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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있는 추천만화 리스트] : 돌아봐야 볼 수 있는 보석 같은 만화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웹툰을 피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다면 팝업광고마저 웹툰으로 튀어나오는 지금, 우리에게 웹툰은 TV 드라마처럼 전형적인 한국의 스낵컬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웹툰이 만화의 모든 것일까?

2017-08-21 김상희

(색깔있는 만화들 3)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웹툰을 피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다면 팝업광고마저 웹툰으로 튀어나오는 지금, 우리에게 웹툰은 TV 드라마처럼 전형적인 한국의 스낵컬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웹툰이 만화의 모든 것일까?

누구나 그릴 수 있고 어디서든 인터넷으로 올릴 수 있는 창작환경은 웹툰 전문 플랫폼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 영향력도 여전히 강력하다. 웹툰의 시조새라 불리는 강풀 작가의 첫 만화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됐다.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15년 ‘부천만화대상 부천 시민만화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가장 핫한 웹툰 작가 중 하나인 김보통을 세상에 처음 알리게 된 것도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개인 블로그와 SNS의 영향력은 유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 플랫폼보다 훨씬 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남녀노소 자유롭게 만화를 그리고 공개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자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알리고 개인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면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밤새 책장을 넘기며 만화책을 보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애써 서점을 찾았지만, 보고 싶은 책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국내 출판만화 시장 경기가 나빠지면서 ‘드래곤볼’, ‘슬램덩크’와 같은 대형 히트작이나 국내 만화잡지와 만화 단행본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 되었다. 대형 만화전문 출판사에서 출간되지 않은 책이나 저작권이 소멸된 해외수입작이 재판되는 경우도 매우 드문 일이 됐다. 오프라인 출판에서 온라인 업데이트로 창작환경과 소비시장이 전환됐고 출판만화의 대부분도 이미 인기가 검증된 웹툰 일색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호평을 받았지만 완결을 맺지 못하거나 절판된 만화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크라우드 펀딩이나 소규모 출판사를 통해서 몇 몇 작품의 개정판이 출간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수많은 웹툰 서비스 사이트가 등장과 함께 사라지고 있지만 몇몇 만화들은 독립출판, 크라우드 펀딩, 개인 SNS와 같은 다양한 출구를 통해서 입소문을 얻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소규모로 출간되는 출판만화와 잡지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서 발표하는 웹툰. 과거의 미완점을 개선해서 개정판으로 다시 태어나는 명작만화들이 그렇다. 국내에는 잘 안 알려졌지만 해외에서 호평 받은 서구 그래픽노블도 숨은 보석처럼 매력적이다. 대형 포털사이트와 유료 웹툰 전문 사이트에서 벗어나 이제 마음과 지갑을 열고 손품과 발품을 팔 각오만 있다면 독특한 만화를 마음껏 즐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틀을 깨는 상상력과 깊은 감수성을 담은 소규모 출판만화
  자본주의 히어로(최준혁, 2016)

개인 SNS에서 짧은 단편을 발표한 최준혁의 단편모음집 ‘자본주의 히어로’는 가슴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 히어로라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운 만화이다. 쪼들리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히어로는 우연히 가슴을 보여주면 후원금이 급상승하는 사건을 겪자 돈이 궁할 때면 상의의 지퍼를 내렸다고 고해성사를 한다. 그리고 히어로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따뜻한 해답을 얻게 된다.
‘인류멸망 시놉시스’라는 독특한 만화를 발표한 최준혁은 이번 ‘자본주의 히어로’에서도 상상력 넘치는 아이디어와 설정으로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의 일종인 텀블벅에서 목표금액 5백만 원을 훌쩍 넘는 1800여만 원을 모아서 제작된 사실만으로도 ‘자본주의 히어로’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생활고를 견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슴을 노출시켜야만 하는 히어로를 통해서 “의무감을 가지고 공공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하는 특정 계층을 비틀어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기존의 웹툰에서는 보기 힘든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이전에 발표한 ‘인류멸망 시놉시스’를 비롯한 단편들을 함께 볼 수 있다.
출판만화의 틀에 익숙한 SNS에 효과적인 칸 연출이 오히려 최준혁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정도로 ‘자본주의 히어로’는 책장을 넘기면서 읽는 만화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내 만화는 페이지로 펼쳐서 보는 출판만화의 틀을 따른 것이다.”라고 밝힌 만큼 지금은 보기 힘든 종이만화의 연출과 칸 구성이 구식 같지만 정감 있는 인상을 준다. 단편 ‘소행성’을 보면 비슷한 칸 연출을 반복하면서 인물과 사건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여운을 남긴다. 앞으로 ‘인류멸망 시놉시스’를 장편으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하니 ‘자본주의 히어로’의 독특한 재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사이, 오 홀리데이(박수봉, 2016)

