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공포특급 : 한국 공포만화의 여정, 시대와 조응하는 과정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여전히 여름은 공포물의 계절이다. 즐길 만한 매체가 무척이나 한정되어 있을 시절, TV와 각종 잡지에서는 특별히 ‘납량특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무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MBC의 전설적인 호러 드라마 도 바로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극장 역시 여름 특수를 누리기 위하여 온갖 무서운 영화들을 즐비하게 개봉시켰다.

2017-08-31 성상민

(공포특급 1)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여전히 여름은 공포물의 계절이다. 즐길 만한 매체가 무척이나 한정되어 있을 시절, TV와 각종 잡지에서는 특별히 ‘납량특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무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MBC의 전설적인 호러 드라마 도 바로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극장 역시 여름 특수를 누리기 위하여 온갖 무서운 영화들을 즐비하게 개봉시켰다. 물론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케이블 방송의 영화 전문 채널 정도를 제외하면 TV에서 여름이라고 딱히 공포 영화나 드라마를 잘 편성하지 않는다. 한창 여름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2017년 8월에 개봉하는 공포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온 <애나벨 : 인형의 주인>과 한국 영화 <장산범>이 전부이다. 좋게 해석하면 여름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느 때나 공포물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공포물에 대한 수요는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조류에서 한국 공포만화 역시 자유롭지 않다. SF나 추리/탐정물처럼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변방에 놓인 장르들보다는 사정이 나았어도 사람들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공포만화. 하지만 대본소에서 잡지로, 다시 웹툰으로 주된 플랫폼 환경이 변하는 와중에서도 한국 공포만화는 끊임없이 사회와 교류하며 시대상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어떻게 한국 공포만화는 태어나고, 현재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을 한 번 살펴보자.

구전과 민담에서 기원한 공포, 만화로 이식되다
일찌감치 ‘공포’는 한국에서 장르의 틀이 채 형성되기 전부터 민간에서 끊임없이 유통되고 전해지던 장르였다. 인간에게 있어 공포는 무척이나 근원적인 감정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문명이 형성되기 전인 원시 시대부터 인류는 본능적으로 빛이 없는 어둠을 두려워하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존재와 장소를 자연스레 꺼려했다. 공포는 대다수의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심리였고, 그러기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민화에서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근원적인 감정은 민중들의 팍팍한 삶과 결합하며 더욱 큰 폭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계급, 계층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근대에 ‘시민권’이 확립되기 전에는 계급의 장벽은 무척이나 확고했다. 자신들이 당한 부당한 처우와 힘들고 어려운 일상의 편린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설화를 통해 심정적으로 대리만족을 했으리라. 당장 <장화홍련전> 같은 전래동화부터 어둠과 귀신에 대한 근원적 공포에 더하여 ‘억울하게 죽은 두 자매가 유령이 되어 원한을 갚고자 한다’는 줄거리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근대 이후 형성된 대중문화에서도 공포적인 감정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 <만리장성>, <해왕성> 등 한국 공포만화의 효시를 이룬 만화가 최상권,
 허나 그의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사진 속의 책은 최상권이 6.25 전쟁 중에 출간한 SF 만화 <헨델 박사>. 
 현재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이 소장한 총 3권의 <헨델 박사> 시리즈는  
지난 2014년 11월 2일 KBS1 쇼 진품명품>에서 1,000만원에 감정되기도 하였다.

한국 역시 일제 강점기를 전후하여 형성된 대중문화에서 이전부터 충분히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괴기와 공포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빠르게 등장했다. 장상용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서 공포만화를 맨 처음 그린 작가는 1956년 창간된 만화잡지 『만화세계』에서 <만리장성>, <해왕성>, <황금마대> 등의 작품을 연재했던 최상권이다. 원로 만화가 최경탄이 『경남매일』에 연재한 자전 칼럼 <인생만화경>에 의하면, 그는 일제 강점기 일본 오사카로 유학을 가면서 그림을 배우며 만화를 그린 한국 만화의 선구자적 존재였다. 최상권은 일찌감치 매체의 중요성을 알았던 것일까. 그는 『만화세계』에 단순히 작품을 연재하는 것을 넘어 편집주간으로도 활동하는 것은 물론, 만화세계에 같은 해에 『만화학생』을 직접 창간해 운영하는 등 활발하게 만화잡지 운영을 해나가기도 했다.

