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특급 2)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미지의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친밀한 존재가 흉측하게 변했을 때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공포물에 등장하는 괴물이나 귀신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이들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사람들은 공포물을 통해 사회적으로 금지된 선을 넘는 쾌락을 느끼게 된다. 공포를 극복하면 그 공포는 곧 짜릿한 쾌락이 된다. 만화를 비롯해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 공포 장르가 늘 존재해 온 이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공포만화 장르는 다소 생소하다. 만화가 다양한 장르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급과 폭넓은 독자층이 있어야 한다. 공포만화는 독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장르가 아니었다. 대본소를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의 만화 시장에서 비인기 장르의 만화는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리고 만화를 어린이가 보는 것으로 폄하하고 표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만화검열 체제하에서 공포만화는 창작 자체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시대가 바뀌면서 만화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가 중요시 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웹툰 부흥기가 오기까지 침체기를 겪었던 한국 만화는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널리 소비될 기회를 잃었다. 웹툰 시대로 오면서 창작되는 만화의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만화에 다양성이 생겨나면서 공포, 스릴러장르의 작품도 늘어났다.
일본의 경우 공포만화가 만화를 대표하는 장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공포만화를 전문으로 창작하는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거대한 시장이 존재하기에 마이너 장르의 작품들도 나름의 독자층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공포만화가 꾸준한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공포만화 전문 잡지의 존재를 빼 놓을 수 없다. 이들 잡지에 지속적으로 작품이 실리고 공포만화 독자들도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화전문 잡지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 일본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만화도 함께 공존해 왔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포만화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공포’라는 공동의 키워드를 통해 형성된 특징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일본 공포만화의 주요 작가들을 통해 일본 공포만화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한일 공포만화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일본에서 공포만화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계기가 된 작품은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의 <게게게의 기타로(ゲゲゲの鬼太郞)>이다. 공동묘지에서, 그것도 어머니의 시체에서 태어난 유령족 소년 기타로가 주인공인 이 작품은 1954년 가미시바이(紙芝居, 그림연극)로 시작해 카시홍(貸本, 대본소를 통해 유통된 만화책)을 거쳐 소년만화 잡지인 『주간 소년매거진』에 연재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게게게의 기타로>처럼 가미시바이나 카시홍에서 유령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주로 일본의 전통 괴담의 내용을 차용한 것들이 많다.
<게게게의 기타로>에는 주인공 기타로 이외에도 생김새와 성격이 다양한 여러 종류의 요괴들이 등장한다. <게게게의 기타로>의 인기로 <괴물군(怪物くん)>(후지코 후지오 藤子不二雄, 1965), <악마군(惡魔くん)>(미즈키 시게루, 1966)과 같이 요괴, 괴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뒤이어 등장했다. 이들 작품에는 일본의 전통적 요괴뿐 아니라 미라,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같은 서양의 고전과 소설 속의 요괴까지 다양한 괴기 캐릭터가 등장했다.
1960년대에는 이러한 ‘요괴만화’가 공포만화의 대세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 속의 요괴는 공포의 대상이기보다는 인간의 편에서 악과 싸우는 존재로 그려졌다. 외형적 특징은 기존 요괴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지만 이들은 인간과 친구가 되고 인간을 돕는 선(善)의 존재로 묘사된다. 조형성에 있어서도 동글동글한 얼굴형과 3~5 등신의 요괴들은 공포의 대상이기 보다는 귀엽고 친근하게 묘사된다. 이 시기 만화의 주요 독자층이 어린이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무서운 만화보다는 적절하게 순화된 요괴물이 독자들에게 인기를 끈 것이다.
1960년대의 요괴만화가 인간의 친구인 요괴를 소재로 했다면 1970년대에는 본격적인 공포만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공포만화는 이제 요괴보다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이나 심령현상 같은 오컬트적인 내용을 그리는 데에 집중한다. 일본의 공포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우메즈 카즈오(매(木+某) かずお)가 활발히 활동한 것도 이 무렵이다.