2013년, 어느 개인 블로그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은 웹툰이 네이버웹툰에 정식 연재됐다. 심플하지만 감성적인 연출을 통해서 깊은 감정을 드러내 감동을 준다는 호평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던 박수봉의 ‘수업시간, 그녀’다. 현재 네이버웹툰 수요만화에 ‘야채호빵의 봄방학’을 연재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박수봉의 단편을 출판만화로 볼 수 있는데 바로 ‘사이’와 ‘O holy day\'(오 홀리데이)이다.
레진코믹스에서 발표한 단편 ‘사이’를 일러스트레이터 Tillurillu(틸루릴루)와 함께 새롭게 작업한 단편집 ‘사이’는 카페주인 연수와 옷가게 여주인 유리가 낯선 이웃으로 시작하여 서로의 마음을 전하면서 둘의 사이를 좁히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전해지기까지의 어색한 사이가 조금씩 좁아지면서 마지막으로 연수의 카디건을 달라는 유리의 고백을 통해서 작가의 심플하면서도 감정의 깊이를 드러내는 연출이 잘 드러난다.
“어렸을 때 ‘아빠와 아들’이라는 만화를 보고 자랐는데 대사 없이 그림만으로 전달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축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됐고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위해 생략하고 길을 만들어주는 부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라는 어느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그만의 연출법과 만화관을 알 수 있다. 기타를 수리하는 어느 밴드의 기타리스트의 이야기를 담은 ‘O holy day\'도 작가의 이런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만화와 예술의 경계를 실험하는 독립만화잡지
Quang Comic Art Magazine(쾅 매거진, 2010~)

‘Quang Comic Art Magazine’(이하 쾅 매거진)은 2010년 ‘쾅 issue 00’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온?오프라인으로 발간하고 있는 독립만화잡지다. 2014년 ‘쾅 코믹 아트 매거진 vol.1’로 제목을 바꾼 뒤 현재 8호까지 발표한 ‘쾅 매거진’은 실험적 그래픽으로 가득한 것이 특징이다.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쾅 매거진’은 그래픽 요소가 강한 실험적 표현이 두드러져 만화잡지가 아닌 아트북을 보는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점 때문에 다른 만화잡지와 차별화되어 소규모로 출판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이유일 듯하다. 최근호인 8호의 기획의도로 숫자 8을 모티브로 하여 8을 눕힌 ‘∞’의 무한대 표시를 통해서 끝없이 이어지는 작품들이 재미를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최형내의 ‘배시콜콜’, 최영훈의 ‘Walk Walk\' 등 다양한 작가들의 단편들을 엮은 이번 8호는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구성으로 이뤄졌다. ‘쾅’의 권성우 에디터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과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이 태어나서 기쁘고 즐겁다”며 라며 ‘쾅 매거진’의 작업에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쾅 매거진’으로 인해 국내에서 출간된 만화잡지 중에서 그래픽 아트와 만화사이의 다양한 실험적 가능성과 창작만화의 한계를 한층 더 좁혀졌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타스(한타스프레스, 2017)