무척이나 아쉬운 것은 최상권의 작품을 현재로써 구하기는 무척이나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그의 공포만화들은 당시 연재가 되었다는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 작품의 세세한 줄거리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인터넷에 올라온 문서들을 찬찬히 살펴본 결과, 1950년대 당시 만화를 즐겨보던 한 분이 <만리장성>에 대한 소감을 블로그에 적은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조선일보 블로그 ‘레스보스’를 운영하는 네티즌 ‘tuora47’은 다음과 같이 최상권의 <만리장성>을 소개한다.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으려고 백성들을 수없이 착취하고 강제노역으로 병들어 죽어가게 하는 현실에서 도살경이라는 거울에 사람을 비추면 거울 속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간다는 만화. 거울 속에는 만리장성도 없고 진시황 같은 폭군도 없는 이상향이 존재하는 다른 세계. 그러나 그 속으로 들어간 인간은 거울 세계 속에서 현실로 나오려고 무단히 노력하는 만화. 비록 폭군이 존재하고 만리장성이란 죽음의 강제노역이 기다리지만 현실 세계로 나오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

이상의 줄거리가 실제 최상권이 그린 <만리장성>의 내용과 일치한다면 초창기 한국에서 제작된 공포만화는 민담으로 전해지던 수많은 무서운 이야기들처럼 미지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와 힘들고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오고 싶은 욕구를 함께 극화 형태로 담아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장상용이 인용한 만화수집가 오경수의 증언처럼 팔각거울(이는 <만리장성>에서 소재로 쓰인 ‘도살경’으로 보인다.)이나 구슬 같은 기이한 물건을 토대로 주인공으로 하여금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도록 하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최상권의 또 다른 공포만화인 <해왕성>이나 <황금마대> 역시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었으리라.


△ 박기당의 만화 <저승피리> 단행본의 표지.

환상적인 감각에 기초하던 최상권의 작품과 달리, 박기당의 작품은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기당은 일찌감치 1950-1960년대 맹활약하며 극화의 기초를 다진 것은 물론 공포뿐만 아니라 모험, SF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 횡단했던 작가였다. 오경수는 박기당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표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가령 다 쓰러진 폐가의 지붕, 무너진 기와지붕 곳곳에 산발 같은 잡초가 엉켜있고 음습한 가옥 내부에는 백발의 도사가 염불을 외우며 향을 피우고 있는데, 그 앞의 재단에는 백옥의 동자가 입가에 아직 마르지 않은 선혈을 흘리며 시체처럼 누워 있고, 만리경을 보며 거울을 향해 주문을 외던 도사의 염불이 더해 감에 급기야 동자의 시체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나 앉는다. 도사의 주문은 더욱 강렬해지고, 안개같이 퍼져 나온 향불을 따라 이승을 하직하지 못하고 떠돌던 억울한 영혼이 다시 육신으로 들어가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다.”

하지만 뒤이어 장상용이 “일본에서 자란 박기당, 김종래가 일본 괴기담을 각색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언급하는 등 박기당의 공포만화가 본격적으로 제작, 발표되던 1950-1960년대에 이미 그의 작품은 일본 괴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인식이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화를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 상당수가 마치 일본이나 서구권 대중소설을 ‘번안’하여 발표하던 김내성의 사례처럼 일본에서 좀처럼 자유롭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지적은 어찌 보면 가혹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한국적인 소재에 집중해서 공포만화를 그리던 이들도 없던 것은 아니다. 1960-1970년대 주로 활동하던 계월희가 바로 그러한 케이스다. 그는 원래 시대극에 능한 작가였으며, 공포 장르에서는 <백년 묵은 구렁이>나 <무덤 속의 구덩이> 같이 이전부터 한국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에 근간을 두고 작품을 창작했다.

