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을 기획하면서 담당자와 이런 대화를 나눈 게 4월 16일 낮. 그런데 난 마침 일이 바빠 매월 1일과 15일 발행하는 잡지들 중 15일 발행분을 발행 당일에 못 샀던 터였다. 그렇게 앞서의 대화를 나눈 지 이틀이 지난 18일, 관계자나 잡지 소속 작가들의 블로그 등을 통해 이런 정보가 돌기 시작한다. ‘영챔프 오프라인 잡지 폐간’.
“이게 무슨 소리야, 영챔프가 폐간이라니!”라는 단발마를 뒤로 하고 서점으로 달려가 보니 과연, 잡지에 공지가 올라 있다. ‘5월 20일 영챔프 온라인 잡지 창간’. 말인즉 대원씨아이가 영챔프의 종지 잡지 발행을 중단하고 SK가 주도한 온라인 만화 웹진 ‘툰도시’로 자리를 옮겨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그것도 이미 온라인 전용으로 창간한 바 있던 슈퍼챔프와 합치는 형태로. 나 또한 ‘폐간’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고 딱히 틀린 표현도 아니긴 하지만, 정확히는 오프라인 출간 종료, 온라인에서 계속합니다- 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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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으로는 마지막인 영챔프 2009년 10호 표지. |
종이 만화 잡지 시대가 끝나가는 징후들 사실 영챔프가 온라인으로 가는 일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다. 이미 서울문화사가 순정지 슈가를 오프라인 폐간 뒤 온라인으로 이어 낸 전례가 있다. 오래 안 가 그마저도 폐간했지만 말이다. 대원씨아이는 또 어떨까. 대원씨아이는 이번에 툰도시를 연 SK의 포털 사이트인 네이트에 2006년 7월 10일부터 자사 잡지 전부를 얹어 제공한 적이 있다.
온라인 전용지였던 슈퍼챔프를 포함해 종이로 찍어내던 분량을 며칠 간격을 두고 그대로 유료 제공했던 것이다. 슈퍼챔프라는 잡지도 아동지 팡팡에서 가장 인기 있던 두 작품인 위치헌터와 신구미호만 빼다가 신인 작가들을 붙여 창간한 것이었고, 이외에 아크로드·썬·홍길동 무림전사록(이상 영챔프 연재작)이나 루비돌(이슈 연재작) 등 연재작들 가운데에서도 온라인 전용 연재작들을 따로 두는 변칙 운영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툰도시도 SK 것이니 사실 무대 자체가 크게 변한 건 아니다. 그럼 왜 이 시점에서 유난한 반응이 나오는 걸까.
일단 출판 만화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심상찮다. 멀리 볼 것 없이 최근부터 살펴보자. 씨네21이 정부 돈을 받아 출간했던 만화잡지 팝툰이 3월 1일 발행하는 49호부터 월간으로 전환했다. 만화만 싣는 잡지는 아니지만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같은 특색 있는 만화가 연재 중이었던 판타스틱도 진통 끝에 올 3월부터 계간으로 전환했다.
팝툰과 판타스틱이 다소 고연령,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데다 기존 국내 장르 만화계와는 다소 살짝 다른 느낌이어서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황은 장르 만화계라고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이쪽의 포문은 ‘출판 만화계의 검은 삼연성(대원씨아이·서울문화사·학산문화사)’ 중 하나인 학산문화사가 먼저 열었다. 이 출판사는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소년지 찬스와 청소년지 부킹을 연달아 지난 4월부터 격주간지에서 월간지로 일괄 전환했으며 저연령 월간 순정지 파티도 두께를 줄이는 개편을 단행했다. 고연령 대상 순정지나 작가주의 계열과는 달리 장르 특성상 속도감을 필요로 하는데다 연령 등에 기인한 독자 충성도도 확연히 낮은 소년지나 청소년지를 ‘격주간’을 넘어 ‘월간’으로 낸다는 점은 상황이 한계의 한계까지 왔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니 찬스와 부킹의 월간 전환은 서울문화사의 아이큐점프가 2005년 중반, 대원씨아이의 소년챔프가 2006년 초에 각기 격주간으로 전환했던 때와는 또 다른 상징성을 지닌다. 자연히 “다음은 어디냐?”라는 말이 흐르던 상황에 영챔프가 덜컥 종이 잡지를 접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것도 딱 창간 15주년이 되는 시점에 보란 듯이 맞췄다. 여기에 순정지인 이슈 쪽은 연재작 일부를 웹으로 옮기고 잡지 연재작이 아니라 이슈북스 레이블로 나오는 단행본 전용 출간작을 대거 정리하는 한편 이를 담당해오던 사원도 퇴사시켰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끊임없이 서로 따라하기와 외부 성과의 복제를 반복해 오며 시장 선도보다는 유지 보수에 무게중심을 둬 온 이들 ‘검은 삼연성’인 만큼 오프라인 폐간, 온라인 전환이 줄을 이을 거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이쯤이면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뜬다. 이제 종이 만화잡지의 시대는, 정말 ‘오타쿠웨이’(인디언 말로 ‘이젠 끝’)인 걸까?