우메즈 카즈오는 요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악의 본능을 그리는 심리적인 공포를 통해 공포만화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 받는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주간 소년 선데이』에서 연재된 작품 <오로치(おろち)>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 ‘오로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옴니버스 만화이다. 공포만화와 소녀,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우메즈 카즈오가 공포만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데뷔초기 소녀만화잡지 『나카요시』와 『주간 소녀프렌드』에 실린 <고양이 눈의 소녀(ねこ目の少女)>, <뱀 소녀(へび少女)>, <붉은 거미(紅グモ)>, <검은 고양이 가면(黑いねこ面)>, <엄마가 무서워!(ママがこわい!)> 등의 공포만화가 히트하면서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소녀만화에서 주인공 소녀들의 행복의 원천이었던 가족, 학교, 친구 등의 요소가 공포의 원인이 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 작품에서는 소녀만화 특유의 조형성을 가진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름다움을 잃는 것에 대해 거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고 미모를 잃지 않기 위해 악행을 저지른다. 아름답지만 추악한 내면을 지닌 인물, 악의 본능을 드러내는 내 가족과 친구처럼 소녀만화의 상식을 뒤집는 역발상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우메즈 카즈오식 공포만화는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 중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는 <표류교실>은 작가가 추구해온 인간의 악마적인 본능=공포라는 공식을 잘 보여준다. 1972년에서 1974년까지 『주간 소년 선데이』에 연재된 이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미래로 날아가 버린 초등학교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아비규환을 그렸다. 대지진이 일어나고 한 초등학교는 그 안에 있던 학생과 교사들, 교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떨어져 버린다. 폐허로 변한 미래의 지구에는 썩지 않은 쓰레기들만이 굴러다닐 뿐 사람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암담한 상황에 학교를 공격해 오는 미지의 생물과의 싸움까지 더해져 미래는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지옥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무서운 것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본능적인 이기심과 악의 본성이다. 지금 당장 모두가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어른들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어른들이 공포에 미쳐가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어른들과 싸운다. 당장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된 어린 아이들과 학교라는 이름의 지옥 같은 공간은 독자들에게 참담함을 안겨준다. 이 작품이 나온 1972년에는 1960년대 공포만화에서 유행했던 괴담과 전통적인 요괴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일본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면서 전근대적인 공포를 극복했다. 그러나 그 대신 과학의 발달로 인한 삭막한 도시문화라는 새로운 공포의 대상을 만들어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공포, 따뜻함을 잃어가는 인간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다. 공포만화도 이렇게 그 시대를 반영한다.
모로호시 다이지로(諸星大二郞)는 공포만화의 주요 작가인 동시에 난센스만화의 대가로도 평가받는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요괴, 유령, 범죄, 오컬트와 같은 고전적인 공포만화 코드에 독특한 유머와 부조리를 더했다. 그는 상식을 뛰어넘는 기이한 세계를 작품 속에 구축하고 그 안에서 평범한 이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 중 공포만화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작품이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간(干干+木)と紙魚子シリ-ズ)>(1996)이다. 여성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포만화 잡지인 『네무키(ネムキ)』에 부정기적으로 연재된 이 작품은 시오리와 시미코라고 하는 두 소녀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괴기한 사건들을 그린다.
친구 사이인 이 두 여고생은 길을 가다 토막 시체를 줍기도 하고 매일 같이 유령과 마주치는 것이 일상이다. 시오리가 잘려진 목을 주워오면 헌책방 주인의 딸인 시미코는 시오리를 위해 ‘살아있는 목의 바른 사육법’이라는 책을 가져다준다.
살아 있는 잘린 목쯤은 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일 뿐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사는 이노아타마쵸에는 엄청나게 큰 얼굴을 가진 여자, 머리가 붙어 있는 일곱 형제, 괴상한 형태의 애완동물, 아이들을 입속에 넣어 숨기는 여자, 사람으로 변신하는 고양이, 애인을 토막살해 한 시인 등이 산다.