1970-1980년대를 풍미하던 공포 만화가 조치원
1950-1960년대에 발표되던 공포만화들이 한국은 비롯해 일본, 중국 등을 배경으로 동아시아에서 오래전부터 통용되는 감성으로 괴기함을 담아내었다면, 1970년대부터는 좀 더 현대적인 감성이나 서구권의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우메즈 카즈오가 <표류교실> 등의 작품을 통해 매 에피소드마다 특정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강렬한 연출을 접합시키며 일본의 전통적인 괴기담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해석한 만화를 그려내며 일본 공포만화의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아가사 크리스티나 <검은 고양이>의 에드거 앨런 포와 같이 미스터리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공포스럽고 괴기한 소설로도 정평이 높았던 작가들의 소설이 소개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중반부 무렵 KBS를 통해 방영되었던 옴니버스 장르 드라마 <환상특급>(Twilight Zone)처럼 TV 매체를 통해 좀 더 생생한 때로는 소름끼치고 때로는 환상적인 해외 영상물이 조금씩 소개되었던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한국의 공포 만화가로는 만화가 조치원(또는 조치운)을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단선적이었던 이전의 공포만화와 달리 그는 해외의 미스터리 소설들처럼 서사적인 변용을 시도하며 독자들에게 하여금 더욱 이야기에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그가 즐겨 썻던 서사적 장치는 ‘액자식 구성’이다. 바로 등장인물에게 공포적인 상황이 닥치는 것이 아니라 액자 밖 주인공이 액자 속 이야기를 우연한 계기로 전해 듣고, 이야기가 마무리된 뒤에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의 증언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리얼리티는 강화되었다. 비록 지금으로써는 무척이나 보편화된 구성이자 이렇다 할 감흥을 주기엔 쉽지 않은 서사의 틀이지만 1970-1980년대 당시에 조치원의 작품을 즐겨봤던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하지만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기당이 ‘일본 괴기담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라는 말을 들었듯, 그는 박기당과는 반대로 서구권의 미스터리 소설이나 TV 드라마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였다. 심지어는 그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망령’ 시리즈에는 직접적으로 미국 드라마 <제6지대>(Night Gallery)를 각색한 작품이라는 설명이 붙기도 했다. <제6지대>는 1970년대 초반 미국 NBC에서 방송된 미스터리 드라마였고, 한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 MBC를 통해서 방송되었다. 물론 당시의 저작권 환경이나 소위 유명한 드라마, 영화가 원작이라며 발표된 만화 상당수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이 정식으로 NBC에 저작권 사용 계약을 맺고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을 것이다. 창작의 독창성은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전통적으로 형성된 설화나 기담을 넘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공포를 표현하려는 시도라는 의의는 분명 있을 것이다.


△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의 만화가 조치원의 마지막 작품 <어메이징 미스터리>. 
 이 작품을 끝으로 조치원은 만화계에서 영영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냥 해외의 작품에 수동적으로 영향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조치원은 공포물과 스포츠물을 결합시킨 ‘공포 축구만화’를 자신만의 전매특허로 밀기도 했다. 어딘가 생뚱맞은 혼종 장르이지만 이러한 결합을 처음 시도했던 1976년 작품 <하얀 도깨비>는 놀랍게도 이 두 장르가 흥미롭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어느 축구 소년이 우연한 계기로 귀신이 몸에 들어 온갖 이상한 일들이 주인공에게 발생한다. 경기를 하던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자살골을 집어넣는 등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소년은 제 몸에 들어간 원혼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의 원한을 풀어주고 나서야 저주는 사라진다. 같은 시기에 출간되었던 <저주받은 신발>은 더욱 강한 수위로 공포와 스포츠가 결합되어 있다. 원혼의 저주를 받은 축구화를 신으면 경기에서 이길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축구화를 신은 선수는 사망하는 줄거리를 지닌 작품에서는 근래 제작된 공포만화 못지않을 기괴함과 공포가 절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억압적인 한국의 시대상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조치원은 1980년대 들어서 갑작스레 필명을 ‘조치운’으로 바꿔야만 했다. 당시는 만화를 비롯한 모든 매체가 사전 검열을 받아야만 하던 시기였고, 검열 당국이 조치원의 작품이 공포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해당 필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만화가 계월희 역시 1980년대 초 모든 만화 작업을 중단하고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는 일이 발생했다. 조치원이 ‘공포 만화’를 그린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일을 겪어야 했던 것처럼, 그 역시 조치원 못지않게 검열 당국으로부터 많은 핍박에 시달렸으리라.

