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저작권 인식 사례 (2)
이번엔 이와는 다른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만화계 관련 저작권 인식들을 짚어보도록 하자.
2009-04-10
서찬휘
앞 편에서 일반인들 - 그것도 가르치고 배우는 위치에 있는 이들의 인식부터가 실로 엉망진창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비단 이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성장해가야 할 세대와 그 세대에게 바로 영향을 끼치는 이들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사회 전반에 걸쳐선 얼마나 또 많은 오류가 잠재돼 있을지 섬뜩할 뿐이다.
이번엔 이와는 다른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만화계 관련 저작권 인식들을 짚어보도록 하자.
‘저작권’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저작권이 반드시 상업적으로 팔리는 저작물에만 설정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저작권이란 사전적 해설에 따르면 ‘문학, 예술, 학술에 속하는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자나 그 권리 승계인이 행사하는 배타적·독점적 권리’로 어떤 저작물이라 해도 세상에 나온 순간 그 저작자에게 저작권이 생긴다.
다시 말해, ‘낙서’ 수준의 그림을 그려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도 그 낙서에 불과한 것에조차 저작권은 설정이 된다. 이는 질적인 가치판단 이전의 문제고, 게다가 한국은 문학·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국제 협약인 베른 조약 가입국(한국은 1996년 5월 21일 가입서를 기탁했음. 발효일은 8월 17일)으로 무방식주의를 따르고 있어 저작물을 만든 경우 별도로 등록하거나 저작자 표기를 따로 하지 않아도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일부 게시판에서 “(c)나 (C), ⓒ 같은 저작권 표시가 없으면 저작권을 지켜줄 필요 없어요!”라며 있던 표시도 지워서 올린다든지 하는 이들을 볼 수 있지만 헛수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만화 일러스트와 같은 저작물에 블로그 주소 등을 기재해 올리며 무단 펌질(전재)을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 또한 저작물 자체의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점에선 자기 자신도 같으므로 무단 전재를 저지른 건 매일반이다. 심지어 일부는 스캔을 직접 했다 해서 스캔 저작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불성설이다.
‘전재’의 경우 상업적이지 않은 용도에 한해 작품 리뷰나 연구 목적에 쓰기 위해 3쪽 이하를 인용하는 경우, 또 연속되지 않은 정도로 전체 페이지 가운데 20컷 이하로 발췌하는 짤방(글쓴이의 감정 또는 기분을 드러내는 데 만화 등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 정도가 ‘용인’받는 것일 뿐이다. 저작권법의 설정 목적이 저작권자의 권익 보호지만 한편으로는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친 적용으로 말미암아 문화적인 활용마저 억제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어 어느 정도 여유를 두는 셈이다. ‘용인’되는 것으로 자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웹툰을 블로그 등지에 ‘퍼다 나르는’ 행위로, 웹툰이 소비자 관점에선 돈을 내지 않는 콘텐트라는 측면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웹툰 또한 원칙적으로는 무단 전재해선 곤란한 콘텐트지만 웹툰 작가들이 대체로 많은 노출을 독자 확보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많이들 묵인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상업적으로 내놓지 않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저작권은 당연히 있다. 따라서 작가가 허락하지 않는 한 비상업적 목적이라 해도 무단으로 전부 또는 일정 이상을 발췌하는 건 자제해야 하며, 비상업적으로 발표한 작품이라 해도 이를 상업적 목적(즉 이윤을 취할 목적)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
이 문제로 가장 망신스러운 사례로 꼽을 법한 것이 신문만화에서 등장한 바 있다. 서울신문에서 신문의 꽃이자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만평을 그리고 있는 백무현 씨는 2006년 6월 19일과 2009년 3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대중들 사이에서 대사 패러디를 이용한 ‘짤방’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고병규 씨의 두 칸짜리 만화 「조삼모사」를 자기 이름을 내건 만평란에 이용했다. 이 작품은 원래 일기장에 올린 그림이 대중 사이에서 회자되며 인기를 얻었고 작가 또한 이러한 이용에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만민의 즐길거리가 되었으나 이와 같은 활용은 어디까지나 대중들의 놀이용이었지 출처도 원 저작권자도 밝히지 않은 채 상업적 용도로 이용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조삼모사」는 한창 유행하던 당시에 온갖 광고에도 차용되는 등 허락조차 받지 않은 ‘상업적 이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전례가 있으나 백무현 씨의 사례는 상업지면에 자기 연재란을 꾸리고 있는 창작자이자 만화가로서 저지른 ‘도용’이어서 문제가 더 크다. 이 사건은 정작 만화가들조차 저작권 침해에 관한 개념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 사례인데다 초범도 아닌 재범이어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친고죄인 저작권법의 특성상[*주] 원작가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한 도용자가 법적인 책임을 질 일은 없겠으나 프로 만화가로서 해선 안 될 저작권 침해이자 상도의에도 어긋난 짓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침해 사례로는 ‘대패질’이 있다. 흔히 스캔한 데이터에 적혀 있는 외국어 원문을 포토샵 등 그래픽 편집기를 이용해 지우고 번역한 우리말 대사를 식자로 집어넣는 행위를 일컫는 표현이다. 대체로 국내에 아직 정식으로 들어오지 않은 만화들이 이 ‘대패질’을 일삼는 아마추어 번역자들의 손에 번역되어 소개된다.