이 만화는 등장인물만 괴기스러운 것이 아니다. 온갖 귀신과 요괴가 떠도는 신사가 있고 유령이 떠도는 병원, 길 잃은 영혼으로 가득 찬 저택이 있다. 멀쩡한 집이 어느 날 미궁이 되기도 한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이렇게 도저히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공간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만들었고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이런 기괴한 상황에서도 전혀 놀라지 않는 시오리와 시미코이다. 남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미소녀 시오리는 어떤 유령을 만나도 놀라지 않는 ‘둔감함’을 가지고 있고 시미코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온갖 요괴와 괴물, 유령, 토막 시체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줄거리만을 보면 분명히 공포물이다. 그러나 등장인물 대부분이 이 기묘한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시오리와 시미코도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느낄 뿐 어떠한 상황에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책 뒤표지에 쓰인 “노약자나 임산부는 구독을 금합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하게 독자들도 등장인물들과 함께 점차 기묘한 상황들에 익숙해지고 사건을 즐기게 된다. 공포와 개그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일본의 만화 시장은 독자의 연령대와 성별, 게재되는 작품에 따라 세분화 된 잡지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다양한 만화잡지의 발달과 시장의 확장은 장르의 세분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 작품에 여러 장르의 특징이 혼합되는 양상으로 발달한다. 공포만화의 경우 명확하게 공포 코드를 보여주는 작품이 등장해 장르를 확립 시켰고 그 후 공포에 개그와 난센스가 혼합되며 장르는 변화하고 세분화 되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어딘지 웃긴 공포만화와 닮은 듯 닮지 않은 세계관을 가진 작가가 있다. 일본 공포만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가, 이토 준지(伊藤潤二)이다. 보는 순간 공포 보다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생겨나는 괴기스러운 그림이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1986년 단편 <토미에(富江)>로 공포만화 공모전인 ‘우메즈 카즈오상’에 입선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한다. 이토 준지의 대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꼽는 <토미에>는 이후 같은 제목의 다른 내용으로 몇 차례 더 만들어졌고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토미에 시리즈의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토미에는 아름다운 외모로 남자들을 유혹하고 많은 남자들이 토미에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토미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살해당한다.’라는 설정은 비슷하다. 남자들은 아름답고 유혹적인 미녀 토미에에게 첫 눈에 반한다. 그러나 토미에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에게 살의를 느끼고 결국 토미에를 살해한다. 토미에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시신은 남자들에 의해 찢기고 잘리며 극도로 잔인하게 훼손된다. 그리고 토막 난 시신 조각은 토미에의 모습으로 재생되고 무한하게 증식한다. 세상에 수 없이 많은 토미에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증식된 토미에는 원래의 모습대로 완벽하게 되살아나기도 하고 더러는 그 미모를 잃기도 한다. 이들은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를 죽여 없애려고 한다. 팜므 파탈의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여자가 잔인하게 살해당한다는 공포에서 더 나아가 훼손된 토미에의 시체가 하나하나 토미에로 다시 재생되는 과정은 대단히 파괴적이고 처참하다.

이토 준지 공포만화의 특징 중 하나는 강력한 신체의 훼손과 혐오스러운 묘사이다. 공포만화보다는 소녀만화에 어울릴 예쁜 캐릭터들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묘사는 그 자체로 공포가 된다. 이들은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것은 예사이고 시신이 잘게 찢기거나 얼굴이 일그러진 추악한 모습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토 준지의 작품이 주는 공포는 우선 시각적이다. 망가진 신체와 인간의 모습을 매우 세밀하게 표현하는 그의 작화는 독자들에게 공포감 보다는 혐오감을 준다. 미형(美形)캐릭터가 징그럽게 변화한 모습은 그 간극이 상당히 크다. 분명히 소름끼칠 만큼 추하고 공포 가득한 표현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표정을 독자들은 개그 컷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토 준지의 만화를 공포와 부조리가 결합된 형태로 독자들이 인식하는 이유는 시각적 표현의 극단적인 변화와 치밀한 묘사만큼 스토리의 개연성이 촘촘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괴물이 출현하거나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나 전말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한 경우가 많고 연쇄 살인 같은 극단적인 사건에도 그 동기나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작가는 끔찍한 결과물을 공들여 만든 화면 속에서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이토 준지의 작품은 이처럼 그림 그 자체만으로 공포가 된다. 소름끼치도록 세밀하게 그려진 갖가지 소용돌이가 그 자체로 주제이자 주인공이었던 작품 <소용돌이(うずまき)>(1998)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토 준지의 작품은 만화가 주는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 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만화에 공포물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로 전설을 각색해 만화로 펴낸 최상권의 작품을 들 수 있다. 1950년 작품 <깨진 접시>는 이국적이고 괴기한 이야기를 소재로 그린 판타지 작품이다. 그러나 <깨진 접시>는 현재의 만화와는 다소 그 형식이 다르다. 이 작품은 만화라기보다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길게 설명하면서 그림과 말풍선을 넣은 칸을 덧붙인 그림이야기의 형식을 보여준다. 이후에도 최상권은 괴담의 요소를 가진 판타지 작품을 여러 편 선보였다.