다행히도 필명을 바꾼 뒤에도 그의 작품 활동은 한동안 계속 되었고, 1990년대 이후로는 다시 필명을 ‘조치원’으로 바꿨다. 허나 이미 한국 만화의 중심은 대본소에서 만화잡지로 바뀐 지 오래였다. 그는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과 정부의 공공연한 압박 속에서도 꾸준히 공포만화를 그려나간 작가였지만, 시대는 야속하게도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1995년 도서출판 대원을 통해 발표한 <어메이징 미스터리>를 끝으로 만화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1990년대 한국 공포 만화, 여성 만화와 만나다
1980년대가 지나고 1990년대가 도래했다. 서슬 퍼런 사전 검열이 완화되고, 이전보다는 만화 창작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시기 한국의 공포만화는 한동안 제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보물섬』이나 『아이큐 점프』를 비롯한 만화 잡지들은 매년 여름마다 ‘납량특집’ 같은 표어를 내걸며 여러 공포 단편을 게재했지만 단발적인 특집을 넘어 긴 호흡으로 공포를 다루는 작품은 한동안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 1993년에는 『만화왕국』이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의 파상 공세에 맞서기 위해 갑작스럽게 ‘공포 만화 전문 잡지’로 바꾸는 시도를 감행했지만, 기존에 연재되던 작품들을 억지로 공포 만화로 바꾸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만용에 불과했다. 이처럼 만화잡지들에게 있어 ‘공포’는 여름 한 철 즐기는 것으로 족한 장르이거나, 잠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다.


△ 『보물섬』에 연재된 장도 글, 신비 그림의 <공포 환타지> 1화의 모습. 

그나마 1990년대 초중반을 버티던 공포 만화가 하나 있었다. 바로 『보물섬』을 통해 연재되던 장도 글, 신비 그림의 <공포 환타지>이다. <공포 환타지>는 매 화마다 다른 주인공과 이야기가 나오는 옴니버스 공포 만화였다. KBS를 통해서 방송되었던 외화 <환상특급> 같은 작품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지만, 당시로써는 『보물섬』을 즐겨보던 독자들에겐 무척이나 소름 끼치고 오싹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평범한 주인공이 미심쩍은 존재를 만나며 온갖 공포에 시달리는 이야기에 많은 독자들이 부들부들 떨면서도 매 호 소개되는 다양한 이야기에 쉽게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없었다. 장도 작가와 신비 작가는 <공포 환타지> 이후로 영영 만화계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도서출판 귀족에서 <학교괴담>이라는 제목으로 복간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공포 환타지>도, <학교괴담>도 시중은 물론이요 중고서점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어릴 적 숨 졸이며 보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하는 몇몇 독자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후 서울문화사의 성인만화잡지 『빅 점프』에 김종섭이 미스터리 호러 만화 <메피스토>를 연재하는 등 이러한 옴니버스식 구성의 호러는 1990년대 후반까지 오랫동안 생존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남성 독자 대상의 만화잡지에서는 한동안 공포만화는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한국 공포만화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조류를 타며 다른 길을 향해 나갔다. 여성 만화와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게 된 것이다. 물론 형민우의 『프리스트』나 윤인완 글, 양경일 그림의 『아일랜드』, 유경원 글, 엄혜진 그림의 『호협애사』와 같은 작품들처럼 남성-청년 만화를 통해서 호러적인 감각을 펼쳐낸 작품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모두 공통적으로 공포적인 감성을 토대로 일종의 액션 판타지를 꾀하는 작품들이었던 것과 달리, 여성 만화를 통해서 전개되었던 공포 만화는 ‘공포’라는 감정에 철저히 초점을 맞춰 녹여내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 데뷔한 이애림은 단 한 권의 책만 낸 작가지만 그 이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결코 등장하기 쉽지 않을 기괴한 그림체와 감성으로 무장한 공포 만화가였다. 1992년 한 만화잡지의 독자 코너에 기고한 <빌리의 코딱지>를 비롯해 서울문화사의 성인 여성을 타깃으로 잡은 만화잡지 『나인』에 연재한 여러 단편을 묶어 발행한 그의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이 될 만화책 <쇼트 스토리>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리저리 뒤틀리고 얽히고설킨 얇은 선들로 구성된 화풍, 어디로 치닫는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전개. 그리고 지독하게도 잔혹한 이야기들.