문제는 정식으로 수입해 들어오지 않은 작품이라 해도 한국이 베른 조약 가입국인 이상 정식으로 들여오지 않은 외국 저작물이라 해도 저작권을 보호해줘야 한다. 따라서 “정식 수입작이 아니니까 괜찮다”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며, 스캔 저작권이라는 해괴망측한 주장과 마찬가지로 번역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출판권을 비롯해 웹 공개에 따른 허락을 구하거나 권리 구입을 따로 하지 않으면 그 행위 일체는 불법이며 보호받을 수 없으며 대상이 현지 정식 출판물이 아닌 ‘동인지’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본 만화 「언더 더 로즈」의 작가 후나토 아카리가 자신의 웹 유료 연재 만화 「허니로즈」가 국내 한 블로그에 무단으로 ‘대패질’되어 올라간 것을 보고 분노했던 지난해 3월 말 사례는 작가의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에 따른 잡음은 둘째 치더라도 일어난 일 자체가 국제망신이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최근엔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아마추어 번역가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 웹에서 연재되는 동인 작업물을 ‘허락을 받은 후’ 번역해 공개하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편이나, 일부 ‘정신 나간’ 이들은 여전히 해외 저작물을 무단으로 소개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도서 대여점과 만화방(대본소)을 살펴보자. 이들은 한 권을 구입해 수차례(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빌려주고 대여비를 챙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도서 대여점이 점포 바깥으로 책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만화방과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여’라는 형태로 장사를 한다.
하지만 책이라는 재화의 특성상 2차도 아닌 1차 시장 그 자체가 점포 수 만큼으로 제한된다는 점과 노출 횟수라 할 수 있는 대여 횟수만큼의 대가가 저작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 그 자체로도 이들은 공정 거래와는 거리가 먼 명백한 저작권의 사각지대다. 다만 그 기반이 되는 유통 체계(만화의 경우 ‘총판’)가 근 6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왜곡을 만성화한 데다 만화 출판 업계가 이 체계와 거의 한 몸을 이루어 왔고, 그러한 연유로 이 땅에 판매 시장이 제대로 뿌리 내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여란 형태로 만화를 보여주는 업종이 ‘불법’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있어 왔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불법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반품질’ 사례는 이 만화계 전체가 연루된 암적 카르텔이 얼마나 시장을 좀먹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반품질이란, 대여 업소들이 책을 구매 후 고객에게 빌려주며 대여비를 챙긴 후 이미 넝마가 된 헌책을 총판을 통해 반품을 하고 구매 비용을 돌려받는 행위를 말한다. 대여 업소로써는 ‘돈 안 들이고 수익만 내는’ 행위다. 이 점 만으로도 대여업은 만화 출판에 대가를 전혀 지불하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이렇게 반품된 책이 총판을 통해 재해핑을 거쳐 책을 사서 보는 일반 독자에게 팔림으로써 ‘대여행위자’가 아닌 ‘독자’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
이는 장물판매하듯 책을 이용하는 대여업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만화 총판 유통망, 그리고 이를 받아 줘가며 ‘고정 규모’에 기대 장사를 해 온 출판사가 어우러진 한 판 사기극이다. 최근 논란이 일어난 대여업 관계자들의 입고 거부 등 업계를 향한 대대적 ‘협박’은 이 반품질을 막은 데 따른 것으로, 출판사가 방침을 철회할 때 까지 ‘일부 대박작품을 제외한’ 작품의 입고를 거부하겠다는 주장으로 만인의 비웃음을 자초한 바 있다.
이러한 오류는 정면으로든 우회로든 분명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창작 저작물과 얽힌 시장에서는 저작권 존중과 보호가 우선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제아무리 스스로의 한계로 말미암아 무너져 가고 있다지만 대안점을 찾아 올바른 시장으로 재편성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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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친고죄 : 저작권 침해는 기본적으로 침해를 당한 사람이 직접 고소를 해야 공소가 가능하다. 단 지난 4월 1일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은 정부가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계정 정지 및 공간 폐쇄를 명할 수 있어 방향성이 흐려졌다. 자세한 건 관련 기사들을 참조.
* 본 기사는 만화 중심의 대중문화 언론 『만』(http://mahn.co.kr)과의 제휴기사입니다.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 저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백석문화대학교 출강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