최상권의 뒤를 이어 활동한 박기당은 SF에서 야담, 전설, 괴담까지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전통적인 소재를 공포만화로 각색한 작품을 여러 편 발표했다. <귀신동자>, <저승피리>, <뱀 사나이>, <백발귀>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박기당은 뛰어난 그림 실력을 바탕으로 공포만화의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 것으로 평가 받는다. 최상권의 영향을 받아 전래동화나 설화에 바탕을 둔 전통적 소재의 공포 만화를 창작한 또 한 명의 작가로 계월희를 꼽을 수 있다. 계월희는 <백년 묵은 구렁이>, <무덤 속의 거문고>, <저승사자 마왕상> 등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국적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공포만화를 많이 남겼다.
이와 같이 한국의 경우 1960년을 전후해 전래동화와 민담에 등장하는 요괴, 귀신, 유령 등을 소재로 괴기, 공포만화가 창작되기 시작했다. 한국만화의 양적, 질적 성장의 첫 시기는 1960년대였다. 전국적으로 만화방이 급증하면서 자연스럽게 만화방을 통해 유통되는 만화의 양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만화의 양적 성장과 함께 SF, 스포츠, 순정, 명랑 등 독자들의 요구에 맞춰 보다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창작되고 소비되기 시작했다. 공포만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1960년대 말 혁신적인 만화가가 등장한다. 조치원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작가이다. 그는 서양의 소설이나 드라마를 각색한 작품으로 창작의 영역을 넓혔다. 주로 전통적인 설화나 민담을 소재로 했던 이전의 공포만화들과는 그 소재도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붉은 망령>, <살아 있는 망령> (H. G. 웰즈 원작), <울부짖는 망령>(존 맥클린 원작), <십자가와 망령>(W. P 블태리 원작) 등 <망령> 시리즈는 서양의 원작을 한국 독자들에게 맞춰 각색한 작품이다. 조치원의 작품은 그림에서도 내용에서도 이전 세대의 작품들에 비해 공포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그러나 공포만화는 지속적인 만화 검열과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 맥이 끊기게 된다. 1980년대 만화의 인기를 주도했던 만화방용 극화에 공포물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활발하게 창간되었던 만화전문 잡지에서도 공포만화는 주목 받지 못했다.
어느 늦은 밤의 지하철역 안. 막차만을 남겨둔 텅 빈 역 안에는 긴 머리의 여자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고 그런 여자를 멀리서 한 남자가 바라보고 있다. 남자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여자는 사라지고 선로에서는 피투성이 손이 튀어나온다. 다음 날 아침 지하철역에서 두 남녀가 투신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짧게 실린다.

2011년 7월 21일 네이버 웹툰의 여름 특집 ‘2011 미스테리 단편’의 하나로 실린 호랑 작가의 <옥수역 귀신>이다. 스토리는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 간단하고 40컷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웹툰은 공개되자마자 그야 말로 난리가 났다. 작품 첫 머리에 “본 만화는 여름 특집 미스테리 공포 기획물로, 충격적인 장면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산부, 노약자,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이용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다소 식상한 경고문구가 있었지만 이 경고문구 보다 더 효과적 이었던 것은 <옥수동 귀신>을 감상한 네티즌들의 입소문이었다. 작가가 직접 만든 프로그램을 활용한 이 작품은 스크롤을 내리면 정말 손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움직였다. 약 한 달 후 호랑 작가는 <봉천동 귀신>이라는 웹툰을 다시 발표했다. 이번엔 늦은 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여고생이 귀신을 목격한 이야기였다. 귀신의 실감나는 움직임과 소름끼치는 효과음이 더해진 이 웹툰은 역시나 큰 화제를 모았다. 미스테리 단편 시리즈가 완결된 후 기획 작품들 가운데 유일하게 <옥수동 귀신>과 <봉천동 귀신>만이 영문 버전으로 소개되었다. <봉천동 귀신>을 보고 깜짝 놀라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찍은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미국의 만화가 겸 만화평론가인 스콧 맥클라우드는 자신의 블로그에 <봉천동 귀신>을 소개하며 다른 이들도 이와 같은 획기적인 시도를 해보길 권했다. <옥수동 귀신>과 <봉천동 귀신>에 대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아마도 한국 만화사에서 공포만화 장르가 가장 널리 회자되었던 풍경일 것이다. 이들 두 편의 웹툰은 한동안 뜸했던 공포만화가 독자들에게 여전히 흥미로운 장르임을 보여주었다. 웹툰 시대의 세로 스크롤 문법과 디지털 표현의 확장이 만난 매우 의미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의 만화 시장의 중심이 종이 만화에서 웹툰으로 이동한 후 만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면서 공포만화도 다시 돌아왔다. 2004년 강풀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공포웹툰은 현재까지 꾸준히 창작되고 있다. 주요 웹툰 플랫폼의 장르 구분을 보면 다음의 경우 ‘공포’가 따로 나뉘어져 있지만 네이버는 ‘스릴러’ 장르가 있을 뿐 공포는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레진의 경우 ‘호러’로 구분되어 있다.