이후로 이애림은 만화가 활동을 중단한 뒤 애니메이터로 완전히 전업하였고, 2006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별별 이야기>에 수록된 단편 <육다골대녀>(肉多骨大女, 살집이 많고 기골이 장대한 여성이라는 뜻) 등의 작품을 통해 간간히 대중들과 만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만 언급하지 않을 뿐이지 그녀는 여전히 공포물의 감성을 페미니즘적인 고민과 함께 담아내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육다골대녀> 역시 그러한 작품이었다. 외모지상주의가 차고 넘치는 한국 사회를 기괴한 스타일로 파고드는 이애림의 화풍과 연출은 당대 한국 사회가 놓여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춰낼 수 있었다.


△ 이애림의 유일한 만화책이자 단편 모음집 <쇼트 스토리>의 단행본 표지.

2000년대 초반 <두 사람이다>를 통해 호러와 미스터리에도 뛰어난 감각이 있음을 드러낸 강경옥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그가 2000년대 초반 ‘엠파스 만화’를 통해서 연재한 <버츄얼 그림동화>는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동화를 현대로 가져와 비틀린 형식으로 재해석하며 공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푸른 수염>이나 <노간주나무> 같이 원전 자체가 배배 꼬인 작품은 더욱 현실적인 공포를 낳고,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동화 역시 원전에서 가리어진 부분을 한 꺼풀씩 벗기고 드러내며 끔찍하지만 한편으로는 몽환적이기 까지 한 오싹함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별빛속에>나 <노말시티> 같은 SF 작품에서도 조금씩 담겨 있던 호러적인 감각은 2000년대 들어 <두 사람이다>를 거쳐 <버츄얼 그림동화>, 그리고 현재 연재 중인 <설희> 등의 작품에서도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중에 있다.

이 밖에도 호러적인 감각이 담긴 여성 만화를 한동안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애림과 함께 『나인』에서 활동한 것은 물론 단 한 권의 작품집만을 낸 것도 동일한 작가 최인선 역시 자신의 작품집 <속 보이는 놈>에 수록된 <변신> 등의 단편을 통해 섬뜩함을 순간순간 드러냈다. 한혜연 역시 단편집 <자오선을 지나다>에 수록된 <시안의 오후>, 작품집 <기묘한 생물학>에 수록된 <한성유전>, 장편 연재작 <애총> 등의 작품을 통해서 미스터리와 호러,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시선이 적절하게 조합된 작품들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을 다져나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전수현의 <호러스쿨>, 전미선의 <곡성여자고등학교>, 조주희 글, 서윤영 그림의 <독서클럽> 등의 작품들처럼 학교를 소재로 삼은 여성 호러 만화들이 연이어 나왔기도 했다. 심지어는 1997년에는 야컴에서 순정공포매거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은 『아디』가 창간되는 일도 있었다. 비록 이미 만화잡지 자체가 서서히 동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나와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아쉬움은 물론, 각 작품에 담긴 공포 장르의 표현 역시 학원 공포물의 클리셰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등의 한계를 결코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계속 등장했던 상황은 한동안 한국의 호러 만화가 여성 만화를 중심으로 뻗어나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라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한국 공포만화가 한동안 여성 만화와 같이 호흡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분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998년 <여고괴담>이 한국 공포영화에 큰 센세이션을 남기고, 다시 김태용과 민규동이 공동으로 연출하며 1999년에 개봉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어도 많은 마니아를 배출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감이 풀리지 않을까. 한국의 여성들은 오랫동안 억압되어 왔었고, 자신의 생각 또한 마음껏 풀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마치 그 옛날 민담에 담긴 공포의 정서가 그랬듯, 여성 만화로써 호러를 펼쳐내는 것은 곧 나름대로 작품으로써 한국 사회에 반기를 들고 다시 전복을 시도하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여기에 공포는 시각적 표현 외에도 심리적인 자극이 주가 되는 장르인 만큼, 좀 더 유려하고 섬세한 표현법에 익숙한 여성 만화가 호러에 더 익숙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으리라.

