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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만화속의 공포유발장치 : 웹툰의 공포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정상까지 올라가 빠른 속도로 하강을 시작할 때 내장이 쏠리며 몸이 붕 뜨는 기분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벨트를 포함한 안전장치를 완전히 믿고 있어서다. 지금 느끼는 이 두렵고 기묘한 감각은 ‘설계’ 된 것이며, 직접 운전대를 잡고 강변북로를 달릴 때보다 더 안전한 상태라는 확신이, 순간의 공포를 쾌감으로 바꾸어놓는다.

2017-10-10 이다혜

(공포특급 3)


작화와 음향효과, 그리고 서사적 기법 면에서 영화와 웹툰을 비교해보다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정상까지 올라가 빠른 속도로 하강을 시작할 때 내장이 쏠리며 몸이 붕 뜨는 기분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벨트를 포함한 안전장치를 완전히 믿고 있어서다. 지금 느끼는 이 두렵고 기묘한 감각은 ‘설계’ 된 것이며, 직접 운전대를 잡고 강변북로를 달릴 때보다 더 안전한 상태라는 확신이, 순간의 공포를 쾌감으로 바꾸어놓는다. 신뢰할 수 있는 안전이라는 요소는 공포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

호러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
공포물을 즐기는 심리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문 밖에 알 수 없는 존재가 거꾸로 서서 “쿵! 쿵!” 소리를 내며 당신을 부르고 있다고 상상하면… 그건 좀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예컨대 매일 귀가할 때마다 현관문 손잡이 위에 알 수 없는 기호들이 그려져 있고, 지워도 다음날 같은 자리에 똑같은 글씨를 또 누군가가 쓰고 갔다면, 설령 실제로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해도 불쾌함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공포물이 주는 허구의 공포는 현실의 공포를 대리 체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함 속에서 맛보는 고통의 체험이다. 문 앞에 그려진 의미 없는 그림이, 피칠갑 된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 웹툰보다 더 기분 나쁘고 무섭다는 뜻이다. 스티븐 킹은 공포물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나쁜 꿈을 꾸기를 ‘희망’하며 극장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쁜 꿈이 끝났을 때 우리가 평범한 인생을 사는 현실 세상이 훨씬 더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명심해 둔다면, 좋은 공포 영화가 관객에게 힘을 발휘하는 이유와 수백 편의 나쁜 공포 영화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는 <나는 납량 특집이 싫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잔인한 장면도 나오지 않고 딱히 놀래키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몇몇 이야기들은 정말로 불닭 같은 존재다. 닭이라는 지상 최고의 식재료로 만들어졌지만 뺨따귀를 때리듯 매운 음식, 불닭은 진정 먹고 싶지만 동시에 먹기 싫은 음식인 것이다. 동료 작가들이 <컨저링>을 보고 와서 감탄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외톨이의 고독함을 느끼며 먼발치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는 이를테면, 엄청난 고통은 아니지만 손톱 밑의 가시처럼 지속적인 괴로움을 선사한다.” 그는 그 중에서도 라디오로 듣는 공포 이야기를 최고로 치는데, 소리로만 들리는 공포를 듣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상상하게 되고 그것이 두려움의 최고봉이라는 것이다. “웹툰 <덴마>에서 하도르 상사가 받는 형벌 중에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 갇히는 형벌이 있다. 많은 수의 죄수가 결국 그 안에서 자살을 한다고 알려진 이 악명 높은 형벌의 진정한 무서움은 죄수 스스로 만들어내는 극도의 공포다. 유키무라 마코토의 만화 <플라네테스>에서도 트라우마에 의해 괴로워하는 주인공 하치마키는 감각차단실험실에서 재현된 우주공간 체험 때 자신이 만들어낸 공포심을 견디지 못한다. 공포감의 원체험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들 스스로가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이건 가짜야’라는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납량 특집을 즐기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이종범 작가의 말대로 수많은 작품들은 ‘이건 가짜야’라는 감각을 부수기 위해 설계된다.