2009년 현재, 종이 만화잡지의 존재 의미
사실 우리나리에서 종이 만화잡지의 한계는 어찌 보면 이미 오래전 드러나 있었다. 정확하게는 주요 출판사들이 일본식 잡지 만화 체제를 한국에 맞추지 않은 채 들여온 그 시점부터 문제는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거의 20년은 버틴 셈이니 오히려 ‘선방’했다고도 말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출판사들이 스스로 선순환구조를 지닌 시장을 창출하기보다 ‘편리하지만 사실은 본질적으로 판매형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화 총판 유통망과 결착하여 결국 대본소 → 도서 대여점으로 이어지는 왜곡된 시장의 공고화에 한 몫 했던 것이나, 제대로 된 ‘장사’를 하기 보다는 자기 복제와 남의 성과 따라 하기만 반복해 온 모습으로 말미암아 작품들의 질적인 성과나 구성원들의 노력은 빛을 잃고 만다.
일본식 모델이란, 결정적으로 잡지를 신작 카탈로그로 쓰고 연재분을 묶은 단행본을 박리다매로 팔아 잡지를 찍으며 내는 적자분을 보전하고 수익도 내는 방식이다. 인구 수는 물론이거니와 인식 면, 시장 규모 면에서 좋게 봐도 1/3, 실상 1/10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국내 만화 시장에선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려운 방식이었다. 이를 중간에 수정하거나 나름대로의 형태로 재개발을 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문제의 본질을 고치기보다는 당장 낼 수 있는 수익에 천착했고 타이밍은 그 때마다 떠나갔다. 그 결과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남은 건 팝툰이 월간 전환하며 언급했듯 ‘시장 크기에 맞는 조정’ 뿐이다. 대원씨아이가 이제 와 판매형 단행본 전용 브랜드를 내고 보도자료를 전에 없이 열심히 뿌리고 블로그 스킨 마케팅 같은 부분에도 열심이지만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제 와서냐는 물음이 나온다. 사실은 그나마도 일부 소형 출판사들의 성과를 따라간 것이지만 말이다. 더 난감한 현실은, 모델의 원조인 일본조차도 만화잡지가 근래 들어 숱하게 망해나가고 있단 것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에겐 잘 나가던 한 때 기록적인 판매량을 견인했던 초흥행작 카드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잡지가 장르 만화의 보고라는 ‘명분’이 설 자리는 사실 이젠 거의 없다. 일본식 모델에서 잡지란 대체로 찍으면 적자가 발생하게 마련이고 그 손실분은 단행본 판매 수익으로 메워야 한다. 지금까지는 단행본이 안 팔리는 건 둘째 치고 출판사들이 제대로 작품을 팔 노력도 제대로 해 오질 못해 왔다. 자연히 종이 만화잡지가 계속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갈수록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잡지 창간 지원과 연재작 지원과 같은 국가적인 지원은 문화 부흥이란 차원에서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으레 이럴 때엔 적당히 제작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만화 산업의 뿌리부터 뜯어고치는 자구책이 필요하다- 같은 수사를 쓰면 좋겠지만 이게 그냥 입 발린 소리라는 걸 하늘도 알고 업계도 알고 독자들도 안다.