웹툰의 시대, 공포 만화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2000년대 중후반으로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한국 만화의 중심은 만화잡지에서 웹툰으로 이동했다. 만화의 중심이 웹툰으로 이동하며, 강풀이나 김규삼 같이 이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작가들에게 포커스가 비쳐줬던 것처럼 한국의 공포 만화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물론 공포 만화가 완전히 한국 만화의 주류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 만화 진영 정도를 제외하면 ‘한 철 장사’ 이상을 넘지 못하거나 호러적인 감성과 액션, 판타지를 조합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는 대신 공포물 본연의 감각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분명 고무적이다.

웹툰에서 맨 먼저 본격적으로 공포 만화를 선보였던 작가는 다음 만화속세상(현, 다음 웹툰)에서 <순정만화>를 연재하며 웹툰 1세대의 스타 작가로 등극한 강풀이다. <순정만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던 강풀은 자칭 ‘미심썰’(미스터리 심리 썰렁물)이라는 장르명을 붙인 <아파트>를 후속작으로 연재하였다. ‘썰렁물’이라는 말이 붙었던 것처럼 그가 『스포츠투데이』에 연재하던 카툰 <일쌍다반사>처럼 일정량의 개그가 계속 첨가되었던 작품은 후반부에 다다들수록 개그의 비중은 줄이고 공포의 비중을 늘리면서 화제가 되었다. 강풀이 개그, 로맨스 뿐만 아니라 공포나 스릴러 같은 장르에도 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 강풀의 두 번째 장편 서사 웹툰이자 첫 번째 공포 만화 <아파트>의 단행본 표지.

이후로도 강풀은 초능력자를 전면에 내세운 <타이밍>, 재개발을 앞둔 낡은 아파트의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다룬 <이웃사람>, 조명가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다룬 <조명가게> 등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공포 만화를 그리고 있다. <이웃사람>을 빼면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아파트>와 <이웃사람>은 각각 안병기와 김휘의 연출로 실사 영화로 재탄생하고 <타이밍> 역시 한일 합작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미디어믹스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미심썰’ 시리즈의 성공은 한동안 소외받았던 한국 만화의 공포 장르가 다시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파트>에서 시작한 강풀의 공포 만화가 웹툰을 즐겨 읽는 대중들에게 공포 장르를 환기시켰다면, 호랑 작가의 작품들은 웹툰이 컴퓨터/스마트폰 기반의 플랫폼 위에 놓여 있다는 점에 포인트를 잡고서 그에 맞는 연출 방법으로 새로운 공포 만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네이버 웹툰의 ‘2011 미스테리 단편’ 시리즈를 통해 호랑이 선보인 <옥수역 귀신>과 <봉천동 귀신>은 서사적으로는 큰 차별점을 찾기는 어렵다. 일본의 <실화괴담 신미미부쿠로>(實話怪談 新耳袋, 실화괴담 신이대)나 한국의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처럼 전형적인 도시괴담 소재의 공포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이 화제가 된 건 내용이 아니었다. 독자가 직접 마우스나 손으로 스크롤을 넘겨야 하는 대다수의 웹툰과 달리 작가의 의도에 맞춰 특정 장면에 도달하면 강제로 스크롤이 넘겨져 공포 효과를 자아낸 덕분이었다. 작품의 내용 자체는 흔할지라도, 효과적인 연출 하나가 작품에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 호랑의 공포 단편 <옥수역 귀신>의 일부.
 작품에 사용된 강제 스크롤과 유사 3D 효과는 국내외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많은 인상을 남겼다.