2016년, 작가 공동체로 시작한 ‘한타스’는 텀블벅을 통해서 그래픽노블 매거진을 표방한 단편모음집을 출간했다. ‘한타스 1호: 그렇게 추웠던 날’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단편집은 ‘그렇게 추웠던 날’라는 문장을 테마로 해서 참가 작가들의 정서와 감정을 개성 있게 녹여냈다. 만화 한권을 마감하기까지 연필 한 다스를 다 써버린다는 농담에서 시작된 ‘한타스’가 작가공동체와 단편집의 이름으로 정해진 게 특색 있다. 현재 \'한타스 2호: 흔들리고 있어\'까지 발표했다.
단절과 소통을 점, 선, 면이라는 소재로 그려낸 이민지의 ‘점, 선, 면, 그 외’부터 봄을 피해 추운 곳으로 찾아 떠나는 눈사람의 여행을 그린 이제이의 ‘추위를 찾아서’와 강렬한 컬러표현으로 회화적 분위기로 단편집을 끝맺는 정소영의 ‘취한 밤’ 등 11명의 한타스 작가들이 생각하는 추위를 어떻게 만화화했는지 알 수 있다. 옳고 그름이 정답인 세상에서 다양한 생각이 얼마나 풍요로운 것을 만들어내는지 알리고자 작업했다는 제작의도처럼 여느 웹툰에서는 보기 힘든 주제와 만화적 표현이 독특한 재미를 준다.

만화적 완성도가 숨겨진 보석처럼 빛나는 그래픽노블
나 안 괜찮아(실키, 현암사, 2016)

영수증, 종이컵, 작은 종이에 그린 그림을 개인 SNS에 올려 화제가 되어서 책으로 발간된 실키의 ‘나 안 괜찮아’는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 감춰둘 법한 억눌린 감정을 속 시원하게 대변하는 글과 독특한 그림으로 인기를 얻었다.
\'silkidoodle\'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만화로 2만 여명이 구독하는 인기 페이지가 되고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르자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SNS를 통해서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그 힘이 큰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가 자주 들었던 진주의 ‘난 괜찮아’가 자꾸만 ‘난 안 괜찮아’로 들리는 것에 착안하여 제목을 지은 ‘난 안 괜찮아’는 첫 장부터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꿈이 뭐냐고 묻는 어른에게 피곤함에 절어 눈 밑이 시커멓게 된 학생이 대답한다. “재우고나 물어봐요.” 말뿐인 위로, 변명을 가장한 사과, 무기력한 어른들이 내뱉는 무의미한 조언들 속에서 실키의 독특한 캐릭터들은 전혀 안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상대방을 이해해보기 위해 머리만 내놓은 넓은 가림막에다가 사탕을 쥔 어린아이를 그려보거나, 너무 힘들다는 친구가 깔고 앉은 등을 구부리며 “넌 힘드니? 난 짐들어.”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소통의 간절함을 한 컷의 그림으로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따뜻한 위로도 전하고 있다. “내가 아파도 시간은 멈추지 않아.”라고 책상을 못 떠나는 사람의 등에 담요를 덮어주며 “그러다가 네 생명이 멈춘단다.”라고 말한다. 피로와 과로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의 슬픈 단면을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작가는 “선입견을 주지 않기 위해 나이, 성별이 없는 캐릭터”를 그렸다고 말했는데 이런 의도는 캐릭터의 표정, 대화, 상황에서 알 수 있는 맥락을 현실적으로 살렸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외부의 공격과 마음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자괴감과 죄책감, 열등감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한 컷 혹은 두서너 컷의 만화 속에서 날카롭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완성도 있게 포착했다.

