잡지의 시스템을 모방한 만화잡지가 주류인 시장 상황 속에서 여러 작가그룹, 출판사의 다양한 실험들은 계속 이어졌다.

2000년대 한국 만화의 실험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만화의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웹만화 플랫폼의 등장과 웹툰의 발달이다. 90년대의 주류만화였던 만화잡지가 서서히 쇠퇴하고, 학습만화에 대한 붐이 일어난 것도 2000년대 한국만화의 특징이며, 일본만화가 여전히 강세인 가운데 유럽과 미국 만화가 수입/유통되고 출판사들이 보다 다양해진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웹툰의 ‘조상’인 인터넷 만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초창기 웹은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고 작가들도 홈페이지라는 방식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었다. 웹에서의 만화 활동은 출판과 유통비용이 들지 않을 뿐더러, 출판사와의 갈등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형식과 주제도 자유로울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넘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강풀의 ‘순정만화’ 이전, 초기 인터넷 만화의 히트 작품들인 ‘스노우캣’, ‘마린블루스’, ‘폐인가족’ 등은 초기의 다양성 만화적 활동으로 독자들과의 만남에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인디/언더그라운드 만화 그룹들도 무대를 인터넷으로 옮겨 활동하고 있던 시기였다. 1998년에 ‘핫툰’, 1999년에 ‘코믹스’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겨 활동을 계속하고 있던 중 2000년에 새로운 인터넷 만화 웹진 ‘카툰P\'가 오픈한다. ‘카툰P\'에는 <네모라미>, <히스테리>, <코믹스>, <믹스> 등의 매체를 통해 두각을 드러냈던 이애림, 박형동, 이경석, 왕지성, 서범강, 유창운, 이혜경, 조수진 등과 같은 젊은 작가들과 메가쇼킹, 아이완, 김재희 등 개성 있고 감각적인 신인 만화가들이 참여했으며, 새로운 영상세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게재했다. ‘카툰P’는 1차, 2차 각각 20명씩 총 40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온라인상에 작가의 방을 개설하고 작품을 서비스하는 형태로 운영했으며, 최초로 프랑스어권의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의 작품도 소개했다. ‘카툰P’는 웹진 오픈 1년 후인 2001년 2월, 만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매거진 <야후 매니아>를 창간하며 오프라인 잡지 시장까지 영역을 넓혀가려는 시도를 보였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 코리아’에도 동시에 작품을 게재했다. 하지만 작가들과의 불공정 계약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5호를 마지막으로 온라인 사이트에서의 활동을 종료한다.

2000년대 초반 다양성 만화의 중요한 활동으로는 2001년 11월에 오픈한 ‘악진’을 빼 놓을 수 없다. ‘악진’은 당시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로 활동했던 강성수(강도하)가 2001년 11월 1일 오픈해서 2004년 하반기까지 운영한 대안 만화 웹진으로, 다양한 만화적 실험과 더불어 작가들에게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실험했다. ‘악진’은 연재만화, 단편 만화, 릴레이만화, 동영상 및 웹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독자들이 마음에 드는 작품에 100원~300원의 기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작가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으나 의미 있는 수익 창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악진’은 ‘신인 만화가 인큐베이터’라는 강력한 목표를 내세우며, 다양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수여하는 ‘2004 올해의 예술상’ 독립예술 부문에서 올해의 예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만화계를 넘어 문화계에서도 인정을 받는 활동을 선보였다.


2002년 4월에는 ‘좋은 만화’를 만들자는 취지 아래 대안 만화 출판사이자 작가 네트워크 집단인 ‘새만화책(발행인 조경숙, 김대중)’이 활동을 시작한다. 새만화책은 2002년 김대중, 박건웅, 노르웨이 작가 제이슨의 작품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2003년 바다출판사와 공동으로 서울산업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만화정론지를 표방한 <계간 만화 이크>를 발행하면서 새로운 대안 만화 잡지를 창간했다. 새만화책은 2005년까지 김대중, 김한민, 박건웅, 김수박, 장우룡, 정송희, 김인, 정철, 김은성, 앙꼬, 권용득 등의 국내 만화가들의 작품과 제이슨, 로버트 크럼, 로렌초 마도티, 에리히 오저 등 해외 만화가들의 작품을 출판하였고, 2006년에는 국내외 대안 만화가들의 작품을 엮은 만화 잡지 <새만화책>을 출판했다. 잡지 <새만화책>은 격월간으로 간행할 예정이었으나, 재정과 유통의 어려움 등으로 2009년 6월까지 총 6호의 잡지를 발간하고는 정간하였다. 새만화책은 만화잡지 <새만화책>과 다양한 대안만화들의 출판을 통해, 이전의 인디-언더그라운드 만화계와는 다른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새만화책은 국내에서는 연구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중요한 해외의 고전 만화들을 소개하고, 만화를 분석하는 수준 높은 인터뷰와 연구문, 비평문을 게재함으로써 대안 만화를 둘러싼 수준 높은 담론을 형성하려고 했고, 프랑스어권 만화 시장에 작품을 소개하여 박건웅, 앙꼬, 김수박, 김은성, 심흥아, 김한조 등의 작품이 프랑스와 스위스 등에서 출판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더불어 새만화책은 2000년대 중·후반 자전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특징을 갖는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경향성을 만들어냈다. 이는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 만화에 있어 중요한 하나의 참고 양식이 되고 있다.