웹툰에서 공포만화의 혁신을 가져온 것은 앞서 서술 했듯 네이버의 <2011 미스테리 단편>에서 호랑작가가 선보였던 <옥수역 귀신>과 <봉천동 귀신>이었다. 이후 네이버는 여름이 되면 <2013 전설의 고향>, <2015 소름>, <2016 비명> 등 <2011 미스테리 단편>과 비슷한 포맷으로 여러 작가가 공포웹툰을 단편으로 올리는 기획을 진행했다. 컬러로 표현되는 웹툰은 기존의 흑백만화에 비해 선명한 색감을 활용해 훨씬 효과적인 공포의 연출이 가능해졌다. 특히 스크롤 만화는 페이지 만화와 비교했을 때 이야기가 다음 칸으로 전개되어 가는 과정이 훨씬 드라마틱하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다음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는 출판만화와 달리 웹툰은 스크롤 과정을 통해서 한 칸씩 그 내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웹툰 시대의 한국 공포만화는 그래서 매우 독창적이고 독특하다.
한국의 대중매체에서 공포물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난센스 문화가 식민지 조선에 수용된 것이다. 그로테스크는 ‘괴기(怪奇)’로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는 ‘괴담’으로 번역되어 유행한다. 당시 유행하던 괴담은 전통적인 민담이나 설화에 공포적인 요소를 더한 것으로 귀신이나 도깨비가 등장하는 오싹하고 무서운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다. 괴담은 대중적인 잡지에 실리면서 공포 오락물로 정착된다. 오랫동안 한국 공포물의 전형이 ‘전설의 고향’류의 전통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던 이유는 이렇게 1930년대에 유행했던 괴담의 특징에 기인한다. 한국과 일본의 초기 공포만화는 전통적 요소가 강한 괴담의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 만화의 역사는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배제하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식민지 시대의 직접적인 영향뿐 아니라 오랫동안 한국에 유입된 많은 일본 만화가 작가와 독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그렇지만 공포만화의 경우 초창기 작품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지만 1970년대 이후 작품에서는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다. 만화, 영화, 드라마 등에서 공포물이 꾸준히 창작되었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공포장르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괴담의 일부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괴담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화장실에 나타나는 귀신이나 찢어진 입을 마스크로 가리고 다니는 ‘빨간 마스크’ 같은 괴담의 출처는 일본이다. ‘입을 찢는 여자(口裂け女)’라는 이름으로 70년대 말 일본에서 유행한 도시 괴담은 한국에서 80년대 말 ‘홍콩 할매 귀신’으로, 90년대 초와 2000년대 초에는 ‘빨간 마스크’로 부활한다. 일본의 전통 설화에 뿌리를 둔 이러한 괴담은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유행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엽기적인 여자 요괴라는 그 내용도 서로 비슷하다. 한국과 일본이 이렇게 공포 코드를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1930년대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유입된 일본의 공포 서사가 한국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형성하며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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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만화규장각 만화zine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http://www.komacon.kr/dmk/manhwazine/zine_list.asp?cateNum=420
스캇 맥클라우드 홈페이지 http://scottmcclou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