테트리스(박스 브라운, 한스미디어, 2017)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중 하나인 테트리스의 탄생 과정과 판권을 둘러싼 분쟁의 역사를 그린 ‘테트리스’는 발간 당시, 미국 최고 권위의 만화상인 아이즈너상의 2개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호평 받은 그래픽노블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화하는 게임의 개념과 발전 과정으로 시작하는 ‘테트리스’는 곧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어떻게 테트리스를 개발했는지에 대해 이어진다. 그 후 전 세계적인 히트 게임이 된 테트리스의 판권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인간들이 탐욕스런 암투를 펼친다. 테트리스를 팔기 위해 왜 러시아는 소프트웨어 수출입 통제 기구를 만들었고 아케이드 게임기용 판권과 PC용 판권이 제각각인 이유도 재미있게 그려졌다. 뿐만 아니라 분쟁 과정에서 생겨난 비극적 사건들도 진지하게 다루고 있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소재덕분에 애니메이션과 TV 시리즈 전문 제작사인 스레시홀드 엔터테인먼트에 의해 3부작 SF 어드벤처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단순한 게임의 확산에서 촉발된 복잡한 국제 협상의 과정을 연대기로 기록하면서 인류의 강박관념과 게임 욕구에 대해 고민하는 한편 1980년대 문화 혁명의 한 축이자 세계 최대의 창조산업 중 하나인 게임 산업의 매혹적인 순간’이라는 평을 받은 ‘테트리스’는 PC 컴퓨터와 닌텐도라는 휴대용 게임기의 등장과 함께 현대 컴퓨터 게임 역사의 한 부분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지미 코리건(크리스 웨어, 세미콜론, 2009)

2000년《타임 아웃》, 《빌리지 보이스》 선정 올해 최고의 책, 2000년《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그래픽 노블 1위, 2001년 아메리칸 북 어워드 수상, 2001년 그래픽 노블 최초로 영국《가디언》에서 신인상 수상, 2001년 아이스너 상 최우수 출판 디자인/최우 표지디자이너/최우수 그래픽앨범(단행본)부문 수상, 2001년 하비 상 수상, 2003년 프랑스 출간 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앨범(단행본) 선정. 이렇게 찬사일색인 그래픽노블이 또 있을까?
크리스 웨어의 ‘지미 코리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이하 지미 코리건)이 가지는 영미권 그래픽노블 출판계에서 업적은 매우 막강하다. 원작자 크리스 웨어는 그의 두 번째 발표작인 ‘지미 코리건’으로 미국 만화의 간판스타, 아트 스피글먼 이후 가장 주목 받는 세계적인 만화가와 만화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미 코리건’에 대해서 성완경 만화평론가는 “만화의 서사 컨벤션을 가장 급진적이고도 도전적으로 재정의하며 만화에 있어서 하나의 형식이 어떻게 내용과 관련을 맺는지를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김낙호 평론가는 “다층성을 만화에서 구현하는 방식 자체를 재발명하다시피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사연과 사연, 시간과 공간, 현실과 상상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겹치며 울림을 만든다.”라고 칭찬했다.

손자 지미 코리건과 조부 지미 코리건의 인생이 시카고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암울하고 조용하게 진행된다. 현대의 지미 코리건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나러 간다. 그런 손자 지미의 이야기와 함께 그의 할아버지인 지미 코리건의 과거 불우한 어린 시절도 함께 이어진다.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 때문에 만나게 된 지미와 아버지의 입양딸, 에이미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지만 지미의 상상 속 가족은 결국 머릿속에서만 남게 된다.
‘독자들은 현실과 상상, 현재와 과거, 이야기와 이야기가 아닌 것들을 스스로 구분하고, 칸들의 순서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이런 독서 과정 속에서 독자들은 숨은 의미와 상징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링크를 통해 비순차적인 사건들이 상호 연결되고, 변형 가능해지는 ‘하이퍼텍스트’적 스토리텔링의 모범을 ‘지미 코리건’에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처럼 크리스 웨어는 두 지미 코리건의 이야기를 마치 프로그램 도식도처럼 나열하면서도 독자의 지적 호기심과 정서적 자극을 모두 두드리는 데 성공했다. 에이미의 생물학적 부모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한눈에 펼쳐 보이는 연출을 본다면 아마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기묘한 날씨(로런 레드니스, 푸른지식, 2017)