웹툰에서 공포 장르물은 어떻게 공포를 유발하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였다. 웹툰의 시대는 종이만화의 시대와 어떤 식으로 다른 공포유발장치를 사용하고 있는가? 그 차이는 페이지로 나뉘지 않는 스크롤 시대의 문화와 어떤 식으로 조응하는가? 웹툰과 소설, 영화에서의 공포 장치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공포를 느끼는 심리나 매커니즘은 매체가 달라지면 차이가 발생하는가? 공포의 어떤 요소들이 매체가 달라져도 그대로 힘을 발휘하는가? 이런 여러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여러 탐색을 해볼 생각이다. 웹툰의 공포장치를 분석하는 두 가지 틀이라면 하나는 서사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지의 측면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각광받는가, 어떤 효과가 각광받는가.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와 밤에 누우면 생각나는 공포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그런 장치들이 한국의 고유한 상황과 어떤 연결점을 갖고 있을까.

공포물은 국경을 넘고 매체를 넘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포를 유발하는가? 흥미로운 점은 공포물은 그 어느 장르보다도 국경을 잘 넘어 전파된다는 것이다. 가장 어렵사리 전파되는 장르라면 역시 코미디를 꼽을 수 있다.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한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농담(가장 간단한 예로 사과해야 하는 순간에 먹는 사과를 건네는 일은, 한국어 이용자가 아니면 주석이 필요한 일이 된다)이 불가능하다. 패러디에 쓰이는 유명한 문화코드들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쓸 때 루이스 캐럴은 당대의 실존하는 인물들을 풍자해 극중에 등장시켰는데, 현대의 독자들은 그 인물이 누구이며 왜 풍자했으며, 어떤 포인트가 풍자한 특징인지를 주석을 통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그런 사실을 모른다 해도 작품을 즐기는데 지장이 없을 순 있지만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존 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해롤드와 쿠마>에서는 대마초를 한 두 주인공이 화이트캐슬 햄버거를 먹기 위해 벌이는 소동을 그리고 있는데, 맥도날드 버거였다면 그 코미디는 성립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며, 화이트캐슬 햄버거가 없는 한국에서는 역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공포물은 다르다. 특정 문화권에서 더 인기 있는 공포물이 있긴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공포를 느끼는 심리는 논리적인 이해보다, 학습된 지식보다, 본능적이고 근본적인 인간의 무의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공포영화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되는 일이 그 어떤 장르보다 빈번하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 <링> 시리즈는 한국과 미국에서 만들어졌고, <주온> 역시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 타이와 홍콩의 합작영화 <디 아이>도 할리우드에서 다시 만들어졌다. 80년대 한국에서는 홍콩의 강시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공포영화거나, 슬랩스틱 코미디영화거나, 그 둘을 섞은 영화들이었다). <장화, 홍련>은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


<링> 시리즈의 주인공 귀신인 사다코의 경우는, 그 이후 수많은 한국 공포영화에 이미지로 영향을 끼쳤다. 흰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TV를 뚫고 나오는 방식으로 공포를 안겼던 사다코는 움직임 역시 기괴한데, 움직임 자체가 자연스럽다기보다는 구체관절인형처럼 관절이 부서진 것처럼 꺾은 채 움직인다는 특징이 있다. 목을 꺾고 팔뚝을 기괴하게 비틀어 앞으로 전진하는 사다코의 모습은 수많은 영화가 따라 하기도 했지만, 한국 웹툰에서도 그 영향이 있었다. 특히 프레임을 벗어나 튀어나오는 식으로 연출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장작 작가의 데뷔작인 웹툰 <0.0mhz>라는 작품은 주인공이 가입한 동아리 이름을 그 제목으로 하고 있다. 오컬트 현상을 과학적인 설명을 추가해 설명하는 식인데, 제목의 뜻은 귀신이나 죽은 존재를 나타내는 주파수라는 설명이다. 제목은 뇌파나 진동수를 귀신의 주파수와 일치시키면 직접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설정. 이 작품 속 귀신 중에는 사다코를 연상시키는 작화가 있다. 웹툰의 경우, 스크롤해서 보게 되기 때문에 공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 중에는 알 수 없는 형체가 흐물거리는 듯 시작되어 스크롤을 해 화면을 끌어내리면 아래쪽에 괴이한 얼굴이 눈을 부릅뜨고(이 역시 사다코의 영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삼백안이 되어 정면을 바라보는 식이다. 프레임 밖으로 기어 나오는 사다코와 정면을 향해 삼백안으로 노려보는 사다코는 웹툰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공포의 기법이며, <링> 시리즈를 본 적이 있든 그렇지 않든 그 장면에서의 오싹한 느낌은 그대로일 것이다.