2007년 4월에 창간한 은 권용득, 최은영, 앙꼬, 서재원, 정남선, 마영신, 김성희, 백종민, 김수박 등 9인의 작가가 만든 만화 잡지로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던 작가들이 스스로 제작, 유통을 담당한 독립만화 잡지이다. ‘살북’ 그룹은 1호를 정식 출판 등록하지 않은 채 블로그 및 통신 판매 시스템을 통해 판매하였고, 첫 권의 매진에 힘입어 2007년 2호는 1호와 같은 시스템으로 400부를 발행해 모두 판매하였고, 이후 3호부터는 정식 출판 등록을 해 발행하여 2014년 7호까지 발매했다. 은 매호 새로운 편집장을 선출하여 편집장이 편집과 인쇄, 유통까지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출판되었으며, 본격적인 대안만화 잡지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웹툰이 주류가 된 만화 시장 속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다양한 기성/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2010년대에도 이러한 다양성 만화의 흐름은 이어졌다. 2010년 웹에서 ‘온라인 쾅’을 창간한 <코믹아트매거진 쾅>은 2017년 7월까지 51호를 발간하며 현재까지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코믹아트매거진 쾅>은 “쾅은 만화적 실험과 재미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창작모임입니다. 쾅은 좀 더 넓은 한국만화의 지형도를 형성하는 것에 기여하고자 다양한 만화작품의 고민과 제안의 기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그래픽 아트적인 요소를 접목한 다양한 시각적, 형식적 실험을 보이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쾅>은 2016년까지 출판만화 잡지의 형태로도 8권의 잡지를 발간하였고, 쾅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단행본도 출간하는 등 작가그룹이자 출판사로서 지속적이고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작가들의 공상을 자유롭게 풀어낸 단편 만화 모음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는 <우주사우나>(2012), 출판만화의 활로를 찾기 위해 우리만화연대에서 창간한 <월간만화 보고>(2104) 등과 같은 대안만화 매체에 대한 실험은 계속되었고 다양성 만화의 측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과 활동을 보여주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휴식 상태이다.

글을 맺으며 : 다양성 만화의 현재와 전망
이 글에서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대안만화 매체들을 중심으로 다양성 만화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최근 들어 다양성 만화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경향은 소규모 독립출판형태의 활동이다. 특히 최근 7~8년간 소규모 독립출판사들의 활동이 활발해졌고, 1인 출판의 형태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독립출판마켓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다. 2009년 독립출판사 유어마인드의 주최로 개최된 독립출판마켓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첫 해 900명 규모로 시작하여 2016년에는 178개 팀 참가, 1만6천 명의 관람객이 참가하는 대형 행사로 변모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와 독립출판물 쇼핑몰에는 일반 서점에서는 유통되지 않는 다양한 만화들이 유통되고 있고, 제작자들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책을 제작하고 소비자들은 이러한 책을 찾아 소비하는 새로운 문화가 성장하고 있다. 또한 이 작가들 중 일부는 텀블벅 등의 소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하고 새로운 유통을 개발하는 등 좀 더 개인화되고 기획적인 접근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소규모 독립출판 외에도 우리나비, 이숲 등과 같은 소규모 출판사들이 그래픽 노블을 표방한 다양성 만화를 제작하거나 창비와 같은 대형 출판사에서도 다양성 만화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출판하는 등 작품 창작과 유통의 경로가 다양화 되고 있는 추세이다.

웹툰 6천여 편 시대에 만화의 다양성이 사라져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잡지만화 시대에도, 그리고 그 이전 시대에도 새로운 형식과 내용들을 실험하는 새로운 만화들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상업적 관점, 산업적 의미로 이러한 다양성 만화를 바라볼 때 그 가치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적 시각, 만화사적 의미로 바라볼 때 다양성 만화가 가진 가치는 남다르다. 다양성 만화의 활동은 만화 검열과 공장식 만화 시스템의 문제가 있던 시기에 새로운 창작과 유통에 대한 실험과 수준 높은 만화잡지의 창간을 주도했고, 일본식 만화잡지 시스템이 주류였던 시기에는 자본과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하고 한국만화의 고유성을 찾고자 하는 실험을 계속했다. 웹툰 전성시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출판만화의 정통성으로 회귀하며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시도하고 서사의 다양성을 확장시키고 있다.
만화의 가치를 매기는 지수들은 대부분 산업적 가치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았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벌며, 얼마나 많은 2차 산업들로 더 많은 돈을 벌었는가를 중심으로 한다. 대중문화예술 속에서 대중적, 산업적 가치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와 함께 만화가 가진 문화예술적, 시대적 가치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를 포함하는 일련의 다양성 만화의 작업들은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국만화의 고유성을 찾으려 했던 활동, 대안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노력, 만화의 새로운 형식적 시각적 실험 등. 문화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만화의 다양성이 더욱 확대되기 위해서는, 만화를 산업적인 측면만이 아닌 문화예술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정책, 시대상과 함께 작품과 활동의 의미를 발견해 주는 연구자, 작품의 의도를 꼼꼼하게 읽어주는 독자, 이 삼박자의 적극적 결합이 중요하다.
지금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류만화와는 다른 길을 가면서 새로운 서사와 시각적 실험,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하는 작가들이 계속해서 작업하고 있다. 더욱 성숙한 만화 세상을 위하여, 우리 모두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의미 있는 작품을 잘 발견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주)
1)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계급적 권력에 대한 대항, ‘인디·독립 만화’는 자본적 의미에 있어서의 대항이라는 개념적인 차이를 가지지만, 한국 만화사에서 언더그라운드·인디 만화의 개념은 두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어 왔다.’대안 만화’란 당대 주류 시스템에서의 만화와는 다른 형태와 다른 가치, 대안적인 시스템을 추구하는 만화 활동을 지칭한다.

2) 우리나라의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는 주류만화의 경향 및 상업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적인 차원에서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모두 스스로 인디/언더그라운드/대안만화적 선언을 통해 자신들의 지향과 정체성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