과학 원리와 같은 지식을 만화와 접목시켜 출판하는 작업은 작가나 독자 모두에게 매력적인 것이다. 만화가 주는 흥미로운 재미와 더불어 지루한 과학지식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좋은 양서를 탄생시켰다. 그 중에는 로런 레드니스의 ‘아주, 기묘한 날씨’도 포함된다.
이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커커스 리뷰’, ‘셀프 어웨어니스’의 \'2015 올해의 책\'에 선정됐고 \'펜/에드워드 윌슨 과학저술상\'을 수상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지구온난화 문제 같은 과학 지식을 풍부하게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 퍼져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엮어냈다.’라고 뉴욕타임즈가 평가할 정도로, 지구의 자연기후에 대해 과학지식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고대 신화, 역사적 일화 등 독자의 흥미를 마지막 장까지 끄집어낸다. 허리케인, 건조한 사막화 현상과 가뭄, 혹한과 안개와 같은 자연현상과 그와 관련된 전쟁과 인간의 통치 등 다양한 이야기가 과감한 컬러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특히 다른 주제는 과학지식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대화와 설명이 텍스트와 함께 그렸지만 ‘하늘’이란 주제에서는 아무 글이나 설명 없이 맑은 하늘, 구름이 낀 하늘, 폭풍이 오기 전 하늘, 해질녘 하늘이 그림으로만 나타나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작가 로런 레드니스는 “레이아웃, 서체, 글자와 단어들의 위치와 같은 디자인적인 요소들도 독자들을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데 색다른 영향을 주기를 바랐다. 디자인적 요소들이 글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그들의 잠재의식에만 존재하면 좋겠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작가의도를 밝혔다. ‘아주, 기묘한 날씨‘는 자연과 인간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기후 현상의 과학 원리부터 역사적 사건, 고대 신화와 문학작품의 읽을거리를 전달하고 있다.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응원하는 소셜웹툰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서늘한 여름밤, 예담, 2017)

이서현 임상심리전문가는 오랜 고민 끝에 고된 전문심리상담 훈련을 그만두고 서늘한 여름밤의 줄임말인 서밤이라는 아이디로 개인 블로그에 웹툰을 올리기 시작했다. 개인적 일상과 마음의 변화를 솔직히 그린 이 웹툰은 200만 명의 방문자, 페이스북 구독자가 9만 명을 기록했고 지난 5월 ‘어차피 내 마음’이라는 책으로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서밤이 뜨거운 화제로 떠오른 계기는 지난 1월 설 연휴에 공개한 웹툰의 내용이었다. 주인공 서밤 부부는 결혼 후 첫 명절을 각자의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시댁에 가서 온갖 부엌일과 요리를 아무런 불평 없이 해내야하는 며느리의 역할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시댁에서도 이에 대해 받아들인 상태고 주인공 또한 진심으로 감사해하거나 다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명절에 찾아가지 않아서 “잃는 것은 25년 간 모르고 살던 어떤 중년부부”이며 “저를 괴롭히지 않고 가부장제를 고집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에 대해서 수많은 댓글들이 폭발적으로 이어졌다.
뜨거운 논란 덕분에 유명세를 얻게 된 서밤의 웹툰은 곧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에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앞서 실키의 ‘나 안 괜찮아’가 현대인의 억압된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해서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면, 서밤의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는 거칠고 미숙한 작화지만 그것이 오히려 본인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공유하려는 장점으로 작용해서 더 많은 공감을 얻었다. 나이가 어려서, 여자라서, 결혼해서 억눌렀던 자존감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주인공의 의지에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응원했다. 이제까지 출간된 여타 정신과 관련 개발서보다 서밤의 웹툰이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며느라기(수신지, 2017)
작가 수신지가 개설한 ‘며느라기’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업데이트된 만화에 대한 댓글을 살펴보면 짧은 감상과 함께 “너도 봐봐”라며 초대하는 글들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다. 주인공 민사린이 시댁에서 부엌일을 할 때, 제사상을 준비할 때, 남편 무구영과 어색한 대화를 할 때는 그 길이가 더욱 길어진다.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사는 현실에 대한 공감대도 함께 이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 며느리로서의 삶에 대한 고찰을 담은 ‘며느라기’는 주체적으로 날 돌보는 여성으로써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그리고 있어서 많은 여성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min4rin),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in4rin)에만 연재하는 이 웹툰은 지금 8월에만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97,000여 명, 페이스북은 122,000여 명이 넘고 있다.