노약자나 임산부는 보지 마시오

그리고 공포 웹툰이 종이 만화책과 완전히 구분되는 효과를 쓸 수 있음이 증명된 해가 바로 2011년이다. 일단 종이책으로 만들어진 공포만화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작품 중 하나인 이토 준지의 공포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 <소용돌이>는 한국판 뒷표지에 경고문구를 넣었다. ‘노약자나 임산부는 구독을 금합니다’. 이토 준지는 <토미에>의 원작자로 1999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하기도 했다. 같은 해 일본에서 영화화됐던 <소용돌이>에는 배우 신은경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꽤 오랫동안 공포 만화, 무서운 만화라면 이토 준지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싫어하는 사람 또한 그만큼 많았다. 여기서 ‘싫어한다’는 말은, 너무 무서워서 싫어했다는 뜻이다. 아니, 무서워서 싫었다기보다는 기분 나빠서 무서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소용돌이’의 무대는 해안가의 작은 마을. 여자 고등학생 키리에가 만나는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소용돌이 모양에 빠져들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마을엔 흉흉한 일들이 벌어진다. 소용돌이 패턴은 지문부터 달팽이 껍질, 꽈배기과자까지 자연에 존재하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인데, <소용돌이>의 힘은, 그런 흔히 볼 수 있는 반복 패턴을 기괴하고 불쾌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고 나아가 오싹한 공포심으로 연결지었다는 데 있다. <소용돌이>에서는 사람의 몸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둥글게 말리고, 머리카락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배배 꼬인다. <토미에>에서는 주인공의 절단된 몸에서 다시 머리가 주렁주렁 자라난다. 이토준지 만화 <공포의 물고기>는 나중에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는데, 괴 생명체들이 입과 항문에 호스를 연결해 몸에서 나온 가스를 동력으로 삼아 모든 생명체들의 몸을 잠식당한다는 내용이다. 이토 준지는 그런 기기묘묘한 상황, 인체변형의 모습을 집요할 정도의 작화로 표현했다.


기괴한 설정은 이토 준지가 유명해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만화를 그린 아오노 슌주와 2012년에 인터뷰를 한 일이 있는데, 그 시기는 한국 만화의 중심이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완전히 옮겨왔다고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일본의 경우에도 그런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출판만화와 인터넷으로 보는 만화를 그릴 때 작가 입장에서의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아오노 슌주는 웹에서 연재를 했었지만 그리는 사람으로서는 종이로 봐주면 더 좋겠다고 말하면서, 이런 설명을 했다. “그려보고 알았는데 스크롤하는 것과 종이를 넘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스크롤을 하면 한 화면을 한 페이지로 보게 되지 않나. 잡지의 경우는 페이지를 펼칠 때 지금 보는 페이지 말고 그 맞은편 페이지도 무의식적으로 보게 된다. 그게 굉장히 중요해서, 페이지를 펼쳤을 때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각해서 그리는 작가들도 많기 때문에 한 페이지씩 보게 되면 작가의 연출이 반감된다. 여기 이런 그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시선을 돌리는 것과 스크롤을 하면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그리는 쪽에서 말하면, 책을 펼치면 두 페이지가 되지만 그것을 한 장의 그림으로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다.”