종이 만화잡지의 존재 의미에는 명분이 크게 자리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외의 것이 보이질 않는다. 현 시점, 많은 작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매체로서의 ‘종이 만화잡지’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갈수록 더더욱 형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대원씨아이가 기존에 시도했던 것과는 달리 영챔프를 온오프 병행이 아닌 온라인 전용으로 이전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이전만이 답은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온라인 이전이 상황을 타개할 열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들고 만다. 일단 온라인 전용 잡지의 가장 큰 장점은 ‘찍어내고’ 이를 ‘유통하기 위한’ 비용과 재고 적재를 위한 ‘창고비’ 그리고 채 팔지 못한 분량을 폐기하는 데 드는 ‘처리비’가 따로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찍느라 적자를 낼 수밖에 없던 것에 비하면 훌륭하게 비용 절감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원고료’는 그대로 나갈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비용이 잡지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무리 제반 비용이 줄어든다 해도 큰 비용 자체가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잡지가 어려운 까닭은 손실을 메울 수 있을 만큼 매출이 나와 주지 않는 데 있다고 했다. 단행본 판매가 당장 확 늘 수 있지 않는 한 잡지에서 매출이 나와야 할 터지만 온라인은 생각보단 장사가 잘 되는 공간이 아니다. 웹툰이 아닌 온라인 만화 시장은 보통 정액제로 끊은 독자들이 내는 비용을 모아 전체 노출 비율 가운데 얼마만큼의 노출도를 차지했는가를 따져 나누는 방식으로 수익을 분배하게 돼 있으며 이 비용이 잡지를 유지하는 만큼 나와 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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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잡지 슈가 표지 |
심지어 웹에서 정액을 끊어 만화를 보는 이들의 주 이용 행태는 주기성을 지니고 나오는 잡지와 궁합이 잘 맞는 편도 아니다. 실제로 포털들에서 여러 CP를 통해 제공받는 만화 가운데 인기작 상당수는 장르 만화 보다는 쌓아놓고 한 번에 보는 일일만화류 쪽이 제법 많다. 한 달 9천 원 정도를 쓰는 데 별 부담을 안 느끼는 층과 주로 만화를 보는 층과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셈이다. 온라인으로 이전해 이어가고자 했던 서울문화사의 슈가가 끝내 사라지고 말았던 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번에 나온 툰도시는 SK가 운영하던 네이트 만화란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결정적으로 한국의 온라인 결제 과정은 이런 장르 만화들의 주 소비 계층인 청소년이나 사회 초년생들에겐 지나치게 짜증스럽다.
게다가 온라인에는 스크롤만화로 대표되는 웹툰 형식의 만화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웹툰은 독자에겐 무료기도 하거니와 접근성도 좋다. 적어도 페이지 만화를 보기 위한 전용 뷰어를 깔아야 할 필요도 없고 회원 가입이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을 포기하고 온라인으로 온다 했을 때엔 바로 이 굳건한 인식의 차이를 깨고 이쪽을 선택하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단 소리다. 온라인으로 옮겨온 잡지들이 과연 이 지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명백하게 무리다.
또 하나, 자체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놓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들어 영챔프는 이번 결정으로 자체 발행 또는 일부나마 자체 서비스를 꾸리는 일을 포기하고 제휴 관계도 아닌 포털의 한 CP 채널이 됨으로써 독립된 잡지 브랜드로서는 수명을 다 했다고 봐야 한다. 영챔프가 들어가는 툰도시는 대원과의 전격 제휴를 통해 전략적 노출을 꾀하는 구조라기보다는 어떤 출판사와도 계약 가능한 말 그대로 ‘만화 포털 사이트’의 전형이다. 이는 자체 홈페이지라도 유지했던 슈가 때나 온오프 공개를 병행하던 때와도 다르다. 이 구조가 앞으로 더더욱 공고화할 때 사람들은 기존 잡지 브랜드를 기억할까, 포털 이름을 기억할까?
* 본 기사는 만화 중심의 대중문화 언론 『만』(http://mahn.co.kr)과의 제휴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