신혼주부 민사린은 남편 무구영과 맞벌이부부이다. 고된 회사 일을 마치면 사린은 시댁으로 가서 시부모님의 생일잔치상과 제사상을 준비한다. 그러나 사린은 다정하지만 알게 모르게 눈치를 주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무신경한 남편의 태도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사린의 물음은 곧 주변을 달리 보게 만들고 ‘날 지키지 못한 순간’을 곱씹으며 며느라기의 시기를 견디기 시작한다.
이미 ‘스트리트페인터’, ‘3그램’을 발표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수신지는 ‘며느라기’를 기존의 시집살이와 고부갈등을 소재로 한 일련의 드라마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린과 구영은 제사를 마치고 차 안에서 말다툼을 한다. 차에 내린 사린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행동을 곱씹고 구영은 차에 남아 미안하다 말 못한 것에 후회한다. 시어머니는 구영과 사린이 잘 돌아갔는지 걱정하고 사린의 윗동서는 만삭의 몸으로 제사에 참석해야했나 고민한다. 이 장면을 통해서 작가는 자손의 행복을 비는 제사가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준다.
‘며느라기’에서는 가부장제도가 공고한 가풍의 악마화된 시부모,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시누이와 시동서, 고부 간 갈등에서 철저히 방관자로만 남으려는 남편, 무기력한 희생자로 남아야하는 며느리는 없다. 전형적인 고부갈등과 시월드의 막장 판타지를 그리는 대신, 인물간의 대립을 극대화하지 않고 담담하지만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사린의 심리적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최근 성평등의식과 페미니즘에 대한 화제가 온?오프라인에 대두되는 현재, 한국에서 여자로써 산다는 의미에 대해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과거의 구시대적이며 암묵적인 성차별적 억압을 극복하고 온전한 인간이자 여자로서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현대 한국 여성들의 목소리가 \'며느라기\'를 통해서 더없이 강하게 울리고 있다.

독자들의 선택으로 다시 태어나는 복간 퀴어 명작
사춘기(이진경, 유머마인드, 2017)


1999년에 처음 발표된 ‘사춘기’는 90년대를 배경으로 지영, 동휘, 선욱, 인형이라는 4명의 여성들이 겪는 갈등과 화해,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일상생활과 인간관계에 변화를 맞는 주인공들의 대립과 화해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발간 당시에 팬들과 평단에도 호평을 얻었다. ‘사춘기’는 ‘게토잼’, ‘피플’과 함께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구축한 이진경의 대표작으로 팬들이 가장 사랑한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 2권의 단행본을 마지막으로 미완으로 남아 아쉬움을 남겼지만 지난 7월, 독립출판서점인 유어마인드에서 완간을 목표로 첫 권의 개정판을 내놓았다.
fenerzation(페너제이션; femi+energy+generation라는 작가의 합성어)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사춘기’는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본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가족과 친척들과의 갈등, 강북과 지방대라는 지역적 특성 등이 등장인물 사이의 고민과 대립, 자각과 화해를 밀도 있고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개정판의 작가 서문에 따르면 “완결로 갈수록 그들의 변화가 중점이 될 것이다. 그들의 실패하든 성공하든 저도 자랄 지도”라며 미완의 끝을 마무리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순정만화로서의 사춘기’보다는 ‘페미니즘, 퀴어 만화로서의 사춘기’가 될 것이라는 제작의도를 통해서 과거의 이진경 표 만화팬과 더불어 국내 웹툰에서 보기 힘든 진지한 퀴어 만화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펀 홈(엘리슨 벡델, 도서출판 움직씨, 2017)