즉, 출판만화의 경우 ‘펼침면’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강조 효과를 위해 페이지를 가로지르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하게는 실제 이야기가 진행되는 ‘칸’ 말고도 시야에 확보되는 다른 칸들에서 유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작화를 한다는 뜻이다. 이토 준지의 경우 듣기만 해도 끔찍한 그림을 아주 세밀하고 촘촘한 선으로 그려낸다. 상상은 해보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집요한 소용돌이 패턴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게 처음에는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는 게 뒤에 느끼는 공포와 추함을 배가시킨다. 실제 이야기를 읽어가는 칸에서 소용돌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칸에서 집요한 소용돌이 패턴이 빽빽하게 페이지를 채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웹툰의 경우는 그런 식으로 효과를 주는 일이 불가능하다. 웹툰에서도 칸 만화를 그리는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한 컷은 칸 안에 갇혀있지 않고, 스크롤 방식으로 보는 것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한 컷이 다음 컷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컷을 길게 늘어뜨려서 다음 컷을 끌어올리는 식이 가장 흔하게 사용된다. 웹툰의 움직임은 펼침면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상하운동을 한다. 공포물의 경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귀신이 기괴할 정도로 길게 ‘늘려져서’ 스크롤을 해도 계속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피범벅이 된 형체가 있다든가 하는. 하지만 2011년에 웹툰은 웹툰이 잘할 수 있는 효과를 이용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바로 플래시다.

그리고 귀신이 움직인다.

공포웹툰에 특수효과를 적용한 첫 사례는 바로 호랑 작가의 <옥수역 귀신>이다. 2011년 여름 네이버 웹툰 작가 20여명이 참여한 릴레이 연재 <2011 미스테리 단편>를 통해 발표되었다. 그 해 여름에 <옥수역 귀신>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는데, 플래시 기법을 차용해 화면을 내리다 보면 갑자기 피 묻은 손이 튀어나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사무실에서 웹툰을 보다가(즉,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다가)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는 경험담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었는데, 웹툰이 출판만화의 웹 버전이 아니라 웹을 이용한 효과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장르적 효과를 배가시킨 케이스다. 호랑 작가는 <옥수역 귀신> 뿐 아니라 같은 시리즈에 <봉천동 귀신>도 그렸는데, 두 작품에서 모두 플래시 효과가 쓰였다. <봉천동 귀신>에서는 피투성이 여자 귀신의 얼굴이 기묘한 소리와 함께 화면으로 빠르게 다가온다. 그렇다. 소리로 효과를 주는 것 역시 웹툰의 장점이다. 참고로 이 두 작품은 영어로도 번역됐는데, 외국인들이 이를 보고 깜짝 놀라는 반응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 ‘옥수역 귀신 외국인 반응’ ‘봉천동 귀신 외국인 반응’이라는 영상을 검색하면 볼 수 있으며, 참고로 ‘봉천동 귀신 한국인 반응’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하는 귀신에 대해 미리 알고서 귀신 나오는 대목을 적당히 빨리 내려버리고 댓글만 보려고 할 경우에도 하이라이트 부분에 가면 스크롤이 자동으로 움직인다(강제 스크롤 기능).