네이버 웹툰의 첫 릴레이 프로젝트였던 ‘2011 미스테리 단편’ 시리즈가 호랑의 작품들로 큰 호평을 얻자, 네이버는 ‘지구 멸망’이나 ‘우주 특집’ 같이 매년 다양한 소재로 릴레이 웹툰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공포 만화 릴레이 기획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또한 <악연>이나 <인간의 숲> 같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소재로 작품을 주로 그리는 황준호, 매 작품마다 흥미로운 소재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절벽귀>와 <기기괴괴>의 오성대와 같이 공포 만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작가들도 속속 등장하는 상태이다.

이제 한국 공포 만화는 앞으로 탄탄대로의 ‘꽃길’만 걷는 일만 남은 것일까. 하지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옥수역 귀신>과 <봉천동 귀신>이 해외에 까지 이름을 알린 대성공은 네이버로 하여금 웹툰에 강제 스크롤을 적용하는 등 화면에 다양한 효과를 주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감행하게 만들고 있지만, 네이버 웹툰 ‘2016 비명’ 시리즈에 첫 작품 <귀신알바>와 마지막 작품 <전생게임>을 그린 DEY 작가를 제외하면 기술이 작품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술이 작품 자체를 잠식하는 부작용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동시에 이애림, 한혜연, 강경옥 등의 작품에서 시도되었던 감각적인 호러는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춘 채 마치 공포 영화들처럼 ‘깜짝 효과’에 공을 들이는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도 분명 고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여고괴담> 이후로 호황을 맞이했던 한국 호러 영화가 정가형제의 <기담>, 이용주의 <불신지옥> 정도를 제외하면 계속 퇴행하다 장르 자체의 존속이 위기에 빠졌던 것처럼, 좀 더 다양한 표현의 방법론과 인식의 증대를 고민하지 않는 순간 지금의 호황은 어느덧 신기루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장상용,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1960-1979』,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3
박인하 · 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 1945-2010』, 두보북스, 2010
박기준,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부천만화정보센터, 2009
박기당, 『박기당 컬렉션』, 부천만화정보센터, 2007
최경탄, <인생만화경 : 추억의 삼천포 시절(17)>, 경남매일, 2013년 11월 26일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5552
tuora47, <인간이 보지 못하고 죽는 것(재미 없는 글)>, 조선일보 블로그 ‘레스보스’, 2013년 12월 22일
http://blogs.chosun.com/tuora47/2013/12/22/%EC%9D%B8%EA%B0%84%EC%9D%B4-%EB%B3%B4%EC%A7%80-%EB%AA%BB%ED%95%98%EA%B3%A0-%EC%A3%BD%EB%8A%94-%EA%B2%83-%EC%9E%AC%EB%AF%B8-%EC%97%86%EB%8A%94-%EA%B8%80/
선정우(mirugi), <[잡지] 한국 순정만화 잡지의 역사 #02 - 순정공포매거진 「아디」 : 1997년 12월 창간호 특별한(?) 페이지.>, 미르기닷컴 다음블로그, 2005년 6월 30일
http://blog.daum.net/mirugi/4874118
정상혁 기자, <1000만원짜리 만화책>, 조선일보, 2014년 11월 4일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1/03/2014110304242.html
필진이미지

성상민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만화규장각 지식총서 《지금, 독립만화 (며느라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저자, 《미디어오늘》 ‘성상민의 문화뒤집기’ 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