엘리슨 벡델의 ‘펀 홈’(舊 출간제목은 ‘재미난 집’)또한 텀블벅으로 개정판 출간을 앞두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출간 당시 미국과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이 작품은 레즈비언 딸인 작가 엘리슨 벡델이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 아버지를 회고하는 내용으로 2009년에는 \'올해 최고의 도서\', \'뉴욕타임즈 선정 최고 문제작\', \'전미 비평가상 최고작\', \'미국 최우수 만화\' 등 유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 토니 어워드에서 뮤지컬 부문 5개상을 휩쓸었다. 국내에서는 2008년에 출간됐지만 절판된 상태이고 현재 재번역과 편집, 디자인을 거쳐서 9월에 발간할 예정이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작품을 발표해온 앨리슨 벡델은 ‘벡델 테스트’로도 유명한 퀴어 만화가다. 영화나 소설, TV드라마 등에서 성평등지수를 가늠할 수 있는 테스트로 알려진 ‘벡델 테스트’를 고안할 만큼 페미니스트로써, 성소수자로써의 정체성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데 인정받고 있다.
‘펀 홈’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병적인 집착과 고집스런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다른 아버지처럼 평범하지 않았을까를 늘 불만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다 열아홉 살이 되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한 뒤 어머니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게이였단 걸 알게 된 주인공은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떠올린다. 고집불통의 괴팍한 아버지의 기억의 조각들이 성소수자의 고민과 성찰을 깊이는 독백, 위트 있는 대화와 함께 문학적으로 그려졌다.

만화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한 컷에 담은 일러스트집
 뉴욕 드로잉(에이드리언 토미네, 아트북스, 2017)


미국 잡지 ‘뉴요커’가 1925년에 창간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오직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만든 표지만 쓴다는 점도 포함될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잡지라는 명성과 함께 그래픽 삽화의 표지를 고집하는 뚝심은 곧 미국의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당시 현대 미술과 디자인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됐다. 그러한 ‘뉴요커’에서 1999년부터 표지 삽화를 그려온 만화가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뉴욕 드로잉’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뉴욕 드로잉’은 미국의 상징적 대도시 뉴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대중문화 분야에서 영향을 미친 작품들을 재해석해서 그린 표지 삽화와 만화를 모아 묶은 작품집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작가는 13년 전,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이사를 오면서 뉴욕과 처음 만났다. 뉴요커로 지내면서 겪었던 일상과 그로 인해 느낀 감상들이 담긴 만화와 냉담하면서도 고독한 뉴요커들의 인간미가 드러나는 표지들이 매력적이다. 국내 출간 당시, ‘우연한 만남과 엇갈림, 활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 있을 때조차 어쩔 수 없이 찾아드는 고독감 등 도시인의 경험과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며 평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팍팍해지는 세상살이 염려를 지울 수는 없지만, 깔끔함을 추구하는 그림체 덕에 우울한 기색 없이 밝은 톤으로 메시지를 녹여내고 있다.”라는 국내 한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와 같이 냉담한 도시생활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는 ‘뉴욕 드로잉’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당나라에 간 고양이(과지라, 달과 소, 2017)

귀엽고 앙증맞은 고양이는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인기 만점이다. 중국 만화가 과지라가 중국 SNS인 웨이보에 연재한 ‘당나라에 간 고양이’가 국내에서 출간된 이유도 그런 영향일 것이다.
‘당나라에 간 고양이’ 속 고양이들이 당나라 때의 너풀거리는 옷을 입고 춤을 추며 무릉도원을 꿈꾸는 그림은 누가 보아도 귀엽고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한다.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고양이들이 중국의 역사와 신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당나라의 절기와 세시 풍속을 소개하는 모습이 화려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려졌다.
당나라의 유명한 위인과 미인들로 그려진 미묘(美猫)들을 보고 있노라면 풍류로 가득한 기방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술잔을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사람처럼 춤추고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는 고양이들을 기품있게 표현한 그림은 고양이를 모시는 인간 집사들뿐만 아니라 당나라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도 훌륭한 소장도서가 될 것이다.
필진이미지

김상희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