한겨레 신문의 2015년 7월 기사에 따르면, 호랑 작가가 관련 아이티 기술을 어느 정도 알았기에 이런 특수효과를 쓰는 게 가능했다고 한다. 그 이후 “네이버 웹툰은 아예 작가들이 관련 기술을 몰라도 손쉽게 특수효과를 쓸 수 있도록 ‘웹툰 효과 에디터’를 개발했다. 하일권 작가는 지난 5월 연재를 시작한 <고고고>에서 이 에디터 도구를 처음 적용했다. 일부 장면에선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그림이 움직이고, 총을 쏘는 장면에선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린다. 네이버 웹툰은 오는 7일부터 두 달 동안 공포 특집 단편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소름’을 주제로 30여명의 작가가 참여하게 되는데, 모든 작가들이 웹툰 효과 에디터를 활용한 특수효과를 선보일 예정이다. 거의 모든 공포물에서 움직이는 그림, 소리, 진동 등을 적절히 활용해 보는 이의 공포를 극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놀랄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깜짝 놀래키는’ 효과는 처음에 가장 큰 충격을 주고, 빈도가 높아지면 그 효과가 반감된다. 예컨대 3D영화가 <아바타>로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 너도나도 3D 영화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던 2009년, 3D영화의 꽃은 공포물과 포르노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포물에서 살인마가 도끼로 희생자를 내려찍는 느낌을 객석을 향해 보여주면 무서울 것이라고. 그리고 실제로 2010년에 공포영화 <쏘우 3D>가 개봉했고, 같은 해 한국 최초의 3D영화를 표방한 에로영화 <나탈리>가 개봉했다. 두 영화가 증명한 것은 결국 아무리 좋은 효과도 이야기의 충분한 뒷받침을 받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이제 공포 웹툰에서 ‘기분나쁜 소리’가 울려퍼지는 일은 더 이상 드물거나 신기하지 않아졌다. 호랑 작가의 <옥수역 귀신> <봉천동 귀신>은 플래시를 이용한 효과면에서 뿐 아니라 이야기의 내용 면에서도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바로 도시괴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서사면에서의 특징- 도시괴담의 재미

<옥수역 귀신>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과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웹툰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 지난 2009년 2월 응봉역에서 옥수역으로 진입하던 중앙선 전동차에 치어 한 남자가 숨졌으며, 이를 수습하던 병원 장례 관계자가 열차에 치어 함께 숨진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호랑작가는 SBS <한밤의 TV연예>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항의를 받았다고 들었다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옥수 주민들이 무섭다며 애교 섞인 항의를 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봉천동 괴담> 역시 어디선가 들어본 식의 ‘익숙한’ 전개다. 한 여학생이 한밤중에 집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지저분한 잠옷을 입은 한 여자가 관절이 뒤틀린 듯 이상하게 걸어가고 있는 걸 보게 된다. 학생은 무서워서 앞질러가지도 못하고 그 뒤를 따른다. 그 순간 여자가 휙 뒤돌아보며 “내 아기 어딨어?”라고 물어보자 그 학생은 최대한 먼 곳을 가리킨다. 이상한 여자를 따돌렸다고 생각한 학생이 도망가려는 순간, “여기 없잖아!”라는 괴성과 함께 몸이 뒤로 꺾이듯 젖혀진 상태로 미칠듯이 달려오는 여자. (이 대목에서 귀신이 움직인다.) 참고로 이 만화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웹툰 <불암콩콩코믹스>에서 <사직동 귀신>이라는 에피소드로 패러디되기도 했다.



도시괴담의 경우는 다수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 도시괴담이 한국으로 수입되었다. 빨간마스크 괴담이 가장 대표적인데, 일본에서는 ‘입 찢어진 여자’ 이야기로 잘 알려졌으며 한국에서는 ‘홍콩할매’이야기로 유명했다. 일본에서 ‘입 찢어진 여자’ 괴담은 1979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도시괴담>을 쓴 쓰네미쓰 도루의 설명에 따르면 이 괴담의 내용은 이렇다. “큰 마스크를 한 여자가 하교 길의 아이 곁에 다가와서 갑자기 ‘저, 나 예뻐?’라고 묻는다. ‘미인입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녀는 천천히 마스크에 손을 대고, ‘이래도?’라고 말하고 마스크를 벗는다. 마스크 아래로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귀까지 찢어진 귀신 같은 입이다. 놀라 울면서 소리치며 달아나면, 뒤에서 칼을 치켜들고 뒤쫓아온다. 그녀는 발이 매우 빨라 도망쳐도 곧 잡히는데, ‘포마드, 포마드, 포마드.’라고 세 번 복창하든가, 사탕을 주면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빨간마스크 괴담에서는 포마드와 관련한 대목은 없었다.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가 아이에게 묻는다. “내가 예쁘니?”라고. 그때 예쁘지 않다고 하면 아이를 죽이고, 예쁘다고 하면 똑같이 해주겠다고 하고는 입을 찢는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 초중반에 특히 인기가 많았다. 그 시기 한국은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조직폭력배 척결을 선포할 정도로 조폭이 사회문제화 되었었는데,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납치 후 인신매매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봉고차에 실려 사창가로 팔려간다는 인신매매 관련 보도와 홍콩할매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귀가할 때 두명 이상이 짝을 지어 귀가하라는 말을 학교에서 할 정도였다. 이 괴담은 이후에도 한동안 유행했는데,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해도 충분히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어떤 대답을 해도 입이 찢어질 위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변형 중에는 “그저 그래요” 같은 대답을 하면 된다는 설도 있는 모양이지만, “예쁘니?”라는 말에 “그렇다” 혹은 “아니다” 둘 다 정답이 아니며, 그 결과로 입을 찢는다는 설정의 공포심은 굳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호랑 작가의 <봉천동 괴담>처럼 귀신이 인간에게 무언가 질문을 하고, 질문에 답한 내용에 대해 분노하며 어떤 일을 벌인다는 게 공포의 요소다. 주동근 작가의 웹툰 <귀도> 역시 괴담을 소재로 한 액자식 구성의 옴니버스 작품이다. 예로부터 특정 장소와 시간에서 귀신 이야기를 하면 저승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게 되고, 그 자리에 귀신들이 모인다는 속설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네 명의 사람들은 차를 타고 으슥한 곳으로 향해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듣기 싫은 소리를 모아놓은 듯한 BGM, 어두운 그림 속에 숨어있는 듯 한 무빙툰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이 작품 역시 “임산부 노약자,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이용을 삼가주시길 바란다”는 경고문구가 있는데, 웹툰의 특수효과를 사용한 작품으로는 가장 재미있고 가장 무섭고 완성도도 높은 작품으로 큰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한국적인 상황에서 생겨나는 공포

강풀 작가의 ‘미스터리심리썰렁물’ 역시 도시괴담적 요소를 띠고 있다. 특히 미스터리심리썰렁물 첫 작품인 <아파트>가 그랬는데, 영화 <숨바꼭질>이 그랬던 것처럼, 아파트라는 공간이 갖는 이웃과의 단절이라는 요소가 갖는 호기심과 공포심을 절묘하게 강풀 특유의 드라마에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주인공 역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청년, 상처받고 스스로를 가둬버린 이혼녀, 누구도 반기지 않는 외로운 의무를 떠맡은 저승사자, 귀신에게 홀린 부모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고생, 신문 기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독신 여성 같은 사람들.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영화화되었고, 웹툰계의 고전 걸작 반열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을 윤태호 작가의 <이끼>는 공포와 스릴러의 교배로 태어났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농촌스릴러적 특성과 TV의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반씩 섞은 듯 한 이 작품은 아버지의 죽음 뒤 숨겨진 이야기를 캐는 과정에서 시골 작은 마을 사람들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이어가는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발견되는 장면들, 특히 윤태호 작가의 작화솜씨가 빛을 발하는 유명한 장면들이 있다. 주인공이 창고 등을 교체하는 신과 집에서 잠든 주인공을 감시하는 대목에서 비가 내리는 신 같은 경우는 허영만도 뛰어난 작화라고 평한 바가 있는데, 서스펜스가 극에 달해 공포에 가까운 전율을 안긴다. 조마조마한 순간에 영상기법(조명을 사용해 어둡다가 갑자기 밝아진다거나 하는)을 한 화면 가득 한 컷을 채우는 웹툰으로 보여주는 식의 연출이 갖는 효과를 잘 활용한 사례다.

익숙한 이야기가 웹툰으로 재해석되면서 오싹한 기분을 안기는 것은 ‘2013 전설의 고향’ 시리즈에서도 효과를 발휘했다. <전설의 고향>이라는 옛 TV의 프로그램 제목을 따온 데서 알 수 있지만, 알고 있는 전래 귀신 이야기가 여러 형태로 재해석된다. 한국적인 상황에서 비롯하는 공포라면 황준호 작가의 <공부하기 좋은 날>도 빼놓을 순 없다.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이야기. 랑또 작가의 <빨간책>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귀신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한국적 미신을 소재로, 귀신을 믿지 않는 퇴마사와 귀신을 보는 소녀를 중심으로 한 후렛샤 작가와 김홍태 작가의 <빙의>도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친화적인 오싹함을 안긴다.

공포물의 인기는 식지 않는다

한국적인 이야기가 안기는 익숙한, ‘놀랄 준비를 하고 읽어가는’ 공포 웹툰들도 있지만, 전 세계적인 공포물 트렌드인 좀비물도 많다. 주동근 작가의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원물, 김숭늉 작가의 <사람 냄새>, DEY 작가의 <데드데이즈>를 비롯한 작품들이 있다. <데드데이즈>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현관문에 달린 외시경을 이용해 피칠갑이 된 복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으그적 으그적’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아직 문제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장면 연출은 외시경을 통해 방문객을 확인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공포만큼이나 기분 나쁜 맛을 안긴다. 이런 ‘기분 나쁜 맛’은 최근 몇 년간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좀비공포물이 좀비를 때려잡는 시원한 쾌감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찐득거림과 소음, 그리고 아무리 때려잡아도 끝이 없는데서 오는 불쾌감을 연출하는데 공을 들이고, 그것이 좀비물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일본에서는 ‘키모이’(‘기분나쁘다’는 뜻의 ‘기모치 와루이’의 줄임말) 혹은 ‘이야미스’(‘기분나쁜 미스터리’라는 뜻의 ‘이야나 미스터리’의 줄임말)같은 설명이 붙은 소설이 꽤 인기를 끌기도 했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마리 유키코의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누마타 마호카루의 <유리고코로>가 그런 소설들인데, 특유의 ‘뒷맛이 좋지 않은’ 느낌은 최근 공포 웹툰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좀비물은 필연적으로 세계 종말의 풍경을 담아내는데, 스티븐 킹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알던 세상의 파괴는 실질적인 안도감을 선사했다. 더 이상 맥도날드 햄버거 피에로는 없다! 더 이상 TV에서 장기 자랑대회나 멜로드라마는 없다! 그저 기쁘게도 치지직거리며 눈발이 날리는 화면뿐! 더 이상 테러리스트는 없다! 더 이상 못마땅한 것은 없다!”어쩌면 이런 ‘아포칼립스’를 보는 재미 중에는 ‘모두가 망하면 좋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는지도. 어쨌거나 이 모든 게 이제 ‘끝나버렸다’는 후련한 감각일지도. 웹툰 속에서 그런 기분을 실컷 맛보고 고개를 들면, 어차피 현실은 눈앞에 있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공포물의 서사적 특징 중 하나는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주인공은 하지 말라는 일을 한다. 공포영화든 공포웹툰이든, 주인공이 닫힌 문을 여는 순간 “하지 마!”하고 속으로 외쳐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공포물의 클리쉐가 마르고 닳도록 재생산되며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는 비결은 바로 그 ‘뻔한’ 이야기와, 무엇보다도 뻔 하지만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보지 않으면 무서울 일이 없겠지만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린다. 마지막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듣고도, 직접 보고 싶어한다. 공포물의 주인공처럼, 금단의 선을 넘고 넘으며 무섭고 더 무서운 것을 향해가는 모험. 공포물의 창조자들은 그야말로 악몽의 신이 되어, 본능적인 반응부터 어디선가 들어온 이야기,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낸 효과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그렇게 독자는 잠 못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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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씨네21 기자, 에세이스트, 북 칼럼니스트, 번역가
『여행의 말들』, 『내일을 위한 내 일』, 『조식: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출근길의 주문』, 『아무튼 스릴러』,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저자